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경사 바틀비 - 미국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허먼 멜빌 외 지음, 한기욱 엮고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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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만큼 세계 문학 전집의 열풍이 분 적이 없는 것 같다. 7,80년대만 하더라도 문학소년이 되어 시와 문학을 읽으며 자신의 마음에 비유되는 문장을 편지지에 살며시 적어 마음을 나누었다지만, 80년대 초에 태어난 나는 좋은 글귀를 나누고 그 글귀에 매료되어 가슴이 아릴 정도로 매료된 적도 없었다. 어릴 때 읽었던 고전 소설과 안데르센,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들만 기억속에 잔재들로 조금씩 남아 있을 뿐이다. 많은 작품을 접해보지 못했지만 요즘들어 한 작품씩 접하면서 세계 문학의 매력의 빠져 들었다.

민음사에서 200권이 넘는 세계 문학 전집을 출간 했고, 을유문화사, 열린책들에서도 세계문학전집이 나오고 있으며 후발주자로 문학동네에서 1차로 20권이 나온 상태다. 앞으로 시공사에서도 나온다는 소식까지 접하고 있으니 새로운 판본들과 우수한 번역까지 기대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 와중에 창비 세계 전집이 출간 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내가 읽은 '필경사 바틀비'는 창비 세계 문학 전집 (전9권) 중 한 권이다. 영국, 미국, 독일, 스페인.라틴 아메리카, 프랑스, 중국, 일본, 폴란드, 러시아 순으로 되어 있다. 필경사 바틀비 처럼 대표작을 내세운 단편들이 깔끔하게 편집되어 고급스러운 느낌을 준다.

다른 나라의 단편이 묶어진 단편들도 보고 싶었지만 특히 미국편을 골랐던 이유는 F.스콧 피츠제럴드와 에드거 앨런 포우 때문이었다.  인간희극에서 나온 피츠제럴드의 <벤자민 버튼의 흥미로운 사건>을 읽고 나서 단편의 매력에 쏙 빠져 들었고 영화는 물론이고 그가 쓴 작품들 모두 읽어 보고 싶었다. 포우의 작품 또한 그의 명성과 더불어 그의 작품인 <검은 고양이>를 가장 많이 들어왔지만 접할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 기회에 그의 작품을 읽어 볼 수 있었다.

호기심과 관심에서 시작된 이 책은 F. 스콧 피츠제럴드와 에드거 엘런 포우 뿐만 아니라 호손에서부터 포크너까지의 작가와 작품들 모두 흥미롭고, 재미있게 읽힌다. 주홍글자로 알려진 너새니얼 호손의 단편 '젊은 브라운' 에드거 앨런 포우의 '검은 고양이', 마크 트웨인의 '캘레바래스 군의 명물, 뜀뛰는 개구리', 헨리 제임스의 '진품',샬롯 퍼킨스 길먼의 '누런 벽지', 찰스 W.체스넛의 '그랜디썬의 위장'스키븐 크래인의 '소형 보트' 셔우드 앤더슨의 '달걀' F. 스콧 피츠제럴드의 '겨울 꿈' 윌리엄 포크너의 '에밀리에게 장미를 '을 끝으로 11명의 대표되는 미국 작가들의 단편들이다. 1830년대에서 부터 1930년대까지 시대순으로 작가의 작품들이 나열되어 있어 작품을 읽으면서 미국의 시대를 짐작 할 수 있던 대목들이 많았다.

다른 나라의 작품은 읽어보지 못했지만 미국편에 소개된 작품들은 현재 우리나라에 다 소개 되어 있는 작품이라고 한다. 주홍글자의 호손이나 포우, 멜빌이 초기 단편의 고전이라 말 할 수 있다하니 새롭게 느껴졌다. 작가의 태생적 배경과 작품을 알아보며 읽어보는 단편은 짧지만 맛깔스럽게 다가온다. 읽고 싶었던 작품인 <검은 고양이>는 추리소설의 효시가 되었을만큼 짧지만 강렬하게 다가온다. 특히 샬롯 퍼킨스 길먼의 누런 벽지는 피츠제럴드의 부인 젤다 처럼 느껴졌다. 우울증에 걸린 여인의 신경질적이면서 환영에 몸부림치는 여인의 심리묘사가 압권이다.

한 편의 단편을 읽고 나면 보너스로 작가의 다른 작품을 소개해 주는 더 읽을거리가 마음에 들었다. 모르던 작가의 단편을 읽고 나서 눈을 반짝이며 보너스 트랙을 꺼내보는 기분이었다. 창비에서 번역된 작품을 보면 미국편에서는 '된소리'의 번역이 많이 안나타지만 일본이나 러시아 편에서 보여지는 작가의 이름이나 지명이 낯설게 느껴졌다. 예를 들면 미네소타를 미네쏘타로 써 놓아 자칫, 읽을 때 방해가 되지 않을까 했는데 생각보다 거슬리지 않게 작품을 읽어 나갔다. 미국편에서 보여지는 작품 속에서 미국의 배경적 사건이나 사회문들을 바라볼 수 있는 점에서 짧지만 강렬한 단편의 매력속에 풍덩~빠져 버렸다. 미국편 뿐만 아니라 일본, 러시아, 스페인. 라틴 아메리카의 단편 모두 접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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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낭 담쟁이 문고
이순원 지음 / 실천문학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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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달전 독립 영화로 성공한 '워낭소리'가 티비에 방송 되었다. 워낭소리가 많은 사람에게 호평 받은 소식을 보고 전부터 엄마가 보고 싶어 하셨지만 기회가 닿지 않아 보지 못했다. 티비에 방영된다는 소식에 엄마는 시간을 맞춰 가며 티비 앞에 앉아 계셨지만 나는 방송을 챙겨가며 보고 싶지는 않았다. 많은 사람들의 호평과 찬사에 대략 내용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소'에 대한 추억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란 나는 말 그대로 '서울 토박이'지만 고향에 대한 정겨움이나 그리움을 느끼지 못한 곳 또한 내가 살고 있는 서울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소가 가장 귀한 일꾼이자 보물 같은 존재였고, 가족이었다. 동물 중에서도 강아지, 고양이가 가장 친근하다지만 어디 옛날 소보다 더 귀할까. 매년 마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제사를 보러 외갓집을 갈 때 비로소 큰 눈을 꿈뻑 거리는 소를 볼 수 있다. 멀리 있는 엄마를 찾거나 소 여물이 다 떨어졌을 때, 신기하게도 소는 운다. 짚을 한 움큼 주거나, 옥수수 풀을 잘라 주면 되새김질을 하며 먹는 소를 보며 머리를 만져 주고 싶어도 혹, 낯선 이의 시선이 불편할까 만지지 못했다.

몇 십년전, 엄마의 추억담을 들어보면 소를 끌고 가며 풀을 먹이고 함께 했던 추억담을 듣듯, 워낭 역시 그릿소의 새끼인 흰별소에서 부터 반제기소까지의 많은 소 들이 대관령 밑인 우추리에 사는 차무집에서의 소들이다. 그릿 소가 흰별소를 낳아 차무집에서 주인이 되어 기르면서 미륵소, 버들소, 화둥불 소, 흥걸소, 외뿔소, 콩죽소, 무명소, 검은눈 소, 우라리 소, 반제기 소 그리고 흩어진 후예들까지의 행전을 풀어나간다. 워낭 소리에서 보여지듯 사람의 생과 죽음으로 이어지듯, 소의 일생을 사람과 함께 태어나고 자라면서 새끼를 낳고, 새끼가 그 주인이 되풀이 되는 이야기는 아릿하고도 슬픈 여정 속에 계속 된다.



 "소야. 니는 니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아나? 니는 니 아버지를 아나? 나는 나를 낳아준 아버지는 모르고 나를 키워준 우리 아버지만 안다. 소야. 나는 사람들이 참 싫다. 나를 해파리라고 부르는 사람도 싫고, 나를 바보라고 놀리고 속이는 사람도 싫다. 소야. 나는 사람보다 소가 더 좋다. 니는 대답을 하지 않아도 나는 이렇게 걸으며 니들과 얘기하는 게 더 좋다.  
 
사람들은 나하고 얘기 하지 않는다. 내가 가까이 가면 벌레 같은 게 왔다고 다들 저만치 피해 앉는다. 내가 그걸 왜 모르겠나. 그러면서 내가 가진 거 다 뺏어거려고만 한다. 어떤 사람인지 내가 벌은 돈도 뺏어가고 내 색시도 뺏어갔다. 그래도 나는 나를 두고 간 내 색시가 밉지 않다. 소야. 니는 나하고 이렇게 걸어 니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이번 장날에도 걷고 다음 장날에도 절뚝절뚝 또 걷는다. 그러다 언젠가 힘이 빠지면 그때는 내가 선 자리에 느들하고 같이 걸음을 멈추면 되는 거지. 소야·····." - p.263~264

 그들이 거쳐 간 시간 속에 시대의 설움이 묻어난다. 그들의 업인 듯 주인을 위해 희생하는 흰별소의 마지막은 짠하게 가슴을 울린다. 때로는 그들이 차무집 아들의 장가비용으로 쓰여지고, 잔치상에 오르는 잔치의 재료도 되어진다. 학교를 보내기 위해 소를 팔아 학비가 되어지고 또 새끼가 새끼를 베어 외양간의 주인이 되어진다. 그들의 숙명이자 업인 줄 알지만 그들의 생(生)은 사람과 부대끼면서 소멸되고 결국 '워낭'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시간의 흐름은 점차 사람과 살을 부대끼고 희노애락을 함께 한 '가족'의 의미가 퇴색되고 동물에 지나지 않는 시간까지 흘러와 버렸다. 빠른 시간의 속도로 그들의 행전을 바라볼 수 있었지만 절뚝절뚝 걸어가는 소의 발걸음을 생각하니 눈시울이 붉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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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출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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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에 그의 책을 잡고 몰입이 될 때만 읽고, 글이 글로만 보여질 때는 과감없이 덮어 버렸다. 책을 빨리 읽고, 서평을 쓰기 보다는 시간이 지난 후에도 음미하며 쓰고자 했는데 어느새, 1월도 중순이 지났다. 그러다 보니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천천히 쓰고자 했던 계획과 달리 너무 늦게 써서 가물하니 앞으로는 책을 읽고 바로바로 글을 써야겠다.

<호출>은 <오빠가 돌아왔다>(창비, 2004)보다 더 재미있다. <오빠가 돌아왔다>는 경쾌하고 발랄하게 읽히지만 호출은 1997년에 출간된 작품으로  실험작이 많고, 시대의 흐름이 읽혀지는 단편집이다. 특히 '호출'은 그때 그 시대 사람들의 감성을 엿 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중학교 때 처음 삐삐라는 호출기가 나왔는데 그때 나는 그 '물건'을 갖고 있지 않았다.

나의 기억에 있어 삐삐는 아버지 허리춤에 차던 검은색 모토로라 삐삐였다. 당시 삐삐가 생기면서 번호를 암호처럼 만드는 것이 유행했고, 내 친구들 중 몇 명은 투명한 빨간 삐삐를 갖고 있었다. 삐삐의 시대가 가고 큰 단말기의 휴대폰이 나왔다. 당시에 삐삐도 그렇지만, 휴대폰이 처음 나왔을 때는 가격이 어마어마 했다. 그때도 우리 아버지는 플립이 닫기는 크고, 검은 휴대폰을 쓰고 계셨다. 중고등학교때는 그 휴대폰이 얼마나 갖고 싶었던지 부모님을 몇 번이나 졸랐던가.

호출기의 생김새는 눈에 선하지만, 삐삐를 어떻게 쳤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때 아버지 삐삐를 몇 번 인가 쳤던 것 같은데 내 물건이 아니다 보니 별로 관심을 갖고 보지 않았나보다. 지금도 가끔 <연풍연가>를 보면 큰 무전기 같은 휴대폰으로 전화하는 태희의 모습에 웃음이 난다. 호출 역시 지하철에서 만난 여자에게 삐삐를 쥐어주며 나가는 남자와 여자의 심리가 담겨져 있어 다음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도마뱀에서 부터 호출, 도드리, 거울의 대한 명상에 이르기까지 계단을 밟아 올라가는 것처럼 점점 더 이야기 삼매경에 빠진다. 좀처럼 단편집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 나는 호출을 읽고 나서 부터 계속 되는 단편의 삼매경에 빠져 그의 이야기를 읽을 수 밖에 없었다. 때로는 실험작으로 3류 영화를 보는 듯 하고, 때로는 여인의 심리를 너무 잘 꿰둘어 헉! 하기도 했다. 단편 하나하나를 끊어지지 않게 긴 호흡으로 이 책을 읽을 수 있던 점이 가장 큰 수확으로 느껴졌다. 읽으면 읽을 수록 카멜레온 맛이 나는 단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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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기 구겐하임 자서전 - 어느 미술 중독자의 고백
페기 구겐하임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인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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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미술을 좋아하지만 현대 미술의 추상적인 그림은 내게는 아직도 애매모호하다. 잭슨 폴록이나 칸딘스키의 그림을 보고 나면 그 그림에 어떤 정신이 깃들어 있는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보고 또 보니 자꾸 낯이 익는다. 페기 구겐하임이라는 이름도 처음엔 낯설었다. 페기라는 이름보다 '구겐하임'이라는 이름을 많이 들어 봤는데 알고 보니 그건 건축물의 이름이 아니라 20세기 미술사의 전설적인 컬렉터의 이름이었다. 1898년 뉴욕의 유태인 부호 집안에 태어난 구겐하임의 태생에서 부터 다시 뉴욕으로 건너오기까지의 그녀의 간략한 회고록이 담겨져있다.

이 책은 페기 구겐하임의 자서전이긴 하지만 간략하게 그녀의 인생을 축소 시켜 놓았다. 200페이지도 채 안되는 책이다 보니 영화로 치자면 영화정보를 알려주는 프로처럼 간단하게 줄거리를 요약해서 주요 장면만 보여준다. 어느 미술 중독자의 고백이라기 보다는 그녀의 사생활과 미술 컬렉터로서의 삶을 반씩 섞어 맛만 보여준다.그야말로 맛만! 그녀는 전설적인 컬렉터 뿐만 아니라 인생사에 있어서도 화려한 남성편력을 보여준다.

어렸을 때 부모님의 불화로 조숙했던 그녀는 독립적인 생활 뿐만 아니라 로렌스 베일, 존 홈스, 에른스트등 결혼과 이혼을 반복했다. 그들과의 결혼은 그녀에게 성장과 동시에 상실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로렌스 베일과의 7년이 비공식적이었다면 존 홈스와의 결혼은 공식적이자 그녀가 그에게 많은 지식을 배울 수 있는 지침서이기도 했다. 그가 죽고 그녀는 해방감을 느꼈다고 하지만 그와의 결혼 생활은 그녀가 한발짝 나아가는데 있어 큰 역할을 했다.

그녀는 '구겐하임 죈'이라는 화랑을 열어 브랑쿠시, 콕토, 칸딘스키 아르프등 많은 화가들을 후원하고 그들의 그림을 소장했다. 그들과의 깊은 사연은 들을 수 없었지만 현대 미술에서 페기 구겐하임이라는 이름은 없어서는 안 될 정도로 20세기 현대 미술사에서 그녀의 역할을 크게 작용한다. 작년에 캐서린 쿠의 < 전설의 큐레이터 예술가를 말하다>를 읽으면서 큐레이터 라는 직업과 현대 미술에서 있어서 그들과 화가들의 관계를 세심하게 볼 수 있었던 점에 비해 페기 구겐하임 자서전은 그녀의 컬렉팅 보다는 사고, 팔고 지내왔다는 단편적인 기록들이 아쉽게 여겨졌다. 그녀가 큐레이터로서의 고뇌와 화가들의 관계에 대한 깊이 있는 시선을 깊이 볼 수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잔가지 없이 그녀의 삶을 군더더기 없이 없이 읽다보니 더욱더 그녀의 내면세계가 궁금해진다. 미술에 문외한이었지만 한 여자의 인생과 남겨진 유산을 통해 미술에 힘썼던 그녀의 삶은 부러우면서도 부럽지 않았다. 캐서린 쿠에 이어서 현대 미술에 없어서는 안될 그녀들의 이야기에 빠져 현대 미술의 화가들과 그림을 접하고 있다. 어려우면서도 그들만의 개성이 나타나는 그림을 보고 있으려니 난해해도 그들만의 매력에 푹 빠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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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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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거장인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대표작인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는 독특한 작품이다. 웃음과 유머가 있다는 작품을 만나보면 가벼워서 훅-하고 바람을 불면 휙하고 날라가 버릴만큼 가볍게 날라가 버린다. 그런 작품을 만나고 나면 내가 그들의 유머를 못 느낀 것인지, 아니면 가벼운 것이 취향이 아닌 것인가 고민을 하며 더욱더 묵직한 작품이 고파진다. 그런 나의 고민을 확실히 씻어준 작품이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다. 

작년에도 세계문학전집 읽기를 결심 했지만 올해만큼 강하게 의도하지 않고 자유롭게 책을 읽어왔다. 책을 읽으면서도 무언가 허전한 마음을 채울 수 없어 고민할 때 조지오웰의 <1984>를 읽고 있었다. 읽을 때는 그저 괜찮은 작품이다 라는 느낌만 받았는데 책을 덮고 나니 오랫동안 여운이 가시지 않았다. 그 후로 세계문학을 읽어야겠다고 확고히 결심했는데 마침 문학동네에서 세계문학전집 1차분이 출간 되었다.

작년에도 세계문학전집을 모으고 있었지만, 문학동네에서 나온 세계문학전집은 심플하면서도 흑백의 표지가 마음을 사로 잡는다.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역시 처음 표지를 보고 반했는데 책을 읽어보니 텍스트 뿐만 아니라 라틴 문학의 거장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았다. 흑백의 표지의 포스는 처음부터 독자를 사로잡을 뿐 아니라 책을 읽고 나서도 나도 모르게 손뼉을 칠만큼 탁월하다.(정말 센스있는 표지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순간 판탈레온 판토하 대위의 의견에 동조하게 된다. 그럴때마다 내 머리속에서 '어이~이봐! 정신 차리라구' 라는 나올 정도로 판토하의 우직하고 충성스런 성정에 웃음을 터트리면서도 안쓰럽게 느껴진다. 분명 그는 모범 장교로서 훌륭한 복무태도와 임무 수행으로 사랑받는 모범 장교였다. 어머니에게는 자랑스런 아들이었고, 포차에게는 자랑스러우면서도 사랑스러운 남편이었던 그가 뜨거운 아마존 지역의 '특별봉사대'를 비밀스럽게 만들라는 상부지시를 통해 비밀업무를 가지고 아마존 밀림으로 간다.

'특별봉사대'를 읽을 때 부터 떠올려지는 것이 일본 위안부 문제였다. 우리에게 이 문제는 굉장히 상처가 큰 문제이기 때문에 특별봉사대를 창설하는 판토하 대위가 얄궂게 보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밉지 않았다. 비밀 업무이기 때문에 제복을 입지 않고 사복을 입으며 자칫 철저하게 매춘 사업을 하는 것으로 보여지는 그의 모습은 철저한 사업가의 변모하게 만들었다. 아니, 너무 업무 수행을 잘 하는 것일까?

매춘을 하는 아가씨들을 모아 경제적이면서도 효율적으로 만든 판티랜드의 생활은 그가 유명해짐은 물론이고 봉사대원들이 들어가고 싶은 희망찬? 곳이기도 했다. 아마존에 주둔하고 있는 군인들이 주민들을 겁탈하거나 상대를 건드리는 사건을 방지하기 위해 고안한 '특별봉사대'는 설립에서 부터 성장하고 침몰되는 과정을 판토하의 보고서와 그의 대화를 통해 잘 드러난다. 그 시기에 맞물린 종교와 신치의 소리 또한 판티랜드의 침몰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할만큼 상황을 고조시킨다.

"일어나요, 판타." 포차가 판토하를 깨우는 장면이 첫 장면이듯 마지막 장면도 포차가 그를 깨우는 장면에서 끝을 맺는다. 뫼비우스 띠처럼 돌고 돌아가는 사이클을 갖고 있는 이 책은 우직스런 충성심 가득한 한 남자의 백일몽 같은 책이기도 하다. '차라리 꿈이었으면 좋겠어.'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특별봉사단'에 대한 비밀업무 수행을 잘한 판토하의 행적은 결국 가정이 파탄되고 군부의 비밀스런 행적이 만천하에 공개되는 사고까지 이르게 된다. 

아마존 밀림에서 펼쳐지는 이 블랙 코미디는 훅 불어 날라갈만큼 가볍지 않다. 웃고 있지만 진정으로 웃을 수 없는 신랄한 풍자극이기 때문이다. 거장이 그리는 블랙 코미디는 진정, 끝맛이 우러나올만큼 진한 아우라가 퍼져 나간다. 이 작품을 필두로 그의 많은 작품을 만나고 싶을 정도로 멋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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