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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의 도마복음 이야기 1 - 이집트·이스라엘 초기기독교 성지순례기
김용옥(도올) 지음 / 통나무 / 2008년 3월
평점 :
인도기행문인 ‘달라이 라마와 도올의 만남 2’에서 저자는 미켈란젤로의 예수상과 간다라미술의 불상을 비교하면서 이런 말을 한다: “예수의 모습과 싯달타의 모습의 이러한 차이는 우리에게 중요한 관념의 차이를 나타내준다. 보다 신적인 예수는 우리에게 인간적으로 다가오는 반면, 보다 인간적인 싯달타는 우리에게 신적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이것은 기실 역사적으로 대승불교가 우리에게 끼친 해악 중의 하나다. 싯달타라는 인간이 증발되어 버린 것이다.”
붓다의 신적 이미지는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다. 싯달타가 붓다가 되었을 때 이미 그는 인간이라 보기 곤란했기 때문이다.
3권에서 달라이 라마는 해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는 해탈을 원하지 않습니다. 해탈이 마음의 모든 것의 완전한 종지이며 무라고 한다면 나는 그런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윤회가 더 좋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것보다 훨씬 더 재미있으니까요!”
“그럼 붓다는 재미없는 사람이겠네요?”
“ 그렇습니다. 붓다는 이미 다르마 자체입니다. 어떤 구체적 형상으로는 다시 구현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붓다의 깨달음에 있다. 붓다가 깨달은 것은 無我였다. 무아는 말 그대로 자아를 초월하는 것이며 항상 그렇게 있는 ‘나’란 인격은 없다는 말이다.
“복음서에는 예수의 제자들의 다채로운 초상이 그려져 있기 때문에 서양의 독자들은 초기 불교도에 대해서도 비슷한 것을 기대한다.” 그러나 “아난다와 데바닷타는 빅쿠들의 무리 가운데 두르러졌지만 그들의 초상은 복음서의 생생한 성격 연구에 비하면 여전히 상징적이고 양식화되어 잇다. 심지어 붓다의 최고 제자들이라 할 수 있는 사리풋타와 목갈라나도 언뜻 보기에는 인격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 무색무취의 인물들로 제시된다. 붓다와 아들의 관계에 대한 감동적인 삽화도 없더. 우리는 인물이 아니라 이미지만 얻게 된다.
붓다는 서구인들이 그들의 영웅에게서 높이 사는 독특한 자질이나 개성을 소멸시킴으로써 해방을 얻었다. 그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붓다와 빅쿠들은 잘 구별되지 않으며 빅쿠들 역시 모두 작은 붓다로 묘사되고 있다. 빅쿠들 역시 붓다와 마찬가지로 인격이 사라지며 따라서 개인으로서의 특성도 사라진다.
경전의 텍스트들은 빅쿠들의 마음속에 묻힌 비밀을 파헤치는 것을 거부하여 이런 익명성을 유지한다. 또 깨달음의 성취 이전에 그들에게 있었을 만한 성격상의 기벽도 드러내지 않는다. 여기서 예외적인 사람들이 데바닷타와 아난다라는 것은 우연이 아닐 수도 있다. 데바닷타는 자기중심주의로 가득한 사람이었다. 상냥한 아난다는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 서구인들이 이런 식의 인격 상실을 비난한다면 빅쿠들은 아마 자아의 포기는 닙바나라는 내적 평화를 얻기 위해 얼마든지 치를 수 잇는 대가라고 대답할 것이다. 닙바나는 자아에 갇혀 있는 사람은 얻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카렌 암스트롱, ‘스스로 깨어난 자 붓다’)
그렇기에 인격을 가진 보통 사람에게 깨달은 자란 (인간같지 않은) 신과 다를 것이 없다. 그런 싯달타의 형상이 신적으로 그려진다 해서 이상할 것은 없다. 그러나 문제는 형상을 만든다는 자체이다.
아잔타 석굴 가이드가 “저보고 묻더군요. ‘소승과 대승의 차이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제가 머뭇거리고 있으니까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불상의 유무지요. 소승에는 불상이 없고 대승에는 불상이 있습니다.” (‘달라이 라마와 도올의 만남 3’)
“붓다를 사람의 형상으로 시각화할 때 그것은 불교의 무아론의 근본취지에 어긋날 뿐 아니라 붓다를 하나의 실체로서 신격화하고 우상숭배의 대상으로 전락할 위험성이 크다. 그러기 때문에 붓다는 제자들이 진리만에 의거하여 살 것이며 자기라는 인간의 형상에는 집착치 말 것을 당부한 것이다. 불상이란 1세기말경 대승운동이 태동되면서 생겨난 것이며 불교사에서 매우 이질적인 것이엇다.” (‘달라이 라마와 도올의 만남 2’)
“대승불교는 불상을 도입하면서부터 엄청난 대중운동으로 발전 도약하는데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기는 했지만 그러한 계기를 통해서 자멸의 길을 걸었다고도 말할 수 잇다. 즉 불교의 진면목은 무신론이었는데 불상을 도입하면서 오히려 유신론으로 전락해버렸다. 불상숭배를 중심으로 한 대승불교에 대한 일반재가신도들의 불교이해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믿고 천당에 가고자 하는 유일신관과 별 차이가 없은 모습이 되고 말았다.” (‘달라이 라마와 도올의 만남 3’)
저자는 기독교에서도 동일한 전락이 일어났다고 말한다. 그 전락을 이해하려면 먼저 기독교는 아시아의 종교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공관복음서가 말하는 예수의 생애는 사실이 아니라 신화로 읽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티머시 프레케와 피터 갠디는 ‘예수 미스터리야 명제’란 가설을 세웠다. 이들의 가설에 의하면 예수는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인물이 아니라 이집트, 지중해연안, 근동지역에 광범하게 유포되어 있었던 미스테리아 비교의 신화적 운동의 유대인적 버전 속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하는 神人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는 역사적 실체가 아니라 신화운동의 한 가상적 주체이다. 이 가상적 주체야말로 우리 자신이 모두 그리스도가 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기능을 가지는 신화적 운동의 주체라는 것이다. 그것이 곧 미스터리야 비교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오시리스-디오니소스와 관련된 신화들의 골자를 간추려내면 곹 예수의 신화적 삶이 구성된다는 것이다.
1. 오시리스-디오니소스는 肉化된 신이며, 구세주이고 하나님의 아들이다.
2. 그의 아버지는 하나님이며 어머니는 인간동정녀이다.
3. 그는 3명의 양치기가 지켜보는 가운데 12월 25일 동굴이나 허름한 외양간에서 태어난다.
4. 그는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세례의식을 통하여 다시 태어날 수 잇는 기회를 준다.
5. 그는 결손식장에서 물을 술로 바꾸는 이적을 행한다.
6. 그가 나귀를 타고 읍내로 의기양양하게 입성할 때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그를 찬양한다.
7. 그는 세상의 죄를 대속하여 부활절 무렵에 죽는다.
8. 죽은 직후에는 지옥으로 떨어졌다가 사흘 후에는 죽은 자 가운데 일어나 광영 속에 하늘로 올라간다.
9. 그를 따른 자들은 그가 최후심판의 날에 심판관으로서 되돌아오기를 기다린다.
10. 그의 죽음과 부활은 그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빵과 포도주 의식으로써 기념된다.
이것은 예수의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의 삶과 공통된 이집트, 근동지역 신화의 매우 보편적인 설화양식이다. 따라서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 이야기의 골력은 당대에 유행하고 있던 흔해빠진 이야기라는 것이다.”
미스테리아 가설은 예수의 부활과 동일한 구조의 신화가 “이집트에서는 오시리스, 희랍에서는 디오니수스, 소아시아에서는 아티스, 시리아에서는 아도니스, 이탈리아에서는 바카스, 페르시아에서는 미트라스”에서 반복된다는 것을 지적한다 “이 신인들은 모두 동일한 신화적 존재이며 이 신화는 기전원 3세기부터 이 지역에서 강력한 세력으로 등장하였다. 조셉 캠벨이 말한대로 이러한 신화들은 ‘동일한 해부학적 구조’를 갖는다” (‘달라이 라마와 도올의 만남 3’)
그러나 복음서 내러티브가 해부학적 구조를 공유하는 다른 신화들과 다른 점은 “뮈토스적 세계와 로고스적 세계를 혼융하는 기묘한 신념체계를 자신의 실존적 삶의 의미로서 받아들이게 만드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었다.”
“고대인은 신들이 하늘에 있다고 여겼지만 실제로 어느 신을 하늘에서 보았다면 아연실색했을 것이다. 시간 문제에서도 고대인이 하는 이야기를 액면 그래도 받아들여 헤파이스토스가 얼마전에 재혼을 했다거나 아테네가 근래에 몹시 늙엇다고 알려주면 그는 마찬가지로 아연해 앳으리라. 그러면서 신화의 시간과 일상의 시간 사이에는 그 자신이 보기에도 막연한 유추적 관계만이 존재할 뿐이라는 것을 그러나 일종의 정신적 혼수 상태에서 그 이질성을 깨닫지 못했다는 것을 ‘현실화’시켰을 것이다.” (폴 벤느)
1세기의 헬레니즘 세계는 지금 우리와 그리 큰 차이가 없이 개명된 합리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과 우리를 가르는 것은 그들은 신화의 언어를 알아들었다는 것이다. 신화의 언어는 ‘믿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 언어가 말하는 내용이 사실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대부분의 근대 이전 문명에는 생각하고 말하고 배우는 두가지 인정된 방식이 있었다. 그리스인들은 이를 뮈토스와 로고스라고 불렀다. 둘 다 중요했고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보다 우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둘 다 중요했고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보다 우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둘은 상충관계가 아닌 상보관계로 각각의 고유한 기능이 있었고 둘을 뒤섞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엇다. 신화는 로고스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혼란스러운 세상을 창조적으로 살아가도록 돕는 기능을 했다. 신화가 신에 관한 이야기를 했는지는 몰라도 실은 로고스의 소관 밖에 잇는 인간적 곤경의 좀더 비극적이고 이해하기 힘든 측면에 초점을 두고 있었다. 신화는 심리학의 원시적 형태로 일컬어져왔다. 신화가 실을 잡고 미궁을 빠져나가거나 지하세계로 내려가거나 괴물과 싸우는 영웅을 그렸다고 해서 그것을 사실에 근거한 이야기로 이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한 신화는 우리가 접근하기 어렵지만 우리의 생각과 행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알 수 없는 마음의 영역과 타협하도록 돕기 위해 만들어졌다. 사람들은 자기 마음 속의 미궁으로 들어가서 자기 안의 괴물들과 싸워야만 했다. 프로이트와 융이 인간정신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계획했을 때 본능적으로 주목한 것도 바로 이런 옛 신화엿다. 신화는 역사적 사건을 정확히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신화는 본래 행동을 위한 프로그램이었다. 신화는 우리가 올바른 영적 혹은 심리적 자세를 갖게 할 수는 있었지만 다음 단계로 나아가 신화의 ‘진실’을 만드는 일은 우리 손에 달려 있었다.” (카렌 암스트롱 “신을 위한 변론’)
붓다의 본생담이 그 좋은 예이다. “불교도들은 예나 지금이나 본생담의 이야기를 싯달타 전새으이 다양한 전기문학장르로 파악하지 그것을 역사적 사실로서 이야기하거나 강요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본생담의 주제는 매우 단순하다. 자기헌신이며 희생이며 자비며 사랑이다. 역사적 싯달타가 얼마나 오랜 시간을 거친 자비행을 통하여 해탈을 이룩할 수 있었나 하는 대승정신의 드라마틱 프리젠테이션인 것이다. 즉 자타카는 사실적 스토리로서의 역사성에 그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보시의 메시지를 구현하기 위한 신화적 선포로서 그 일차적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달라이 라마와 도올의 만남 3’)
“예수의 전기도 자타카와도 같은 하나의 문학적 양식으로서 초대교회에 유행했던 하나의 현상이었”다. 그 현상의 의미는 죽음에서 드러나며 그 죽음의 의미는 당시 헬레니즘 문명에 보편적으로 알려져 있었던 소크라테스의 죽음이었다. “소크라테스를 아주 이성적인 철학자로만 생각하며 그가 아테네의 청년들을 타락시켯다는 죄목으로 재판을 받고 사형에 처해지는 과정이나 예수가 바리새인의 율법을 거부하고 예루살렘성전을 뒤엎고 유대인의 왕으로서 혁명을 꾀하려 했다는 죄목으로 재판을 받고 사형에 처해지는 과정에 동일한 스토리의 구조가 있다는 것 그리고 소크라테스가 아테ㅐ네의 준법정신 때문에 사형을 달게 받은 것이 아니라 사후의 새로운 삶에 대한 종교적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얼마든지 도피할 수 있는 사형을 오히려 자초했다고 하는 그러한 과정이 예수의 스토리와 동일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 (‘달라이 라마와 도올의 만남 3’)이다.
예수는 소크라테스와 달리 부활함으로서 죽음의 의미를 완성한다. “복음서 내러티브의 대전제는 이미 부활로 확정되어 있다. 부활하기 위해서는 죽어야 하며 죽기 위해서는 수난의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수난에 이르기 위해서는 체제를 뒤흔드는 많은 혁명적 언행을 해야 한다. 그 혁명적 언행 속에 또 우리의 인과적 상식을 뛰어넘는 이적이 점철되어 잇다.”
그런 내러티브의 의미는 무엇인가? “예수의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바울의 말대로 우리의 삶과 무관한 객관적 물리적 사태로서 믿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죽음과 부활을 나의 실존적 고통의 심연에서 직접 체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죽고 내가 부활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하심을 얻었음이니라’ (롬 6:6~7) 죽어서 천당 가기 위해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복음의 주된 내용 속에 포함되어 잇지 않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사망의 몸에서 벗어나 의로운 삶을 살기 위한 끊임업없는 몸부림이다.”
그러므로 “죽음과 부활의 전제가 없는 예수는 예수가 아니다. 그러나 사실 그러한 예수는 예수가 아닌 그리스도인 것이다. 다시 말해 죽었다 부활한 예수로서 묘사된 예수가 바로 우리를 구원할 구세주로서의 그리스도라고 하는 초기 기독교인의 신상속의 예수일 뿐인 것이다. 그리스도는 분명 초대교회의 케리그마의 소산인 것이다. 선포 즉 케리그마의 대상이 되는 예수는 예수의 색신이 아닌 예수의 법신이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법신과 색신을 분리하지 않으며 예수의 법신이 곧 색신이라 믿는다.”
이것이 문제라고, 원시기독교가 대승기독교로 전락한 이유라고 저자는 말한다. “예수에게 인성을 부여해야만 가현론의 픽션을 벗어날 수 잇다고 한다면 그 인성은 매우 정직한 보편적 인성이 되어야 한다. 예수는 부활의 예수가 될 수가 없다. 역사적 예수는 죽었다 다시 살아날 수는 없다. 예수에게 그러한 이적과 부활을 인정한다면 그것은 예수가 아닌 그리스도일 뿐이며 이성의 논의를 벗어나는 불합리한 신앙의 특수상황에 속해버릴 뿐이다. 부활의 예수는 기독론의 핵심이며 초대교회의 프로라간다이다. 기독론으로 예수에 접근한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신화운동의 ㅎ산 고리를 캐는 작업일 뿐이다. 죽음과 부활이라는 주제는 동서고금의 모든 신화의 전형적 양식이며 그것은 융이 말한 집단무의식의 한 아키타입일 뿐이다. 예수의 신성만을 고집하며 인성을 왜곡한다면 그러한 예수는 신화적 예수가 되고 말 뿐이다.
과연 그러한 신화적 요소를 배제하고 기독교는 기독교일 수 있는가? 나는 당당히 외친다: 오히려 기독교에서 그러한 신화적 요소를 배제할 때만이 기독교는 진정한 기독교가 된다! 이적과 부활이 없이도 예수는 예수일 수 잇다. 아니 그것이야말로 예수의 참모습이다.”
저자가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도마복음이 ‘또 다른 예수’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문헌비평에 따르면 도마복음은 바울의 서신들 그리고 공관복음보다 선행한다. 그리고 공관복음이 도마복음과 상당량을 공유하는 자료들을 비교하면 도마복음의 내용이 공관복음의 원형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잇다. 그리고 도마복음과 공관복음의 공통자료인 “Q자료 속의 예수에게는 탄생설화도 수난과 죽음과 부활의 어떠한 이야기도 없다. 예수는 과연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예견하고 산 사람이었을까? Q자료 속의 예수는 전혀 그러한 사람이 아니었다. 이것은 다름 아닌 공고나복음서의 사실이다. 따라서 최후의 만찬이니 하는 그럴싸한 드라마도 없다. 나의 피니 살이니 하는 죽음과 부활을 전제로 할 때만 의미를 갖는 그런 언어가 그림자도 없다. 자신의 이해에 있어서도 ‘하나님과 자신’을 아버지와 아들의 친근한 관계로 파악하는 언어는 있지만 아버지가 파견하여 천상(빛)에서 지상(어둠)으로 중생을 구원하기 위해 내려온 자라는 식의 그리스도(메시아)적 이해가 전무하다. 예수는 오직 천국 즉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했을 뿐이다. 천국은 천당이 아니다. 천국이란 하늘구름 위에 붕 떠 있는 어느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이다.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은 하나님의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새로운 질서가 지배하는 나라를 의미한다. 예수가 선포한 것은 로마의 지배나 율법의 지배나 바리새인 대제사장의 지배가 아닌 하나님의 직접적 무매개적 지배엿다. 그것은 이 땅위에서의 하나님의 지배였다. “당신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과 같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이다.” 하늘에 구현된 그런 질서가 땅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는 요청이다. 바로 이 말씀의 주인공이 예수인 것이다. 역사적 예수의 실상인 것이다.”
그러면 역사적 예수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저자는 견유학파의 현자에 가깝다고 말한다. 예수가 살았던 갈리리 지방은 “그 아이덴티티가 남방의 예루살렘을 포함한 유대지역보다는 비옥한 초승달지대의 개방적 선진문명에 더 근접해 있엇고 더 동화되어 잇었다. 당시 두로와 시돈의 찬란한 역사에 예루살렘을 비교한다는 것은 우리의 상식적 관념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요구하는 것이다. 갈릴인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예루살렘은 변방의 촌락에 지나지 않았다. 역사적 예수의 입장에서 이 도시들을 감지하는 느낌을 말한다면 주변의 고라신과 벳새다가 충청도의 작은 도시에 비유된다면 두로와 시돈은 뉴욕 맨해튼의 느낌이었다. 당시 지중해연안 최대의 도시였다. 최근의 스칼라십은 예수운동이 당대에 이미 페니키아문명권에 전파되었다는 사실을 당연한 것으로 숙지한다.” 예수 자신도 페니키아문명권과 같은 아람어를 사용했다.”
당시 헬레니즘 시대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한 것은 지식이 아닌 지혜였고 우주의 원질에 대한 통찰이기보다는 인생의 아타락시아의 체득이엇다. 아타락시아란 과도한 쾌락이나 고통 그 어느 것에 의하여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평정이었다. 그것은 도마복음에서 안식(rest)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욕망으로부터의 해탈이엇다. 이 해탈을 가장 철저하게 구현하려고 했던 사람들이 견유학파였다. 예수야말로 디오게네스의 제자엿다는 역사적 아이러니 또한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예수는 견유학퍼족 리얼리즘을 철저히 실천한 사람이었다. 예수는 그의 운동에 가담하는 제자들에게 돈을 담은 전대는 물론 지팡이나 가죽샌달도 그리고 속옷조차도 지니지 못하게 햇다. 지나치는 사람들과 문안인사조차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견유학파의 덕목은 최소한의 질박한 삶이엇고 모든 세속적 가치에 대한 절제였다. 예수가 비유를 잘 들기로 유명한데 견유학파의 사람들이야말로 비유의 천재엿다. 역사적 예수는 갈릴리의 견유였다.” (2권)
도마복음의 예수는 철저히 현자였다. 현자로서 예수는 종말론적 예수와는 거리가 멀다고 저자는 말한다. “예수공동체는 철저히 지혜담론의 공동체였으며 그 지혜담론적 성격이 후대에 내려오면서 점차 묵시담론적 틀 속에서 재해석되어 갔다. 묵시담론은 물론 기독론의 형성과 관련되며 그것은 유대국가의 멸망이라는 긴박한 현실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다. 교회는 종말론적 공동체의 성격을 띤다. 묵시담론은 선택된 자들의 폐쇄적 사유에서 기인되는 것이며 지혜담론에 어떤 긴장감과 긴박감을 부여한다.
불트만은 말한다: ‘종말론적 분위기라는 것은 기대나 계산이나 희망이나 염려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선민이라는 의식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선민의식은 선택된 자들과 선책되지 않은 자들의 분별을 초래한다. 그리고 이러한 분별은 선택된 자들은 하늘에 속하고 선택되지 않은 자들은 땅 즉 세계에 속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것은 곧바로 하늘은 빛이고 세계는 어둠이라는 이원적 사유로 연결된다. 여기에 플라톤적 사유가 결합되면 하늘이라는 이데아만이 실재하는 것이 되고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그림자며 실재하는 것이 아니며 멸절의 대상이 된다. 여기에 도덕적 이원론까지 더하면 선택된 자들만이 도덕적으로 선한 사람들이며 선택되지 못한 이 세계의 사람들은 죄악의 구렁텅이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악의 구현체가 된다. 그러니 이 세계는 멸절의 종말로 치닫지 않을 수 업6t다. 그것이 최후의 심판이다.
공관복음서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이 세대’라는 표현은 바로 이런 종말론적 분위기를 반영하는 심층구조적 언이다. ‘이 세대가 왜 이렇게도 악할까? 이 세대가 기적을 구하지만 요나의 기적밖에는 따로 보여줄 것이 없다.’ (눅 11:29, 마 12:39 막 8:12)
그러나 예수는 유대인의 선민의식을 거부한 갈릴리 사람이엇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외치는 그에게는 철저한 인간평등사상이 있었다. 그리고 이 세계에 대한 저주 아닌 사랑을 가지고 있었다.이것이 바로 지혜담론의 핵심이다. 그리고 그것은 예수라는 역사적 인물의 핵심사상이었다. 묵시담론은 후대 기독교공동체의 성격에서 발생한 것이다. 예수는 오히려 묵시담론을 거부한 사상가엿다. 도마복음서에는 묵시담론이 없다. 이것이 바로 도마복음서의 성격이 Q복음서보다도 더 오리지널한 예수의 담론을 드러내고 있다고 추론케 만드는 한 근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