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리 잭슨의 The Lottery는 영문학 교과서에 자주 실리기 때문에 영미권 환경에서는 공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소설이라고 한다.  국내에 셜리 잭슨의 책이 3권 나와 있는데, 이 단편이 실린 책은 제비뽑기라고 되어 있어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번역된 제목 제비뽑기는 무작위로 누군가를 뽑는 것이라 그런 느낌이 없는데 원제 The Lottery》는 국내에서는 복권 로또 당첨 같은 선입견이 자리 잡아서 그런지, 행운을 연상시킨다.  이 로또 맞았다고 할 때의 행운의 느낌때문에  제비뽑기라는 번역이 원제 The Lottery가 주는 반전적 충격을 희석시키는건 아닌가 싶다. 결론은 어마어마하게 충격적이라는 거다. 


전건우의 《밤의 이야기꾼들》에 실린 이야기 중의 하나인 《눈의여왕》을 읽으면서 셜리잭슨의 The Lottery가 생각났다. 오밤중에 캄캄한 폐가에 모여 앉아 자신들을 기묘한 이야기들을 차례로 전하는 것을 취재하는 형태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전건우의 《밤의 이야기꾼들》중 마지막 노인이 이야기한 《눈의 여왕》은 The Lottery에서 마을 사람들이 행했던 방법과 비슷한 방법으로 인간의 본질적 야만성과 악을 폭로한다. 


《The Lottery》는 지금은 사라졌다고 판단되는 관습과 주술적 믿음을 다루기도 하는데, 알 수 없는 먼 미래를 상상한 커트 보니것의 《2BR02B》와도 상통하는 데가 있다. 궁극적으로 어떤 집단의 관습은 그 집단의 믿음에 기초하는데, 그 믿음이 무엇을 위해서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선택한 가치가 과연 무엇을 희생시키는가를 어떻게 교묘하게 숨기고 있는지를 생각나게 한다는 면에서 그렇다. 그러니까 《2BR02B》는 집단이 어떤 희생을 치르고 구축한 시스템이 무엇을 파괴시키고 있는가를 다루는데, 그렇게 해서 구축된 시스템의 본질이 과연 무엇인가.. 그것이 혹은 어떤 시스템이 옳은가 그른가의 문제가 아니고, 세상에는 답이 없다는 것을 오히려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문제는 읽을 때는 단순히 충격적인 미스터리 소설이다 라고만 생각했던 스토리의 파편들이 두뇌에서 여기저기 튕겨가며 이 거대한 시스템에 대한 은유로 치환된다는 거다. 


시대적 공간적 배경이 모호한 이 소설은 1년에 한 번씩 열리는 마을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들고 약간의 축제분위기마저 감돌면서 목가적 분위기로 시작한다. 사람들은 농담을 해가며 칠십칠년 이상 오래된 이 관습이 어떤 마을에서는 없어졌다며, 그런 젋고 어리석은 인간들이라며 쯧쯧하기도 하고, 다른 곳에서는 이런 저런 잡담이 이어진다. 약간 늦게 도착한 테시 허치슨 부인은 오늘이 무슨 날인지 깜빡 잊어버렸었다고 하고, 사람들은 그녀가 없는 채로 시작할 뻔 했다고 그렇게 가볍게 시작된다. 진행자는 한명씩 마을 사람들의 성을 호출하고 종이를 뽑아 들고 순서대로 한명씩 가장이 먼저 종이를 뽑아 어떤 집안이 당첨되는지가 먼저 결정되는데, 빌 허친슨이다. 


소설을 내고, 독자들의 사과하라는 압력까지 들었다는 하는데, 애초 처음에 그 독자들을 화나게 했던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소설 속에 있다. 우리 인간을 어떻게 취급하는 거야? 혹은 인간을 뭘로 아는 거야? 라는 반격이 가능할만한 소설이다. 마지막 문단에 가서는 선명하게 시각적인 장면이 연상되어서 더욱 강렬한 인상으로 남는다.  문화라는 이름으로 오랫동안 지켜져왔던 것들 남겨진 것들 중에는 희생양을 기반으로 한 것을 찾자면 못찾을 것도 없을 것이다. 당첨자가 밝혀지자, 빨리빨리 끝내고 일하러 가자는 마을 사람들의 그 무심함이 더욱 소름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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