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도에 관하여 - 나를 살아가게 하는 가치들
임경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인상깊지 않은 책들은 금방 잊힌다. 없던 걸로 되는거다. 그럴까. 단 몇시간이라도 어떤 책을 읽는 시간동안 뇌는 어떤 식으로든 신호를 만들어내고 기억과 사고에 영향을 미쳤을텐데 그것은 없던 일이 되어 버리는 걸까? 그렇다면 별로인 책들은 읽을 필요가 없는걸까 어떻게 좋은 책들만 골라 읽을까.  읽은 지 오래되었지만, 이 책에서 유독 기억나는 게 있다면  이 책에서작가가 제기한 등단 시스템의 문제다. 우선 독자의 입장에서 먼저 한마디 하자면,  등단작가와 문학상을 받은 작가의 책이라면 일단 한국 문학 내의 어떤 권위가 인정한 것이니 문학작품으로서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퀄리티는 보장하지 않았겠느냐 하는 것이, 작가의 글쓰는 시간 못지 않게 소중한 나의 책읽는 시간이 헛되이 돌아가고 마는 것을 막기 위해 우매한 독자가 할 수 있는 차악의 선택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좋은 책은 훌륭한 작가가 만드는 것도 아니고, 훌륭한 작품상 심사위원이 만드는 것도 아니다. 훌륭한 출판사가 만드는 것도 아니고 베스트셀러 목록이 만드는 것도 아니다. 훌륭한 평론가가 만드는 것도 아니고 훌륭한 필독도서목록이 만드는 것도 아니다. 좋은 책은 개별 독자가 만든다. 그 책을 읽은 혹은 읽을 가능성이 있는 군집으로서의 독자가 아니라 하나라 한사람 한사람 각각 떨어진 개인 말이다. 아무리 훌륭한 노벨상을 받은 책이라 해도 한 개인에게 아무 공감도 느낌도 자극도 되지 못한다면 공간만 차지하는 쓰레기이다. 세계 곳곳 도서관 추천도서 1위에 있는 책이라고 해도 그것을 읽는 사람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에 의해 그 책의 가치는 달라진다. 어떤 사람에게는 일생을 바꾼 책이 다른 사람에게는 냄비받침이 되는 이유가 그렇다. 그만큼 다양한 인간의 세상에서 개별적으로 독자적인 인간이 선택해야 할 책이 있는 만큼 책의 선택은 독자의 필요에 따라 다르다.

나는 문학상을 신뢰하지 않지만, 문학상의 권위는 인정한다. 그러니까 어떤 책이 소위 위기에 처했다는 한국 문학계에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건 그 위기에 대한 책임을 절감해서건 심사위원으로서의 자신의 이름을 걸고 이건 올해의 책이야 라고 선언한 책에 다소나마 존재할, 작품성이건 예술성이건 그 어떤 이름으로 불리건 간에 거기에 투영된 가치를 무시할 수 없다. 한번쯤 들여다본다고 전적으로 시간만 낭비하고 말 작품이 될 가능성은, 광고나 이벤트로 베스트셀러가 되거나 노이즈마케팅 전략으로 떠들썩해진 책들보다는 낮을 것이다. 

임경선은 미등단 작가로서 받은 ‘불편’을 다음 네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정통 문학을 중시하는 일부 사람들한테 무시당하기도 한다. 가령 한 식사 자리에서 어떤 문학평론가는 내 앞에 앉았다가 소개를 받은 직후 다른 ‘정통’ 작가 앞으로 자리를 옮겨 갔다. 둘째, 문학 담당 신문기자는 미등단 작가들의 책을 지면에 제대로 다뤄주질 않는다. 셋째, 문인 공동체로 묶이는 여러 모임에 끼지 못한다. (...) 마지막으로 미등단 작가의 네 번째 불이익은 여러 창작 기금의 수혜자가 되기 힘들다는 것이다.

팬으로서의 독자에게는 정통작가와 비정통작가의 구별이 필요없고 관심도 없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어떤 작가의 작품을 읽을만한가에 대해 작품상이나 등단 같은 기준이 필요한 건 그 작가의 첫작품 뿐, 그 작가의 글을 좋아하게 되었다면 등단하지 않았어도 베스트셀러가 아니어도 좋은 책을 내는 좋은 작가일 뿐이다. 그렇다면 정통작가가 아니어서 받는 첫번째 불편이란, 누구에게 대접받고 싶은 속된 욕망 중 하나일 뿐이다. 작품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다면 독자가 대접해주고 인세로 보상벋을 것이다. 셋째 문제도 비슷하다. 등단작가의 모임이 부러우면 미등단작가 모임을 만들면 된다. 한국 문학이 등단작가와 문학상 수상작가들만의 리그로 비쳐지는 이유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렇기 때문에 한국 문학이 위기에 처해있는 것에 대한 책임이 전적으로 그러한 문학계의 관행을 주도해간 소위 문학권력이라 부르는 자들의 책임이란 건 분명하지만 그들의 모임을 불편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작가만을 바라보는 독자에게, 작가가 독자만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는 생각 즉, 배신감을 불러온다. 

두번째 문제, 미등단 작가의 책이 매체에서 다루어지지 않는다는 건 큰 불이익이다. 독자가 책의 선택에 어려움이 많은 것처럼 매체가 출판되는 모든 책을 다 다루기는 어렵다는 걸 인정하더라도, 미등단 초보 작가의 책을 출간하는 출판사는 홀로 힘겨운 길을 개척하는 일이다. 여기서 임경선은 불이익의 대상을 미등단작가로 한정시켰지만 비문학까지 포함하면 무명작가로 확장해서 생각해보는 게 더 맞을 듯하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유명 작가의 허접한 에세이들을 보었는가. 이름이 알려진 등단작가의 책은 최소한의 판매가 보장되므로 앞다투어 출판사가 작품을 출건하려 하겠지만, 미등단 작가의 책은 내용으로 승부해야 하기 때문에 양질의 책을 발굴하고 소개하는 게 매체의 의무고 책임이다. 이런 일을 게을리하고 츨판사가 보내준 유명 작가의 책 홍보기사만으로 책코너를 의지하는 것은 매체의 성실성을 위배하는 행위이다. 무명작가와 미등단작가, 작은 출펀사의 좋은 책을 하나씩 선정한다던가 할당제 같은 제도를 도입해도 될듯하다. 대통령 후보가 여성 할당제를 주장했는데 역차별이 될 소지가 있는 건 당장 리더의 위치에 올라갈만큼 지도자급의 위치에 여성이 포진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갑자기 두배 세배로 뽑는다면 중간리더의 부족으로 질낮은 리더가 포진될 가능성을 배재해볼 수 없는 건데, 희망이 있어야 미래가 있는 것이다. 

창작 기금의 수혜자 문제는 공적 자금을 공평하게 분배하기 위한 기준의 문제일 것 같다. 연구 프로젝트를 선정할 때에도 SCI 같은 논문의 갯수로 최종 평가가 갈리는 경우가 많다고, 그렇게 되면 순수 과학이 설 자리가 없어진다고 누가 심사하러 갔다 와서 흥분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안철수 부인 김미경의 논문 실적 만으로 부당 채용이라고 말하는 논리와 비슷하다. SCI 논문이 최고의 가치는 아니지만 연구자로서 공평성을 위해 채택한 기준에 다른 대안이 없는 이상 그것에 미달된 사람의 다른 판단 근거는 설득력이 설 자리가 협소하기 때문이다. 미등단 작가의 불이익을 징징거리기보다는 창작 기금이 미등단 작가에게 가는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다른 대안을 제시한 편이 더 옳은 태도로 보여진다. 

작가 본인은 미등단 작가로서의 불이익과 작가로 살아가는 것의 어려움이 많이 있을 테지만, 그래도 이 작가의 경우 방송 출연 상담 등의 작가 외적 활동으로 잘 알려져 출판서의 러브콜도 많고 책도 많이 팔려 어느 정도는 안정된 생활이 가능한 것 같다. 노벨상 수상작가 파트릭 모디아노가 너무나도 눌변이어서 놀랐다는 말을 김화영의 번역 수첩에서 읽은 적이 있는데, 그렇게 따지면 말을 잘해 강연 및 및 매체에의 노출의 덕으로 책 판매에 도움이 디는 곳은 또다른 문화적 수혜자에 해당된다는 곳을 잊지 않도록.

여러 에세이들을 모아놓었는데, 1.5배속의 듣기 기능으로도 충분히 따라갈 수 있을만쿰 가독성이 좋고 택한 주제도 일상적이면서 공감을 갈 만한 주제들이다. 개인적으로 소설 두 권은 낙제점에 해당되지만, 에세이라는 글의 성격상 주제 선정과 풀어가는 과정은 에세이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긍정적인 포인트가 많다. 자신의 이야기와 사랑, 직장, 꿈, 건강, 희망 등 다채로운 주제를 엮고 상담했던 이야기들을 간간히 섞어 지루하지 않게 연결했다. 나 정도의 나이가 조언을 받을만한 주제는 적었으나 대체로 공감가는 내용은 많았고, 대학생들과 청년들, 일과 가사 육아 이 모두에 대한 부담감을 혼자 이고 가야 하는 많은 기혼 여성들에게도 도움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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