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의 힘 - 커피가 병을 예방한다
오카 기타로 지음, 이윤숙 옮김 / 시금치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내가 커피를 마신다면 그것은 순전히 거품때문이었다. 나는 커피의 거품이 좋다. 맛과 색을 감추고 위에 두둥실 떠있는 한덩이 미색의 거품!  그 거품을 작은 티스푼으로 떠먹는 맛은,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은밀하면서도 특별한 즐거움이다. 앞에 앉은 그 사람의 표정이 놀라움으로 바뀌어도 좋다. 형식과 예절에 맞지 않는다고 질책하여도 감수하련다. 풍부한 한덩이 거품을 타겟으로 작은 티스푼을 찔러 넣을 때 생기는 경계선을 통해 미처 스푼에 다 담겨지지 못하고 남아있는 거품의 잔재와 이제 막 모습을 드러낸 짙은 커피의 본색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하지만 불행하게도 내게  이런 즐거움은 일주일에 한번 정도 누리는 호사일 뿐이다. 내일 꼭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되는 날, 일주일에 단 하루뿐인 금요일이라야, 이 커피의 거품을 만끽할 수 있는 유일한 날이라니, 내가 하필 카페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수면장애가 있는 사람이니 말이다.

"인생의 3분의 1이 잠인 것이 좋아요."  2002년 빌려다 본 비디오 '프랑스 단편 영화'에서 나는 도미니크 피농의 이 말만 기억한다. 물론 "죽는 건, 자는 . 자는 건 꿈꾸는 것일지도'라고 한 햄릿의 그 유명한 독백도 어떻게 잊을 수 있으랴. 살다보면 자연스럽게 몸과 마음이 함께 공감하는 말들에 소위 '필(feel)'이 꽂히는 때가 있게 마련이다( 이렇게 말하고보니 내 인생이 잠언으로 꽉 채워진 물잔 같다.). 

커피가 각성의 효과가 있다는 것은 이미 1500년대 기독교 수도원에서 야간에 수도정진을 위한 비약으로 쓰였다는 데서 입증이 된 셈이다. 각성제는 사전대로라면  중추 신경을 흥분시켜 억제하고 피로느끼지 못하게 하는 을 일컫는다. 그 좋은 잠을 억제하고 싶은 경우가, 있을까 싶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자연의 순리를 거스러야 하는 때가 있는 법이다.   

헌데  내가 어제 드디어 커피드리퍼와 이디오피아산 예카체프 50그람을 사고 말았다. 이 말은 곧 매일 한잔씩 커피를 마시겠다는 뜻이다. 커피의 거품이 시각적 매혹이라면 고소하다못해 사람을 질식시킬듯한 향은, 피해갈 수 없는 치명적인 유혹이다.어떤 의미에서 거품은 덤으로 얻는 부가적 즐거움이고, 커피의 본질적 가치는 향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근처에 새로생긴 커피공방(서울 종로 통인동 커피공방)의 멋진 바리스타가 만들어 준 에스프레소 맛에 반하긴 했어도 선뜻 용단을 내리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헌데 이 바리스타 양반이 쓴 서평 "커피 한잔의 힘"이 결국 결단하게 만들었다. 그래, 거품과 향을 매일 맛보는 거다! 이렇게 좋은 커피를, 이제부터 한잔씩 마시는 거다. 친절하게도 그 바리스타(!)씨는 핸드드립하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시간있을 때 들러,직접 실습까지 해보라고 권한다.

우리의 바리스타씨는 아무래도 커피자체의 향과 맛, 제조법에 관심이 더 간 모양이다. 나는 오히려 이 책 초반에 쓰인 커피의 역사가 재밌었다. 놀랍게도 커피를 오늘날처럼 손쉽게 마실 수 있게 된 지는 불과 500년 정도 밖에 안되었다고 한다. 친숙함의 정도가 역사의 길이에 꼭 비례하는 것만은 아닌가보다.  

한잔의 갈색(그 위 거품까지 말하자면, 무슨 색이라고 해야 할까?) 액체가 몸에 유용하다는 뒷부분의 상세하고도 전문적인 설명도 읽을 만하다. 이토록 유용한 커피를, 그동안 눈으로만, 향으로만 부러워하고 살아왔던 것이, 못내 안타깝다. 

더 나이들면, 작은 커피공방을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요 앞 커피공방의 주인들은 젊은 부부이긴 하지만 말이다. 담배연기도, 빵도 그 어떤 다른 냄새가 섞이지 않고 오롯이 커피향으로만 채워진 조그마한 가게에서, 세계 각지에서 건너온 커피콩을 손으로 고르고, 적절히 볶고, 가루내는 일이, 어쩐지 좋아 보인다. 물론 그들 커피공방에 '커피한잔의 힘'이란 책이 꽂혀있는 것은 두말 할 필요도 없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