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싸라비아 콜롬비아! - 커피 향을 따라간 호또리아 가족의 생활연극기
이재선 지음 / 효형출판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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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서평] 「아싸라비아 콜롬비아!」 왜 콜롬비아여만 했을까




 

아싸라비아 콜롬비아! - 
이재선 지음/효형출판


 반복되는 일상이란 소소한 행복을 지탱하는 소중한 원동력이긴 하지만 낯선 곳이 주는 신선함과 일탈적 쾌감도 포기할 수 없는 삶의 원동력이다. '콜롬비아'라는 낯선 곳은 어쩐지 활기가 느껴진다. 어렸을 때 기쁜 일이 있으면 목구멍에서 간혹 터져 나온 '아싸라비아 콜롬비아 닭다리 잡고 삐약삐약' 이라는 정체모를 감탄사의 영향이었을까? 혹은 한때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손꼽히던 축구 선수 팔카오(지금은 박지성 선수가 활약했던 맨유에서 뛰고 있지만 성적이 부진하다)의 영향일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콜롬비아=팔카오 혹은 이번 브라질 월드컵에서 득점왕을 한 하메스 로드리게스(현재 호날두가 있는 레알에서 활약중)로 대변됐기 때문이다. 콜롬비아의 풍경을 그려보면 활기차게 공을 차고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생각나는데, 보통은 그렇지 않은가보다. 나와 다른 사람들은 「아싸라비아 콜롬비아」​에서 커피향을 따라 콜롬비아로 향했던 이재선씨 가족처럼 향긋한 커피향을 떠올리는가보다. 이래서 사람과 여행은 재밌다. 커피를 마시지 못하는 나는 커피를 전혀 떠올리지 못했다. 아마 해외 축구를 즐겨보지 않는 사람도 나처럼 축구 선수들을 떠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이 좁은 나라 안에서도 사람의 생각이 이렇게 다른데, 저 먼 곳 콜롬비아의 사람들은 얼마나 낯선 느낌을 줄까? 콜롬비아와 그곳의 삶의 방식에 대해 기대가 생기는 책이다.


 어제와 똑같은 오늘을 살면 오늘과 똑같은 내일이 온다. 어제와 다른 오늘을 살 때 오늘과 다른 내일을 기대할 수 있다.

P. 5 


 「아싸라비아 콜롬비아」​는 연극 배우로 일하던 이재선 씨가 가족과 함께 무작정 콜롬비아로 떠나 그곳에 정착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본업이 연극 배우라서 그런지 생활 하나하나에 희극적인 요소가 있어 보는 재미가 있고, 문체 또한 딱히 나무랄 데 없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문체다. 다만 정말 정말 아쉬운 점은 책에서 이렇다 할 방향성이 없다. 모든 책은 하나의 방향과 주제 의식을 가지고 있다. 각 장은 무수히 많은 화살표로 최종적으로 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르키고 있다. 하나의 책을 읽는 행위는 결과적으로 그 화살표들이 가르키는 방향에 도착하는 일과 같다. ​왜 콜롬비아여야만 했을까? 커피향을 따라 갔다고는 하지만 이상하게 콜롬비아로 간 이유와 동기가 뭉뚱그려 흐지부지 넘어가는 기분이다. 아마 본인도 확실하고 명확한 이유를 찾지 못하고 그냥 떠난 듯한 느낌이다. 사람은 가끔 나중에야 알게 될 이유 모를 행동을 하곤 한다. 문제는 작가 본인도 모르는 콜롬비아행을 독자들이 알리 없다는 것이다. 독자는 이 책을 보며 무언가 선명한 목표를 찾기보다는 하루 하나의 이야기로 끝을 맺는 시트콤을 보는 기분이다. 요즘은 시트콤에도 하나의 줄기가 있다. 과거 큰 인기를 모았던 시트콤 '하이킥' 시리즈를 살펴보면 하루하루 '재미'에 초점을 둔 이야기를 하면서도 이야기의 큰 줄기를 놓치지 않고 전개해 나갔다. 그 방향성이 흥행에 성공한 이유다. 


 방향성이니 주제의식이니 하는 생각은 떨쳐버리고 재밌는 연극을 본다는 기분으로 책을 바라본다면 「아싸라비아 콜롬비아」​는 꽤 즐거운 희극이다.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주인공이 되어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는 모습은 인상적이며 내가 바라볼 수 없는 곳에서도 벅찬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에 감격적이기 까지 하다. 내가 사는 삶의 방향만이 옳은 길이 아니라 그들이 가고 있는 삶의 방향도 또 다른 길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낀다. 나만이 주인공이 아니라 이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주인공이 있다. 그 다양성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와 철학적인 교훈을 느낄 수 있는 책, 합리적인 판단보다는 도전적인 여행의 즐거움을 주는 책 「아싸라비아 콜롬비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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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객전도 - 멀쩡한 사람도 흡입하게 만드는 주당 부부의 술집 탐방기
오승훈 지음, 현이씨 그림 / 웅진지식하우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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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서평]「주객전도」술맛 나는 세상의 해장 도서


 


 

주객전도 - 
오승훈 지음, 현이씨 그림/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나는 술을 굉장히 못마시는데 술자리는 좋아하는 편이다. 술자리 특유의 흥청망청한 분위기와 알콜이 어느정도 들어 갔을 때 느껴지는 알딸딸한 기분이 좋아 불러주는 술자리를 마다하지 않는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술자리에서 보여지는 내 모습은 또 다른 내 모습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평소에 안 좋았던 감정을 품고 있었던 사람이라도 술자리를 통해 감정을 회복하기도 한다. 술자리는 인연을 만들기도 한다. 우발적이었던 계획적이었던 알콜의 인연으로 연인을 만들기도 하고 가족이 탄생하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좋은 자리를 고르려고 한다. 좋은 인연은 좋은 자리에서 만들어지지 않겠는가? 좋은 자리란 좋은 술집이다. 「주객전도」​를 읽은 이유기도 하다.


 「주객전도」​는 <한겨례21>에서 'X기자 부부의 주객전도'라는 이름으로 연재된 술집 탐방기이며 자칭타칭 최고 인기 칼럼이었다. 소주 2잔이면 얼굴이 씨뻘개지는 내가 술집 탐방기를 읽은 이유는 바로 좋은 술집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함이었다. 기자의 이름으로, 신문이라는 무대에서 연재한 최고 인기 칼럼에서 공인한 술집이라면 믿을만한 정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웹상에서는 블로거들을 통해 일정 보수를 주고 일명 '맛집'이라며 홍보를 부탁하는 사례가 무척 많아 진실된 고급 정보를 가려내기란 꽤 어려운 일이 되었기에 더욱 책에 대한 우호적인 감정이 생겨났다. 그런데 이 책에 대한 핵심을 잘못 짚었다. 책에서 제공하는 술집에 대한 정보는 그저 부가적인 옵션이었을 뿐, 이 책에서 정말 즐길만한 것은 기자의 훌륭한 글솜씨였다. 흔히 말하는 필력! 술집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다가 글솜씨에 반하고 가는 그야말로 주객전도였다.


 나는 평소에 기자의 글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다. 기자의 글은 대체적으로 정보 전달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글이 딱딱하고 표현이나 묘사에 있어서 인색한 모습을 보여줘 생동감을 느끼기 힘들다. 내가 잠시나마 기자 생활을 해봤기 때문에 쓰면서도 느껴지는 의무적인 글쓰기에 대해 어느정도 진저리를 내고 있었다. 기자 출신이 쓴 문학 작품을 보면 그 습관을 버리지 못한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주객전도」​의 오승훈 기자는 이 글의 핵심이 정보 전달이 아닌, 탐방기라는 점을 무척 잘 이해하고 글을 썼다. 문장 곳곳에서 유머가 느껴지고 단어 하나하나에서 재치가 느껴진다. 그의 아내가 벌이는 주사에 대한 표현과 묘사는 그야말로 절묘해 웃음이 절로 난다. 「주객전도」​의 글은 마치 술자리처럼 취기가 돌고 흥이 난다. 오랜만에 웃기는 도엔 형을 만나 듣기 전부터 빵! 터질 준비가 되어 있는 일명 술자리썰(?)을 듣는 느낌이다. 취기가 돌아야만 버틸 수 있는 이 벅찬 세상에서 가히 숙취를 해소해 줄 수 있는 해장 도서라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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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바보가 그렸어
김진형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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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서평]「딸바보가 그렸어」우리를 키우는 행복에 전염된다


 

딸바보가 그렸어 - 
김진형 지음/소담출판사

 

  "아들이 좋아? 딸이 좋아?"

 언젠가 반려자에게서 이런 질문을 듣는다면 나는 아무 거리낌없이 "딸이 최고!" 라고 외칠 수 있다. 혹시나 자신을 안심시키려고 하는 말이 아닌지, 하고 의심하는 아내에게 나는 정말 딸이 좋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다가 아들이 태어나면 아내에게도 태어난 아들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게 걱정이라면 걱정이다. 아들도 좋고 딸도 좋지만 역시 딸이 최고다(?).

 대한민국 결혼한 남자, 그 중에서 딸을 가진 아빠의 숫자만큼 존재한다는 바로 그 딸바보 아빠들! 아직 결혼하지는 않았지만(여자 친구도 없지만...) 나도 예비 딸바보 중 한 명이다. 웹서핑을 하는 도중에도 '딸바보' 키워드와 관련된 동영상이나 사진 등을 놓치지 않고 전부 챙겨 본다. 그러니 어찌 「딸바보가 그렸어」​를 그냥 지나칠 수 있었겠는가! 


 손가락, 발가락 모두 열 개씩 이상 없네요! 산모도 건강하세요! 축하드려요!

 바로 그날, 우리도 태어났다. 엄마로 그리고 아빠로

P. 67 

 

 「딸바보가 그렸어」​는 교육청과 굿네이버 등에서 연재한 딸바보 그림을 한데 묶어 출판한 포토에세이다. 나는 어떤 책을 보든지 간에 독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재미를 최우선으로 뽑는데 「딸바보가 그렸어」​는 태생부터 그 조건에 부합하여 태어난 책이다. 작가가 개인적인 기록과 기념의 의미를 담아다고 해도, 웹툰(이라기 보다는 그림이지만)의 특성상 재미가 없으면 존재하기 힘들기 때문에 웹에서 인기 있는 일상툰을 보는 것처럼 보는 내내 낄낄 거리며 웃을만큼 충분한 재미를 담고 있다. 특히 작가의 재치와 센스가 눈에 띈다. 표지만 봐도 익살스런 그림체와 딸, 아빠, 엄마의 개성이 잘 담긴 몸짓, 대화로 이 책이 어떤 느낌의 포토에세이인지 충분히 짐작하게 한다. '아내의 몸은 무거워지기 시작했고, 나의 어깨도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등과 같은 부분은 작가의 세련된 감각과 인생을 바라보는 깊이를 보여주기도 한다.


 사랑하는 나의 아가야. 이담에 커서 세상이 네게 등을 돌려도 혼자 힘으로 목 가누었던 것을 잊지마라. 힘내! 아가야.

P. 120 


 「딸바보가 그렸어」​를 보고 있으면 마치 있지도 않은 내 딸과 나의 생활을 보는 것처럼 흐뭇한 일명 '아빠 미소'가 절로 나온다. 아내가 임신 했을 때, 출산할 때, 딸이 점점 성장할 때 등 어떻게 보면 누구나 당연하게 거치는 과정 하나하나가 특별함이 되고 행복이 되는 장면들에 새삼 감격한다. 행복한 시간이 너무 아쉬워 그 행복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마음 속 어딘가에 항상 초조한 마음을 담아둘 때가 있다. 이 행복이 언젠가는 끝나겠지? 계속 잡아 둘 수 없을까? 어떻게든 행복을 간직하고 유지하고 싶어서, 어떤 행동이든 해야겠기에 그리고 그리다보니 이런 책이 탄생한 게 아닌가 싶다. 아이에게나 가족에게나 이런 책이 얼마나 특별한 기념이 될까? 우리들의 딸처럼 예쁜 책은 행복을 뿌리고 다닌다. 작가의 말대로 육아는 아이를 기르다, 라는 뜻도 되지만 나 아(我)자를 써서 나를 기른다, 라는 뜻으로도 통한다. 그런데 아(我)에는 또 다른 뜻도 있다. 바로 우리다. 육아는 아이를 기른다는 뜻도 되지만 우리를 기른다, 라는 뜻도 된다. 나도 우리의 행복을 기를 날을 기대하고 있다. 


 아빠, 달팽이는 왜 저렇게 느려요? 등에 항상 무거운 짐을 들고 다니잖아...

 그럼, 저 짐을 버리고 가면 되잖아요. 살다 보면 크든 작든 짐 하나씩은 짊어지고 살 수밖에 없거든...

 느리게 가도 괜찮아요? 그럼... 달팽이는 느리지만 자기 사는데 아무 지장 없어...

 달팽이처럼 느려도 꾸준히 앞으로 나가는 사람이 됐으면 해

 - 아이의 질문에서 배웠어

P. 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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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된 생각들 - 어느 날, 그림 속에서 피터가 말을 걸었다
전현선 글.그림 / 열림원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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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서평]「그림이 된 생각들」로렐라이, 기묘한 그 언덕의 그림



 

그림이 된 생각들 - 8점
전현선 글.그림/열림원


 예술가에게 설명은 필요없다, 라고 톨스토이는 말했다. 만일 그가 정말 예술가라면 이미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바를 전달 했어야 되는데 거기에 설명이 덧붙여야만 이해할 수 있는 예술이라면 예술이 아니다, 라는 게 톨스토이가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통해 밝힌 입장이다. 「그림이 된 생각들」은 전현선 화가가 본인의 작품들을 수록한 에세이집이다. 자칫하면 톨스토이가 말한 '설명이 필요한 예술'의 오류를 범할 뻔 했지만 이 책에 작품에 대한 해설은 거의 없다. 대신 그림이 된 생각들을 독자에게 전한다. 그래서 제목이 「그림이 된 생각들」​이다. 나는 그 기묘하고 중독성 있는 세계에 빠졌다. 그 세계가 담긴 그림들은 불가능이 없었고 무제한적인 흐름이 느껴진다.


 유리병처럼 속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일 것이다. 정직하고 솔직해야 한다고 하지만, 사람이 비밀 없이 투명하다면 살아가는 것도, 타인과 관계 맺는 것도 불가능할 것이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다'는 속담은 속을 알 수 없어야 사람이라는 말로 들린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매력을 느낀다는 것은 어쩌면 그 사람의 보여지는 부분이 아닌 숨겨진 부분을 알고 싶은 열망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P. 7 


 책의 부제라고도 할 수 있는 '어느 날, 그림 속에서 피터가 말을 걸었다'의 피터는 책에서 전현선 화가 외에 주연 역할을 한다. 피터가 대체 뭐지? 누구지? 하는 호기심을 일으키고 간혹 등장하여 조금씩 존재를 보여주어 집중력을 유지하는 매직 포인트 역할을 한다. 어느덧 나에게도 말을 거는 것처럼 생명력이 느껴지는 피터는 내 손을 잡고 전현선 화가의 개인적이고도 확실한 세계관으로 이끌어 나간다. 화가는 표현에 무척 능숙하다. 그림은 당연하고 글도 무척 탄력적이며 종종 좋은 표현이 느껴진다. 글에서 드문드문 소설을 많이 읽은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래서 그런지 책 곳곳이 마치 소설을 읽는 것처럼 이야기가 가득 차 있다. 반면에 시처럼 강렬한 이미지를 풍기는 곳도 있다. 로렐라이, 그 위험한 언덕처럼.


 아침에 일어났을 때 흐린 날씨에 비가 오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비 오는 날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단상은, 하루를 처음부터 끝까지 꽉 채우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여유로움이다. 이러한 단상은 초등학교 때 만들어졌다. 선생님은 소풍 가기 전날 우리에게 가방을 두 개 준비하라고 하셨다. 소풍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 해가 쨍쨍하면 소풍 가방을, 비가 오면 단축 수업 가방을 들고 오기. 당연히 소풍 가는 것이 좋았지만 비가 와서 소풍이 취소되었던 날 느꼈던 가볍고 여유로운 느낌 또한 좋은 느낌으로 남아 있다. 

P. 74 


 아무래도 에세이다 보니 전현선 화가에 대한 인상을 많이 받는데, 전체적으로 조용하고 차분한 느낌이 든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표현하기 위해 어딘가로 끊임없이 걷고 있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 적막한 분위기는 공포 영화를 연상 시키기도 하지만 무서워할 일은 없다. 마치 피터가 화가에게 말을 건 것처럼 화가가 나에게 조용히 말을 걸 것만 같다.  로렐라이 언덕에서 흘러 나오는 요정의 아름다운 노래소리를 듣는 것처럼 화가에게 어딘가로 이끌려 나갈 것 같다. 중독될 위험 외에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림이 된 생각들」​은 그림을 즐기고 이야기를 즐기고 이미지를 즐기는 독서가 된다. 


 라디오의 잡음과 TV의 지지직거리는 화면이 아주 오래전에 별들이 보낸 빛의 흔적들이다. 지하철이 멀어질수록 알림음의 음이 떨어지고 늘어지면서 이상하게 들리는데 그것과 비슷한 원리이다. 우리의 우주는 계속 커지고 있고, 수백억 년 전 존재했던 별들에게서 나온 빛은 오랫동안 계속 직진하다가 늘어져 빨간 빛으로 변하고, 지구에 도착할 때에는 라디오 주파수와 비슷해진다. 그렇게 별들은 라디오를 타고 우리에게 도착한다.

P. 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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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옆집에서 살기 - 우리 가족의 행복한 독서 성장기
박은진.박진형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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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독서 에세이/서평]「도서관 옆집에서 살기」우리 가족을 위한 최고의 투자





 

도서관 옆집에서 살기 - 
박은진.박진형 지음/인물과사상사


 「도서관 옆집에서 살기」를 보면 글 쓰는 게 참 쉬워 보인다. 비하의 뜻이 담긴 게 아니다. 쉬운 글이 좋은 글이다. 그만큼 이 책은 솔직하고, 쉽고, 편하게 쓰였다. 전혀 불편함 없이, 막힘 없이 쭉쭉 읽어 나갈 수 있다. 어렵게 쓰는 건 쉽지만 쉽게 쓰는 건 어려운 법이다. 글을 쓰자, 라고 의식하는 순간 몸에 힘이 들어가고 긴장을 하게 되며 자연스럽게 글은 무거워진다. 겉멋 부리지 말고 욕심 내지 않는 게 글쓰기의 기본이기도 하다.

 SBS에서 진행 중인 오디션 프로그램 K팝스타를 보면 박진영 심사위원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참가자들에게 기존의 기성 가수 흉내 내지 말고 겉멋 부리지 말고 본인의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라고 한다. 공감 버튼이 있으면 눌러 주고 싶었다. 글도 마찬가지다. 본인의 글이 아닌 다른 사람의 글을 흉내 내려 하는 사람이 많다. 그 사람들이 나쁜 건 아니다. 그렇게 정형화된 교육을 받아 왔으니 모범 답안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책을 많이 읽어본 사람은 다르다. 「도서관 옆집에서 살기」를 쓴 부부는 작가이기 전에 도서관 옆집에서 살던 독서 좋아하는 부부였기 때문에 어떤 글이 좋은 글인지 감각적으로 깨닫고 있다. 도서관에서 흡수한 좋은 글을 그대로 그들의 책에 배출해내고 있는 것이다. 


 도서관 대출코너 앞에 적혀 있는 문구가 마음에 와 닿는다.

  '가치를 대여하고 배려를 반납하는 곳.'

 아이 역시 가치를 배우고 배려를 실천하는 모습으로 자라나길 바라며 오늘도 함께 도서관에 간다.

P. 253 


 「도서관 옆집에서 살기」는 지금 집을 투기의 목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엄마, 아빠에게 경종을 울린다. 학군이 좋은 곳, 집값이 오를만한 곳을 찾는 이들에게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도서관 옆집에서 사는 기회가 어떤 이익을 낳는지, 최고의 투자란 어떤 것인지 알려주고 있다. 이사할 때 집 근처에 도서관이 있는지 없는지의 유무로 이사갈 곳을 정한다는 개념은 꽤 생소하지만 도서관 공화국이라 불리우는 미국의 경우에는 꽤 흔한 일이다. 도서관 근처에 살고 싶어서 이사 가는 경우도 종종 있을 뿐더러 도서관과 멀어지고 싶지 않아서 이사를 가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심지어 마을 조성을 계획할 때 가장 먼저 도서관의 위치를 정한다고 한다. 그들에게는 도서관이 삶이 한 부분이고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도서관 옆집에서 살기」는 두 아이를 위해 도서관 옆으로 이사 가야겠다는 결심을 하는 내용부터 이사를 간 후에 벌어지는 시행착오와 완벽한 북밀리(book family)로 거듭나기까지의 과정이 자세하게 나와있다. 특히 아이들을 위해 선택한 도서관 옆집행인데 아이들이 도서관에 가기 싫어하는 전개는 무척 재밌고 흥미로운 부분이다. 많은 부모가 아이들에게 책을 강요할 때 벌어지는 일반적인 현상이고 가장 큰 실수이기 때문에 이 장면은 의미가 있다. 마치 만화 영화에서 주인공이 악당과 맞서 싸우다가 처음에는 위기를 맞게 되는 장면을 보는 것처럼 조마조마하다. 아! 융자를 갚으려면 아직 몇십 년이나 더 남았는데 아이가 도서관 옆집인 걸 싫어한다니! 

 

 책은 분명 좋다. 그러나 부모가 책을 좋아한다고, 혹은 책이 중요하다고 아이에게 책을 억지로 읽게 한다면 그때부터 아이의 불행은 시작된다. 흥미도, 관심도 없는 책 읽기를 강요당하면 오히려 반발심만 생겨 책을 더 멀리하게 된다. 도서관 옆집에서 살면서 가장 우선해야 할 건 도서관이란 공간에 대해 익숙함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절대 책이 우선이 아니다. 도서관이 우리 집 거실처럼, 화장실처럼 자연스러워야 한다. 도서관은 그만큼 우리 삶의 곁에 있어야 한다. 그래서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처럼 편안해야 한다.

P. 55 


 책은 엄마의 시점과 아빠의 시점 두 가지가 번갈아 가며 나온다. 둘이 의견이 대립되어 서로의 입장을 글로 쓰는 걸 보는 것도 무척 재밌는 볼거리 중 하나다. 그렇지만 이들 부부는 항상 도서관에 밝은 미래가 있다는 점에서는 의견을 같이 한다. 지식 습득의 의미보다 글을 읽고 행간의 의미를 파악할 때 몸안에서 이루어지는 그 멋진 화학작용을 알고 있다. 도서관이 가족의 구심점이 되어 서로 소통한다는 일이 얼마나 근사한 일인지 말하고 있다. 책은 개인적인 행위이기도 하지만 공동체적인 행위로도 으뜸이기 때문에 이런 소통이 가능하다. 이들 부부는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이 옳다는 걸 알고 있고 그 믿음에서 나오는 행복을 누리고 있다. 나와 가족을 위한 최고의 투자가 도서관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동안 음식이 '맛있다'거나 '짜다'라는 말 외에는 별 이야기가 없었는데, 이제는 식탁에서 나누는 이야기가 풍성해지기 시작했다. 한겨울이 지나 봄바람이 불고 꽃망울이 터지듯이 침묵의 식탁에서는 대회의 꼬칭 피어나고 있었다. 서로 간에 이것저것 묻고 말하기 시작했다. 공통의 화제는 바로 책이었다.

P. 160 


 이 두 녀석들은 분명 나보다는 오랜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도서관에서 함께하는 시간도 많을 것이다. 형제가 공통의 취미와 여가를 갖는다면 참 좋겠다. 책 읽기, 글쓰기, 여행 같은 것들 말이다. 그래서 오랜 세월이 지나 내가 없더라도, 서로에게 의지가 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그런 관계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것이 아빠가 두 녀석에게 준 가장 값진 선물이란 걸 먼 훗날 알아준다면 그 이상 기쁠 게 없을 것 같다.

P.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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