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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왜 쓰는가
제임스 A. 미치너 지음, 이종인 옮김 / 예담 / 2016년 4월
평점 :
절판
평생을 거쳐 온 한 작가의 문학이야기.
구판보다 훨씬 더 멋스럽게 옷을 입고 출간된 제임스 미치너의 책 <작가는 왜 쓰는가>는 그가 쓴 <소설>(2006, 열린책들)보다 더 재밌게 읽힌다. 한동안 글쓰기와 출판에 대해 알고 싶어서 그의 소설인 <소설>을펼쳤다가 작가, 편집자, 비평가, 독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소설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나누는 깊은 대화의 산을 넘지 못해 살며시 접어두었는데 <작가는 왜 쓰는가>는 그의 소설 속에 나오는 인물들의 팽팽함 보다는 그의 어린시절 이야기와 우연찮게 자신이 글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 되기까지 만났던 이들의 이야기와 그가 작가로서 천착했던 주제와 철학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저는 셸리보다 키츠를 더 좋아하고 바이런보다 워즈워스를 더 좋아합니다." 그 대답은 5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것은 그 어떤 대답보다도 나의 심리 상태를 잘 묘사한다고 할 수 있다. - p.44~45
젊은 시절부터 시를 꾸준히 읽어오고 그가 평생을 살아오면서 한 번씩 통독하고 애송해 왔다던 '성 아그네스 축제 전야'의 시를 필라델피아의 문학 애호가인 그에게 들려주기도 하고 그를 통해서 예술적인 성장을 할 수 있는 이들을 만나기도 한다. 그의 예술관을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세 사람이 힐 여사와 A. 에드워드 뉴턴, 앨버트 C. 반스다. 책이 쓰여지고, 생동감 있게 읽어주는 그들의 정력적인 생활 속에서 그는 그들의 열정을 배웠다. 사람들과의 만남이 실질적인 행동과 예술적인 감각을 키울 수 있었다면 오랫동안 사랑받아왔던 작품을 통해서는 작법이나 소설에 대한 층위를 분석하며 그가 쓰고자 하는 글에 대한 감각을 익혔다.
<위대한 유산>,<고리키 영감> 시는 키츠, 워즈워스, 아널드, 밀턴, 셰익스피어, 새뮤얼 버틀러의 <인간의 길> <보바리 부인> 콘래드의 <승리>, <허영의 시장>, <안나 카레니나>, <미메시스> 물타툴리의 <막스 하벨라르> 올더스 헉슬리의 <연애대위법>, <마의 산>,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 프랭크 노리스의 <맥티그>, <모비딕>, <시간이 없는 땅> 등 정말 다양한 작품들을 읽어나가며 자신이 가장 좋았던 소설들에 대해서는 여러번 읽고, 소설을 해체하고 뜯어보면서 소설을 뜯어보았다고 제임스 미치너는 말하고 있다. 몇몇 작품을 읽었지만 아직도 읽을 작품들이 이렇게 많구나, 싶을 정도로 독서와 작법에 관한 그의 섬세함과 날카로운 시선은 왜 그가 좋은 작가가 될 수 있었는가를 대변해 주는 책이다.
이 책에 나오는 출판의 뒷 이야기 중 헤밍웨이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쓴 마가렛 미첼의 이야기를 가장 재밌게 읽었다. <노인과 바다>를 쓰기 이전 <강 건너 숲 속으로>라는 작품이 졸작으로 헤밍웨이의 명성에 금이 가던 시절 '라이프'지에서 헤밍웨이의 소설을 실리기 전에 제임스 미치너에게 헤밍웨이가 쓴 소설의 교정지를 읽어봐달라고 부탁을 받는다. 당시 제임스 미치너는 우리나라의 어느 산간 지방 해병대 초소에서 보초를 서며 작품을 읽어나가는데 그 소설이 바로 <노인과 바다>였다고 한다. 제임스 미치너에게는 한 하나밖에 없는 원고라고 말했지만 나중에 알고보니 여러 전문가들에게 교정지를 주며 작품에 대해 물어봤다고 한다. 아무튼 제임스 미치너는 <노인과 바다>를 읽고 감명을 받아서 그에 대한 평가를 후하게 써줬다. 그 후 '라이프'지에서 그의 소설인 <도곡리 철교>라는 작품이 실렸다. 제목에서 보여주듯 제임스 미치너가 한국전쟁에 참가하면서 그때 경험으로 쓴 소설이라는 것도 이 책을 보고 알게 되었다.
마가렛 미첼의 경우에는 그가 편집자로 있으면서 우연히 보았던 그녀의 뒷 이야기와 그간의 오해들이 쌓이고 쌓여 왜곡된 이야기들을 풀어가며 그녀와 그녀 작품을 평했다. 그간 우리가 알아왔던 것과는 조금 틀린 부분들이 많아 제임스 미치너의 이야기를 통해 바라본 이야기들이 생경하게 들렸지만 작가, 편집자, 혹은 독자였을 때 그의 이야기를 읽다보니 책이 금세 넘어간다. 자신이 유년기때 읽고, 보고, 쓰며,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훨씬 더 깊은 세계를 만난 이야기에서부터 점점 성장하며 탄탄하게 편집자, 작가의 위치까지 올라서게 된 그의 이야기는 그 어떤 이야기 보다 더 친근하고 가깝게 들린다. 이론적인 이야기보다 한 작가의 성장담이라고 할 수 있는 그의 내면적인 이야기를 통해 작가를 이해하고, 작가의 글쓰기를 이해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근원점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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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평생 작가로서 지켜온 한 가지 일관된 고집이 있다면 그건 좋은 책의 제작에 아주 세심한 주의를 기울렸다는 것이다. 책이라면 마땅히 겉모양이 멋지고, 지도가 정확하고, 활자가 읽기쉽고, 장정이 훌륭한 그런 전통에 따라 만들어지기를 바랐다. 나는 책이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 여러 주 동안 들고 다니며 동반자가 되기를 바랐고 책을 읽는 행위가 유쾌하고 즐거운 경험으로 기억되기를 바랐다. 나는 소설, 에세이, 또는 논픽션을 쓴 것이 아니라 바로 책을 썼다. - p.70~71
· 소설을 구성해나가는 데 자극적인 주제를 가지고 시작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일반적으로 '무엇인가 특별한 것에 대한 소설은 늘 실패로 끝난다.
· 성공한 소설은 인물들로부터 시작하고 그들과 함께 지적· 정신적으로 성장한다. 그러나 인물들은 그들이 처해진 상황 그들의 시대적 주제 속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 p.102
· 독자의 주의를 끄는 제일 좋은 방법은 훌륭한 주제를 가지고 시작하는 것이다. 독자의 주의를 계속 끌려면 무엇보다도 이야기에 진실성이 있어야 한다.
· 소설의 처음 몇 장을 아주 어렵게 만들라. 그렇게 하여 일부 독자들은 떨어져나가게 하라.(내가 쓴 소설을 읽으면서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 분명 있다. 또 내가 신경을 쓸 필요가 없는 사람들도 분명이 있다.) - p.104
· 만약 어떤 원고가 출판될 만한 성질의 것이라면 그것은 멋진 장정으로 된 단행본으로 나와야 한다. 그렇게 하여 출판이라는 위대한 전통이 계속되는 것이고, 또 독자들에게도 읽고 싶은 마음을 주는 것이다. 책이라 하면 모름지기 즐거움을 주는 물건이라야 한다. - p.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