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질 잘하는 친구는 좋은 친구일까 나쁜 친구일까.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나의 결점들이나 실수들을 지적해 줌으로써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래서 더 나은 인간이 된다면 사실상 지적질 잘 하는 친구는 좋은 친구라 해야 할 텐데 실은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 저자가 어느날 어떤 친구는 만나고 돌아서면 집에오는 길이 쓸쓸하게 느껴지는 친구가 있다고 생가했는데 다른 친구가 자신에게 이럴 땐 충고하지 말고 그냥 들어주면 안돼? 라고 짜증내는 모습을 보고 그 불편함의 실체를 깨닫고 자신 역시 다른 사람에게 똑같은 모습으로 비쳤음을 깨닫는 부분이 나온다.

나이가 들면 저절로 그런걸 깨달은 때문인지 요즘은 친구들 만나면 서로 칭찬 일색이다. 다 늙어 쭈글쭈글한 피부를 한 할머니들이 계모임같은 데서 어머 너는 어쩜 피부가 20대 같니 하는 말을 천연덕스럽게 하는 이유가 다 서로 편하자고 하는 거다. 너 늙었다 살쪄서 돼지같다. 배가 왜 그리 나왔니 이런 말들이 편한 사람들은 아직 다른 즐거움들이 얼마든지 많고 자신감이 차 있시에 그런 말이 새발의 피만큼도 상처나 불편함이 안되기 때문인데 나이가 들면 나이 자체가 자신감을 위축시키므로 나 스스로 상처받기 싫고 듣기 좋은 말만 듣고 싶다면 상전이 아니라 하전에게라도 서로서로 아부해야 한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은 어찌해야 할까. 한쪽 뺨을 때리면 다른쪽 뺨을 내밀라고 하는 종교적 가르침 대신, 개인이 다른 개인 때문에 불행해져서는 안된다는 것이 현대 사회에서 통하는 가치관이다. 나를 좋아해줄 가능성이 없는 사람은 좋아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포기하고 나도 똑같이 미워하라는 것이 저자의 충고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내 경우 한술 더 떠 똑같이 미워하고 미워한다는 것을 알게 행동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가 나를 미워해서 내가 입은 상처와 스트레스는 그에게 되갚아져야 풀릴 것이니까. 사실 여러 심리학 책에서도 나르시스적인 인간에게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 그 사람과 관계를 피하라고 충고한다. 그런 사람은 나의 노력으로 바뀔 수 있지 않으며, 피하는 것만이 피해를 최소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참아라, 베풀어라 이런 도덕적 윤리는 어느 집단의 희생(그것이 여성이든 약자든 하위 신분이든)을 기반하에나 다른 집단 혹은 사람의 편안함과 성공이 보장되었던 시대에나 통한다. 지배자의 논리다.

책의 내용에서 살짝 멀어졌는데, 이 책 자체가 보노보노를 읽으면서 생각한 내용들, 감상, 깨달음, 통찰, 사유들을 글로 적은 것이다 보니 보노보노를 안읽은 나로서는 보노보노의 철학을 함께 탐구해가기 보다는 저자가 느낀것을 수동적으로 읽을 수 밖에 없는 점이 아쉬웠다. 그러니까 보노보노를 매우 좋아하는 독자가 읽으면 훨씬 더 재맜게 여러 캐릭터가 주는 느낌들을 더 강허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보노보노는 80년데대부터 90년대까지 네 컷만화로 시작해서 티브이 애니와 영화로까지 이어진 시리즈로, 보노보노는 해달이고 그의 너구리 친구 너부리와많은 동물 가족들이 나와서 유아용 만화 같지만 그 속의 대화는 뜯어볼수록 철학적인 모양이다. 나무위키에 보니 최근 Jtbc뉴스룸과 동시간대에 방영했는데 시청률이 3퍼센트에 이르렀다고 하니 엄청난 인구가 보노보노를 알고 있는데 불행히도 나는 그 중 하나가 아니었다. 보노보노의 명대사들은 오랫동안 회자되어 왔고 뜯어볼수록 묘한 철학적 영감을 준다. 저자가 이 보노보노를 읽으면서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새유하는 내용은 평아한 듯 보이면서도 콕 찝어 말해주니 급공감이 되는 내용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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