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풀잎관 1 - 2부 ㅣ 마스터스 오브 로마 2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11월
평점 :
이전보다 더 농밀하고 치밀하게 권력의 고삐를 쥐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무더운 여름날 콜린 매컬로의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인 <로마의 일인자>가 출간되었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읽었을 때보다 훨씬 더 재밌게 책을 읽었다. <로마인 이야기>를 좋아하지만 시오노 나나미의 목소리가 너무나 깊이 스며들어 있어서 객관적으로 로마 역사를 보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느껴지곤 했었는데 콜린 매컬로가 쓴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는 각 인물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관계를 맺고 권력의 가장 큰 꼭대기에 이르기 위해 올라서는 과정들이 그려져 있다. <로마의 일인자>가 서로의 부족한 점을 메꾸고 정략결혼을 통해 입지를 다져가는 과정이라면 <풀잎관>은 입지를 다져 놓은 곳에 자신의 입지를 더 견고하게 탑을 쌓아가는 과정을 담은 책이다.
<풀잎관>에서 마리우스와 루푸스의 나이는 이미 예순 살이 되었고 술라 역시 마흔두 살의 중후한 매력이 물씬 나오는 남자로 성장했다. 이전에 만났던 마리우스가 조금 더 유연한 사고를 지닌 남자였다면 뇌졸증으로 쓰러진 후에는 조급한 성격과 자신이 옮다고 생각한 것들은 절대 굽히지 않는 옹고집이 생겨났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직한 면모가 있고, 자신의 아내를 사랑한다는 점에서 마리우스는 자신의 길을 평탄하게 가는 것 같다. 그런 반면 술라는 나이를 먹었음에도 여전히 누군가에게 매이기 보다는 자유로운 성정을 갖고 있고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지 않는 수수께끼의 인물이다. 율릴라와의 결혼으로 입지를 다져 놓았지만 여전히 남자들에게는 신임을 못받는 인물로 표현되기도 한다. 여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만큼 매력이 많지만 많은 여자들과의 염문은 그로 하여금 여자에 대해 치를 떨만큼 증오한다. 술라라는 인물은 선과 악의 두 얼굴을 가지고 있어서 어떤 의미로 정의할 수 없기에 계속해서 눈을 떼지 않고 살펴보고 싶다.
로마의 일인자가 연정을 담은 봄이라면, 풀잎관은 냉정하고도 차가운 겨울이다. <풀잎관>에서도 역시 남녀간의 사랑을 담고 있지만 부적절한 사랑이고,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봄이지만 누군가에는 사무치는 겨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더불어 권력의 고삐를 쥔 사내에게는 여자들이 가정을 돌보고 자신들과 사랑을 나누는 사람일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어쩔 수 없이 데리고 살고 있는 재산이라는 인식이 깊이 뿌리 박혀 있다. 특히 풀잎관에서 더 시리도록 그런 인격인들이 많이 나와있어 눈을 찌푸리게 하지만 당시에는 그런 경우가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권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여전히 가이우스의 욕망은 끝이 없었고, 아내의 조카인 카이사르가 영민하다는 이야기에 누군가가 이야기 해 주었던 예언이 마음 속에 파고 들었던 것처럼 나 아닌 누군가가 자신을 대신해 나보다 더 높은 위치에 올라간다는 사실만으로 누군가를 시기하고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시공간을 떠나 여전히 인간의 이기심은 변치 않음을 이야기 해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리우스와 술라, 루푸스의 이야기와 리비아와 드루수스의 이야기는 마음이 아팠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기본이 되지 않고 돈이나 권력의 관계에 따라 만들어진 정략 결혼의 폐해를 볼 수 있는 사례가 아닌가 싶다. 관계에 대한 중요성 보다 보다 더 치밀하고 간교해진 가운데 자신이 가진 입지의 구축과 혈통이 깨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그들의 이야기가 앞으로의 로마를 어떻게 바꿔나갈지를 알려주고 있다.
***
"그렇지. 그리고 원로원의 저 멍청한 작자들이 제대하는 최하층민 병사들에게 땅뙈기를 나눠주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지 못해서야. 마리우스, 최하층민은 아무런 돈도 재산도 없다는 걸 절대 잊지 말거라! 나는 최하층민에게 우리 군에 입대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그럼으로써 이전에는 아무런 쓸모도 없었던 시민 계급이라는 새로운 피를 로마에 수혈해주었어. 그렇게 모인 최하층민 병사들은 누미디아에서, 아콰이 섹스티아이에서, 베르켈라이에서 자신들의 가치를 입증해 보였단다. 재산을 가진 기존 군인들보다 더 잘 싸우면 잘 싸웠지 결코 못하지 않았어. 그런데도 이들이 재대하고서 다시 로마의 빈민굴로 돌아가게 할 수는 없는 일이지! 땅을 갖고 정착하게 해주어야 해. 이탈리아 내 로마 공유지에 최하층민 병사들을 정착시키겠다고 하면 1계급과 2계급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새로 시민이 들어오기만을 기다리는 이런 곳에다 그들을 정착시킬 법을 제정한거란다. 그들이 여기에 정착했다면 우리 속주들이 로마화되고, 그렇게 때가 무르익으면 우리로마의 동조세력이 늘었을 테데. 불행히도 원로원과 기사계급의 지도층 인사들은 로마가 무엇과도 섞일 수 없는 븍한 곳이라 생각하고 로마의 관습과 생활양식이 전 세계로 전파되는 것을 원치 않는단 말이지." - p.74
"불행히도 이런 아이들이 항상 그 가능성에 부응하지는 못한다는 말이지. 재능의 불꽃이 어릴 때 너무 밝게 타오르다가 나이가 들면 점점 시들어 꺼져버리거나, 지나친 확신과 자만심에 빠져 있다가 순식간에 추락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오. 하지만 어쩌다 한 명씩은 대단히 유용한 인물이 되지. 이렇게 유용한 이들은 커다란 보물이라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늘 그 부모들을 도와주는 것이오." - p.84
"너는 어린 카이사르가 갖는 중요한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고 반드시 이 아이가 걸출한 이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온힘을 다해야 한다. 이 아이가 아니면 다른 누구도 이룩할 수 없는 목적의식을 불어넣어주거라. 모스 마이오룸을 보존하고 옛 전통과 오랜 혈통의 기세를 되살리도록 말이다. " -p.93
손에 든 물건은 얼마나 오랫동안 내려다보고 있었는지 몰랐다. 이제는 머릿속에 단 한 가지 생각도 떠올릴 수 없었다. 그가 가진 건 분노뿐이었다. 아니면, 그건 고통이었을까? 큰 슬픔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저 크나큰 외로움이었을까? 그는 활활 타는 불길에서 따뜻함을 지나 서늘하게 식었고 마침내 얼음처럼 차가워졌다. 그제야 이 끔찍한 불능을, 필연이자 위안을 주는 살인에 그토록 매혹되어 있는 자신이 같은 귀족 신분의 여자들에게는 도저히 그 행위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직시할 수 있었다. - p.10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