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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의 축제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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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무의미한 것들이 내겐 모든 의미가 된다. 내게 무의미한 것들이 당신에게 때때로 의미있듯이. 그러므로 당신에게 무의미한 것이라고 해서 내게도 무의미하다고 여기지 말아야 한다. 당신과 나 사이에 무의미의 갭이 그 갭의 두께가 그렇게도 무의미하기에 세상은 무의미한 것이다. 세상이 의미있다고 규정한 것들은 이미 무의미한 것 속에서만 규정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당신이 가진 지식과 명성과 권력과 부, 에고와 같은 것들이 당신의 말, 행동에 대한 의미와 무의미의 척도를 규정할 지도 모른다. 


 이 책은 짧다. 짧은 한 권의 책. 정확하게 149쪽만큼의 종이 즉 75장의 종이 위에 씌운 것 치고는 엄청나게 두꺼운 양장표지를 입혀 11,700원이라는 정가를 달고 나온, 거장의 14년만의 작품에는 나에게는 그리고 또다른 누구에겐가는 무의미한 공간들이 1/3 정도는 채워져 있다. '허공을 날아 잡힐 듯 테이블 위를 떠도는 깃털처럼' 그토록 가볍고, 그토록 무의미함을 이 책의 공백과 가격에서 보았다라고 한다고 비뚤어진 독자라고 한다면, 나는 최대한 비뚤어질테다.  그토록 차기작을 기다려온 충성스런 밀란 쿤데라 팬들을 대하는 책의 공백과 그것의 가치. 쿤데라는 이런 약간의 기만적인 방법으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무의미를 전달하고 싶어했는지 혹시 아나.  소비와 공급의 적절한 균형을 찾으려면 잘 팔리는 책들, 잘 팔릴 것 같은 책들이 저렴해야 한다. 챕터와 챕터 사이 장과 장사이의 공백, 제목과 본문 사이의 공백 이런 것들이 때때로 1부, 2부 등등 7부까지 사이의 빈 페이지. 이런 것들에 가격이 매겨져 있으므로 우리는 그런 것들이 의미하는 무의미를 찾아내야 한다.  어쨌거나 공백은 무의미하다. 그 무의미를 찾아내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러므로 작품의 가격에 포함된 공백은 <무의미의 축제>가 의도한 무의미의 공간이다. 

 텍스트 속에서의 무의미는 가령 이런 것들인 것 같다(짧으니 망정이지 제길 너무 어렵다. 그래도 찾아보자). 알랭은 배꼽에 대해 생각한다. 남자가 여성의 매력을 배꼽에 둔다면 한 시대 혹은 한 남자의 에로티시즘은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뤽상부르크 공원을 거니는 라몽은 샤갈전을 보고 싶지만, 저 끝쪽까지 뻗어있는 줄들 속 지루함으로 경직 되고 굳은 얼굴들을 보며 몸을 돌려 공원의 조각상들 속에서 행복을 느낀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암검사 결과 아무 이상이 없다는 통보를 들은 다르델로는 행복감에 젖어 길거리 여인들에게 손을 흔들지만, 공원에서 라몽을 만나자, 프랑크 부인의 부군의 사망소식을 전하면서 자기 안에 깃든 죽음의 비애, 마법처럼 그 비애를 품고 있는 달콤한 기분, 묘하게 아름다운 그 기분을 즐기기 위해 자신이 암이라고 곧 죽는다는 거짓말을 한다. 카클리크는 말을 하면서도 주의를 끌지 않는, 자신의 말에 의해 거기에 존재하면서도 들리지 않는 상태에 머물러 있는 절묘한 솜씨를 이용해(?) 여자를 낚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다가 그들 네 명의 친구 라몽, 샤를, 알랭, 칼리방은 스탈린의 일화를 이야기한다. 그렇게 숱한 피를 뿌린 스탈린을 알랭의 24살난 여자친구는 누구인지 모른다. 샤를이 들려준 스탈린의 하찮은 일화는 칼리닌그라드라고 불리는 도시의 유래다. 스탈린이 그 유명한 도시에 별 실질적 힘도 없던 죄없는 꼭두각시 칼리닌의 이름을 붙인 이유는 오줌을 참는 칼리닌에게서 고통받는 이에 대한 사랑의 감정, 자기 눈앞에서 자기를 위해 고통받고 있는 사람을 따뜻한 마음으로 생각하며 그의 충성에 감사를 표하고 헌신에 대한 보상으로 기쁨을 주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팬티를 더럽히지 않기 위해 괴로움을 견딘다는 것.생기고, 늘어나고, 밀고 나아가고, 위협하고, 공격하고 죽이는 소변과 맞서 투쟁한다는 것......이보다 더 비속하고 더 인간적인 영웅적 행위가 존재하겠느냐는 것이다. 

 사람들은 살면서 서로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토론을 하고, 다투고 그러지. 서로 다른 시간의 지점에 놓은 전망대에서 저 멀리 서로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는 건 알지 못한 채 말이야. 

시간은 흘러가, 시간 덕분에 우리는 우선 살아있지, 비난받고, 심판받고 한다는 말이야. 그 다음 우리는 죽고 우리를 알았던 이들과 더불어 몇 해 더 머물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변화가 일어나. 죽은 사람들은 죽은 지 오래된 자들이 돼서 아무도 그들을 기억하지 못하게 되고 완전히 무로 사라져 버리는 거야 

스탈린 그들이 그 숭고한 가치로 뿌리고 간 숱한 피의 대가는 세대가 세대를 기억하는 동안에도 이미 잊혀졌다. 우리는 그 역사 속 아주 작은 티끌과만 의사소통을 할 뿐이다. 여기서 샤를이 발견한 것은 우리가 모르고 있던 진실, 오줌 참음에 대한 대가로 결정지어진 한 도시의 이름과 스탈린의 잔인성 혹은 다정함이다. 

 알랭과 네 명의 어울려다니는 친구들의 대화는 이토록 무의미하지만 그무의미한 행위에 의미를 부여한다. 칼리방에게 삶의 의미를 주는 직업은 배우지만 일감이 없다. 칵테일파티에 서빙을 하면서 그의 인생과는 거리가 먼 프랑스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파키스탄인으로 분한다. 그는 자신이 모르는 파키스탄 언어를 연기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 언어를 만들어 내 청각적 신뢰감을 부여한다. 이 작업은 특별한 음성학을 창제해야 하고 음절의 강세가 주어지는 지도 정해야 하고 얼토당토 않은 소리들 배후에 어떤 문법적 구조를 고안해서 단어와 명사등으로 구조화해야 하는 까다로운 작업이며, 또한 응급상황에서 친구들끼리 프랑스어 한 마디 없이 서로 이해할 수 있도록 그가 창조한 언어 몇 개를 알고 있어야 했다. 문제는 스스로를 그렇게 신비화하려고 기를 써봤자 칵테일파티의 손님들은 그에게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에 그는 관객없는 배우가 되었다. 김영하의 <보다>에서 본 산문이 생각난다. 모든 인간에게는 연극적 자아가 있다는 부분이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연기할 때 가장 자연스러워보인다는 <시저가 죽어야 한다>는 영화에 대한 도발적 발견. 적어도 웃을 수는 있는 부분이었다. 연극적 자아에 대해 더 생각해보아야겠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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