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나비는 아직 취하지 않아
모리 아키마로 지음, 김아영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4월
평점 :
절판


포근한 봄에 읽을 수 있는 몽롱하고 가벼운 청춘 로맨스 미스터리 소설.


 모리 아키마로의 책은 처음 접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그의 책 <이름 없는 나비는 아직 취하지 않아>는 책 제목만큼이나 책의 표지, 본문의 아기자기한 디자인까지도 그의 소설과 맞닿아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봄의 달큰하고 풋풋한 느낌을 절로 느낄 수 있다. 신입생인 조코는 동아리 활동으로 추리 연구회에 가려고 했으나 일본어 발음의 특성상 '스이리'라는 발음을 똑같이 쓰고 있는 취리 연구회에 가입하고 만다. 취리 연구회는 그녀가 가고 싶어하던 동아리가 아니라 말 그대로 술을 먹은 동아리였다. 발음이 똑같기도 했지만 플랜카드에 쓰여져 있는 문구를 보고 착각한 조코가 취리 연구회에 들어갔으나 그곳에 있는 선배, 후배를 통틀어 술을 먹어도 취하지 않는 조코는 취한 선후배들의 뒷처리를 맡곤 했다.


조코가 가고 싶은 동아리를 비록 가지 못했지만 미키지마 선배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서히 미스테리한 미카지마에게 마음이 기울어져 간다. 어릴 때 아역배우로 이름을 날린 조코나 몇 십년이 지나 그 세계와는 완전히 이별을 했지만 처음 동아리에 가입하게 되었을 때 손을 이끌었던 이가 취리 연구회 회장이었던 미카지마였다. 책은 꿈, 공, 해변, 달, 눈에 취하는 로직이라는 이름으로 5섯 편이 연작되어 있는데 왜 그녀가 술에 이토록 강한지, 미키지마와 취연 선배들의 이야기가 살풋이 엮여져 있어 쉴틈 없이 페이지가 넘어간다. 두 사람과 관계된 사람들의 이야기와 아기자기한 미스터리가 엮어 조코가 취연에 온 것인지 추리 연구회에 온 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마카지마와의 합이 잘 맞는다.


청춘은 긴 터널이다.

누구나 눈을 꼭 감고 싶어질 정도로 밝은 빛을 향해 달리고 있을터지만, 터널 한가운데에서는 빛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들을 그저 마구 달리는 이름 없는 영혼인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그 대답을 찾아내지 못한 채로 자신이라는 존재의 불명확함과, 또한 그렇기 때문에 있는 자유를 끌어안고 어둠 속을 질주하는 영혼. - p.9


"취한 사람은 약한 면도 강한 면도 뭉뚱그려서 자기 본성을 겉으로 드러낸단 말이지. 그녀석의 경우 절대로 취해서 공격적으로 하는 일은 없어. 거의 유일하다고 말해도 될 그 녀석의 장점이지." - p.28


'미키지마 선배는 이 얄팍하고 부연 감정의 껍질 같은 것과는 연이 없이 살아가고 있겠구나.'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 바다 밑바닥 같은 눈동자는 눈에 보이는 것만 적확하게 이해하는 게 가능할 터였다. - p.66


무엇보다 이 책은 대학생의 풋풋한 대학생활과 선후배들의 이야기와 더불어 풋풋한 로맨스가 그려져 있다. 그 속에서 미스터리 같은 남자인 미키지마가 조코에게 살풋이 닿았다가 때로는 멀리 관조하며 그녀를 대하는 선배로 나와 조코의 마음처럼 그의 마음이 어디를 두고 있는지 갈팔질팡하고 있다. 모리 아키마로는 첫 문장 또한 시적으로 그들을 설명하고 있는데 이 문장이 4~5번 정도 변주되어 그들을 가리킨다. 같은 문장을 반복하되 조금씩 다른 문장에 설레이고 벚꽃잎이 휘날리듯 자연스럽게 시간이 되어 떨어지는 꽃 잎의 하늘거림이 이 책에 투영되는 것 같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과는 다른 느낌인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가볍고 풋풋한 이야기가 싫지 않았다. 


이야기는 단조롭지만 문장이 주는 아름다움과 모리 아키마로가 보여주는 청춘들의 싱그러움과 치기가 인생의 반짝거리는 한 때를 잘 보여준다. 술을 좋아하지 않아 그 어떤 술을 입에 대는 것이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즐기지 않지만 <이름 없는 나비는 아직 취하지 않아>를 읽으면서 달큼한 술을 한 잔 하고 싶었다. 유쾌한 나날 속에 벌어지는 대학 생활의 재미와 낭만, 시작하지 않은 연인들의 끌림과 마음이 느껴지는 책이었다.


"목적이란게 때로는 달처럼 구름 너머로 숨어 버리곤 하잖아. 인간이라는 것도 아무리 발아래를 똑바로 보고 있다고 하더라도 문득 어떤 타이밍에는 뭘 위해 살고 있는지 모르게 되는 생물이라고. 그래서 아마도 달을 보는 거겠지. 달이 뜨지 않는 밤에는 '그런 거지.'라고 포기할 수도 있고, 또 달이 뜬 밤에는 '좋아, 그렇다면 나도!'라고 할 수 있잖아." -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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