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 경제학 - 경제학은 어떻게 인간과 예술을 움직이는가?
문소영 지음 / 이다미디어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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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아주 생소한 것끼리의 결합이 윈윈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가 예술을 대할 때, 골치아픈 사조니 형식이니 하는 미술 이론과 철학 용어에 휩쌓인 미학 이론들을 선행적으로 알아야 한다면 더이상 예술이 아니다. 그냥 공부다. 우리가 순수하게 벽에 그림 한 점을 걸어 놓거나 어딘가에 걸려진 그림을 계속 다리아프게 서서 감상한다는 건, 이론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보기 좋아서다. 감상자로서의 개인에게 개인에게 그 작품만이 전달할 수 있는 어떤 느낌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에 관련된 책을 읽고, 미술관의 깨알만한 글자들을 읽는 건, 아는만큼 보이기 때문이다. 알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면 보이나니...


경제학이라는 용어는 미술 특히 그림과는 안어울린다. 안어울려도 너무 안어울린다. 하지만 경제활동은 인류 문명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활동이며 산업과 사회를 굴러가게 하는 동력이다. 그러므로 폭넓은 의미에서 경제라는 것은 인간의 문화사, 풍속사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림을 보며 미학을 이해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경제학을 어떻게 그림과 연결시켰는지는 궁금해할만 하다. 알고보니 대단하지 않다. 그림을 시대별로  구분해서 보면 그 시대의 경제 체제가 나온다. 그 경제 체제는 사회적 문화적 제도와  풍습을 의미하기도 한다. 문화와 풍습은 그림 속의 소품들과 의상 배경 모델 주제들로 당연히 그림 속에 나타나게 된다. 또한 화가의 시대적 배경과 개인적 사상, 철학이 깃들여 있다. 고로 모든 그림은 경제학이라는 용어 속에서 해석 가능하다. 다시 말해 그림 속에서 시대적 풍습과 문화를 찾아내 제목처럼 <그림 속 경제학>이라는 주제로 묶을 수 있다는 것이다. 


출처 내셔널갤러리, 런던

언젠가 런던 혹은 영국의 어느 지방의 미술관에서 터너의 특별전을 하고 있을 때 운좋게도 터너의 그림을 싫컷 볼 수 있었다. 대형 화폭에 담은 망망 대해 붓자국도 선명한 그림들을 보고 있노라니, 서 있는 것 걷는 것 싫어하는 내가 하루 종일이라도 서 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때는 몰랐다. 어떤 식으로 해석해야 할지, 무엇을 눈여겨 보아야 할 지, 그리고 어떤 사회적 배경에서 무슨 생각으로 화가가 그 그림을 그렸을까 하는 것까지..


지는 해의 광선이 장려한 트럼펫 소리처럼 대기 중으로 뻗어나가 구름과 강물 위에 찬란한 금빛 울림을 남겨놓았다. 이 때, 유령같이 창백하고 거대한 범선이 돛을 내린 채 그보다 작은 체구의 검은 즡ㅇ기선을 앞세우고 나타난다.... 테메레르는 1805년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크게 활약해서 영국 국민의 사랑을 받던 전함이었다. 그러나 이 이름 높은 배도 세월이 흘러 낡을 대로 낡은 데다가 증기선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결국 1838년 해체의 운명을 맞게 된다.


증기기관과 산업혁명은 과거의 전쟁에서의 승리의 영광을 해체하고 새로운 시대로 도약한다. 예인선인 증기선은 요란한 증기를 내뽐는다. 지는 해는 범선의 운명과 함께하는 알레고리다. 그림 속 이야기를 그 때, 그림 앞에서도 알았다면 좋았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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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병통치약 2015-02-24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후로 보는 터너 : 터너의 그림은 노을이 생명이죠. 하지만 저 노을은 터너의 독창적인 생각이 아니라 본 대로 그린겁니다. 저 당시 화산폭발로 인해 대기중에 화산재가 많았던 시절이죠. 그래서 19세기의 그림은 노을이 유난히 많아요. 심지어 뭉크의 절규도 화산폭발이 영향을 주었다는 학자도 많죠. [기후가 그림도 결정한다.] ㅋㅋ

CREBBP 2015-02-24 15:35   좋아요 0 | URL
그렇거나 말거나 터너 그림 넘흐 좋아요. 그런데 안개낀 바다 풍경 큰 물결이 이는 검은 바다들도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안그래도 요즘 문짝만한 미술사책 읽고 있는 중인데 19세기 그림들을 다시 잘 봐야겠네요. 화산이 폭발한 증거가 있나 없나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