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 콤플렉스, 무의식...
마음의 어디까지 이해하여 보셨나요?

융 심리학의 최고 전문가 머리 스타인 박사가

'융의 영혼의 지도'를 30년 가까이 연구해 저술한

융 심리학 입문서, 《융의 영혼의 지도》로

마음의 9가지 영역을 이해하여 보세요.

도서소개 먼저 읽기 : http://goo.gl/RpLDe4


 

 

도서요약 1편. ‘나’라는 자아 


아래의 내용은 《융의 영혼의 지도》를 읽고 문예남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진 것과 이해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학문적으로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경우, 의견을 주시면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영혼으로 들어가는 입구 – 자아와 의식

“의식이란 자각하고 있는 상태를 말하며, 이 중심에는 ‘나’가 자리하고 있다. 자아는 의문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출발점이고, 우리가 영혼이라고 부르는 광대한 내면 우주로 들어가는 입구 역할을 한다.”
p. 23

누구나 한 번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시간이 옵니다. 이런 고민이 들면, ‘자아’라는 단어를 생각하게 되거나 듣게 되죠. 자아를 발견해야 한다거나, 자아를 찾는다거나 혹은 자아 존중감을 가져야 한다거나 하면서 말이에요. 아무튼 흔히 ‘나’를 말하는 단어이기도 하고 심리학에선 에고ego라 말해지기도 하는 이 ‘자아’를 알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자아가 정말 ‘나’라는 사람의 개성을 나타내 줄 어떤 완성된 존재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자아는 의식을 선택하는 존재

“자아라는 말은 의지, 욕망, 성찰, 행동의 중심으로서의 자신을 체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p.26

자아라는 것은 의식의 중심에서 질문을 던지고 사람을 행동하게 해주는 존재라고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란 질문으로 찾으려는 ‘나’가 자아라기보다 ‘나’로 하여금 ‘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하는 존재가 자아에 더 가까운 것 같네요.

^^

《융의 영혼의 지도》에선 자아를 영혼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로 의식의 거울이나 의식의 중심에서 경계를 만드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수많은 생각 중 자신이 의식할 것을 선택하거나 무의식에 넘길 것을 선택하는 존재에 가깝다는 것이죠. 이를테면 탄산음료가 마시고 싶다면 콜라와 사이다를 의식하게 하고 나머지 음료는 눈에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죠. 자아가 의식할 대상을 선택하는 일은 인간을 다른 생물과 구분하게 해주고, 개성을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다만, 그런 행위에 도덕적인 판단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네요.(어쩐지 무심한 사무직 관리 같네요.^^a)

그러나 만약 자아가 약하면 감정적 반응에 쉽게 굴복하여 선택하고 집중해야 할 의식을 쉽게 놓치기 때문에 집중력을 유지하기 어렵게 된다고 합니다. 또한 의식에 집중할 수 없으니 동기부여를 지속적으로 할 수 없어 행동의 지속성 또한 가질 수 없게 된다고 하구요.

 

선천적으로 자아가 약한 분들도 있고, 강한 분들도 있습니다. 저자 머리 스타인에 따르면 자아는 태어나면서 부여된 것이니까요. 《융의 영혼의 지도》는 어떤 자아가 우수한지, 혹은 어떤 자아가 오늘날 더 잘 수 있는지를 논하는 책이 아니므로 이 부분은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개인적인 성장 환경과 그리고 문화적인 요인에 따라 누군가는 선천적으로 힘들게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서로 이해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은 남기고 싶네요.^^

아무튼 자아는 타고난 재량에 맞게 의식을 관리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이 역할 때문에 자아를 지성과 감정이나 의지를 갖춘 완전한 인간(전인적 인간)이라고 해선 안 됩니다. 더불어 사람들은 어른이 되면서 어떤 시험을 받거나 도전을 하기도 하는데요. 이렇게 자아를 통제하는 것을 우리는 흔히 자유의지의 실현으로 보기도 하지만 그것은 오해입니다. 어떤 목적을 위해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할 말 등을 참는 행위는 자유의지와 동의어는 아니라고 합니다.

 

자아의 성장

“융에 따르면, 자아가 성장하도록 하는 것은 ‘충돌’이다. 다시 말해 이 충돌은 갈등, 곤경, 고뇌, 슬픔, 고통 등을 의미한다. 이들은 자아가 발달하도록 해준다. 사라이 신체적·정신적 환경에 적응하는 데 필요한 조건이 요구되는데, 이러한 요구 사항이란 의식의 잠재적 중심을 이용해 이 의식의 기능적 능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p. 45

여기서 이야기를 다시 처음으로 되돌리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나’는 누구인가란 질문을 언제 하시나요? 아마 환경이 변할 때 하실 것 같습니다. 특히, 뜻대로 주변 상황을 통제할 수 없고, 자신의 마음조차 뜻대로 할 수 없을 때, ‘나’는 누구인가란 질문을 새삼 던지게 됩니다. 즉, 자아가 위기를 맞이했거나 성장이 필요한 때에 그런 질문을 하지요.

앞의 인용문에서처럼 자아의 성장은 ‘충돌’을 통해 가능합니다. 충돌에는 갈등, 곤경, 고뇌, 슬픔, 고통 등이 있구요. 이런 경험은 자아가 의식을 관리하는 능력을 강화시켜 줍니다. 의지를 실행에 옮기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죠. 고생은 사서한다는 말을 하기도 하는데요. 머리 스타인의 설명으로 해석하면, 고생을 많이 할수록 의지가 강해진다는 뜻이 되겠네요. 하지만 이런 ‘충돌’이 자아가 충분히 성장하지 않은 어릴 적에 찾아오게 된다면 정신적 외상이나 해리성 장애(하단에 추가 설명)를 갖게 될 수도 있습니다.

자책을 부르는 자아의 성장

“‘자아를 통제하고 자유의지를 성취했다는 착각 속에 사는 경향이 있다. (...) 자아가 내부에서 얼마나 많이 통제받는지에 대한 자각은 거의 없는 편이다. (...) 인생 후반기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비로서 자신이 최악의 적, 가장 냉혹한 비판자, 가장 가혹한 임무 부과자임을 점차작으로 자각하게 된다. 운명이란 외부에서 명령 받을 뿐만 아니라 내면에서도 하달된다.”
p. 51

 

머리 스타인은 사회생활이 길어지고 나이가 들수록 자기 자신을 적으로 여기거나, 자신의 무능력을 탓하기 쉽다고 합니다. 자책은 자아가 ‘충돌’을 경험했을 때, 외부의 현실이나 내부의 정신을 통제하지 못했을 때 찾아오게 되는데요. 사회생활이 오래된 사람일수록 자신의 노력으로 현실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더 많이 경험하고, 그 결과 더 쉽게 자책하게 됩니다. 

스타인 박사는 많은 사람들이 자책의 원인을 외부에서 발견하지만, 내부에서 그 원인을 발견하는 사람은 아주 극소수라고 합니다. 자아는 분명 우리의 의식 중에서 의식할 것을 선택한다고 했지만, 꼭 우리가 원하는 것만을 선택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이런 경험은 수없이 많이 했을 겁니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일을 떠올린다거나, 무의식 중에 실수를 하는 행위가 내부의 정신을 통제할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합니다. 이런 경우에도 우리는 쉽게 자책을 하기도 합니다. 아무튼 자아가 ‘충돌’을 경험하면서 성장을 할수록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콤플렉스를 가질 확률이 올라가게 됩니다. 그리고 만약 자기 자신을 좀 더 깊이 이해하고자 한다면 콤플렉스가 작동하는 원리와 콤플렉스의 거주지인 무의식을 이해할 필요성이 생기게 되는 것이죠.

“사람들은 자기들이 외부 세계를 통제할 수 없음을 깨닫기는 하지만, 외부 세계는 물론 내부 정신의 과정들도 자아에 의해 통제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식하는 사람은 극소수뿐이다. (...) 이제 우리는 무의식의 영토로 들어갈 준비가 되었다.”
p. 53~54

그럼 다음 도서 요약에서는 내면의 거주자 무의식 속의 콤플렉스로 다시 인사 올리겠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융의 영혼의 지도》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해리에 대하여

《융의 영혼의 지도》에서는 해리에 대하여 아주 쉽게 설명을 해줍니다. 우리는 평소에도 수없이 해리를 경험하고 있는데요. 예로 운전을 하면서 라디오를 듣고 있거나, 걷고 있으면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행위입니다. 어떤 행동을 하고 있을 때 자아가 행동을 의식하지 않고  다른 것에 집중하고 있는 상태지요. 이런 상태는 의식과 자아가 분리된 상태이고 병리적이지 않은 해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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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명작 ‘라이온 킹’ 감독 신작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 애니메이션 예매권 증정 ev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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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가 애미메이션으로 개봉한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예언자>는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 책으로 세상에서 두번째로 많이 읽힌 책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애니메이션의 원작 도서가 유명하다는 것 외에도 이 작품엔 관심을 가질만한 요소가 몇 가지 더 있습니다. 디즈니 최고의 명장 <라이온 킹>의 감독 로저 알러스가 참여하기도 하였고 어떤 위기에도 자녀를 구하는 <테이큰>의 리암 리슨이 목소리를 연기한 것도 이 영화에 주목할 이유가 될 것 같습니다.

애니메이션 <예언자>는 칸 영화제, 안시애니메이션, 토론토 영화제 등 여러 영화제에 초청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만큼 작품성 하나는 최고라는 것이겠죠.
또한, 세계 최고의 아티스트 9명이 참여해 관람객에게 환상적인 영상미를 보여줄 예정입니다.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 예매권을 받고 싶으시다면 지금 바로 이벤트에 참여해 보세요.^^ 

*
참여는
문예출판사 블로그나
http://goo.gl/mMOuQv

문예출판사 페이스북으로 이동하신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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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로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 원작 도서명을 남겨주시면 완료입니다.! ​

기간은 2015년 9월 6일까지
당첨자 발표는 9월 7일
선정인원은 10분(1인 1매)
예매권 사용 기간은 영화 개봉하는 동안 언제든지!
(예매는 예스24를 통해 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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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가장 인생을 즐기며 살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은, 이른바 완전주의는 아니다.

바를 수 없는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요.

도저히 알 수 없는 일을 굳이 알아내자는 것도 아니다.

어느 시기가 오면 속절없이 죽어야 하는,

이 초라한 인생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평화스럽게 일하고

무던히 참고 즐겁게 살려면 어떻게 설계해야 할 것인가,

이 점을 문제로 삼고 있다.

 

- 린위탕

 

 


 

 

어떻게 인생을 즐길 수 있는가란 질문을 해결하기 위해선

자신이 무엇을 잊고 사는가란 질문을 해결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린위탕은 맹장와 장자의 의견을 빌려

인간의 착한 본성을 잊고 사는 것이 문제라고 합니다.

문명생활이 착한 본성을 회복할 수 없게 한다고 말이에요.

자신의 본성과 자신을 삶을 찾고 싶은 분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_문예남 올림

*

《생활의 발견》 연재2.

"인생을 즐기는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잊고 사는지 아는 사람"

근대 사회에서는 철학자란(가령 그러한 인간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을 받고 있거나 가장 무시당하고 있는 부류이다. ‘철학자’라는 말은 단지 사회적인 존칭에 불과하게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까다롭고 편협한 사람을 누구나 ‘철학자’라고 부른다. 또한 현실 생활에 초연한 사람도 ‘철학자’라고 불린다.

후자의 뜻이라면 다소 수긍이 안 가는 바도 아니다. 셰익스피어가 <뜻대로 하세요>라는 작품에서 터치스톤에게 “목동이여, 그대는 철학이라도 갖고 있는가”라는 말을 하는데, 그것은 후자의 뜻으로 쓰인 말이다.

이 뜻으로 철학이라고 하는 말은 자연과 인생 전반에 관한 평범하고 조잡하고 흔해 빠진 생각을 가리킨 데 불과하다. 이 정도의 것이라면 누구나 다소는 갖고 있다. 현실의 모습을 그 표면적인 가치 면에서 바라보는 것을 거부하거나 신문에 쓰여진 말을 거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소 철학자라고 할 수 있다. 즉, 그는 남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는 인간이다.

 

대개 철학에서는 깨달음에서 오는 황홀한 느낌이 항상 따르게 마련이다. 철학자가 인생을 관망할 때, 그 방법은 화가가 풍경을 바라보는 것과 흡사하며 베일이나 아지랑이 같은 것들을 통해서 바라보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현실 그대로의 또렷또렷하고 생생한 면이 다소 흐려지게 되므로 오히려 현실의 대의를 쉽사리 파악할 수 있다. 적어도 중국의 예술가나 철학자의 사고방식은 이러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철학자란 그날그날 자기 일에 파묻혀서 자기 일의 성패와 이해득실만이 절대적인 현실이라고 굳게 믿는 철저한 현실주의자와는 정반대의 입장에 서 있는 이를 뜻한다. 이와 같은 사람은 사물에 대해 의문을 갖는 일조차 없기 때문에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그러하기에 공자는 ‘어찌하면 좋을까, 어찌하면 좋을까 하고 스스로 말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나 역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고 했다. 이 말은 공자가 한 말 가운데서 여간해서 찾아보기 힘든, 지식적으로 비아냥거린 말 중에 하나이다.

이 장에서 나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중국 철학자들이 생각한 것들을 다소 이야기해볼까 한다. 이들 철학자들의 생각은 저마다 다르지만, 그만큼 일치되는 점도 있다. 인간은 현명하지 않으면 안 되며, 행복한 생활을 즐기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맹자의 생각은 적극적인 것으로 보이고, 노자의 생각은 교활한 평화주의로 보이지만 그만큼 양자의 생각은 이른바 중용(中庸)의 철학 속에 하나로 녹아들고 있다.

내가 보기에는 이 중용의 철학이야말로 중국인의 일반 종교라고 생각된다. 활동과 무활동이라는 서로 반대되는 생각은 일종의 타협, 다시 말하면 이 땅에 이룩된 극히 불완전한 천국에 만족한다는 생각에 머물게 마련이다. 이에 비로소 현명하고 명랑한 생활 철학이 생겨나고, 마침내 중국의 역사를 통틀어 최대의 시인이며 최고로 조화된 인격자라고 생각되는 도연명의 생활에서 그 전현을 찾게 되는 게 아닌가 한다.

어쨌든 무의식적으로 모든 중국 철학자들이 중요한 것이라고 한결같이 생각한 유일한 문제는 어떻게 인생을 즐길 것인가, 또 어떤 사람이 가장 인생을 즐기며 살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는 이른바 완전주의는 아니다. 바를 수 없는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요. 도저히 알 수 없는 일을 굳이 알아내자는 것도 아니다. 어느 시기가 오면 속절없이 죽어야 하는, 이 초라한 인생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평화스럽게 일하고 무던히 참고 즐겁게 살려면 어떻게 설계해야 할 것인가, 이 점을 문제로 삼고 있다.

우리는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이것이 맨 처음 부딪치는 문제이다. 그리고 이는 거의 답변이 불가능한 문제이기도 하다. 허나, 일상에서 살아가기 위해 분주히 뛰어다니고 있는 우리네 자신이 결코 참된 자기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에 우리 모두는 동감한다. 그저 목숨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만 애쓴다면 뭔가 허전하다는 것이 우리 모두의 숨길 수 없는 확신이다. 여기 무엇인가를 찾아 들판을 뛰어다니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할 경우,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향하여 ‘자아, 이 문제를 풀어보시오’라고 현명한 자는 하나의 어려운 문제를 내놓을 수가 있을 것이다. 즉 ‘저 사람은 무엇을 잃었는가?’ 어떤 이는 시계라고 말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다이아몬드 브로치라고 말할 수도 있으리라, 그 밖의 사람들도 여러 가지로 상상할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들의 짐작이 모두 틀린 뒤에 홀로 현명한 자는 그 사람이 무엇을 찾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대중을 향하여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당신네들에게 가르쳐주지. 저 사람은 무엇인지 굉장히 소중한 것을 잃은 것이란 말씀이오.” 그의 말이 옳다는 것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들은 생활에 쫓기고 있는 동안에 흔히 참된 자기의 모습을 잊고 있기가 쉬운 법이다. 그것은 버마재비를 노리는 새가 자기 몸에 닥쳐오는 위험을 알지 못하고, 버마재비는 버마재비대로 다른 먹이를 노리느라고 자기 몸이 위험한 지경에 놓여 있음을 깨닫지 못하는 것과 흡사하다.

맹자가 공자의 뒤를 이은 뛰어난 능변가였다던 것처럼, 장자는 노자의 뛰어난 언변을 이어받은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자기 스승보다 1백 년이나 뒤에 태어난 인물들이었다. 노자가 공자와 같은 시대에 태어난 인물이었듯 장자는 맹자와 같은 시대의 인물이었다. 하지만 맹자와 장자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는 생각이 같았다. 즉, 인간은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까맣게 잊고 있는데, 철학이 추구해야 할 것은 잃어버린 것, 여기서는 맹자가 주장하는 이른바 ‘어린이의 순진한 마음’을 발견하거나 다시 되찾는 데 있다고 하였던 것이다. 맹자는 말하고 있다. ‘위대한 인물이란 어린이의 순진한 마음을 잃지 않는 사람을 뜻함이다.’ 맹자는 문명이 발달한 기교적인 생활이 인간이 타고난 젊고 싱싱한 마음에 끼치는 영향을 숲의 나무를 마구 자르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한때 우산(牛山)의 숲은 매우 아름다웠다. 허나, 큰 도시 근처에 있어 나무꾼들이 마구 나무를 자르니 어찌 더 이상 아름답다고 할 수 있을까? 밤과 낮이 숲에 휴식을 주고, 비와 이슬이 계속해서 땅을 기름지게 하여 땅에서 쉴새없이 새싹이 돋아나 이제 소와 양 떼들이 마구 거닐게 되었다. 그 뒤로 우산은 저와 같이 벌거숭이가 되었으니, 사람들은 이를 보고 우산에는 일찍이 아름드리 나무가 있었던 일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이 벌거벗은 우산의 지금 모습이 저 산이 지닌 참다운 본성이었을까? 헌데, 인간에게도 남을 사랑하는 마음과 옳은 것을 추구하는 정신이 어찌 없겠는가? 그러나 나무꾼이 도끼로 매일 나무를 찍어내는데 어찌 자연이 본래 타고난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분명히 말하건대 낮과 밤이 상처를 아물게 하고 새벽의 신헌산 공기가 몸을 기름지게 하여 건강을 유지하게 한다고 하나, 인간이 낮에 행한 악(惡)은 이를 다 소용없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인간이 타고난 착한 본성에 쉴새없이 도끼질을 하므로 밤 동안에 취한 휴식과 건강의 회복이 소용이 없게 되며, 밤사이에 취하는 휴식이 전혀 효험이 없게 되는 날에 그 인간은 짐승과 별로 다를 바 없는 처지가 될 것이다. 사람들은 그가 짐승과 같이 행함을 보고 그에게는 일찍이 인간다운 참된 마음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이 그가 타고난 진짜 본성이었을까?

- 린위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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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활의 발견》 연재 3. (준비중)

링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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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활의 발견》 서점가기

알라딘 : http://goo.gl/mUEY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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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위탕(林語堂, 1895~1976)


1895년 중국 푸젠 성 룽시에서 그리스도교 장로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엄격한 그리스도교로 교육받고 신학교를 졸업하기는 했으나, 그리스도교에 회의를 갖게 되어 신앙을 버리고 하버드대학, 라이프치히대학에서 유학, 라이프치히대학에서 언어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1935년 수많은 영문 저서의 첫 번째 작품 《내 나라 내 민족》을 출간해서 중국 문명의 품격을 높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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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가 부드러운 <이소>라든가

오마르 카이얌의 책 한 권을 들고

애인과 함께 강둑으로 그 책을 읽으러 간다.

그때 하늘에 아름다운 구름이 떠 있다면

구름을 읽고 책은 잊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으면 책과 구름을 다 같이 읽어라.”

- 린위탕



“용기에는 자기의 직관적인 판단을 호소하는 하나의 방법이 있다”

‘자신의 생각을 말할 용기’를 가지고 싶은 분에게,
‘자신의 생각을 나누고 싶은 분’을 가지고 싶은 분에게,
중국의 문필가 린위탕(임어당)의 글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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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위탕(林語堂, 1895~1976)

1895년 중국 푸젠 성 룽시에서 그리스도교 장로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엄격한 그리스도교로 교육받고 신학교를 졸업하기는 했으나, 그리스도교에 회의를 갖게 되어 신앙을 버리고 하버드대학, 라이프치히대학에서 유학, 라이프치히대학에서 언어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1935년 수많은 영문 저서의 첫 번째 작품 《내 나라 내 민족》을 출간해서 중국 문명의 품격을 높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저서 중 《생활의 발견》은 유머와 풍자로 자신의 사상을 명쾌하고 유쾌하게 알린 것으로 유명합니다. 행복이나 인생이 무엇인지 쉽게 말해보기도 하고, 공자와 같은 성인을 맹비난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생각이 철학에서 말하는 진리가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서 일까요? 진리보다 자신이 어떻게 세상을 보고 있는가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린위탕. 그의 자유분방한 글쓰기만큼 한국독자의 의견도 참 다양합니다.

쉽게 읽을 수 있는 철학책,
읽고 나서 기억에 남는 건 없지만, 좋은 책,
유복한 사람의 이기적인 이야기,
풍요로운 삶을 추구하는 보수주의자의 책,
내 생각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지만 그래도 읽어볼 책,
내 편견을 버리게 할 책,
잃어버린 시간을 돌아보게 하는 책 등
다양한 평이 있습니다.

이 평들이 무엇을 의미하든 린위탕의 용기 있는 글쓰기가 부른 성과인 것 같습니다.

서문을 읽고 싶은 분은 아래 내용을 참고하여 주세요.^^

본문 연재로 가는 링크는 이 글의 하단에 있습니다.

_ 문예남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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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발견》 연재1. 저자 서문,

"용기에는 자기의 직관적인 판단을 호소하는 방법이 있다"

 

이 책은 사상과 인생에 관한 나의 체험을 밝힌 개인적인 증언이다. 이 책에 밝힌 나의 입장은 객관적인 것도 아니고, 영구불변의 진리도 아니다. 실제로 나는 철학에서 객관성을 주장하는 것을 오히려 경멸하는 사람이다. 객관적인 진리보다는 사물을 어떤 입장에서 보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서정시적(抒情詩的)이라는 말을 개성이 강항 독자적 견해라는 뜻으로 간주하여, 이 책을 ‘서정 철학’이라고 부르고 싶지만 지나친 미명(美名)인 듯싶어 그만두기로 한다. 너무 높은 곳을 겨누게 되면 독자들에게 지나친 기대를 갖게 할 염려도 있고, 무엇보다 내 사상을 구성하고 있는 주요 골자는 서정시적인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산문이다. 때문에 이 책은 누구나 손쉽게 읽을 수 있는 자연스럽고 쉬운 글이 될 것이다.

 

너무 높은 곳을 겨누지 않고 땅에 매달려 흙과 같은 존재가 되어버리더라도 나는 매우 만족스럽게 여길 것이다. 내 마음은 흙과 모래 속을 즐겁게 뛰노는 것으로 행복을 맛보고 있다. 이 땅 위의 생활에 도취될 때 사람들은 우화등선(羽化登仙)했나 여겨질 만큼 마음이 경쾌해지는 경우가 있지만, 실제에 있어 우리네 육신은 땅 위 6척(약 180cm)도 떠나는 일이 드물다.

 

나는 또한 플라톤의 <대화편> 같은 형식으로 써볼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이러한 형식은 일 가운데 무언가 뜻 있는 듯한 이야기를 적거나, 아름답고 조용한 사상의 목장을 이리저리 거닐 때에는 매우 편리한 형식이 될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어찌된 셈인지 그런 대화 형식을 취하는 게 싫었다. 그 이유는 내 자신에게도 분명치 않은데 이런 형식의 문학은 오늘날 그다지 유행하고 있지 않고, 읽는 사람도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따지고 보면 저자란 자신의 책이 널리 읽혀지기를 바라는 법이다.

 

그러나 내가 여기서 말한 대화란 신문에 실리는 인터뷰 기사의 문답과 같은 것이 아니다. 여기서 대화란 한 개의 글이 몇 장씩 계속되는, 사실 유쾌하고 길게 주고받는 한가한 담화를 뜻하는 것으로 돌아가는 것 같으면서도 전혀 뜻밖의 곳에서 지름길로 빠져 맨 처음의 논점으로 되돌아오는 형식의 글을 말한다. 마치 담장을 타고 넘어 먼저 집으로 돌아와 나중에 온 동행의 친구를 놀라게 하는, 그런 식의 글을 뜻한다. 나는 뒷담장을 넘어 집에 돌아오거나 샛길을 거닐거나 하는 것을 여간 즐기는 게 아니다. 적어도 내 벗들은 내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라든가, 그 근처 시골 지리에 밝다는 것을 인정해줄 테지만 나는 굳이 그런 짓을 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결코 독창적인 글을 쓰지는 않았다.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사상은 동서의 많은 사상가들이 몇 번이고 생각했고, 표현한 것들이다. 동양에서 빌려온 것은 이미 동양에서는 낡아 빠진 진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나의 사상이기도 하다. 그 사상이 내 머릿속에 뿌리를 박았다면 본래 내 속에 있는 무엇인가 독창적인 것의 표출로 처음에 내가 그 사상에 접했을 때 내 마음이 본능적으로 찬성의 뜻을 나타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들 사상을 사상으로서 아끼고 존중한다. 사상을 말한 인물의 가치 때문이 아니다.

 

사실 나는 저술에서도, 독서에서도 샛길을 걸어왔다. 이 책에서 인용한 글들의 저자 대부분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이름들이어서 중국문학을 전공하는 교수들로서도 전혀 뜻밖의 사람들이다. 간혹 유명 인사의 이름도 나오지만, 그건 인물들의 사상을 직관적으로 승인하지 않을 도리가 없기에 빌려 쓴 것이지 저자가 유명해서는 아니다. 이름도 없는 싸구려 고본(古本)을 사들여 그 속에서 혹시 숨은 보배를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조사하는 것이 내가 갖고 있는 버릇이다. 만일 문학을 가르치는 교수들이 내 사상의 출처가 어딘지 알게 된다면 이런 속물이 있나 하고 어이없어 할 것이다. 그러나 보석상의 진열장에서 커다란 진주를 구경하는 것보다도 쓰레기통 속에서 작은 진주를 찾아내는 편이 훨씬 유쾌한 일이라고 나는 늘 생각한다.

 

나는 심원한 사상가도 아니요, 많은 책을 잘 읽는 편도 아니다. 너무 지나치게 꼼꼼히 책을 읽다가는 옳은 것은 옳고 틀린 것은 틀리다는 것을 뚜렷하게 분별하지 못하게 된다. 나는 로크나 흄이나 버클리의 저서들을 아직 읽지 못했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지도 않았다. 전문가의 입장에서 본다면 내가 닦은 학문의 방법과 훈련은 모두 그릇된 것이리라. 나는 철학을 읽지 않고, 직접 인생을 읽는 데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철학 연구치고는 파격적인 것이라 할 수 있으니, 결국 그릇된 방법이라 할 수 있으리라.

 

여기 내가 간직하게 된 철학적 지식의 출처를 몇 가지 예로 들어볼까 한다. 우선 우리 집 식모인 황씨 부인, 그녀는 중국의 양가 출신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여러 생각들을 모두 갖고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굉장히 입이 험한 소주(蘇州)의 여자 뱃사공, 상해의 전차 차장, 우리 집 요리사의 아내, 동물원의 사자 새끼, 뉴욕 중앙공원의 다람쥐, 한때 그럴듯한 비평을 한 일이 있는 어느 배의 갑판 보이, 천문란(天文欄)의 필자(10년 전쯤에 작고했다), 신문 매점으로 들어오는 온갖 뉴스, 그리고 이 밖에 인생에 대한 우리들의 호기심과 자신의 호기심을 억제하지 않으려고 하는 작가라면 어떤 작가든 모두 좋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을 하나하나 들자면 한이 없다.

 

이와 같이 나는 철학의 학술적인 훈련이 결여된 사람이다. 그러하기에 더욱더 철학 책 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정통 철학자란 무슨 일에 대해서건 어렵게 말하는 법이다. 그러니까 그와 같은 철학을 그만두고, 무엇이든 그 보상을 할 생각을 갖는다면 무슨 일이거나 아주 또렷하게 또 단순하게 보이게 마련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잘 될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내 태도에 대해서 세상 사람들은 이러니저러니 말이 많을 것이다. 내가 쓰는 용어가 정통 철학자의 것처럼 길지 않다느니, 모든 일을 너무나 알기 쉽게 해버린다느니, 심지어 신중하지가 못하다느니, 철학의 신성한 전당에 들어와서도 낮은 소리로 속삭이거나 의젓한 걸음걸이로 걷지 않는다느니, 자못 그럴듯한 엄숙한 표정을 짓지 않는다느니, 여러 가지 트집거리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용기라는 것이야말로 모든 근대 철학자들에게서 가장 찾기 어려운 미덕이 아닌가 싶다. 허나 나는 항상 철학의 성역 바깥만을 맴돌았고, 그것이 바로 나에게 용기를 가져다주었다. 나는 감히 말하고자 한다. 여기에 자기의 직관적인 판단에 호소하는 하나의 방법이 있노라고. 자기 스스로의 사상을 생각해내고, 독특한 판단을 정하고, 어린이와 같이 자연스럽게 세상에 발표하는 그런 방법이 있다.

 

그러면 세계 어딘가에 나와 똑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내 의견에 동의해준다. 이런 방법으로 자기의 사상을 가꾸어낸 사람은 많은 다른 저작들이 이러니저러니 논하고 있지만 결국은 자기가 한 것과 똑같은 말을 했고, 자기가 느낀 것과 똑같은 느낌을 가졌었다는 것, 그리고 아마도 자기보다 우아하고 보다 쉬운 말로 표현했다는 사실을 자주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랄 것이다. 이때 그는 고인(古人)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요, 고인은 그가 옳다는 것을 입증해주게 되어 양자는 마음의 벗으로서 영원히 맺어지게 된다.

 

이리하여 나는 이들 옛 어른들, 특히 중국 고대의 마음의 벗들에게 힘입은 바 크다. 그러니까 이 책이 쓰여지기까지 많은 고대의 협조가가 있었던 셈이다. 모두가 저다운 사람들이어서 나는 그들에게 깊은 호감을 갖고 있거니와 그들 역시 내게 호의를 가져주었으면 한다. 왜냐하면 가장 참된 뜻에서 이분들의 마음은 항상 나와 함께 있어주었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진심으로부터 이상적이라고 믿는 정신적 교류의 유일한 형식이다. 생각해보라, 여기 두 사람이 있어서 오랜 세월을 두고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느낌을 갖고 서로가 완전히 상대방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 책을 집필함에 있어서 나를 가르쳐주고, 나에게 충고해주고, 여러 모로 각별히 힘을 빌려준 몇 사람의 마음의 벗이 있다.

 

즉, 8세기의 백낙천, 11세기에 살았던 소동파, 16세기 및 17세기에 있어 독창적인 생각들을 가졌던 인물의 대집단, 그리고 로맨틱하고 능변이었던 도적수(屠赤水), 우스겟소리 잘하고 독창적인 데가 있던 원중랑(袁中郞), 심원웅대한 사상을 가졌던 이탁오(李卓吾), 민감한 궤변가였던 장조(張潮), 쾌락파였던 이립옹(李笠翁), 유쾌하고 명랑했던 노(老) 쾌락주의자 원매(袁枚), 허풍쟁이이자 해학가이며 걸핏하면 흥분하던 김성탄(金聖嘆). 모두 한결같이 인습에 사로잡히지 않은 인물들이다. 또한 너무나 독창적인 판단에 뛰어나고 지나치게 다감한 인물들이었기에 정통파의 비평가들에게는 호감을 사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또한 유학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도덕적’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 선량하고, 막상 한마디로 선량하다고만 하기에는 너무나도 도덕적인 인물들이었다. 불과 몇 안 되는 빼어난 인물들이었기에 이러한 인물들이 태어난 데 대핸 후세 사람들의 기쁨 또한 크고, 그들의 가치는 더욱 진지하게 평가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 이름이 거론되지 않은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나 그렇더라도 그들의 정신은 늘 이 책 속에 면면히 흐르고 있을 것이다. 이 인물들이 중국에서 그들이 지닌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게 되는 것은 시일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좋은 글로써 나의 마음을 끄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말하려는 생각을 너무나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사람들을 중국의 아미엘(스위스 철학자)이라 부르고 있다. 즉, 입은 무겁지만 이야기할 때문 언제나 센스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의 센스에 경의를 표한다. 또한 모든 나라, 모든 시대에서 찾아볼 수 있는 유명한 아논(Anons)의 친구들 속에 끼워주고 싶은 그런 사람들도 있다. 이 같은 사람들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위인의 아버지처럼 영감에 사로잡히면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 이상의 훌륭한 말을 입에 담는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말한 사람들보다 위대한 인물이 몇 사람 있다. 마음의 벗이라기보다는 내가 스승으로 받드는 사람들로서, 인생과 자연에 대한 맑고 투명한 경지에 이르러 인간미가 담뿍 깃들여 있으면서도 아주 신성하고 자연히 솟아나오는 슬기는 천의무봉(天衣無縫) 털끌만큼도 인위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이러한 인물로 장자가 있고 도연명이 있다. 그 마음의 소박함은 도저히 시시한 인물들이 따를 바가 아니다. 나는 자주 이 인물들이 한 말을 인용하여 직접 독자에게 들려주었거니와 그 고마움을 잊어버린 것은 결코 아니다. 동시에 내 생각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질 때에도 실은 이들 선철(先哲)을 대신해 내가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과의 마음의 교류가 오래되면 될수록 그들의 사상에서 받는 은혜는 더욱더 친화의 도를 더하여 내 자신도 알 수 없을 만큼 혼연일체가 되어간다. 마치 좋은 집안에서 자라난 사람이 부모로부터 받는 감화와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이러이러한 점이 아주 비슷하다고 꼬집어 말할 수가 없게 된다.

 

또한 나는 중국인으로서만이 아니라 근대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근대인의 하나로서 이야기하려고 애쓴 터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면 고인의 사상의 충실한 소개자로서 이야기했을 뿐 아니라 근대 생활에서 내 자신이 스스로 체험하여 얻은 것을 말하려 한 것이다. 이러한 태도에 결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말하면 더욱더 진지한 태도로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러하기에 고인이 한 말에 대한 취사선택은 완전히 나의 자유재량에 의한 것이다. 어느 한 시인이나 어느 한 철학자의 전모를 여기다가 옮기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이 책에 쓰여진 증거에 의하여 고인을 판단할 수는 없는 일이다.

 

따라서 나는 언제나 그러하듯 이와 같은 말로 이 머리말을 끝내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즉, 이 책의 가치는(가령 가치가 있다면) 주로 내 마음의 벗의 유력한 시사에 힘입은 것이며, 만일 내 판단에 부정한 점이나 불완전한 점이나 미숙한 점이 있다고 한다면 그 잘못에 대한 책임은 오로지 나 혼자 져야 될 성질의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리처드 J. 윌쉬 부부에게, 첫째로 이 책을 쓰도록 착상을 갖게 해준 데 대하여 , 둘째로 유익하고 솔직한 비평을 해준 점에 대하여 감사하는 바이다. 또한 원고를 인쇄에 붙이는 데 필요한 모든 준비와 교정에 있어서 협조해주신 휴 웨이드 씨에게 감사하고, 색인을 만들어준 릴리안 페퍼 양에게 대해서도 고맙다는 뜻을 표시해야 겠다.

 

- 린위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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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활의 발견》 연재 2. 자신을 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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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한국 최초로 통시적인 우리 출판역사를 담은 책으로, 
방대한 자료와 냉철한 분석으로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조망한다!

《현대한국출판사》의 저자 이두영은 대한출판문화협회 사무국장, 한국출판협동조합 전무이사 등을 역임했을 뿐 아니라 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초빙교수, 원광대학교 겸임교수로 25년간 후진을 양성해온 한국출판의 산증인이다. 그는 51년 동안 출판계에 봉직해온 자신의 경험과, 출협의 《25년사》를 비롯해 8개 단체의 역사 12종을 편찬하면서 상고(詳考)하고 집적한 방대한 기록을 바탕으로, 이번에 문예출판사에서 현대 한국출판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정리한 《현대한국출판사》를 출간했다. 
이 책은 1945년 광복기의 출판 불모지에서 6·25전쟁이라는 전란을 겪고 오늘날 세계 10위권의 출판대국으로 우뚝 서기까지 한국출판이 어떻게 이 모든 시련을 극복하고 고도성장을 이룩했으며, 그 성장동력이 무엇인지 짚어본다. 이처럼 《현대한국출판사》는 올바른 역사인식의 바탕 위에서 과거의 역사적 실체를 올바로 이해하고 그것이 오늘날 출판활동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한다. 또한 한국출판이 겪고 있는 장기적인 침체의 늪에서 하루빨리 벗어나려면 역사연구를 통해 지혜를 찾으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 출판은 8·15광복 직후에는 조국건설의 방편이었고, 6·25전쟁 중에는 희망을 찾아주는 정신적 지주였으며, 60년대에는 인재양성의 도구였다. 70년대 들어서서는 사회과학 서적 출판으로 지식공급에 앞장섰고, 80년대에는 출판자유 확보 노력이 새로운 사고의 지평을 열었으며, 오늘날에는 IT 영역에서도 선진대열에 진입해 세계화 시대에 영향력을 주고 있다. “과거를 되돌아보는 것은 앞날을 도모하기 위함이다”라는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은 훌륭한 우리 출판역사를 되돌아보게 해줄 뿐 아니라 현재의 출판이 나아갈 방향을 설정하고 앞으로도 자랑스러운 출판역사를 만들어나가는 데 작은 계기가 되어줄 것이다. 
정확하고 방대한 자료를 통해 한눈에 보는 한국 출판산업의 발전사, 출판역사를 개척해온 대표 출판인들에 관한 비화(秘話),  교과서 출판의 역사, 출판유통시스템과 도매상들에 관한 이야기, 잡지의 진화 과정,  상업출판과 베스트셀러, 출판의 디지털 혁명에 관한 전망 등을 총망라한, 진정한 역사서로서 가치가 있을 뿐 아니라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도 많이 담은 책이다. 부록으로 1945년에서 2010년까지의 베스트셀러 목록을 모두 수록하고 있기도 하다. 
《현대한국출판사》는 일본어로 번역되어 2015년 7월, 일본  미디어펄 출판사에서 한국과 동시출간되었으며, 중국에서도 출판계약을 맺고 현재 번역 준비 중이다.  

이 책의 집필의도와 목표

① 종합적으로 출판역사를 다룬 최초의 역사서로 도서, 잡지와 교과서, 전자출판을 모두 아우르는 총체적 출판통사를 목표로 삼았다. 
② 출판활동의 산물인 책의 역사를 평가하고자 했다. 
③ 출판을 하나의 산업으로 보고, 우리 출판이 어떻게 산업화 과정을 밟아왔으며 앞으로 지속적인 성장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보완해나가야 할지 생각해보고자 했다. 
④ 사회·경제발전이 어떻게 출판활동을 변화시켰는가 하는 것과 출판이 우리 사회·경제 발전에 기여한 바를 규명해 출판의 기능과 역할, 책임을 사회·경제사적으로 살펴보는 기회로 삼고자 했다. 
⑤ 출판의 기술 발달사를 고찰하고 전자책 시장의 성장 추이와 미래도 살피며 출판산업에 미칠 영향을 가늠하고자 했다. 
⑥ 우리 출판사(史)를 장식한 걸출한 인물들의 창조적인 업적을 집중조명하고자 힘썼다.(여러 가지 제약으로 인해 이미 작고했거나 완전히 은퇴한 출판인들 가운데서 1960년 이전에 출판에 손을 대기 시작한 인물만을 대상으로 한정했다.)
⑦ 우리 출판문화의 정체성을 규명하고자 했다.

 


■ 차례

 

책머리에

 

제1장  현대 한국출판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한국출판의 역사적 기저
연구방법론 

 

제2장  조국건설의 깃발을 든 출판인들
격동과 혼란의 해방공간
현대출판의 역사를 개척한 출판인들
연부역강한 신진 출판세력들
지방에서 몸을 일으킨 출판인들
열정의 시대, 광복기의 출판환경
해방기의 출판활동과 출판계
교과서 출판으로 시작한 현대출판
백가쟁명의 잡지계
일원공급 체제를 갖추어가는 출판유통시스템
출판시장의 기반을 넓혀가는 독자층 

 

제3장  전쟁의 참화를 딛고 새로운 출발
시련과 좌절로부터의 탈출을 위한 몸부림
파탄에 직면하는 출판계
전쟁의 폐허 속에 탄생한 출판인들
신화를 써가는 신예 잡지인들
출판유통시스템은 어떻게 붕괴되었는가
50년대 출판의 한계와 기대 

 

제4장  출판의 대중화 시대 개척
혁신과 도전, 돌파구를 열다
간섭과 자율의 틈바구니에서 성장하는 출판문화
진화하는 잡지출판 

 

제5장 출판산업화에의 열망
혁신전략으로 자력갱생을 도모
출판의 과학화와 장기발전 전략의 실현
문화공보부 신설과 출판정책 

 

제6장 상업출판 시대의 화려한 개막
‘이륙’하는 출판산업
세계 10대 출판대국 진입
민주화 시대의 잡지진화
출판산업의 전환기적 상황과 대응
정보 네트워크형 출판유통시스템의 시도와 실패
다매체 경쟁 속의 독서 실태 

 

제7장 한국출판 선진화의 길
세계화 시대의 미래전략
혁신의 당면과제와 방향

도표 차례
참고문헌
부록-베스트셀러 목록(1945~2010년)
찾아보기


■ 본문 엿보기


■ 우리나라 주요 산업이 정부 주도 공업화와 수출 드라이브 정책에 의해 발전해온 것에 비하면 우리 출판은 이렇다 할 정부 지원 없이 순전히 우리 출판인들만의 힘으로 자력갱생을 도모해 오늘의 놀라운 업적을 이룩했다는 점에서 더욱 이채롭다. 그렇다면 우리 출판산업이 이렇게 비약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배경과 요인은 무엇인가.  (…)  모험과 도전정신을 발휘해 빛나는 역사를 창조한 출판인들의 투철한 철학과 예지, 탁월한 지도력과 용기가 없었다면 이와 같이 빛나는 역사는 이루어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출판된 책들의 다양성, 출판 형태의 창의성, 그리고 지성과 감성의 세계적 교류에 어느 선진국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큰 성취를 이루어냈다.  -<제1장 현대 한국출판을 어떻게 볼 것인가>, 25쪽

■ 서적소매상 업계를 보면 (…) 1948년 4월 현재 남한에만 525개 서점의 명단이 파악되고 있다. 신속하게 서점망이 확보된 셈이다. 당시 인구비례로 보면 서점 수는 약 3만8,000명당 하나 꼴이다. 당시의 소득수준이나 문자해득률, 독서인구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할 때, 2만6,500명당 서점 하나가 있는 오늘의 현실(2010년 현재)에 비해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  이만한 수의 서점이 짧은 기간에 생겼다는 것은 당시 출판업이 얼마나 역동적으로 발전해가고 있었는가를 보여주는 징표의 하나가 아닐 수 없다.  -<제2장 조국건설의 깃발을 든 출판인들>, 145쪽

■ 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시기에 피난지에서 잡지를 발행한다는 것은 기적을 낳는 일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인쇄시설은 고작 타블로이드판 4쪽짜리 신문도 제대로 발행하기 어려운 형편이었다. 글을 쓸 수 있는 필자들도 산지사방으로 피난 중이라서 원고수집도 지극히 어려웠다. 그런데도 몇몇 잡지가 날개 돋친 듯이 팔리는 이변을 낳았다. 광복 이후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의 혼란스런 잡지계 분위기에 비해, 내용도 충실해지고 쪽수라든가 용지의 향상 등 체제도 갖추는 등 면모를 일신한 잡지출판의 신기원을 이룩했다. 《신태양》이나 《희망》은 종합지를 지향하면서도 오락이나 읽을거리를 많이 게재했다. 그러니까 이 두 잡지는 대중오락지라 할 수 있는데 창간되자마자 놀라운 판매성적을 보였다. 《학원》과 《사상계》도 독자들의 뜨거운 환영을 받아 그 역사가 70년대까지 이어지면서 잡지의 위상을 뛰어넘어 한국 문화의 가장 창조적인 실체가 된다. -<제3장 전쟁의 참화를 딛고 새로운 출발>, 257쪽 
  
■ 정부수립과 6・25전쟁을 거치면서 우리나라엔 ‘금서(禁書)’가 무더기로 생겼다. 사회주의 이론서나 그 비판서는 말할 것도 없고 납(월)북 학자와 문인들의 저작물까지 출판, 휴대, 보관조차 금지시켰다. ‘금서’ 딱지가 붙은 이런 유(類)의 책은 읽어서도 안 되고 심지어는 그 저자의 이름조차 함부로 거론해서는 안 되는 매우 위험스러운 대상이었다.  (…)  언론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던 80년대의, 출판을 통한 반(反)독재 민주화운동은 출판계의 새로운 인력으로 투입된 해직기자와 제적생 출신들로 형성된 이른바 ‘운동권’ 출신 젊은 출판인들을 중심으로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당연히 혹독한 희생이 뒤따랐다. 문민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끊임없이 야기된 압수와 구금, 출판사의 등록취소 조치에 대항하며 벌였던 출판자유의 쟁취와 출판영역을 확대시키기 위한 극열한 투쟁은 출판활동의 차원을 넘는 민주화운동, 바로 그것이었다. 이와 같은 ‘출판 민주화운동’의 흐름은 시간적 차이를 두고 단계적으로 변화, 발전되었다. -<제6장 상업출판 시대의 화려한 개막>, 377~378쪽

■ 선진국이란 출판산업의 경쟁우위를 장악하고 있는 나라를 가리킨다. 선진국이 되려면 강해야 한다. 강하다는 것은 출판활동의 양과 질적인 면에서 지속적으로 성장을 이끌어갈 힘을 말한다. 그 힘은 곧 핵심경쟁력이요 성장동력이다. 어떻게 하면 세계 출판시장에서 명실공히 경쟁우위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① 출판환경 변화의 의미를 올바로 파악해 패러다임을 바꾸고, ② 이에 대응하는 전략을 세워, ③ 그 전략을 실현하는 데 가장 효율적인 전술을 운용할 수 있도록, ④ 우리 실정에 맞는 독창적인 발전 모델을 실천하는 것이다. -<제7장 한국출판 선진화의 길>, 459~460쪽

 

 

■ 지은이 소개

 

이두영李斗暎

1945년 서울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에서 출판학을 전공했다. 1964년 4월 출판계에 입문한 이래 만 51년간 대한출판문화협회 상무이사 겸 사무국장, 한국출판협동조합 전무이사, (주)북센 전무이사, (주)메타북스 대표이사로 봉직했다. 그사이에 한국문헌번호(ISBN, ISSN) 운영위원, 한국도서보급(주) 감사, (재)출판도시문화재단 기획위원, 범우출판문화재단 상임이사, 유네스코아시아문화센터(도쿄) 도서개발전문위원, 국제출판협회 국제위원으로 활동했다. 또한 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초빙교수, 원광대학교 겸임교수로 25년간 후진을 양성하면서 경험을 이론화하고 이론을 실무에 접목하며 저술활동을 해왔다.

│저서│
《구미의 출판유통》(1982), 《출판상황론》(1990), 《세계의 출판》(1991, 공저), 《출판유통정보시스템 구축방안》(1992), 《출판유통론》(1993), 《정보화 시대의 출판마케팅 전략》(1999, 번역), 《우리출판 100년》(2001, 공저), 《독일의 통일과 출판시장 통합연구》(2006, 편저), 《러시아 출판산업 혁신의 성과와 전망》(2007, 편저), 《서점정보화 및 관리》(2007, 공저)와 여러 출판단체사 등 출판연구서 28권을 집필했다. 

■ 일본 출판미디어 펄 통신 NO. 56 (한국어 번역문)

 

《한국출판발전사》(1945~2010), 이두영 저, 다데노 아키라(舘野 晳) 역

이 책의 집필 동기는, 1945년의 광복이후 현재까지 출판의 역사를 ‘현대’로 보고, 지금까지 70년간의 한국출판이 어떻게 지속적인 고도성장을 이룩했는가, 그것을 가능하게 한 성장동력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런 성장요인을 어떻게 현재에 되살릴 수 있는가에 대해서 역사인식을 명확히 해야 한다.


첫째, 도서, 잡지, 교과서, 전자출판과 유통과 독서추진운동을 두루 망라한 출판통사를 겨냥했다. 이와 같이 종합적으로 한국출판의 역사를 다룬 역사서는 이것이 처음일 것이다.


둘째, 출판활동의 산물인 서적의 역사를 평가하려고 힘썼다. 책은 언제나 특별한 존재였다. 책은 시대의 거울이며 그 시대 문화의 결정체이므로, 책에 의해 형성된 그 시대의 출판문화는 그 시대 정신을 나타내는 역사 자체인 것이다.


셋째, 출판을 하나의 산업으로 보고, 한국출판이 어떻게 산업화과정을 거쳤는가, 앞으로 지속적인 성장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보완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를 다각적으로 탐구했다. 시장은 언제나 예측할 수 없는 다이내믹한 움직였고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했다.


넷째, 사회·경제발전이 어떻게 출판발전을 변화시켰는가, 출판이 우리 사회·경제발전에 기여했는가를 규명하고, 출판의 기능과 역할, 책임을 사회·경제사적으로 살피는 기회로 삼았다.


다섯째, 출판기술발달사이다. 이 또한 중요한 역사적 테마이므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대상이기 때문에 활판인쇄로부터 디지털혁명에 이르는 과정에서 출판·편집·제작기술 발전과 유통혁신, 인터넷보급에 따른 문자정보의 유통체계 확산 및 그 시장의 성장과 미래전망도 주의 깊게 살폈다.


어떠한 경우에도 역사의 주인공은 인간이다. 빛나는 한국출판사를 장식한 걸출한 인물의 창조적 한국출판의 아이덴디티를 규명하려고 한 것도 이 책을 집필하게 된 또 하나의 이유였다.


이 책이 한국의 현대출판 역사를 이해하고 어려움에 직면한 출판산업을 발전시키는데 자그마한 실마리가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이 책이 저자의 친구인 다데노 아키라(舘野 晳)씨의 번역으로 일본의 출판관계자들에게 읽히고, 출판의 미래를 생각하는 다딤돌이 될 수 있다면 다행이다.

- 값 : 5,000円

■ 일본 출판미디어 펄 통신 NO. 56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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