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는 언제나 거기에 있어
존 그린 지음, 노진선 옮김 / 북폴리오 / 2018년 6월
평점 :
절판



친구가 홈지라고 부르는 주인공 소녀가 가진 강박증을 이토록 실감나게 표현할 수 있었던 건 아마도 작가 자신의 이야기가 투영된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작가의 말에서, 존 그린은 두 사람의 정신과 의사를 언급하며 그들 덕분에 자신의 삶의 질은 엄청나게 나아졌다고 말했다. 지나친 청결에 사로잡힌 강박증도 그 종류가 여럿 있을텐데, TV (엉터리) 교양 리포트에서 떠드는 '화장실보다 세균이 천배 많이 발견된다는 OOO' 시리즈는 OOO의 대상을 주기적으로 바꾸지만, <내 속에 미생물이 너무도 많아>를 읽고 나면,   오히려 그런 세균과 박테리아 등등 보이지 않는 존재들에 대해 더 느긋한 태도를 취하게 된다. 미생물들은 내 몸의 일부이고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더 위험하다는 걸, 그리고 나쁜놈과 좋은놈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도 대충은 이해되기 때문이다. 이 강박증 아이 역시 그 사실을 모르는 게 아니다. 


세포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대략 50퍼센트가 세균으로 이뤄졌는데, 이는 나를 이루는 세포의 절반은 전혀 내가 아니라는 뜻이다. 나라는 특정한 생물 군계에는 지상의 인간보다 천 배 많은 미생물이 살고 있으며, 종종 내 안과 표면에서 살고 번식하고 죽는 그들의 존재가 느껴지는 듯했다. 



 더 많이 안다고 해서, 강박증을 일으키는 원인을 객관적으로 볼 수는 없다. 그는 자신의 세포 속에 살고 있는 그 미생물들이 자신을 차지하고 마음대로 조정하고 있다고 생각할 뿐 아니라 나쁜 미생물에 대한 공포에 매몰되어 있다. 단짝 친구인 데이지의 힘겨운 경제적 사정과 가정사에 거의 아는 게 없다시피할 정도로 자기 자신과 자기자신 속에 있는 보이지 않는 것들만 생각한다. 그럼에도 데이지와 홈지는 둘도 없는 단짝이고, 둘은 10만불의 현상금이 달린 백만장자 데이비스 아버지의 행방을 찾기 시작한다. 

화이트 강 건너 저택엔 강둑과 저택이 있고 그곳에 데이비스가 산다. 강건너 저택이 돌담과 강둑과 철조망으로 방비된 덕에 홍수 때마다 강이 홈지네 쪽으로 범람한다.  부가 흘러 넘치는 곳에 재난은 빠져나가지.  데이비스가 어릴 때 아버지를 잃은 홈지는 어릴 때 어머니를 잃은 데이비스를 슬픔 캠프에서 만났었고, 캠프가 끝난 후에도 그들은 몇 번 만났다는 걸 기억하는 데이지가 데이비스를 이용하여 그의 아버지의 행방을 찾자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한 이들의 사건은 데이비스와 홈지를 연결시켜주는데, 서서히 데이비스를 알아가면서 사랑을 느낀 홈지는 자신의 강박증 때문에 더이상 나가지 못함을 알고 절망한다. 

감탄이 나올 정도로, 때로 이게 무슨 과학 대중서에 나올만한 대사들을 읋어 대는 아이들을 보며 이거 미국 고등학생들은 이렇게나 똑똑하단 말야? 는 감탄이 나오다가도, 그렇게 잘 아는 아이가, 손세정제를 먹어 간을 손상시키는 지경에 이르는 막무가내의 행동까지 할 때에는 그를 그렇게 만드는 힘이 정체가 무엇인가 생각하게 된다. 강박증은 병인 거 맞고, 완치되기 힘들지만, 여러 심리 치료로 조금 삶의 질이 나아질 수는 있다고 한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주로 TV에서 하나의 재미있는 캐릭터로 자주 만난다. 예전에 어떤 친척분이 약간 그런 증세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아직까지 화자되고 있는 재미있는 일화 중 하나는 접시에 새우깡이 조각조각난 조각이 많이 있더란다. 이게 뭐냐 했더니 새우깡을 집어먹을 때, 손에 닿은 부분을 안먹고 떼어놓은 거란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외식을 하고 숟가락을 같이 쓰고 그럴까 하며 깔깔거렸는데, 그 분이 캄필로박터균과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레와 엡스타인 비 바이러스 같은 병원균의 이름을 일일히 알았을 리는 없지만, '세균' = '병원균' 이라는 막연한 불안감에 하는 행동과 그것에 대한 주변의 조소 때문에 얼마나 마음 고생을 했을 지는 짐작할 길이 없다. 책에는 그 강박적 마음이 어떤 식으로 그런 자해적인 행동을 불러오는지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아이들의 대사도 통통 튀고. 읽을만 하다. 


옛날에 어떤 과학자가 있었어. 과학자는 구름처럼 모인 관중 앞에서 지구의 역사에 대해 강연했지. 지구가 수십억 년 전에 우주 먼지로 이뤄진 구름 속에서 생겨났고, 한동안 아주 뜨거웠다가 또 한동안 서늘해져서 바다가 생겼다고. 바다에서 단세포 동물들이 출현하고, 또 수십억 년이 지나 생물이 늘어나고 복잡해지다가 25만 년 전쯤부터 인간이 진화하고, 우리는 보다 진화된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우주선과 그 모든 것을 만들게 됐다고. 그렇게 지구와 지구에 사는 생명체의 역사에 대해 연설하고 끝으로 관객에게 질문이 있냐고 물었어. 그러자 뒤에 앉은 할머니가 손을 들고 말했지. 
‘잘 들었습니다, 과학자 선생님. 하지만 사실 지구는 거대한 거북이 등에 세워진 평평한 땅이랍니다.’
과학자는 할머니를 골려 주기로 마음먹고 이렇게 물었어. 
‘글쎄요, 만약 그렇다면 거대한 거북이 밑에는 뭐가 있습니까?’
그러자 할머니가 답했지. 
‘더 거대한 거북이가 있죠.’
이제 과학자는 화가 나서 물었어. 
‘그럼 그 거북이 밑에는 뭐가 있나요?’
그러자 할머니가 말했지. 
‘선생님, 이해를 못하시네요. 그 아래로 계속 거북이들이 있는 거예요.’

나는 깔깔 웃었다. 
“그 아래로 계속 거북이들이 있구나.”
“거북이들만 존나 있는 거야, 홈지. 넌 맨 밑에 있는 거북이를 찾으려고 하지만 그런 건 없어.”
“왜냐하면 아래로 계속 거북이들이 있으니까.” 

나는 영적 깨달음에 가까운 무언가를 얻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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