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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
후안 가브리엘 바스케스 지음, 조구호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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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소음들은 이제 내 청각 기억의 일부가 되었다. 테이프 속에 침묵이 흐른 뒤, 비극이 내는 소리들이 정적에게 자리를 양보 한 뒤, 나는 그것을 듣지 않는 편이 좋았을 거라는 사실을 알았고, 동시에 내 기억이 그것을 영원히 계속해서 재생하게 될 거라는 사실을 알았다. 아니, 그것들은 나와 관련된 죽음이 아니었고 나에게는 그 말을 들을 권리가 없었지만 죽은 사람들의 말과 목소리는 지친 동물을 집어삼키는 소용돌이처럼 나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112


파블로 에스코바르는 콜롬비아 마약 카르텔 두목이었다. 한때 그는 세계에서 6번째로 부자였고, 한때 그의 개인 경호원만 2천명에 달했다. 이 정도라면 그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마약 조직이 문제가 되는 건 단지 마약이 몸에 좋지 않고, 그래서 불법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마약밀매에 따르는 엄청난 이권이 조직폭력배의 세력을 키우고, 그것이 사회 전체에 스며들어 테러와 폭력이 일상화되고 그것이 구성원들을 불안과 공포로 몰아넣는데 있다. 


이 작품은 그 폭력과 광기의 시대에 직접적인 아무 연관도 없는 피해자가 되어 일상이 불안이 되어 버린 한 남자가 트라우마를 끌어 안고 젊은 날의 그 폭력의 기억을 환기하면서 시작된다. 운이 좋아 젊은 나이에 교수로 임용된 얌마라는 좋은 학점은 침대에서 먼저 결정하는 나름 대로의 자신의 질서 속에서 평화로운 일상을 살아간다. 당구장은 그의 일상을 결정하는 한 공간인데, 여기서 20년간 수감되었다가 나온지 얼마 안되는 라베르데를 만난다. 


그리고 소설은 네 가지 이야기가 함께 엮여져 있다. 얌마라가 기억하는 라베르데와 그의 충격적 죽음, 그의 죽음에 동반되어 자신이 겪은 총격 피해와 그로 인한 트라우마 속에서 가정이 해체되어 가는 과정, 라베르데의 죽음 속에 감추어진 진실을 찾기 위해 그의 딸 마야를 만나 서로의 상처를 보듬는 과정, 그리고 마야를 통해 듣는 마야의 엄마 일레인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대학 때 평화봉사단으로 콜롬비아에 와서 라베르데를 만난 일레인의 이야기다.  일레인의 시점으로 라베르데가 설명되고, 또한 미국인의 시점으로 콜롬비아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태생이 콜롬비아인인 화자 얌마라의 시점이 설명하지 못하는 것들을 풍부하게 담아낸다. 아이러닉하게도 평화봉사단으로 콜롬비아에 와서 일레인이 하던 일은 마을에 하수도를 놓고, 학교를 세우고, 하는 여러가지 일들도 있지만, 마을의 소득을 향상시키기 위해 코카인 재배 기술을 알려주는 것인 듯하다. 


한 시대가 지나고 또다른 시대가 오면 지나간 시대에 합법적이었던 일은 불법이 되고, 지나간 시대에 선의로 시작된 일이 또다른 시대에 악의와 탐욕의 핵이 된다. 파일러트였던 할아버지는 아들을 데리고 공중 비행쇼에 갔다가 비행기가 추락하는 끔찍한 사고를 당했고, 그 아들은 비행기 폭파로 인한 화상을 얼굴에 심고 마음에 박힌채로 살아가지만, 손자는 다시 비행기 조정석에 앉는다. 그리고 이 몰락한 귀족은 평화봉사단 실습중인 일레인의 하숙집이 된다. 도발적인 라베르데의 매력에 빠진 일레인은 라베르데와 결혼 후, 남편 라베르데가 갑작스레 수출이 중단된 마약 밀매 운송책이 된 사실을 알게 된다. 궁궐 같은 집을 지어놓고, 이쁜 딸을 낳아 놓고, 이번 한 번만 하면 20대에 평생을 먹고 살 부자가 될거라며 떠난 라베르데는 준비된 계략에 빠진 것처럼 이륙과 동시에 체포되고, 도망치다 발사한 총이 경찰에 맞아 20년형을 받게 된다. 그렇게 하여 일레인은 혼자서 딸을 키우게 되었고, 아버지는 죽은 줄로 알고 크게 된다. 


특별한 시대였어요. 그렇잖아요? 폭탄이 누구에게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대. 와야 할 사람이 오지 않으면 다들 걱정을 하고, 자신이 잘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어디에 가장 가까운 공중전화가 있는지 알아야 하고, 공중전화가 없으면 전화를 빌려 쓸 수 있는 집을 알아내서 그 집 문을 두드려야만 하고. 우리는 우리와 가까운 사람들이 죽을 가능성에 매달리고, 우리와 가까운 사람들이 우리 가족들 사이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그들을 안심시키는 일에 매 달리면서 살아야 했죠. 우리는 각자 집안에서 지냈죠. 기억해요? 공공 장소는 피했어요. 친구의 친구의 친구의 집, 친분이 깊지 않은 사람의 집 313


70년대 초반에 태어난 사람 중 몇이나, 마야나 나같은 사람 중 몇이나, 평화롭거나 보호받거나 적어도 불안정하지 않은 유년시절을 보냈는지, 그들 가운데 몇이나 자기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도시가 - 전쟁을 선포한 사람은 아무도 없고, 공식적인 전쟁이라는 것이 있다면  적어도 그런 전쟁이라도 선포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공포와 총소리와 폭탄 소리에 파묻히는 사이에 그 도시에서 사춘기를 보내고 두려움에 젖어 어른이 되었는지 - 내 도시에서 몇 사람이 어찌 되었든 자신들은 구원을 받았다고 느끼면서 도시를 떠났는지, 그리고 몇 사람이 자신들이 구원받을 때 화염에 휩싸인 도시에서 도피 했다는 이유로 자신들이 뭔가를 배반하고 있다고 느끼고, 난파선의 쥐떼처럼 변하고 있다고 느꼈는지 알고 싶다. '나는 사람이 많이 사는 어느 교만한 도시가 /어느 날 밤 내내 불타는 모습을 보았다는 사실을 여러분에게 얘기 해야겠노라/ 나는 눈 한번 깜짝하지 않고서 그 도시가 허물어지는 모습을 보았노라/ 어느 말발굽 아래로 장미꽃잎 하나가 떨어지는 것을' 아우렐리오 아우투로의 시다. 1929 년에 이 시를 발표했다.  그는 잘 나중에 자신의 꿈의 도시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방법이 없었고, 마치 쇳물이 자신에게 할당된 금영 속에 들어가서 쇠가 금형에 맞춰지듯 보고타가 어떻게 그 시구안에 들어가서 시구에 맞춰지게 되는지 알지 못했다.

도시는 불타는 밀림 속에서 넓적다리 처럼 타고 있었다
그리고 둥근 지붕이 무너지고 벽이 무너지고 있었다
넓은 거울 위로 무너지는 것처럼 사랑하는 목소리들 위로.
순수한 광휘가 질러대는 만 개의 날카로운 비명소리 347 ~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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