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들려주는 양, 이야기의 크기에 압도되었다. 페이지마다 꽉 들어찬, 넘쳐나는 서사의 흐름을 제대로 따라가려면 인내와 시간, 그리고 집중이 필요하다. 밀도 높은 이야기에서 깊이를 가는하고 의미를 촘촘하게 짚어가며 개별 인물들이 느끼는 감정을 붙잡고 싶다면 훨씬 더 오래 붙들고 있어야 했을 책이다. 김중혁 작가는 고통스럽다고 했다. 심지어 추천하지 않겠다고까지 했다(나중에 읽어야 한다고  말을 바꾸었다.) 









 


내 경우, 고통을 고스란히 끌어안고 읽지는 않았으며, 재미있었고 내 경우, 누구에게라도 읽어보라고, 후회없을 거라고 말하며 추천하고 싶다. 고통에 있어서는 한강 작가의 <소년이 간다>나 <태백산맥> 같은 베는 듯한 날카로운 고통이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이 태어나고, 살고, 죽는 이야기, 사람의 아들이 태어나고 살고, 또다시 죽는 이야기, 그렇게 한 가문이, 또 한 마을이 태어나서 살아내고 멸망해가는 이야기다.








콜롬비아의 국민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작품으로 출간되자 마자 대박을 터뜨리며 큰 성공을 거두었고 전세계에 남미 문학의 위상을 단번에 끌어올리며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콜레라 시대의 사랑> 역시 그의 성공한 대표작 중 하나다. 그의 문학을 사실적 마술주의라는 상반되는 두 단어의 조합으로 흔히들 이야기하곤 하는데, 그 말을 누가 발명했는지 처음 몇 페이지만 넘겨도 그보다 더 어울리는 말이 없을 정도의 강한 공감을 경험한다.  







여기서 말하는 모든 말도 안되는 마술과 환상과 과장 같은 것들은 신화와 역사의 경계에서 조화롭게 배치된 치밀한 현실 세계에서 마치 홀리듯 빨려들어간다.  <작가란 무엇인가 1>의 파리리뷰 인터뷰에서 작가가 했던 말 중 저널리즘과 소설은 큰 차이가 없다는 말, 카프카의 <변신>을 읽고 침대에서 떨어질 뻔 했을만큼 큰 충격을 받았다는 말이 생각나서 다시 찾아보았다. 확실히 그는 카프카의 소설에서 최초의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이끌어냈다. '이런 것을 쓰도록 허락받은 작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자신도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말 등이다. 현대의 많은 소설이 카프카의 소설에 빚을 지고 있는 것이겠지만, 이 작품은 그레고리 잠자가 아침에 일어나 벌레로 변해 있는 있을 수  없는 일이 가능한 세계에 살고 있는 세계를 묘사했던 것처럼 실제로 가능할 법 하지 않은 수많은 신화적, 환상적, 마법적 요소로 서사를 이끌어간다.   




양이 많기에 <백년의 고독> 전체 내용을 요약하기는 오히려 쉽다. 100년 7대에 걸친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 가문의 흥망성쇠이자, 마꼰도 마을의 생성과 수난과 번영과 소멸에 대한 이야기다. 그 속에는 콜롬비아의 지리적 위치와 역사가 함축된 의미와 상징을 발견할 수 있으며, 인류 혹은 우주 전체에 대한 은유로도 읽힐 수 있다. 예언의 실현과 구성원들의 되풀이되는 운명을 통해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을 발견해내는 것은 순전히 독자의 몫이다. 해가 뜨고 아침을 밝히면 다시 서쪽하늘을 물들이며 하루를 마감하며 지듯 , 달이 차면 기울듯, 꽃이 피면 열매 맺고 지듯, 생명이 태어나고 살아내고 죽듯, 모든 태어나는 것들은 끝을 예감하고 있으며 수 많은 반복과 순환이 이루어내는 변화 속에서, 그것을 있게 하는 더 큰 또다른 세계가 피고 다시 진다. 이러한 우주적 이치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언젠가는 죽을 것이며, 우리의 가문이 언젠가는 끝날 것이며, 미래의 어느 날에는 세상이 혹은 종말하는 날이 올 것이라는 것을, 생명이, 우주가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가  우리가 아는 방식으로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마콘도 마을의 탄생은 금기시된 근친과 살인이라는 원죄로부터 시작된다.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 대령과 우르술라는 사촌 관계인데 근친을 하면 돼지꼬리가 달린 아이가 탄생한다는 두려움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자신을 따르는 21명의 마을 남자들과 함께 살던 마을을 떠나 배를 타기를 원했으나, 바다를 찾지 못하고 마꼰도라는 마을에 정착한다.  소설에서 설명하고 있는 이 마을의 지리적 위치는 콜롬비아의 해안 지역과 지리적으로 흡사하다. 서쪽으로는 고원지대이고 나머지는 저지대와 해안으로 둘러쌓여 있어서 아득히 세상과 멀리 떨어진 고립된 위치에 있다. 그들은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의 지휘 아래 평등하고 공평한 공동체를 만들어 나간다. 100여년이 흐르면서 이 공동체는 거대한 역사의 흐름에 맡겨져 한 때는 엄청나게 흥하기도 하고 또 엄청난 시련을 겪기도 하면서 더이상 고립되지 않고 큰 도시로 성장한다. 뱃길이 열리고, 열차가 다니고, 대형 자본이 밀어 닥치고 바나나 농장이 세워지고 부가 넘쳐나다가 이 모든 것들이 꿈결이었었던 것처럼 어느새 쇠락의 길로 접어든다. 

반복과 순환은 백년의 고독을 관통하는 커다란 주제이다. 모든 것은 반복하며, 모든 것은 순환한다.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 대령의 집안의 후손들은 크게 아르카디오 계열과 아우렐리아노 계열로 나뉜다. 가문 속 남성들은  세대가 계속 바뀌면서 두 개의 같은 이름을 갖는다.  1대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의 이름에서 2대의 첫아들인 호세 아르카디오가 탄생되고, 2대 둘째 아들인 아우렐리아노 대령이 태어난다. 이 두 개의 이름은 두 아들의 후손들의 이름에 계속해서 쓰이는데, 그 이름은 성격을 결정한다. 아르카디오 계열의 남성들은 대개 남성적이고 호색적인데 비해 아우렐리아노 계열은 말이 없고 영특하다. 단지 쌍둥이로 태어나 서로를 바꿔치기 하는 장난을 즐겼던 4대 호세 아르카디오 세군도와 아우렐리아노 세군도는 이름이 바뀐 채로 살아가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실제로 애초에 이름지었던 그들이 서로가 바뀌어졌기 때문에 이름 지어졌던 순간의 운명을 살아가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긴 여정의 이야기 속에서 반복되는 근친 또한 순환은 고리를 계속해서 이어간다. 카드 점을 보는 예언자 필라르 떼르넬라는 2대째의 두 아들 호세 아르카디오와 아우렐리아노 대령과 각각 혼외 관계를 갖는데, 문란하다는 이유로 결혼에 이르지 못하지만, 그들의 정부인들이 일찍 죽거나 혹은 아이를 낳지 못했기 때문에 실제로 부엔디아 가문의 대를 잇는 것은 삘라르가 낳은 두 아들들이다. 첫아들 아르카디오는 일찍 부모를 여의고 부엔디아 가문에 들어와 함께 큰 인척 관계의 레베카와 결혼함으로써 첫번째 근친을 이어간다. 레베카와 결혼하기 전 아르카디오는 필라르와 혼외 정사로 태어난 3대 아르카디오는 필라르가 친모임을 모른 채 모자 사이의 근친의 욕망에 빠지게 된다.  아마란타는 1대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의 딸인데,  한편 결혼 전 1대 아우렐리아노 대령과의 혼외 정사로 태어난 아우렐리아노 호세는 고모 뻘인 아마란타에게 연정을 품는다. 근친의 욕망을 느꼈으나 이루지는 못한 3대 아르카디오와 아우렐리아노는 일찍 죽고, (어쩌면 일찍 죽었기 때문에 근친이 성립되지 않았을 수도) 결국은 삘라르가 낳은 아르카디오가 산타 소피아와의 결혼으로 태어난 쌍동이 호세 아르카디오 세군도와 아우렐리아노아우렐리아노 세군도, 그리고 미녀 레메디오스가 4대에서 번성을 이루지만, 그 중 실제로는 아르카디오라고 여겨지는 아우렐리아노 세군도와 결혼한 페르난다가 낳은 딸 레메가  미혼인 상태로 수녀원에서 낳은 아들을 집에 데려와 차마 죽이지 못해 천덕꾸러기로 숨겨 키우는 동안 늦둥이로 낳아 함께 자란 친딸 아마란따 우루술라가 둘 사이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상태에서 관계맺고 결국은 태초의 예언대로 돼지꼬리가 달린 아기가 태어남으로써 근친상간의 저주가 완성된다. 

곳곳에 흐르는 환상적인 이야기들은 유기적으로 여러 요소들과 한데 조화를 이루며 주제를 반복하는데, 태초 마을이 설립되었을 당시 1대의 이주민들이 살았던 고립된 공간 마꼰도에  주기적으로 방문했던 집시 노인 말키아데스가 남긴 양피지에 쓰인 해독 불가의 예언이 풀리는 동시에, 충격적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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