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를 달리던 자동차는 가드레일을 박고 시커먼 언덕 밑으로 굴러떨어진다. 한 사람은 살았고 한 사람은 죽었다. 남겨진 사람의 육중한 몸둥이는 턱관절까지 모조리 마비되었지만 보고 듣는 감각은 남겨졌다. 무능한 육체에서 분리되지 못한 정신은 그대로 그 무력 속에 갇혀 버렸다. 만일 이원론적인 생각을 받아들여 육체 없는 영적 생명이 가능하다고 한다면 마비된 채라도 육체라는 물질 속에 영을 의탁하는 것이 나을까 아니면 연기처럼 혹은 파동처럼 자유로이 떠도는 것이 나을까오기는 살아남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으나 눈 깜빡임으로 최소한의 수동적 의사 표현이 가능하다. 그 깜박거림의 지독한 수동성이 끔찍하다고 느껴졌다. 생각을 전달할 수 없는 것과 생각할 수 없는 것의 차이는 타자에게 종이장 보다 앏다. 그러나 산 자에게 생각은 자신의 의지로 작동되는 거의 유일한 생명 현상이다. 그는 생각한다. 아내를 생각하고 어릴 때 자살한 엄마를 생각하고 애정 없던 아버지를 생각하고, 열심히 살아내온 인생 여정의 곳곳을 생각하고, 단아하나 속을 알 수 없는 일본계 장모를 생각하고, 고아 사위에게 치졸했던 장인을 생각한다. 대부분의 생각은 아내에 대한 것이다.그의 회상에서 오기가 아내를 회상하는 방식은 타인에 대한 다가갈 수 없는 벽이면서 동시에 자신과 아내가 함께 이루어 가던 삶에 대한 회고인데, 그의 생각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틀로 바라본 아내를 독자에게 설명하는 화자로서 크게 기능한다. 그런데 오기가 설명하는 아내는 다시 또 오기라는 남자를 오기 스스로가 자신을 말하는 것과는 다른 시각으로 보게 한다. 사고 직후 혼자 살아남은 자신이 애틋했던 아내와의 시간들을 회상하는 듯 시작하지만, 그의 생각 속에서 회상하는 아내의 행위를 통해 그리고 그가 아주 약간의 단서만을 주었던 그 자신의 몇가지 행위를 통해 독자로서는 속단할 수 없는 조금은 추악한 남자의 내면 혹은 진실이 숨겨져있음을 알게 된다.딸을 잃고 혼자 남겨진 장모가 사위의 법적 대리인 역할을 하면서 서서히 변해가는 모습은 공포스럽다. 특히나 구덩이를 파는 목적을 일 수 없다. 그러나 그동안 열심히 무언가를 쓰던 아내가 쓴 글이 자신을 고발하는 글이었으며 이혼을 요구하며 동시에 사회적으로 매장시키겠다는 선언이 사고 직전에 있었다는 진실을 마주하고 나니 장모의 행동에는 납득할만산 무언가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장편이라 보기엔 짧은 소설임에도 중간쯤에 조금 지루하게 느낀건 사고로 사지가 마비된 사위의 모든걸 가로채려는 장모의 음모가 하루하루 클리셰로 채워지고 약자로서의 오기가 언제까지 추락하는지 그조 무기력하게 지켜보는 익이 힘들기만 할 뿐이었기 때문이었는데, 곧 다시 몰입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오기가 생각으로 설명하는 아내의 캐릭터가 됭장히 신비스러운 면이 있었고 특히 실제 아내의 모습과는 다르게 포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였다.급작스런 사고가 가져온 육체의 마비 앞에서 자신의 권리와 존엄성을 지키는 일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고 타인끼리 한 가족을 이루며 살아가는 일에서 어떻게 서로가 서로를 자신의 편의에 의해 정의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갬곰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알라딘 신간 평가단 도서로 출판사에서 알라딘 신간평가단을 통해 투표로 선정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