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지성사가 리처드 왓모어가 쓴『지성사란 무엇인가』는 지성사에 관한 입문서다. 이 책은 Polity 출판사에서 발간하는 "What is History?" 시리즈 중 하나다. 국내 번역본은 2020년에 발간되었지만 원서는 2015년에 발간되었다. 시기를 따져보면 원서는 슬슬 개정판이 나올 때가 아닌가 싶다.


 



"What is History?" 시리즈 중 국내에 번역된 책으로는 피터 버크의 『문화사란 무엇인가?』와 도널드 휴즈의 『환경사란 무엇인가?』가 있다. 이 중 『문화사란 무엇인가?』는 2005년 국내에 번역된 만큼 2018년에 발간된 3판은 아니고 그 이전의 구판 번역이다. 게다가 현재 품절 상태다.


 


반면 『환경사란 무엇인가?』는 2022년에 번역된 만큼 최신판이다.


 



이외에도 polity 출판사의 "What is History?" 시리즈 중에는 흥미로울 입문서가 많다. 국내에 모두 소개 되려면 얼마나 걸릴까. 


  

  

   

  



비슷한 입문서 시리즈로는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로 소개되는 Oxford very short introduction 시리즈가 있다. 

 


가장 최근 번역된 기후변화 편이 시리즈 50권째.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가 아닌 다른 출판사를 통해 출간된 책도 하나 있긴 하다(해당 번역본은 현재 절판되었다). 



출판사 사이트에 들어가 목록을 확인해보니 Oxford very short introduction은 현재 출간된 시리즈 목록만 해도 770권. 남은 책들이 국내에 모두 소개 될려면 얼마나 걸릴까? 게다가 새로 나오는 권 수도 고려해야 한다.


덧붙이자면, 지금 이 글에 등장한 책들은 모두 '입문서'다. 입문서라고 해서 깊이가 얕지 않다. 오히려 입문서는 깊고 넓은 학문 세계의 출발점이다. 입문서를 통해서 다시 학문의 출발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 입문서를 한번씩 다시 읽을 때마다 출발점에 다시 서게 된다. 그럴 때마다 내가 어디까지 얼마나 나아갔는지, 덧붙여 아직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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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남성 중심적이다. 남성 중심적이라는 말은 남성의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사회에서 남성들은 자신의 지성, 추진력, 신뢰성을 지위, 권위, 경제적 이익이라는 결과물로 보상받는다. 여성들도 남성들과 비슷한 수준의 보상을 받지만 평등하지는 않다. 만일 여성이 남성의 눈으로 자신을 보고 남성들이 규정한 문화의 잣대로 끊임없이 자기를 평가한다면, 자신에게 결함이 있거나 남성들이 가치 있게 생각하는 자질이 부족하다고 여기게 될 것이다. 여성은 결코 남성이 아니다. ‘남성처럼 훌륭해지려고‘ 애쓰는 많은 여성들은 자신의 여성성을 훼손한다. 여성들이 자신의 부족한 부분과 자신이 지니고 있지 않거나 성취하지 못한 것들의 측면에서 스스로를 규정하면서부터 여성으로서 자신을 평가 절하하고 감추기 시작한다. 여성들의 이러한 평가 절하는 어머니에 대한 평가절하에서부터 시작한다. - P48

캠벨에 따르면, 진정한 영웅의 과업은 기존 질서를 해체하고 새로운 사회를 창조하는 것이다. 이 일을 하기 위해 남성 영웅/여성 영웅은 현상 유지라는 괴물과 걸쇠를 단단히 걸어 잠근 낡은 질서라는 이름의 용, 즉 과거의 수호자를 처단한다. - P48

오늘날에는 여성과 남성 모두가 가부장적인 경제, 정치, 사회, 종교, 교육 구조뿐만 아니라 가부장적 언어와 사고에 도전장을 내밀며 새로운 방식을 창조하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 차원에서 보자면 ‘어머니‘가 낡은 질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으므로 개성화‘를 위한 여성 영웅의 첫 번째 과업은 어머니에게서 분리되는 것이다. - P49

이 여정은 여성 영웅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자신의 실제 어머니로부터, 그리고 훨씬 더 강력하게 이어져 있는 어머니 원형으로부터 분리되려고 분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 P53

어머니로부터 분리를 이루어내려고 많은 젊은 여성들이 자신의 어머니를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거부해야 할 존재, 복수심과 소유욕이 강하고 탐욕스러운 원형적 여성의 이미지로 만든다. 실제 어머니가 이런 특질을 지녔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딸들은 이런 특질을 자기 내면의 어머니에게 덧씌운다. 융에 따르면, 이 내면의 어머니는 자아가 받아들일 수 없는 무의식적 이미지인 그림자 원형으로 우리 안에서 작용하기 시작한다. - P55

어머니와 딸의 관계는 물론이고 어머니에게서 분리되는 일은 아주 복잡한 문제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여성 문학과 동화에서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났거나 부재하는 상태이고, 있다 하더라도 사악한 존재로 표현된다. - P56

어머니 원형은 양 극단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무한한 애정으로 자식을 돌보고 생명을 유지시켜주며 보호해주는 존재를 상징하는 ‘위대한 어머니(Great Mother)‘와 정체, 질식, 죽음을 상징하는 ‘공포의 어머니(Terrible Mother)‘가 그 두 모습이다. 이 두 원형적 모델은 유아기와 아동기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인간의 의존성에 대응하며 형성된 인간 심리의 구성 요소들이다. - P56

많은 여성이 여성적(feminine)이라는 말을 두려워한다. 이 단어는 오염되었다. 어떤 이들은 ‘여성적‘이라는 단어의 의미 속에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을 돌봐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처럼 여긴다. 사회는 여성들이 자신의 성취보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며 살아가도록 조장해 왔다. - P64

여성성을 거부할 경우 자신의 어머니가 보인 부정적인 여성성의 측면은 물론이고 쾌활하고, 심미적이고, 열정적이고, 돌봄에 소질 있고, 직관적이고, 창조적인 자신의 긍정적인 여성적 본성까지 거부하게 될 위험이 있다.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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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우리는 과거의 역사가 여러 관념 간의 경쟁을 통해 구성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으며, 바로 그때 지성사 연구가 등장했다고 할 수 있다. 지성사는 인간들이 경험했던 혹은 경험하고자 하는 대안적인 미래에 관한 사변까지도 포함하는 분과가 되었다. 달리 말해, 인간의 삶에 정해진 본질 같은 것은 없으며 구체적인 경험들이 구체적인 관념들을 발생시켰다는 사실, 그리고 인간이 살아낸 경험 및 그 경험에 뒤따라 나오는 것들을 형성하는 데 관념들이 나름의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인식되기 시작했을 때 지성사는 하나의 고유한 분과가 되었던 것이다. - P64

포콕, 던, 스키너는 모두 텍스트를 구체적인 역사적 맥락의 산물로 읽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때 구체적인 역사적 맥락이란 언어적 실천을 통해 형성된 여러 이데올로기적 맥락을 의미했다. 텍스트의 의미라는 게 무엇인지를 숙고하면서, 던과 스키너는 저자의 의도가 텍스트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가장 중요한 길잡이라고 보았다. 비록 저자의 의도라는 것이 지적 대상으로서 문제적인 측면이 없지 않으며, 어떤 저자의 저작을 이해하기 위해 의도를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지만 말이다. 여기서 포콕은 다른 둘과 달리 의도보다 패러다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스키너는 역사가의 목표란 특정 텍스트의 저자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드러내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때 저자가 ‘하고 있는‘ 일의 범위에는 저자가 무엇을 하고자 했으며 무엇을 달성했는지가 포함되는데, 이는 다른 저자들이 그에 보이는 반응을 통해 해석할 수 있었다. - P100

포콕과 던, 스키너의 가장 중요한 주장들 중에서 특히 포콕이 자신의 모든 방법론적 저술을 통해 강조한 바는 다음과 같았다. 저자가 자신의 주장을 표현하기 위해 채택하고 활용하는 일련의 전제를 언어 혹은 담론이라고 할 때, 저자가 활용하는 언어 혹은 담론이 저자의 주장 자체에 제한을 가한다는 것이다. 언어 또는 담론은 문법과 수사, 그리고 관념의 용법과 함의에 관한 일련의 전제로 구성되어 마치 복잡한 구조물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언어 사용자들이 공동체를 구성한다고 할 때, 그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저자들은 기존에 존재하는 언어들을 혁신하고 변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일은 언어라는 복잡한 구조물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데올로기적인 현재 및 물질적 현재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명료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이미 존재하는 언어를 활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포콕, 스키너, 던은 모두 인간 본성에 관한 메타이론적 전제나, 불투명한 혹은 비역사적인 이론적 어휘, 그리고 역사를 분석할 때 고정된 개념 등을 당연하게 전제하는 접근법들에 반대했다.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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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궁금하다. 짧은 두 마디 말이지만 그 안에 모든 철학의 씨앗이, 그 이상이 담겨 있다. 모든 위대한 발견과 돌파구는 이 두 마디 말에서부터 시작된다. 나는 궁금하다. - P42

"우리 문화는 일반적으로 질문을 경험하기보다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 - P43

철학은 결국 가정에 의문을 제기하고 보트를 뒤흔드는 것이다. 선장은 보통 자기 보트를 뒤흔들지 않는다. 잃을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철학자는 아니다. 철학자는 열외자다. 외계인이다. - P46

철학은 삶, 우리 자신의 삶에 관한 것이고, 어떻게 하면 이 삶을 최대한 잘 살아내느냐에 관한 것이다. 철학은 실용적이다. 필수적이다. - P50

이 세상에 ‘소크라테스의 사상‘ 같은 것은 없다. 소크라테스의 사고방식만이 있을 뿐이다. 소크라테스에게는 수단만 있을 뿐, 그 끝은 없었다. 오늘날 우리가 아테네의 잔소리꾼을 기억하는 것은 그가 알았던 지식 때문이 아니라 그가 그 지식을 알게 된 방식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지식보다 방법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지식은 곱게 늙지 못한다. 하지만 방법은 그럴 수 있다. - P51

삶을 성찰하려면 거리를 둬야 한다. 자기 자신을 더 명확하게 들여다보려면 자신에게서 몇 발짝 물러나야 한다. 이렇게 거리를 둘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에게 철학과 대화는 사실상 동의어였다. - P51

소크라테스가 대화를 사랑하긴 했지만 그는 대화를 그저 자신이 가진 도구 중 하나로 본 것 같다. 이 모든 현명한 훈수질에는 하나의 목표가 있었다. 바로 자기 자신을 아는 것. 소크라테스는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눔으로써 자기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법을 배웠다. - P52

질문은 일방향이 아니다. 질문은 (최소) 양방향으로 움직인다. 질문은 의미를 구하고 또 전달한다. 적절한 때 친구에게 적절한 질문을 묻는 것은 연민과 사랑의 표현이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자주 질문을 무기로 사용한다. 상대를 저격하고(네가 뭐라도 된다고 생각해?) 자신을 저격한다(왜 난 제대로 하는 게 없지?). 질문으로 변명을 삼고(이런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나중에는 정당화한다(내가 뭘 더 할 수 있었겠어?). 마음을 들여다보는 진정한 창문은 눈이 아니라 질문이다. 볼테르가 말했듯, 사람을 판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사람의 대답이 아닌 질문을 보는 것이다. - P54

진지한 질문은 미지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는다. 진지한 질문에는 위험이 따른다. 마치 어두운 방 안에서 성냥에 불을 붙이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불빛이 방을 비췄을 때 괴물이 보일지, 경이로운 광경이 보일지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성냥에 불을 붙인다. 그렇기에 진지한 질문은 자신감이 아닌, 10대와 같은 머쓱함과 어색함으로 머뭇머뭇 서투르게 발화되는 것이다. - P61

니들먼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 문화에는 궁극적인 질문이 질문으로 존중받는 공간이 없어요. 우리가 가진 모든 제도와 사회 양식은 문제를 해결하거나 즐거움을 제공하는 데만 최선을 다합니다." - P63

마음의 대답에 도착하려면 인내심도 필요하지만 기꺼이 자신의 무지와 한자리에 앉으려는 자세도 필요하다. 끝없는 해야 할 일 목록에서 또 하나를 지우려고 성급히 문제 해결을 향해 달리는 대신, 의혹과 수수께끼의 곁에 머무는 것. 여기에는 시간과 용기가 필요하다. 다른 사람들은 그런 우리를 조롱할 것이다. 내버려두라고, 제이컵 니들먼과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비웃음은 지혜의 대가다. - P69

좋은 질문은 그렇다. 사람을 단단히 붙잡고 절대 놓아주지 않는다. 좋은 질문은 문제의 프레임을 다시 짜서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한다. 좋은 질문은 문제의 해답을 찾게 할 뿐만아니라 해답을 찾는 행위 그 자체를 재평가하게 만든다. 좋은 질문은 똑똑한 대답을 끌어내기도 하지만 침묵을 끌어내기도 한다. - P71

바로 이것이 소크라테스가 일으키고자 했던 것이었다. 관점의 근본적 변화가 나타나리라는 희망에서, 내가 아는 것뿐만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묻는 인정사정없는 자기 심문. - P72

걷기는 루소가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할 수 있게 해주었다. 루소는 수줍음이 많았다. 근시가 심했고, 마르쿠스처럼 불면증에 시달렸으며, 평생 비뇨기 질환 때문에 (결국 전립성 비대증 진단을 받았다) 수시로 화장실에 가야 했던 루소는 사회적 만남을 최대한 피했다. 루소는 평생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 P85

루소의 철학은 다음 네 어절로 요약할 수 있다. 자연은 좋고 사회는 나쁘다. 루소는 "인간의 자연적 선함"을 믿었다. - P89

루소는 우리가 인간 본성이라고 생각하는 것 중 많은 것이 사실은 사회적 관습이라고 믿는다. - P90

루소의 야만인은 스스로를 향한 사랑을 자주 경험하는데, 루소는 이를 자기 사랑amour-de-soi이라고 부른다. 이런 건강한 감정은 더 이기적인 종류의 사랑과는 다르며, 루소는 이런 이기적인 사랑을 자기 편애amour-propre라고 부른다. 전자는 인간 본성에서, 후자는 사회에서 비롯된다. 자기 사랑은 혼자 샤워하면서 노래를 부를 때 느끼는 기쁨이다. 자기 편애는 뉴욕 록펠러센터에 있는 라디오시티 뮤직홀에서 노래를 부를 때 느끼는 기쁨이다. - P90

이제 우리는 루소가 왜 걸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걷는 데에는 인류 문명의 인위적 요소가 전혀 필요치 않다. 가축도, 사륜마차도, 길도 필요 없다. 산책자는 자유롭고 아무런 구애 받지 않는다. 순수한 자기 사랑이다. - P91

루소는 철학의 가장 큰 통념 중 하나가 거짓임을 잘 보여준다. 바로, 정신 활동은 신체와 완전히 단절되어 있다는 통념이다. 아르키메데스가 욕조에서 유레카를 외친 순간부터 데카르트의 걸출한 펜싱 실력과 사르트르의 성적 모험에 이르기까지, 철학에는 신체와 관련된 조류가 흐른다. 신체와 분리된 철학자, 신체와 분리된 철학은 존재하지 않는다. 니체는 "철학보다 몸에 더 많은 지혜가 있다"고 말했다. -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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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nny 2023-09-21 21: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엄청 밑줄긋기하며 읽었어요. 나는 궁금하다. 그렇네요. 그렇게 시작😄

Heath 2023-09-21 21:26   좋아요 1 | URL
한 번 읽어보고 밑줄을 많이 긋겠구나 예감이 들었고 실제로 많이 긋게 되네요 :)
 

배가 고프다. 먹고 먹고 또 먹지만, 그래도 배가 고프다. 더 많이 먹을수록 더욱더 배고파진다. - P6

우리는 우리가 원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가 정보와 지식을 원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는 지혜를 원한다. - P6

지식은 소유하는 것이다. 지혜는 실천하는 것이다. 지혜는 기술이며, 다른 기술과 마찬가지로 습득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지혜를 운으로 얻으려는 것은 바이올린을 운으로 배우려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게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우리는 여기저기서 지혜의 부스러기를 줍기를 바라면서 비틀비틀 인생을 살아나간다. 그러면서 혼동한다. 시급한 것을 중요한 것으로 착각하고, 말이 많은 것을 생각이 깊은 것으로 착각하며, 인기가 많은 것을 좋은 것으로 착각한다. 한 현대 철학자의 말마따나, 우리는 "잘못된 삶"을 살고 있다. - P7

영어의 ‘철학자philosopher‘라는 단어는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을 뜻하는 그리스어 필로소포스philosophos에서 왔다. 하지만 미국 독립선언문이 행복을 손에 넣는 것에 관한 글이 아니듯이,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뜻 역시 지혜를 소유하는 것과는 관련이 없다. 내가 소유하지 않은 것, 영원히 소유할 수 없는 것도 사랑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추구하는 행위 그 자체다. - P8

철학과 기차는 서로 잘 어울린다. 기차 안에서 나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버스에서는 생각할 수 없다. 아주 조금도 불가능하다. - P9

하지만 철학과 기차에는 퀴퀴한 느낌이 있다. 둘 다 한때는 우리 삶의 중요한 일부였으나 이제는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유물이 되었다. 오늘날 다른 선택지가 있는데도 일부러 기차를 타는 사람은 별로 없으며, 부모님이 말리는데도 일부러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철학은 기차 타기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뭘 모르던 시절에나 하던 것이다. - P10

우리 동네 서점에는 ‘철학‘ 섹션과 ‘자기계발‘ 섹션이 붙어 있다. 고대 아테네의 ‘반스앤노블‘에서는 이 두 섹션이 하나였을 것이다. 그때는 철학이 곧 자기계발이었다. 그때는 철학이 실용적이었고, 철학이 곧 심리 치료였다. 영혼을 치료하는 약이었다.
철학은 치유 효과가 있지만 핫스톤 마사지의 치유 효과와는 그 방식이 다르다. 철학은 쉽지 않다. 철학은 멋지지 않고, 일시적이지 않다. 철학은 스파보다는 헬스장에 더 가깝다. - P11

오늘날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철학을 가르치지 않는다. 철학에 대해 가르친다. 학생들에게 철학적으로 사색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철학은 다른 과목과는 다르다. 철학은 지식 체계가 아니라 하나의 사고방식, 이 세상에 존재하는 방식이다. ‘무엇을‘이나 ‘왜‘가 아니라 ‘어떻게‘다. - P12

마르쿠스는 늦잠을 잘 수 있었다. 그리고 정말로 평생 늦잠을 잤다. - P23

아침은 변화의 시간이며, 변화는 결코 쉽지 않다. 우리는 의식이 있는 상태를 떠나 잠이 들었다가 다시 각성 상태로 진입한다. 지리학적 용어로 말해보자면 아침은 의식의 국경 도시다. - P25

《명상록》을 읽는 것은 곧 철학하는 행위를 실시간으로 목격하는 것과 같다. 마르쿠스는 자신의 생각을 검열 없이 실시간으로 내보냈다. 고대 철학 연구자인 피에르 아도의 말처럼, 지금 나는 "인간이 되고자 단련 중인 사람"을 지켜보고 있다. 일하고 - P33

마르쿠스는 골치 아픈 사람에게서 영향력을 빼앗으라고 제안한다. 나의 삶에 영향을 미칠 자격을 빼앗을 것. 다른 사람은 나를 해칠 수 없다. "다른 사람의 머릿속에 있는 것은 나를 해칠 수 없기 때문"이다. 옳은 말씀이다. 왜 나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신경쓰는 걸까? 생각은 당연히 내 머리가 아니라 그들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인데. - P35

"지금처럼 침대에서 빈둥거리는 것은 오로지 나 자신만 생각하는 것이다." 이불 아래 남아있는 것은 결국 이기적인 행동이다.
이러한 깨달음이 마르쿠스를 움직이게 한다. 마르쿠스에게는 침대 밖으로 나갈 사명이 있다. ‘사명‘이지, ‘의무‘가 아니다. 두 개는 서로 다르다. 사명은 내부에서, 의무는 외부에서 온다. 사명감에서 나온 행동은 자신과 타인을 드높이기 위한 자발적 행동이다. 의무감에서 나온 행동은 부정적인 결과에서 스스로를, 오로지 스스로만을 보호하려는 행동이다. -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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