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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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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를 달리던 자동차는 가드레일을 박고 시커먼 언덕 밑으로 굴러떨어진다. 한 사람은 살았고 한 사람은 죽었다. 남겨진 사람의 육중한 몸둥이는 턱관절까지 모조리 마비되었지만 보고 듣는 감각은 남겨졌다.  무능한 육체에서 분리되지 못한 정신은 그대로 그 무력 속에 갇혀 버렸다. 만일 이원론적인 생각을 받아들여 육체 없는 영적 생명이 가능하다고 한다면 마비된 채라도 육체라는 물질 속에 영을 의탁하는 것이 나을까 아니면 연기처럼 혹은 파동처럼 자유로이 떠도는 것이 나을까

오기는 살아남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으나 눈 깜빡임으로 최소한의 수동적 의사 표현이 가능하다. 그 깜박거림의 지독한 수동성이 끔찍하다고 느껴졌다. 생각을 전달할 수 없는 것과 생각할 수 없는 것의 차이는 타자에게 종이장 보다 앏다. 그러나 산 자에게 생각은 자신의 의지로 작동되는 거의 유일한 생명 현상이다. 그는 생각한다. 아내를 생각하고 어릴 때 자살한 엄마를 생각하고 애정 없던 아버지를 생각하고, 열심히 살아내온 인생 여정의 곳곳을 생각하고, 단아하나 속을 알 수 없는 일본계 장모를 생각하고, 고아 사위에게 치졸했던 장인을 생각한다.

대부분의 생각은 아내에 대한 것이다.그의 회상에서 오기가 아내를 회상하는 방식은 타인에 대한 다가갈 수 없는 벽이면서 동시에 자신과 아내가 함께 이루어 가던 삶에 대한 회고인데, 그의 생각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틀로 바라본 아내를 독자에게 설명하는 화자로서 크게 기능한다. 그런데 오기가 설명하는 아내는 다시 또 오기라는 남자를 오기 스스로가 자신을 말하는 것과는 다른 시각으로 보게 한다. 사고 직후 혼자 살아남은 자신이 애틋했던 아내와의 시간들을 회상하는 듯 시작하지만, 그의 생각 속에서 회상하는  아내의 행위를 통해 그리고 그가 아주 약간의 단서만을 주었던 그 자신의 몇가지 행위를 통해 독자로서는 속단할 수 없는 조금은 추악한 남자의 내면 혹은 진실이 숨겨져있음을 알게 된다.

딸을 잃고 혼자 남겨진 장모가 사위의 법적 대리인 역할을 하면서 서서히 변해가는 모습은 공포스럽다. 특히나 구덩이를 파는 목적을 일 수 없다. 그러나 그동안 열심히 무언가를 쓰던 아내가 쓴 글이 자신을 고발하는 글이었으며 이혼을 요구하며 동시에  사회적으로 매장시키겠다는 선언이 사고 직전에 있었다는 진실을 마주하고 나니 장모의 행동에는 납득할만산 무언가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장편이라 보기엔 짧은 소설임에도 중간쯤에 조금 지루하게 느낀건 사고로 사지가 마비된 사위의 모든걸 가로채려는 장모의 음모가 하루하루 클리셰로 채워지고 약자로서의 오기가 언제까지 추락하는지 그조 무기력하게 지켜보는 익이 힘들기만 할 뿐이었기 때문이었는데, 곧 다시 몰입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오기가 생각으로 설명하는 아내의 캐릭터가 됭장히 신비스러운 면이 있었고 특히 실제 아내의 모습과는 다르게 포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급작스런 사고가 가져온 육체의 마비 앞에서 자신의 권리와 존엄성을 지키는 일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고 타인끼리 한 가족을 이루며 살아가는 일에서 어떻게 서로가 서로를 자신의 편의에 의해 정의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갬곰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 알라딘 신간 평가단 도서로 출판사에서 알라딘 신간평가단을 통해 투표로 선정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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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바 2016-05-16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모에 대한 묘사도 신경써서 볼 만한 것 같아요. 장모가 오기에게 처음 건넸던 말이 그렇게 꼬아들을만한 이야기였던지 궁금하기도 한데... 처음엔 장모가 딸의 반지를 가지는 것도 허락받고, 무슨 기도회 목사도 불러오고 할 정도로 사위에 신경을 쓰다가 딸이 남긴 기록을 보고 달라진다고 추정할 수 있는데- 그 기록 이야기를 빼고(오기가 기억을 빨리 못한 건지 아니면 일부러 언급을 늦게 한건지는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보면 장모가 완전 이상한 인물이죠. 고상한 척 하더니 집은 균형이 맞지 않고(작은 집, 큰 가구) 홈드레스를 질질 끌고다니며, 일본혼혈이라 유골함을 거실장에 넣어두고 유년시절과 행복하지 않은 결혼생활로 인해 딸에 집착하는 인물로 그려지잖아요. 오기가 보는 장모가요...

CREBBP 2016-05-16 15:34   좋아요 0 | URL
장모가 천천히 미스테리적 인물로 변해가는게 말씀하신 것처럼 문제의 그 고발문 때문일 것 같은데, 그 일본말이 살려달라는 거라고 하잖아요? 거기에 뭔가 키가 있을 것 같기도 해요. 어찌보면 그냥 헌신적인 인물인 거 같기도 해요. 그렇게 된 사람을 맡아서 보호한다는 거 자체가, 나이 많은 사람이 자식도 없는데 그 뭐 욕심낼 일이라고 그집에 들어가서 수발을 하겠어요. 딸이 쓴 글을 쓰고 이 사람이 얼마나 나쁜지를 알아냈기에 복수 차원에서 덜 신경쓰는 것일 수도 있겠다 생각했는데.. 줄리안 반스 <예감은 끝나지 않는다>와 비슷한 거 같은데 화자를 얼마나 믿어야 할지 정도 차이인 것 같기도 하구요.

에이바 2016-05-16 17:23   좋아요 0 | URL
오기의 기억이 되살리는 과정에서 화자를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가 생각도 해봤는데 저는 반스 작품보다는 오히려 리틀 스트레인저를 생각했더랬어요. 근데 또 거기까진 너무 나간 것 같고... 저도 자기기만이라는 점에서 여러 작품들을 떠올려 봤는데 딱히 맞아떨어지는 게 없더라고요. 기만 자체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absent in the spring이랑도 다르고요. 암튼 장모라는 인물이 좀 기묘하게 그려지는 것은 오기가 (끝을 예상하면서도) 장모의 속을 알듯 모를듯한 느낌으로 서술하는데 있는 것 같아요. 왜 동료들을 한꺼번에 불러다 오기에게 수치를 주잖아요. 게다가 제이와의 관계도 눈으로 확인하고요... 다스케테쿠다사이 그것도 딸을 잃고 살아가는 자기를 살려달란 말인지, 오기를 살려달란 말인지, 오기를 미워하지 않게 해달라는 말인지 아니면 딸을 살려달란 말인지... 약간 미저리 느낌 나면서도 완전 다른 소설이었어요. ㅎㅎ

CREBBP 2016-05-16 17:49   좋아요 0 | URL
그러고 보니 리틀 스트레인저에 더 가까운 것 같네요. <예감은>에서는 자기기만인 기억의 부재에서 나온 거지만, 여기서는 자기기만이라고 보기도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자기가 실제로 그렇게 믿고 있는 거잖아요. 자기 잘못을 자기가 모른다는 거, 제이랑 아무일 없었다고 끝까지 오리발을 내밀었는데, 그 때는 안그랬고 나중에 일이 생겼다는 것도 아내가 자기들을 의심해서 그런 일이 생겼다고 말하는 그 어린애같은 심리가 그게 그 사람인 것 같아요. 어릴 때 자기 때리는 친구를 물어뜯어 살점이 뜯겨 나가게 했었다는 것도 나중에 생각해보면 어린애로서는 섬찟한 이야기지요.

장모는 처음에는 가족애와 호의로 그랬고, 나중에는 노트 때문에 복수하는 거 같아요. 사람들 앞에서 수치 주는 것도 일부러 딸을 대신해서 제이한테 보란 듯이 그걸 보여주는 거 아닐까 해요. 이렇게 읽으니 재밌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