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 안톤 체호프


‘자신에게는 두 개의 생활이 있다. 하나는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볼 수도 있고 알 수도 있는 그런 공개된, 상대적 진실과 상대적 거짓으로 가득 찬, 주위 사람들의 삶과 아주 닮은 그런 생활이다. 다른 하나는 은밀하게 흘러가는 생활이다’


얄타라는 지명은 얄타 회담으로 학창 시절 역사 교과서에 등장했던 관계로 친숙하다.  이 소설에서 안나와 구로프 두 남녀가 만나게 되는 일탈의 공간이다. 우크라이나 아래 크림반도에 위치해 있는데,  톨스토이는 여기에 여름 별장을 가졌으며 체호프는 몇년간 이곳에 체류했었다고 한다. 우연인지 의도적인지 모르겠지만 불륜의 원조격인 안나 카레리나와 첫이름이 같다. 기차역에서 브론스키와의 첫 만남이 이루어지고 길고도 상세한 불멸의 서사 속에 담긴 안나 카레리나의 이야기와 달리,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안나 세르게예브나는 얄타의 나른하고 지루한 휴양지에서 만남과 그 이후 계속되는 불륜이 아주 짧은 단편 속에 간략하게 담겨있다. 




부유하고 성실한 남편과 결혼한 상태에서 다른 남자를 만나고 정사를 벌이고 파멸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다가간다는 점에서 안나 카레리나와 유사하다.  안나의 일거수일투족과 그녀의 변덕,  그녀의 불륜으로 인해 그녀 주변 인물들의 심리 상태까지 톨스토이의 붓끝으로 속속들이 시대 속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 안나 카레리나와 달리 이 소설에서 독자들이 안나 세르게예브나의 감정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단지 구로프가 느끼는 방식과 구로프에게 던지는 몇 마디 말에 의지한다. 


휴양지에 혼자 온 구로프는 이미 또래의 아내에게서는 싫증을 낸 지 오래로 외도를 밥먹듯 하면서도 여성에 대한 일종의 우월적이거나 혐오적 시각을 갖고 있어서 여성을 '저급한 인종이'라 지칭한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상대를 갈아치우며 여성 편력을 드러내는 유형의 인간이다. 그에게 여성은 즉각적인 자신의 욕망을 해소하기 위한 대상으로 설령 뛰어난 미모와 정신을 소유한 여인이라 할지라도 오래 가는 경우가 없고, 그 일탈로 인해 오히려 늘 곤경을 겪게 하는 존재이다. 같은 기간 얄타에 혼자 온 안나가 스피츠 한마리를 데리고 다니는 모습이 눈에 띄는데 쉽게 접근해서 쉽게 정사를 벌이고 때가 되어 헤어지는 아주 평범하고 특별할 것 없는 시간을 보낸다. 


그들은 얄타에서 헤어지며 이 이별이 영원한 이별이 될 것임을 서로에게 인정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쉽게 잊혀지리라 생각했던 안나를, 모스크바로 돌아온 구로프는 한 달이 넘어도 잊지 못하고 더욱 더 절절하게 그리워하게 된다. 온통 마음 속에 안나 뿐인 구로프는 그 이야기를 주위에 하고 싶다. 그렇다고 아내에게 얘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오죽하면 아내에게라도 그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까), 동료에게 얘기를 꺼내지만 주위를 끌지도 못한다. 결국 그를 둘러싼 모든 일상의 사교는 아무 의미도 없게 느껴진다. 단지 안나를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가득한 구로프는 그리움을 이기지 못하고 그녀가 사는 도시로 찾아간다. 하루를 종일 집앞에서 하루 종일 기다리다가 체념하지만 곧 (그녀가 관람할 게 뻔한) 오페라 공연 소식을 듣고 극장에 나타나 안나의 남편이 잠시 자리를 비운 막간에 키스를 퍼붓고 애정을 고백한다. 깜짝 놀란 안나. 구로프 못지 않게 그를 그리워했던 듯 보여지는 안나는 당황해하지만, 자신이 모스크바로 찾아가겠다고 약속을 한다.  이제 둘은 매달 대학 병원에 간다는 핑계로 모스크바에 하루씩 와서 호텔에 묵으며 구로프와 밀회를 갖는다.


그는 안나를 만나러 가는 길에 딸에게 자상한 모습을 연출하지만 위선을 알고 탄식한다.   자신이 매일 살아가고 있는 세계는 진실된 세계가 아니며 가식의 세계이며 오로지 안나와의 짧은 만남만이 진실된 세계라는 것,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 거짓의 세계에 살아가야 함을 막막해하고 슬퍼한다. 안나를 대하는 그의 마음은 그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진실만의 세계일까. 


이미 얄타에서 개에게 뼈를 주겠다며 접근해서 정사를 벌이고 나서 안나는 자신이 타락한 여자가 되었다고 그래서 자신을 더는 존중하지 않게 될 거라며 울먹이며 죄책감에 흔들리는 그녀에게서 구로프는 짜증이 났으며, 이미 죄많은 여인의 모습을 느낀다. 타락은 여성 혼자서만 했단 말인가. 함께 한 타락에, 한 사람은 타락했다며 자신을 버리지 말라고 자책하고 애원하고, 다른 한 사람은 그 타락을 경멸한다. 여성의 타락했다는 호들갑에 속으로는 멸시와 조소를 보내며 여전히 그녀의 마음에 들도록 처신하는 구로프의 이 '진실된' 사랑이야말로 애초에 거짓으로 가득했다. 


안나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안나가 얄타에 온 이유는, 부족함 없는 상류 사회에서 성실하고 착한 남편에게 지루함을 느끼고는 뭔가 새로운 걸 찾아 서다.  호기심에 가득한 채 다른 삶을 기대하며 얄타라는 도시에 찾아온 배경에는 남편에게 한 아프다는 거짓말이 있다. 안나의 일탈에 대한 환상과 구로프의 여성 편력이 만난 것인데, 남자의 처신과 여성의 갈망은 뭔가 허위와 가식 속에서 뭔가 균형을 찾은 듯하다.


'다른 삶이 있을 거야 하고 스스로에게 말하곤 했죠. 제대로 살아 보고 싶었어요! 제대로, 제대로…. 호기심이 저를 괴롭혔어요..(안나 세르게예브나)'


이제 둘은 도둑처럼 남의 눈을 피해 몰래 만날 수밖에 없다. 남들과 함께하는 의미없는 모든 공적 사교가 끝난 시간 오로지 안나의 눈물과 함께 하는 짧은 만남은 서로를 더욱 간절하게 만들면서 동시에 비참하게 하기도 한다. 그러다 문득 안나를 만나러 가는 날 머리가 세어버린 자신을 보며 여성들이 다 늙어빠진 자신에게 그토록 매력을 느끼는 이유가 무얼까 생각하게 된다. 그들은 구로프의 실제 모습이 아닌 자신의 결혼 생활에서 갖지 못한 어떤 환상을 구로프에 덧씌워 놀고 그 환상을 좋아한다는 사실 그 짧은 깨달음. 결국 그에게 있어서 의미없는 일상과 진정한 사랑 중 무엇이 진실이냐는 물음에 답해야 할 사람은 독자가 되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제까지와 달리 추악해진 자신을 발견한 구로프가 이제 와서야 진실된 사랑을 하기 시작했고 도둑 사랑이라는 이 굴레를 어찌 헤쳐나가야 할 지 모른다는 것이다. 안나 카레리나는 달리는 기차에 몸을 던졌지만 안나 세르게예브나는 아직도 호텔 방에 앉아 자신의 나이의 두 배인 늙어가는 구로프를 안으며 안타까움과 이룰 수 없는 연모에 눈물 흘리고 있다


‘두 배나 나이가 많은 사내의 가벼운 조소와 거친 오만의 그림자가 깔려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늘 그를 선량하고 특별하며 고상하다고 말했으니, 분명히 그는 그녀에게 본래의 모습으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무의식중에 그녀를 속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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