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 이윤기가 말하는 쓰고 옮긴다는 것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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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번역가 이윤기의 자유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 
이윤기 지음/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그의 자유는 글에 있었다. 번역가 이윤기의 이야기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이윤기라는 사람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가 어떤 책을 번역하고 어떤 글을 썼는지 아직도 잘 알지 못한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하게 느낀 건 그가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으며 느낀 땀과 자유가 그의 글에게서도 느껴진다는 점이다. 아, 이 사람은 정말로 글 자체를 사랑하는 분이구나. 스타일 있는 문체로 좋은 글을 쓰는 분이구나 하는 것. 이 책은 그의 자유에 관한 책이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지요, 라는 질문을 나는 자주 받는다. 내가 글을 잘 써서 이런 질문을 자주 받는 것이 아니고, 글 쓰는 일을 아주 직업으로 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나는,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싶은 대로 쓰면 초단은 되어요, 하고 대답한다. 그런데 이게 제대로 되지 않아 초보자의 입단은 번번이 좌절되고 만다. 되풀이해서 쓴다. 생간나는 대로, 말하고 싶은 대로 쓰기만 하면 초단은 된다. 이렇게 쉬운 것을 왜 여느 사람들은 하지 못하는가? 유식해 보이고 싶어서 폼나는 어휘를 고르고, 멋있게 보이고 싶어서 제 생각을 비틀다 제 글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생각을 놓쳐버리기 때문이다.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이윤기 선생님이 번역하기도 한 「그리스인 조르바」는 따로 설명할 필요없이 대중에게도 유명한 작품이지만, 특히 작가 사이에서 평판이 빛을 발한다. 인생 최고의 작품으로 「그리스인 조르바」를 뽑는 작가가 많다. 어떤 작가는 매년 다시 읽어본다고 했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나에게 「그리스인 조르바」는 실패밖에 없다. 그 유명세를 느낄 때마다 읽어보려고 노력하지만 매번 다음 페이지를 넘기기 힘든 지루한 작품이었다. 

 

 

  "아버지, '피복지급'이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옷을 준다는 뜻이다."

  "아버지, 그럼 급료수령'은요?

  "월급 받아 가라는 소리다."

  "왜 그렇게 쉽게 쓰면 안 되지요?"

 외국에서 공부하고 귀국해서 입대한 아들과 나 사이에 실제로 오간 대화다.

 

 사람들은 왜 어려운 말을 즐겨 쓰는가? 자기네들끼리만 아는 말을 씀으로써 바깥에서 들어온 사람들은 난처하게 하는가? 말이 곧 권력이기 때문이 아닐는지. 포기하기 싫은, 달콤한 권력에의 유혹이기 때문이 아닐는지.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조르바가 어째서 그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지 나로선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이윤기 선생님에게 느낀 그 자유가, 조르바와 비슷한 형태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면, 나도 이제 '조르바의 자유'를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말에 얽매여 휘둘리지 않고, 말을 부릴 줄 알았던 사람. 말과 언어, 글과 삶으로 짙게 얼룩진 이 책은, 이윤기 선생님의 딸, 이다희 님의 말대로 이윤기 선생님이 남긴 유산이 됐다. 

 오늘 다시 한번 「그리스인 조르바」를 펼칠 용기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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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 
이윤기 지음/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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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그림 - 아름다운 명화의 섬뜩한 뒷이야기 무서운 그림 1
나카노 교코 지음, 이연식 옮김 / 세미콜론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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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무서운 그림」악의 매력

 


 

 

 

나카노 교코 지음, 이연식 옮김/세미콜론

 

 

 예술 작품은 하나의 퍼즐과 같다. 작가가 숨겨놓은 조각을 찾아내 조립해야 한다. 섬세한 표현과 절묘한 묘사가 이를 돕는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작가와 대화를 나눈다. 말 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천천히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작품을 감상할수록, 읽어나갈수록 의도는 드러나기 시작한다. 자칫 방심하면 놓치게 된다. 몇몇 작가는 친밀한 친구에게만 전하는 비밀 대화를 늘어놓을 때도 있다. 거기엔 바로 무서움도 깃들어 있다. 「무서운 그림」은 명화가 숨겨놓은, 혹은 존재만으로 발하는 무서움에 대해 보여준다. 

 

 

 그녀를 돈으로 산 사내가 무대 뒤쪽에서 너무도 당연한 듯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러한 현실에 별달리 관심을 갖지 않은 화가가, 비판적인 의식이라고는 전혀 없는, 하지만 매우 아름다운 한 점의 그림을 그려 냈다는 사실, 그것이 무척이나 두렵다.

 P. 19 

 


에드가 드가 <무대 위의 무용수>

 

 인간은 이상하게도 '악'이나 '공포'에 관한 것들에게 매력을 느끼기도 한다. 공포 영화의 한 장면을 실제로 경험하게 된다면 그렇게 한가롭게 즐길 수 있을까? 그건 당연히 아니다. 공포란 것은 나와 간접적인 위치에 있다는 거리감을 통해서만 희열을 느낄 수 있다. 시대적 광기, 집요한 악의, 선명한 시선을 담고 있는 특정 명화가 바로 그런 매력을 담고 있다. 우아한 색체나 아름다운 구도와는 다른, 감상으로 느낄 수 있는 섬뜩한 오르가즘을 주는 명화들. 

 

 

 어떤 종류의 '악'이 휘황한 매력을 발산하듯 공포라는 것에도 저항하기 어려운 흡입력이 있어서 인간은 안전한 장소에서 공포를 엿보고 싶고 즐기고 싶다는 어쩔 수 없는 욕구를 지니고 있다. 이는 죽음의 공포를 느낄 때만큼 살아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은 없다는 인간 존재의 얄궂은 조건에서 온 것이다.

 P. 9 

 


 

 「무서운 그림」은 저자 나카노 교코의 정확한 해설과 유려한 문체를 통해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다. 미술에 관심이 없더라도 쉬이 즐길 수 있는 책이다. '정말 괜찮은 책이다'라고 느낄 수 있어서인지 책의 굴곡으로 인해 크기가 큰 명화는 짤리게 되는 페이지가 참 안타깝다. 그림을 완전하게 볼 수 없는 문제는 건 치명타다.

 책 크기를 늘리던가, 한 페이지에 넣기에 크기가 아슬아슬한 명화는 조금 줄여서라도 누락되는 부분을 없애는 방법을 택했으면 더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보기'와 '읽기' 두 가지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있는 책이지만 직무를 유기하는 것만 같아 아쉽기만 했다. 

 

 

 이렇게 내부에 죽음을 품은 채로 저택은 천천히 바다를 맞이한다. 바다는 소리도 없이 파도를 밀어 와서는 서서히 건물을 둘러싸기 시작한다. 바닷물은 분명히 멀리에서부터, 아득히 먼 곳에서부터 기분 나쁜 생물처럼 서서히 기어 왔으리라. 처음에 파도가 닿았던 곳이 어디쯤이었는지 지금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저택의 토대는 이미 흠뻑 젖어 있고 광장의 포석도 절반 가까이 물에 잠겨 있다. 결국엔 모든 것이 바다 밑이라는 기억의 밑바닥으로 가라앉으리라.

 하지만 이 저택은 가라앉기는 해도 결코 붕괴하지는 않을 것이다. 부식하지도 않을 것이다. 영원히 각인시켜 두고 싶다는 강한 집념이 함게 잠길 것이기에 저택은 예전의 모습을 언제까지고 간직할 것이다. 내부는 죽는대도 외양은 변치 않는다. 마음은 썩어도 잔상만은 선명하게 남는다. 그 겉모습을 보건대 내부는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는 것만 같다.

 어딘지, 뭔가가 어긋나서 딱 끝나지 않은 사랑 같다.

 P.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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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노 교코 지음, 이연식 옮김/세미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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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속에 핀 꽃들 - 우리가 사랑한 문학 문학이 사랑한 꽃이야기
김민철 지음 / 샘터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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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문학 속에 핀 꽃들」- 그 꽃의 이름을 알았을 때

 

 

 

 문학 속엔 퍼즐이 있다. 문장 하나하나, 단어 하나하나에 작가의 의도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마셨다면 그 커피에는 의미가 담겨 있다. 만약 우유를 마셨다면 커피와는 다른 의미가 들어 있는 것이다. 그 사물이나 행동이 가지는 의미와 상징은 문학을 읽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 틀림없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주인공 영희가 온종일 '팬지꽃' 앞에 앉아 줄 끊어진 기타를 쳤던 이유가 있다. 민들레도 아니고, 해바라기도 아닌 궂이 팬지꽃이어야 했던 이유. 「7년의 밤」에서 '가시박'이 나와야 했던 이유, 「소나기」에서 '마타리'가 필요했던 이유 등 모든 게 의미이자 상징이며 독자들에게 주어지는 암호다. 

 

 

 

영희는 입주권을 되찾기 위해 '줄 끊어진 기타와 팬지꽃 두 송이'만을 가지고 집을 나간다. 오빠 영호는 영희를 찾아 헤매다 '영희가 팬지꽃 두 송이를  공장폐수 속에 던져 넣는 꿈'을 꾼다. 영희를 상징하는 팬지꽃이 폐수 속에 던져지는 것은 영희의 순수성이 훼손될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P. 25 

 

 

 「문학 속에 핀 꽃들」은 우리가 문학을 읽으며 발견하지 못했던 퍼즐 한 조각을 찾는 데 도움을 준다. 스쳐지나가 버리거나, 보고도 이름(실체)를 알 수 없는 문학 속의 꽃들을, 마치 평소 스쳐보낸 길가 야생화의 이름처럼 알려준다. 「은교」, 「7년의 밤」, 「마당을 나온 암탉」등 대중적인 문학이 등장하고, 그 안에서 핀 꽃들의 상징, 의미, 에피소드, 정보 등이 소개된다. 

 

 

 

 옛날에 '소화'라는 어여쁜 궁녀가 있었는데, 임금의 눈에 띄어 하룻밤 성은을 입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임금은 그 이후로 궁녀의 처소에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궁녀는 담장을 서성이며 발걸음 소리라도 나지 않을까, 그림자라도 비치지 않을까 안타깝게 기다렸지만, 임금은 오지 않았다. 궁녀는 지쳐서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났는데, '담장 가에 묻혀 임금님을 기다리겠노라'라는 유언을 남겼다. 궁녀를 묻은 다음, 담장 가에서 조금이라도 더 멀리 밖을 보려고 높게, 발걸음 소리를 들으려고 꽃잎을 넓게 벌린 꽃이 피었고, 사람들은 그것을 '소화'라는 이름을 따서 '능소화'라고 불렀다는 이야기다.

P. 215 

 

 

 작가들이 어떤 아름다운 문장으로 꽃들을 묘사했는지 되짚어보는 것도 꽤나 쏠쏠한 재미다. 같은 꽃을 본다하더라도 내가 느낄 수 없었던 생각이나 절묘한 표현들을 찾을 수 있다. 마치 새 생명을 받듯 새로이 묘사된 꽃들. 작가들만이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창조를 느낄 수 있어, 이 책에는 꽃 향기가 나는 것만 같다. 

 

 

 「3월의 전설」에도 3월 내내 구례에서 살지 않았으면 쓰기 어려운 섬세한 묘사들이 적지 않다. 예를 들면 :불과 열흘 만인데 산수유는 이미 데쳐내고 삶아낸 것처럼 색이 빠져 맥없이 지고 있었다. 매화가 질 때면 산수유도 따라 지는 모양이었다"라는 대목이 그렇다.

 P. 107 

 

 

 나는 사실 꽃이 등장하는 문학을 읽으면 곤란함을 감출 수 없었다. 서울에서만 20년을 넘게 살아온 게 변명이 될까. 내가 아는 꽃의 이름이라고는 민들레나 해바라기같이 유치원생들도 아는 대중적인 꽃밖에 없었다. 매화나 벚꽃을 구분할줄도 몰랐으며 꽃잎과 잎을 혼동하는 일도 적지 않았다. 

 문학에는 암묵적인 기본기가 존재하곤 하는데, 그중 하나가 사물이나 식물, 노래 등을 등장시킬 때는 읽는 독자들의 70~80프로는 알고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룰이다. 생전 듣도보도 못한 '무엇'이 등장한다면 보는 독자들이 얼마나 황당하겠는가? 나는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독자로서 문학 속에 꽃이 등장할 때마다 70~80프로에 속하지 못한 소외자임에 원통함을 금할 길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문학 속에 핀 꽃들」에서 자세히 소개되어 있는 꽃과 사진을 볼 때면 저자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먼저 들었다. 마치 김춘수의 시처럼 하나의 꽃에 지나지 않았던 그것이,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나에게로 다가와 진정히 아름다운 '꽃'이 되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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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속에 핀 꽃들 - 
김민철 지음/샘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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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작하는 여행 스케치 - 당당하게 도전하는 희망 그리기 프로젝트 지금 시작하는 드로잉
오은정 지음 / 안그라픽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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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지금 시작하는 여행 스케치」나를 그릴 수 있는 여행



 

 그림 그리기는 오래전부터 나의 작은 소망 중 하나였다. 누구나 경험해봤을 반에서 그림 좀 그리는 아이를 부러워하는 정도, 그 정도가 나는 심했다. 그림이 글과 마찬가지로 나를 표현해주는 하나의 방식으로 자리 잡기를 바랐다. 안에 잠겨 있는 나를 오롯이 직설적으로 내뱉기보다는 오묘하고 추상적으로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도저히 적응할 수 없을 것 같은 일들에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며 사회에 물들고, 점점 나다움을 잃어가는 과정에서 글은 중심을 잡게 해주는 생명력을 지녔고, 그림도 그와 같은 역할을 해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 「지금 시작하는 여행 스케치」의 저자 오은정 작가처럼 그림으로 나다움을 지키고, 그림으로 어두운 면들을 헤치고 나아갔으면… 그녀처럼 여행다니며 소박한 스케치를 하고, 그 그림에 겉멋 잔뜩 든 글귀를 적어두고 킥킥 웃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 정말 많이 했다.

 

 열심히 한다고 해도 이루어질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가기 시작했고 무엇보다도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고 실망하면서 천진난만했던 내 모습도 사뭇 달라져갔다. 그래, 어른들은 그런 내 모습에 철이 들었다고 했겠지.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세상의 어두운 면들을 마주치며 '나다움'을 잃어갔던 것이다. 

P. 10

 

 

 

 그런데 나는 그림과 너무 거리가 멀었다. 내가 가진 붓은 도화지에 닿지가 않았다. 전문가 수준의 그림을 바란 건 결코 아니었지만, 내가 그린 기린 그림은 항상 못 그린 기린 그림이었다. 적어도 그림 같은 그림을 그리고 싶었는데 참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았다. 잘 그리진 못하지만 나만이 그릴 수 있는 특색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건만, 내가 뭘 그린지도 못 알아보는 그림이 되기 십상이었다. 

 누군가는 열심히 그리다보면 나아질 거라고 말하겠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프로 농구 규정에 따라 305cm 높이에 있는 농구 골대라면 슛을 던지는 연습을 할만하겠지만, 농구 골대가 300m 높이에 있다면 연습할 엄두가 나겠는가? 그저 미술은, 참 잘도 그렸네 라며 보고 즐기기 적당한 상공에 있었다. 

 

 나 역시 갖가지 방법으로 여행 스케치를 시도했다. 돌아다니는 동안 그릴 시간이 없다면 집으로 돌아와서 그리면 된다. 전문가들처럼 능숙하게 그릴 수 없다면 서투르지만 멋지게 그릴 수 있다. 모든 재료를 다 같추기엔 배낭이 너무 무겁다면 펜과 딱풀 하나면 된다. 

P. 12

 


 

 정말일까? 팔랑팔랑 거리며 흥분된 마음으로 책을 읽어나갔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실패했다. 내 그림은 그냥 서툴뿐이었다. 무엇보다 이 책은 스케치 기법을 가르치는 책이 아니었다. 게다가 오은정 작가는 이미 「지금 시작하는 드로잉」이라는 기본 스케치 기법을 가르치는 책을 냈다. 대신에 이 책이 지향하는 모습은 급변하는 세상에 휩쓸리지 않고, 조금은 빈둥거리며 여행 스케치를 통해 '나'라는 생명력을 지키는 모습을 그려냈다. 유명 관광지를 배회하기보다는 작은 마을을 둘러보고, 허겁지겁 다른 장소로 이동하기보다는 길가에 주저앉아 동물들과 소통하는 그런 아날로그적인 여유로운 스케치 여행.

 

 미국의 어느 경제학자가 1900년부터 2005년까지의 근무시간과 여가시간을 조사한 결과, 여가시간에 큰 변화가 없었다고 한다. 현대사회는 분명 근무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는 많은 기술이 개발되었지만 그에 비해 정작 인간은 여유시간이 더 없어진 셈이다. 정말 이상하지 않은가. 하긴 기계의 도움으로 어떤 일을 빨리 끝마쳤어도 그다음으로 휴식을 취하는 대신, 다른 일을 곧장 해버리는 것이 일상이다. 애써 시간을 벌었는데 그 시간에 놀면 아깝다는 생각에 말이다.

P. 14

 

 

 

 책에는 오은정 작가가 여행을 다니며 겪었던 에피소드, 경험담과 함께 작은 스케치들이 있다. 스케치와 함께 하는 여행을 즐겁게 하는 방법, 노하우도 빼놓지 않았다. 그녀가 그리는 길을 따라 걸으며 나도 절로 여유가 생기는 기분이다. 다행히 나는 내가 뭘 썼는지 알아 볼 수 있을 정도의 글은 가지고 있다. 그녀의 스케치를 따라할 순 없지만, 그녀의 편안한 삶은 따라 나의 글은 쓸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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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아이디어 퍼주는 스푼 시즌 2 : 아이디어 큐레이터가 엄선한 비즈니스에 영감을 주는 제품 이야기 - 아이디어 큐레이터가 엄선한 비즈니스에 영감을 주는 제품 이야기 아이디어 퍼주는 스푼 2
조현경 지음 / 어바웃어북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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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 퍼주는 스푼」행복을 부르는 생각 (e-book)




 난 예술을 사랑한다. 문학이 주는 인생의 아름다움이 좋고, 미술이 주는 아름다움의 설레임이 좋다. 또한 음악이 주는 설레임의 인생이 좋다. 이 모든 것들은 곧 감동으로 연결된다. 아마 문학 작품을 읽거나, 미술 작품을 감상할 때, 음악을 들을 때 감동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다이돌핀이 나오는 게 분명하다. 

 

 다이돌핀이라는 호르몬을 아시는지? 우리가 흔히 아는 엔돌핀이라는 호르몬보다 약 4,000배나 강한 효과를 지닌 호르몬이라고 한다. 주로 감동할 때 뇌에서 분비된다고 하는데, 그 효과가 정말 어마어마해서 암 세포를 이겨버리는 기적도 발생한다고 한다. 정말 나를 단숨에 사로잡아 전신의 액체를 전부 뒤흔드는 감동을 만날 때 내 몸 안에서는 이런 기적이 펼쳐지고 있으니 예술이란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예술 작품이 주는 감동 중에는 그 뛰어난 발상이 주는 감동도 빼놓지 않을 수 없는데 그건 비단 예술 작품에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다. 가끔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혹은 티비에서라도 눈길을 사로잡는 신기한 물건, 아이디어 상품을 종종 보게 된다. 마치 언 바다를 도끼로 깨는 것처럼 나의 정신을 활성화시키고 개구쟁이 어린 아이처럼 들뜬 마음을 주는 예술적인 상품들. 「아이디어 퍼주는 스푼」은 바로 그런 상품들을 모아놨다.

 

 생각하지 못했던 신기한 제품을 접했을 때 사람들의 마음과 뇌는 활짝 열린다. "와우!"라는 한 마디의 감탄과 함께 말이다. 문화심리학자인 김정운 교수는 "감탄은 인간의 본질적 욕구다. 감탄을 많이 하면 할수록 행복해진다"고 했다. 감탄하기 위해서는 많이 읽고, 보고, 경험할 수밖에 없다.

P. 5

 

 




 

「아이디어 퍼주는 스푼」은 총 다섯 가지 항목으로 나누어 재밌고 기발한 제품들을 보여준다. 보자마자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는 디자인,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주는 반전 아이템, 친환경적인 소재로 만들어진 상품, 심금을 울리는 감성 아이템, 입이 떡 벌어지는 하이테크놀러지의 부산물들이 바로 그것이다.

 

 책을 읽다보면 정말 신기하고 기발한 것들이 많아 하나하나 말해줄 수가 없을 정도다. 마치 아이스크림콘처럼 커피를 마신 후 컵을 먹을 수 있는 커피 컵이라던지, 돈을 주면 나무가 열리는 돈 나무 저금통, 먹을 수 있는 요리책, 지나간 길에 하트 무늬를 새기는 자전거 바퀴, 술을 채우면 달이 보이는 달 잔, 울음소리만으로 아이가 왜 우는지 알려주는 '와이 크라이' 같은 상품들이 있다. 

 

 가끔 제대로 흥분한 여자 친구의 쇼핑을 따라다닐 때면 곤혹을 치루는 경우가 있는데, 「아이디어 퍼주는 스푼」을 보다보면 나도 바로 그런 흥분을 느낄 수 있다. 남자들도 최신 전자 기기나 신기한 장난감을 보면 참지 못하고 손을 뻗지 않는가. 여기서 소개되는 대부분의 상품들이 디자인 공모전에 당선되거나, 해외에서 판매되는 상품이기 때문에 직접 구입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르지만, 아이 쇼핑만으로도 행복한 활력을 얻을 수 있었다.

 

 이런 제품은 없어도 생활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맞는 얘기다. 그러나 그렇게 치자면 사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제품이 몇 가지나 있겠는가? 사람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불편한 점을 개선해 주는 이런 제품들이 많이 나올수록 문명도 발전한다. 주방 일을 하면서도 기분 좋게 해주는 제품, 보는 것만으로 즐겁지 않은가?

P. 317

 

 



 예전에 아는 지인의 과제를 도와주기 위해 디자인 관련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거기서는 놀랍게도 거리의 디자인이 삶의 만족도에 영향을 주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의 서울이 얼마나 거리 디자인에 옹색했는지, 그리고 내가 얼마나 디자인에 소홀했는지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삶에 필요한 필수적인 도구만을 지향하며, 디자인 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다양한 생각과 기발한 발상, 그리고 작은 행복감의 문을 닫아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인간이 닿을 수 있는 생각의 멋, 기능의 아름다움은 그만큼 큰 만족도를 줬다. 아이디어는 사소한 것부터 시작되듯이 우리의 삶도 사소한 아이디어부터 예술적인 행복이 시작되지 않을까.

 

 기술이 발전하면서 사람들이 컴퓨터나 휴대전화를 마주하고 있는 시간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반면 얼굴을 마주하고 상대방의 표정과 감정을 읽으며 대화하는 시간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과거와 비교했을 때 커뮤니케이션 수단은 더 많아졌는데, 외로움의 깊이는 더 깊어졌다. 수화기 건녀편에 있는 사람을 직접 안고 대화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헉비는 커뮤니케이션을 더 풍부하게 해주는 도구로, 기술 발달로 멀어져버린 정서적인 거리 좁히는데 기여할 수 있는 제품이다. 

P. 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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