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터의 요리사들
후카미도리 노와키 지음, 권영주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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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은 공수 사단만만 참여한 전쟁도 서부전선만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노르망디와 네덜란드에서만 벌어진 싸움도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공간적 시간적 배경과 그것들의 배치와 동선 심지어 등장인물들의 시선까지도 밴드오브브라더스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중대만 다를뿐 실제 존재했던 101 공수사단 전투원들의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에서 해당 드라마와 이 책이 같기 때문이다. 


밴브의 주요 볼거리인 전투신이 빠지고 대신 미스터리와 추리 드라마가 대신 채워졌다. 낙하산 사건만 제외하면 그 미스터리 추리 드라마들이 밴드오브브라더스와 공간적 시간적 배경이 같아야만 생겨날 수 있는 얘기가 아닌데, 하고 많은 전투 중에서 왜 하필이면 그토록 유명한 드라마에서 배경을 그대로 가져왔는지도 이해불가다. 요리사라는 제목에서 차별성을 두었지만, 요리가 주가 되는 것도 아니다. 전쟁터의 조리병을 실감나게 다루려면, 이 책에서도 밝혔듯이 조리병과 일반병의 역할 구분이 크지 않은 공수부대보다는 해군이나 보병 같은 다른 부대의 전문 조리병들을 선택하는 편이 훨씬 요리사들의 이야기거리가 풍성했을 텐데 말이다. 빗발치는 화포 속에서 이 공수부대의 요리병들이 요리를 할 기회가 별로 있지도 않고, 또 제목처럼 요리병이라는 특성이 주제로서 크게 부각되지도 않는다.

밴브에서 내가 가장 재미있게 본 에피소드가 의무병 유진 로의 얘기였는데 그는 싸우는 대신 부상병 응급처치만 하는데도 그 어느 전투병사 못지 않게 용감하게 쏟아지는 빗살을 뚫고 돌아다녀야 한다. 당연하게도 다친 병사가 '메딕!!!'을 다급하게 외치는 장소가 바로 전장에서 죽음이 쏟아져 나오는 곳, 화염이 가장 치열하고 가장 위험한 장소 아닌가. 쉴틈없이 불러 대는 '메딕!!' 소리에 귀기울여 달려가던 의무병의 내면은 그의 독백을 통해서가 아닌 그의 눈빛과 행동에서 읽을 수 있다. 의연함 속에 숨은 두려움과 절망과 또 짧은 인연속에 싹텄던 사랑까지.. 이 책에서도 특수병의 이야기를 다루기에 이런 감동을 기대했지만, 화염을 뚫고 밥을 하거나 먹을 것을 전달하는 치열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미스터리를 처리하는 방식은 애드라는 천재 조리병의 추리에 전적으로 의지한다. 추리라기보다는 추측이다.  우연적 추측은 추리로 포장되어 '전모'로 밝혀지는 작위적 설명이 뒤따르는데,  거기에는 전쟁터에서 숨겨졌던 다양한 삶과 사연이 욕망, 두려움과 함께 드러난다.  이 천재 추리(아니 추측) 반장은 화자인 주인공의 우상이다. 주인공은 그를 애틋한 만화적 감성으로 바라보고, 독자 역시 그들의 우정에 이입된다. 밴드오브 브라더스에서 멍청한 중대장 대신 투입된 스피어스와 약간 비슷한 카리스마와 매력이 상기되는 인물이다. 

이미 밴브의 팬으로서 보기에, 이미 밴브에서 화려하고 감동적인 시각 효과와 함께 깊이 있게 각인된, 너무 많은 잘잘한 일화가 책에서 장황한 설명만 덧붙인 식이다. 훈련소에서 시작해서 전쟁 이후 등장인물들의 간략한 삶을 전해주는 에필로그로 끝나는 전체적 구성과 순서까지 그대로 밴드오브브라더스와 흡사하다. 아류 정도가 아니라 구성과 배경을 그대로 가져와서 자세한 설명과 해석을 추가하고 몇몇 개연성 없는 미스터리를 추가한 밴드오버브라더스 보조 콘텐츠 정도로 밖에는 보여지지 않는다. 그런 것들 많지 않나. 영화나 드라마의 시각적 매체라는 특수성 때문에 다 표현하지 못한 것들 혹은 덕후들의 팬심을 달래주기 위해 제작된 콘텐트들.. 

제목을 보고 기대되는 '전쟁터에서 조리병'이라는 특수한 임무 수행에 따른 알려지지 않은 내용은 거의 전무하며  요리병들은 요리 대신 추리를 주로 한다. 굳이 책 제목에 요리사가 붙은 이유가 궁금할 정도다. 전에 스베틀리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는다>를 읽었을 때 나온 조리병들 이야기가 오히려 짧지만 생생하고 긴장감 넘쳤다. 무수히 많은 지난 끼니들이 다가오는 한 끼니에게 유효하지 않다던 김훈의 <칼의 노래>에서 전하는 한 문장이 오히려 전장에서 식생활이라는 것의 실제를 훨씬 더 절실하게 느끼게 해준다. 

<밴브>와의 내용의 유사성도 크다. 노르망디에서의 착륙씬은 거의 드라마를 평면적으로 글로 옮겨놓고 해설을 붙인 정도였고 나무에 걸려 죽은 병사의 시체씬 착륙후 헤매다 서로 만나는 씬 등 수도없이 많은 장면이 드라마에서 나온 씬이다. 특히 유대인 수용소를 발견하는 씬은 거의 통으로 복사해서 붙여넣기 한 것처럼 분위기마저 유사하다.

2차 대전에 추축국으서 독일과 같은 편에 섰던 침략국 일본이 과거에 대한 반성 없이 전쟁을 소재로 하여 글을 쓰고 싶기에 제 3국인을의 전쟁이 소재다.  거기까지는 뭐 구제불능 일본에 대한 일말의 기대도 없으니 그런 나라에 사는 소설가들에게 뭘 기대하겠나 싶어 그러려니 할  수 있다. 중요한 건, 등장 인물은 미국인인데 작가가 일본인이다 보니, 작중 등장인물의 정서와 행동들(좋게 말해 신중하고, 소심한) 소설속 일본인스럽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미국사람들이 미국사람들 같지 않고 일본사람들 같아 처음부터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뭔가 가짜를 읽는 느낌, 아 뭐 소설에 진짜와 가짜가 있느냐고 말하면 할말이 없지만판타지 웝소설이 아니고 이 정도 분량에 제법 자국 문단에서 수상 내역까지 있는 작품(?)이라면  고증이 된 역사 소설을 기대하는 것처럼 뭔가 전하는 진실을 기대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첨엔 전쟁터에서 그것도 역사상 유래가 없던 공수부대의 그 치열한 삶과 죽음의 현장을 사소한 감정에 집착하고 잘잘한 일들의 해석과 설명에 몰두하는 계몽적 일본식 정서로 입혀져 있어서 그 거부감 때문에 읽던 책을 덮고 <서부전선 이상없다>를<읽고 <밴드오브 브라더스>를 완주했다. 작가가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을 작품을 먼저 읽거나 접하는 게 순서라고 보아서다. 읽히기는 술술 잘 읽혀 완독하기에는 무리가 없는 소설이었지만, 이 책에 관심있는 독자라면 당연하게도 밴드오브 브라더스도 보았을 가능성이 큰데 왜 아무도 이 점을 짚고 있지 않은지, 내가 뭘 잘못 알고, 잘못 이해하고 있는건지  잘 모르겠다. 

엉뚱하게도 남남 커플(실제로 커플이란 건 아님)의 케미가 돋보였고 재미았었다. 예전의 학원물을 보는 것처럼 에드는 우상의 대상으로서 완벽한 캐릭터를 뿜어내는데 주인공은 또 이 친구에게 완전히 반한 상태다. 밴드오브브라더스와의 차별성이라면 두 사람의 전우애가 드라마에서 자주 보여지는 것처럼 거칠고 남성적이기 보다는 좀더 학원물같은 섬세한 감정 개인에 대한 관심 이런걸로 드러난다는 점이다. 그래도 이 책이 나한테 제일 잘 한 건 <밴드오브브라더스>를 첨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완주하게 보게 만든 거 같다. 참 잘 만든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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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8 1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REBBP 2018-07-08 12:06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그래서 요리사들이라는 제목이 어거지라는 거죠. 그래도 약간의 조리가 가능한 경우가 생기긴 합니다만, 그걸 요리라고 할 수는 없죠. 도시 하나 접수하고, 민간인 가택을 접수하면 나름 요리할 기회가 생기기도 했던 것 같은데 가만 생각하니 그건 밴브에서 본 거 같군요. 그 깡통 나눠주고 하는 걸 여기 ‘요리사‘들이 하더라구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