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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이레 / 2004년 11월
평점 :
절판
마케팅은 혹자에게는 위력이 되지 못한다. 마케팅이 너무 요란할 때, 누군가에게는 단지 '빈수레가 요란하다'는 격언을 상기시킬 뿐이다. 좋은 책이 나 같은 독자와 만나기 위해서 건너뛰어야 하는 어려운 관문인 셈이다. 영화와 문학이 다른 영역이면서 서로를 존중하듯이 그것들은 결콘 더 이상의 관계가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하지만 가끔 둘을 혼동하는 듯한 모습을 목격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불쾌감을 감추지 못한다. 나의 지독한 독선이자 아집이다.
베른하르트 슐링크는 그 누군가를 닮았다. 책을 받아들고 책 날개를 펼치면서 나는 깜짝 놀랐다.그의 뾰족한 코와 위로 약간 올라간 두 눈. 친밀한 느낌은 어떤 의미에서는 무방비를 의미한다, 마치 2차 세계대전의 드레스덴처럼.
뒤렌마트가 정의와 법의 문제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방식을 떠올린 것인가? 슐링크는 법률가이자 작가이다. 그런 이력을 우연찮게 알지 못했다면 이 책은 그냥 건너뛰었을 것이다. 하지만 뒤렌마트식은 아니다.
당대의 법률이 과연 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인가? 개인에 대해서 법률은 과연 어디까지 합법과 비합법을 허용할 것인가? 역사는 이를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그는 좀더 다른 문제를 다룬다.
무엇보다 이 책은 수치심에 대해서 말한다. 그러나 그 수치심은 단순하지 않다. 문맹이라는 사실을 애인에게까지 숨기고 살인죄와 살인방조죄라는 엄청난 차이를 무시할 정도로 한나에게는 수치스러운 치부인가? 미하일은 어떤가? 20살이나 위인 여자의 애인이었다는 사실, 그것도 그 애인이 나찌부역자라는 사실이 한 여인의 전 생애를 감옥에 보내느냐 아니냐의 문제보다 더 큰 문제였던가?
배신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을까? 누가 누구를 배신하고 누구에게 복수할 수 있었나? 독일인들은 누가 누구에게 손가락질을 할 수 있고 또 그럴 수 없는가?
아니다. 더 직설적으로 물어야 되지 않을까? 나는 누구를 비난하고 누구를 공격할 수 있을까?
<마더나이트>에서 커크 보네거트가 뼈아프게 고백했듯이 나역시 그 당시 독일인으로 태어났다면, 하루하루 밥벌이를 하며 맨발이 삐죽 나온 유태인 시체를 그냥 못 본척 지나갈 것이었을까?
글을 읽고 쓸 줄 몰랐다라는 상황설정이라고 해서 그 여자의 부역죄를 사면해 주진 못할 것이다. 우리가 모르고 저지른 죄는 또 얼마나 많던가?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죄를 짓지 않은 것과 같을 수는 없지 않은가?
책이 도착한 날은 영화를 보기 하루 전이었고, 나는 영화를 보기 2시간 전에 이 책의 끝에 도달했다. 케이트 윈슬렛은 한나 그 자체였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어느 연예기자의 말처럼, 이 이야기가 사랑의 이야기라고만 해석하고 싶다면, 스티븐 달드리는 한나의 유품에서 신문에서 오려낸 미하일의 사진을 버리지 않았어야 했을 터이다. 그러나 영화감독을 그 장면을 없앴다.
한나는 왜 하필 가석방 바로 그날 새벽에 자살한 것인가? 한나가 문맹이었을 때 그것은 개인적 차원의 수치심이었고, 그 수치심은 어떤 의미에서 유태인 감시인으로 부역한 한나의 잘못된 선택에 구실을 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허나 한나가 더이상 문맹이 아니었을 때, 적어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읽을 정도가 되었을 때, 한나가 자신의 죄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다른 어떤 방법이 있을 수 있었을까?
문맹의 한나는 역사에 대해서조차 완전한 문맹이었으며 역사에 대한 책임에조차 문맹이었을 터이다. 그러나 개인적 수치심에서 벗어나는 순간, 독일 국민으로서, 인간으로서 수치심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므로.
한나의 수치심과 미하일의 수치심은 개인적인 차원을 뛰어 넘는다. 한 시대 모든 이들을 하나의 죄의식에 몰아넣고, 그 이후 세대들에게 집단 유전될 수밖에 없는 죄의식이란, 도대체 죽음 이외 어떤 방법으로 대면할 수 있을까?
책을 읽고 여러 날이 지났지만, 낮은 기압으로 머물로 있는 어떤 기운들이 있다. 독일이 패전하지 않았다면, 독일 국민들은 개인으로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그 이상한 역사의 한페이지를 어떻게 기억할까?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는 악행이라고 과연 대다수의 개인이 동의하고 죄의식을 가질 수 있을까? 갑자기 그런 생각도 든다. 이래 저래 편치 않은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