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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천명관 지음 / 창비 / 2014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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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전에도 보지 못했고, 앞으로도 전무후무할 전혀 새로운 소설 <고래>를 쓴 천명관의 소설집이다. 2010부터 2014 6월에 걸쳐 문학동네를 비롯하여 8개의 다른 문예지에 발표한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사실 소설 작가가 단편 모음집을 낼 때에는 어떤 통일된 하나의 주제로 모으기는 어려울 것 같다. 여러 소설을 주제별로 분류해서 하나씩 책을 내려면 긴 기간동안 쉬지 않고 엄청나게 많은 단편소설을 써야 할 테니까 말이다. 작가의 성향이 일정 기간 내에서는 일관성과 통일성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테지만, 이 책은 책의 제목과, 여러 개의 소설들과 또 문체들이 잘 조화되어 하나의 주제로 잘 엮이는 것 같다. 


<봄, 사자의 서>는 3년전 실직한 사내가 자신의 죽음을 인식해가는 과정을, <동백꽃>은 어느 작은 섬 동엽이라고 하는 선주의 아들과 경숙, 유자 두 섬마을 처녀의 삼각관계를, <왕들의 무덤>은 세련된 도시의 여자들이 나오는 로맨틱한 소설을 쓰는 정희가 떠나온 과거, 가난과 무지, 폭력과 야만의 기억을 떠올리는 순간을,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 노동자>는 한 때는 트럭을 몰던 경규가 고용과 실직의 무한 반복 속에 불안과 결핍과 줄어들지 않는 빚을 술로 마비시키며 살아가는 육체 노동자의 우스꽝스러운 저항과 일탈을, <전원교향곡>은 귀향과 농사라는 잘못된 선택이 파괴한 가정을 소재로, 피폐해진 정환이 돼지 축사가 들어선 후 들끓는 파리떼와 개짖는 소리와 지독한 냄새로 이중 삼중고를 겪으면서 막판의 끝에 몰리게 되었을 때의 선택을 그린다. 앞의 문장에서 언급한 <봄 사자의 서> 부터, <전원 교양곡>까지는 6개의 소설을 하나의 범주에 넣고, 그 뒤에 나오는 <핑크>와 <우이동의 봄>과 그 앞에 있었던 <파충류의 밤>은 또 하나의 다른 범주에 분류하고 싶다. <우이동의 봄>은 어떤 면에서는 앞의 다른 소설들과 같이 분류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기도 하고 <왕들의 무덤>과 같이 묶어도 될 것 같기도 하지만.. 


<파충류의 밤>은 지독한 불면증으로 모든 경제적 사회적 지위를 잃은 수경이 두뇌 속 파충류의 봉인된 기억을 이야기하던 수더분한 선배의 자살을 묵도한 후,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며 알게 된 아이의 자살을 막는 이야기를, <핑크>는 대리 기사와 고객과의 눈오는 밤의 동행을, <우이동의 봄>은 옆방에서 방귀끼는 소리까지 들리는 옹색한 셋방에서 할아버지 내외와의 동거중 일어나는 자잘한 일화들을 통해 80~90년대 풍경을 재현한다. 


앞의 작품들이 더 이상 갈 곳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 선택한 절망을 이야기했다면, <핑크>와 <우이동의 봄>, <파충류의 밤>은 절망 속에서 피어나는 따뜻한 인간의 온기가 소망이라고 부르고 싶은 어떤 소박하고 절실한 감정을 자아낸다. 전자 그룹이 혼자 남는 것 소외로 수렴한라면 후자 그룹은 동행으로 맺는다. 동행. 둘이서 함께 가는 길. 거칠고 춥기는 마찬가지지만, 그 숨결로 온기를 기대할 수 있는 것.



삶은 계속된다. 문제는 그거다. 어떻게든, 살아내야 하는 절체절명의 사명이 발 밑에 떨어져 있을 때, 절망 말고, 좌절 말고, 체념 말고, 고통 말고 다른 대안이 없을 때에도 계속해서 살아있는 육체와 정신에게 양식을 공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벼랑 끝에 몰린 쥐가 선택하는 방법, 1. 뛰어 내린다. 2. 고양이에게 덤벼 본다. 자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첫번째 그룹의 소설들은 이  마지막 선택의 절정의 신음 소리와 함께 이상한 쾌감을 선사하며 끝나지만, 두번째 그룹은 아마도 그 이후, 쥐가 고양이를 물어 뜯든, 시퍼런 바닷물에 머리와 심장이 깨져 피투성이가 된 채로 살아있든 계속해서 살아야 한다는 살아진다는 명제를 담았다. 2막이 시작되었지만 더 비루한 현실 마찬가지인 그곳에서 다시 또 작은 지푸라기 하나가 동행하게 되었을 때  헛된 바람일 지라도, 우리는 어제와는 다른 내일을 꿈꾸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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