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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터 캐리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6
시어도어 드라이저 지음, 송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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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대도시로 상경한 여성이 우여곡절 끝에 배우로 성공한다는 훈훈한 이야기라면 독자는 무엇을 기대할까. 성공을 이끄는 사랑과 야망을 향해가는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을 다룬다는 면에서 본다면 우리의 상상적 범위 내에 있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피상적으로 캐리는 성공했으니까 말이다.  공교롭게도 19세기가 막을 내리고 새세기를 맞이하던 1900년도에 소설이 쓰여졌는데, 사장이 없는 동안 에디터가 계약을 한 모양이었다. 뒤늦게 여행에서 돌아온 사장은 부인까지 동원하여 책의 비윤리성에 분개한다.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출판사는 계약을 파기하지는 못하고 조용히 사장되기를 바랐고, 1008부를 거의 찍었지만, 이후에는 평단과 독자들의 혹평과 비난으로 이어졌다. 이로 인해 시어도어 드라이저는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소설 속의 허스트우드만큼이나 폐인이 되었었다고 한다.  응? 소재로 봐서는 건전해 보이는데, 무엇이 이토록 19세기말의 미국 사회를 불편하게 했을까. 


작가 시어도어 드라이저는 후에 윌리엄 포크너, F.스콧 피츠제럴드, 등의 미국 현대 문학의 대가들에게 큰 영향을 준 거인이자, 미국 자연주의 문학의 거장으로 평가받는다.  자연주의는 개인의 사회적 생물학적 조건하에서 숙명을 벗어나는 것을 어렵다고 보고 결종론적 세계관에 따라 도덕과 인습을 벗어버린 채, 있는 그대로의 삶을 상세히 기록한다.  드라이저는 작품 속에서 물질적인 향락과 사치라는 행위 속에 잠재된 욕망과 위선을 포착하여 홀랑 벗겨 보이면서 동시에 나락으로 떨어져 하층민이 된 인물의 처참한 하루살이 같은 삶을 대조적으로 조명함으로써 사회 구조적인 모순을 전면적으로 드러낸다. 그 절정은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부부로서 같은 운명을 걸어가던 두 사람이 한 명은 성공의 사다리 맨 꼭대기에, 다른 한 명은 저 맨 밑바닥의 수렁 속에 동시에 기착되면서 대조적인 삶이 생생하게 클라이맥스를 이루며 막을 내리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출판사 사장을 비롯하여 책을 읽고 평가할 수 있는 위치의 대다수 기득 중산층들을 겨누는 화살로 느껴졌기에 그들은 격렬하게 논쟁했고 소설을 비하했던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날 비윤리적이라고 하면, 잔인한 폭력과 난잡한 섹스 등의 자극적인 묘사를 흔히 떠올리는데, 이 소설은 오히려 그런 면에서는 점잖다. 


역자 후기에서도 언급했지만, 당시 출판사 사장을 비롯하여 비평가들을 불편하게 했던 것은, 비정한 자본주의의 모습을 자유의 이름으로 미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어둠과 빛이 교차하는 잔혹한 우연성에 개인의 운명을 승차시켰기 때문이다. 캐리의 성공은 그 시작이 돈과 화려함이라는 욕망을 쫓던 중, 우연한 계기로 시작되었다.  그녀는 인생 전체를 꿰뚫지도, 세상을 이해하지 못한 채, 더듬이처럼 바로 옆에 우연히 함께 있는 사람들이 가진 것과 자신에게서는 있지 않은 것의 차이를 근시안적으로 알아차린다.  영리한 그녀는 그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에는 빠르게 적응한다. 그녀를 구두공장 노동자로서의 최하층 신분에서 구한 것은 아이러닉하게도, 그 최악의 일자리마저도 잃고 언니와 형부가 사는 집에서 쫓겨날 신세에 있을 때 나타난, 우연히 상경하는 기차에서 알게된 드루에와의 만남에서였다. 


여배우로서 대성공이라는 결과와는 반대로 캐리는 오히려 소극적인 여성이다. 낯선 남자가 자신을 여자의 아무것도 알지 못한채 단지 얼굴에만 반해서, 돈을 주고 방을 얻어주고 친절을 베푼다면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시골뜨기였지만 둘이 부부처럼 행동하면서도 차일피일 결혼을 미루는 이유를 눈치챌 만큼은 똑똑했고, 뛰어난 감성의 소유자였다.  드루에가 속한 클럽의 아마추어 극단의 기금 마련을 위해 처음 연극의 배우로 서게 되었을 때 경험한 숨막히는 갈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배우가 되기 위해 노력하지도 않았다. 그녀를 성공시킨 것은 사회적으로 유리하게 조합된 유전자의 우연이 가져다준 재능 외모과 어쩔 수 없이 돈을 벌기 위해 무대로 향해야 했던 사정이라는 우연, 그리고 공연 중 그녀를 눈에 띄게 한 사소한 사건들에 대한 재치있는 대처였다. 그런 것들 중 어느 하나의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어도, 지금 그녀가 사다리 꼭대기에 올라가 있는 동안 수렁같은 바닥에서 절망했을 허스트우드와 다르지 않은 신세가 되었을 가능성도 크다.  


사랑하지도 않는 동거남에게 결혼을 요구하는건, 그가 자신과는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만큼은 똑똑했기 때문이다. 허스트우드의 거짓말들을 수용한 이유는 드루에가(를) 떠난 몇일 동안 다시 여공 시절의, 밑바닥으로 인생으로 전락할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 자명하다. 캐리에겐 그의 거짓말보다는 그가 자신과 결혼할 것인지가 더 중요했던 것이다. 그 결혼이 자신에게 약속할 수 있는 단 한가지는 자신이 다시는 공장노동자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 정도였을까. 아니면 그가 쫓기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으므로 이제껏 알아왔던 부잣집 신사로 쭈욱 살아가게 될 것을 막연하게 믿었을 지도 모른다. 상관없다. 그녀가 뭘 알고 있었는지 독자도 모르고 그녀도 모른다. 캐리는 근시안적이었다. 문제는 이거다. 그녀에겐 허스트우드의 본성, 이제껏 유부남이라는 거짓을 말해왔고, 또 자신을 속여 납치했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왜 보이지 않았었는가 하는 문제다. 이제껏 알던 사람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에게 속아 다른 멀리 떠나가면서, 그녀는 앞으로 뉴욕이라는 장미빛 도시와 거짓말하는 남자에서 자신의 미래를 맡기고자, 자신을 그 두려운 밑바닥 인생으로부터 구조해줄 결혼이라는 확고한 증명만이 필요한 것이다. 


물론 캐리는 처음부터 드루에가 가진 경박함과 대조되는 세련되고 부티나는 허스트우드에게 빨려들듯 걸려들었다.  드루에의 지인인 허스트우드는 권태로운 중년으로 아름다운 캐리에게 반해, 드루에가 없는 동안 결혼 사실을 숨기고 캐리를 꼬여내 장미빛 미래를 약속하지만, 사실이 밝혀지자 가족들에게 그동안 모아놓은 재산은 모두 빼앗기게 될 운명에 처하고, 그러던 중 우연치 않게 금고를 털어, 캐리를 드루애가 다쳐서 같이 가봐야 한다는 거짓으로 불러내어 도주한다. 열차에서 허스트우드의 거짓이 드러나지만, 캐리는 허스트우드의 열렬한 구애에 넘어가고, 뉴욕에서 사업을 시작한 허스트우드는 점점 자멸의 길을 걷는다. 


돈은 그 자체로 힘이었다 78


허스트우드 집안의 불행은 질투가 사랑에서 태어나긴 했어도 사랑과 함께 사라져 버리지는 않는다는 사실에서 비롯되었다 272



드루에로 말하자면 ... 지금 그의 마음속은 속았다는 분노와 캐리를 잃는다는 슬픔, 패배 당했다는 비참함이 뒤섞여 있었다.300



그녀의 욕망은 자신이 만난 사람들을 통해 실현되지만, 그것은 결코 충족되지 않는다. 좋은 음식과 멋진 옷들, 화려한 집안 살림들, 이런 것들은 궁색한 언니 집 한구석에서 자신의 주급 4불 50센트 중 4불을 지불하면서 남은 50센트를 모아 옷을 사던 시절을 생각하면 꿈꿔보지도 못한 것들이지만 그런 생활을 하게 되면 그 주위에 항상 자신이 가진 것보다 훨씬 더 세련되고 우아한 껍질들로 자신을 감싼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허스트우드를 버리고 우연한 기회가 올 때마다 천부적인 재능을 발휘하여 공연계에서 한 계단씩 올라가게 되었을 때조차 그녀는 자신이 이제껏 허스트우드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에게 기생했다는 사실은 여전히 깨닫지 못한다. 다만, 뉴욕 최고의 호텔에 거주하며 연일 신문에 오르내리는 스타가 된 동안, 완전한 밑바닥까지 추락한 허스트우드가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어야 했던 이유는 그들의 도덕적 인과응보로 설명되지 않는다. 물론 허스트우드는 거짓을 일삼고 가족을 버리고 젊은 여성을 꼬여냈으며, 그 여성을 거짓으로 납치하듯 드루애의 집에서 데리고 나왔고, 돈을 훔치고, 사업을 망한 후에도 무능했기에 나쁜 사람은 맞다. 그러나 시카고 사교계에서 최고의 위치에 있었던 자가, 돈의 부재와 함께 조금씩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참혹한 몰골로 비참한 최후를 마치는 모습은 당시라면 충격적인 모습이었을 것이다. 자본주의가 심화된 요즘이야 하루아침에 알거지 되는 일이야 비일비재하기에 주변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경우지만, 세습된 부가 단단했던 당시로서는 그런 몰락이 중산층들을 더욱 불편하게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찌되었건, 성공한 캐리는 어떨까. 그녀는 그토록 갈망하던 화려한 세계에서 일인자가 되었고 자신을 향해 끊임없이 날아드는 불나방같은 남성들의 중심에서 돈과 명예, 그 모든 것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바로 그 지점에서 그녀는 그녀가 이제껏 추구해왔던 것들이 공허한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녀는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더 고상한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그것들에 다가갈 수 없음을 알고 고통스러워한다. 


깨끗하고 자연스러운 용모를 지닌 이 젊은이는 그녀가 잘 이해하지 못한 채 받아들이는 것들도 분명히 이해하는 것 같았다.429 


캐리는 고개를 떨구고 처음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고통을 느꼈다 420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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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바 2016-03-25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부격인 뉴욕에서는 캐리의 성공보다 허스트우드의 몰락에 더 초점이 맞춰지는 듯 했어요. 전 허스트우드가 안주하게 되는 그 심리가 너무 생생해서 소름끼치고 마지막 장면이 좋았어요. 영화로 만들어도 좋을 듯 해요... 주연은 캐리 멀리건이었으면...

CREBBP 2016-03-25 13:17   좋아요 0 | URL
그쵸 맞아요. 그가 몰락하는 과정이 캐리의 성공과 대조되면서 극적 아름다움이 느껴졌어요. 사실 영화로 굳이 나오지 않아도 충분히 생생하게 시각적 상상력을 받쳐주어서 마치 영화로 본 듯해요. 50년대 흑백 영화가 있어서 찾아봤는데 풀버전은 없고 5분짜리 소개 동영상만.. 아쉬워요. 영화로 만들면 정말 재밌을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