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 숲에 갔다
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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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같은 사람들

스무 걸음만 들어가도 한치 앞을 분간 할 수 없는 숲.

숲에는 연구소가 들어서고 관광명소로 인기를 끌며 시골 작은 동네는 숲으로 먹고살게 되었다.

숲으로 먹고 산다? 어쩐지 건강하고 힘찬 분위기지만 빛 뒤에 그림자가 따라다니듯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그림자는 숲이 있을 때는 잘 드러나지 않았다.

숲이 떠나고, 평범해 보였던 마을 사람들은 살 길을 찾기 위해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다.

환경에 걸맞게 변화하는 것이니 진화라 표현해야 할까?

그러나 아무리 환경에 맞추어 변화하는 것이라 해도 변화를 즐기는 인간은 드물다.

평범한 인간은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고 싫어한다.

얼핏 보면 등장인물들은 지극히 평범해 보인다.

누구보다 안정을 추구하는 사람들.

그러나 때로 안정을 위해 그것과 거리가 먼 일을 때때로 해치우기도 한다.

그런 때 그들은 대개 수동적이다.

마치 숲의 나무들처럼 말이다.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숲과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들.

숲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숲과 함께 동네에 뿌리 내린다.

역설 혹은 모순

“건강은 곧 균형이오. 명심하시오.” -218

모든 소설에 들어가는 것이라 하면 할 말은 없지만,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주된 심상은 역설과 모순 속에 감겨있다.

2부 끝에서 박인수는 사무장과 ‘산불 대피요령’에 대한 이야기로 통화를 한다.

“피하는 겁니다.”

“피해요?”

“마구 달리는 겁니다. 이미 산불이 지나간 자리로요. 산불은 지나간 자리로는 다시 오지 않으니까요. 그러니까 박인수 씨는 산불이 지나간 자리를 찾기만 하면 됩니다. 그거야 간단히 찾을 수 있죠. 잔뜩 그을려 있을 테니까요. 그렇지 않습니까?” -240

그러나 박인수는 사무장의 친절한 조언에도 불구하고 산불이 지나간 자리로 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불이 활활 타들어 가는 불구덩이로 몸을 던진다.

벌이 꽃을 찾아가듯, 술중독자는 술을 찾아 나선다.

그렇게 사건이 시작된다.

공포는 만들어진다

“유령의 정체를 보니 마른 억새풀이었네.”

사무장은 박인수까지 이하인의 뒤를 따를까 궁금했는지 바쇼라는 시인의 말을 빌려 이런 말까지 주워섬긴다.

‘어렸을 때 무서운 소리에 놀라 귀신인줄 알았는데, 실은 아무것도 아니더라!’

어린 시절, 한 번도 이런 일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밤에 주위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큰 소리에 놀라 허둥대던 일.

날이 밝으면 아무것도 아닌 풀들의 춤사위가 밤에는 공포로 변신하곤 한다.

작가는 이렇게 공포가 만들어진다고 이야기 한다.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느끼는 가장 큰 공포는 잊혀지는 것이라 한다.

“…… 하지만 마을 사람들이 박인수 씨를 모른다고 하면 박인수 씨도 없는 사람이 됩니까?” -318

책에서 모든 것을 조종하는 것으로 나온 ‘진’이란 인물이 박인수라는 산지기를 몰아세우기 위해서 하는 말이지만,

내게는 결국 자신이 그렇게 만들고 있다고 시인하는 것으로 보였다.

사람들은 여러 번 들으면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때에도 진짜라고 생각하고 넘기곤 한다.

옛날에 만화책 ‘20세기 소년’을 보며 그 구체적인 모습을 처음 접하고 놀랐던 것이 기억난다.

사이비 교주 ‘친구’는 대중을 속이기 위해 밧줄을 이용해 공중부양하는 쇼를 벌인다.

그러나 어느 순간 ‘친구’를 들어 올리는 사람들조차 밧줄을 손에 쥐고도 그에게 홀려 바라보는 장면이 나온다.

우리는 어떤 정보에 노출되느냐에 따라 많은 경우 생각이 달라진다.

“나만 보고 나머지 세상이 보지 못하는 것은 무엇인지, 반대로 세상은 다 봤는데 나만 못 보는 건 무엇인지 알아야겠죠. 모두 알 수는 없어요. 누구나 깨닫지

못하는 걸 어느 정도 갖고 있게 마련이니까요.”-319

나만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나를 결정짓고 보지 않는다’는 어떤가?

단적인 예로 ‘에이즈 보균자’에 대한 태도를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에이즈는 손을 잡는 것만으로는 감염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들 옆에 가까이 가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에이즈 보균자’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면 어떨까.

그 사람이 특별히 다른 사람과 다른 행동이나 외모를 가지고 있지 않을 경우 그런 행동을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이 책을 읽을 당시 함께 읽던 책이 조지오웰의 ‘1984’였다.

세상의 모든 정보를 조작하며 장악하는 빅브라더는 한 명이 아니다.

영원불멸하게 이어질 것 같은 단체이다.

그러한 단체가 만들어져 소수의 인권을 짓밟는 일은 어쩌면 우리가 파리 한 마리를 죽이는 것보다 쉬운 일일지도 모른다.

정보의 교류가 늘어나고 정보가 돈이 되고 힘이 되는 사회.

그러나 정보에 민감하지 않고 다루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무서운 사회가 될 것인가.

‘공포는 만들어진다’

나는 이것이 정보화 사회를 사는 우리가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함께 읽었던 책이 공교롭게도 ‘1984’였기 때문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우리 주위에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정보를 왜곡하고 있는 ‘빅브라더’가 현재도 꽤 많다는 사실이다.

이것을 잊고 무비판적으로 활자를 읽는다면 어느 순간 ‘빅브라더’의 꼭두각시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상황설명> 성격정리

다른 등장인물에게서 이전의 등장인물을 묘사할 수 있음.

복선 깔기_ 잘못 짚고 있다. 그러나 말해주지 않는다.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조연/ 날씨와 감정의 교차/ 명언 인용

주인공의 느낌, 생각 나열.

한 사람의 특징을 쓰고, 다른 사람의 특징을 나열하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비교 효과.

속말> 내면묘사> 행동묘사

필요한 부분만 묘사_ 독자에게 한정된 정보만 제공하게 되는 한계점 제시.

‘단어’에 천착하는 심리묘사.

자신의 생각을 밝힘으로써 자기 자신을 묘사.

치통, 중독, 거짓말.

무엇보다 일상을 담담하게 풀어낸 담백한 문체가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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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우체국
안도현 / 문학동네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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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우체국에 가면 떠난 그 사람이 내게 보낸 편지가 있을 것 같다.

누구에게도 어디에도 잡히지 않았던 파도같은 사람.

에이헙 선장처럼 목적이 있는 고래잡이도 아니면서 먼 바다만 고집한 사람이었다.

왜 그런지 물으면 기억 날것 같으냐?

아니요,

아니.

나는 모르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큰 파도에 실려 찾지 못할 바다로 떠나버렸다.

왜 그런지 물으면 생각 날것 같으냐?

아니요,

아니.

나는 모르오.

바닷가 우체국에 가면 떠난 그 사람이 내게 보낸 편지가 있을 것 같다.

그가 왜 그 밤에 배를 타고 떠났는 지 나는 모른다.

노른내 풀, 풀 나는 김 영감 말에 혹한 게지.

연락하겠다던 말, 나는 믿지 않았다.

배는 마지막이라는 말, 나는 믿지 않았다.

한 달이 지났지만 연락은 오지 않는다.

석 달이 지났지만 연락은 오지 않는다.

아마 전파가 닿지 않는 곳일 게다.

그러니 그의 소식은 우체국에서 전해줄 것이다.

왜 그런지 물으면 얘기할 수 있느냐?

아니요,

아니.

나는 모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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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테라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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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추상화에서 세밀화로

『카스테라』 속의 세계가 친숙하지만 낯설었다면, 『더블』속의 세계는 낯설지만 친숙하게 느껴진다.

『카스테라』에서 작가는 문득 등장한 기린이나 펠리컨, 광활한 냉장고로 환상의 세계를 창조한다.

그 세계는 감히 환상이 아니라면 적용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은가, 아버지가 갑자기 기린이 되어 나타나거나 냉장고에 부모님과 여러 중요한 책들, 그리고 두 명의 중국인만을 빼고 넣는다는 것은 문학의 세계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더블』로 넘어가며 이야기는 좀 더 실제에 가까워진다.

‘루디’에 등장한 용역 청소부도 정신이상자가 판치는 세상이기에 현실성이 없지 않다.

무작정 가게나 대학 강의실에 들어가 사람을 쐈다는 기사는 이제 뉴스의 단골소식이 되어버렸다.

‘비치보이스’의 짝퉁 크라잉넛과 ‘별’의 연주와 같은 사람들도 많지는 않을지언정 분명 이 세상에 존재한다.


『카스테라』가 어설픈 그림을 그리듯 상상을 늘어놓는데 불과했다면 『더블』에서 작가는 구체적인 사건을 세밀하게 묘사함으로서 일상성을 획득한 것이다.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카스테라』-53p)에서는 너구리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며 끊임없이 강조함에도 작가의 말에 손을 들어주기 힘들다.

또한 농경사회의 즐거움은 토끼였을 수도 다람쥐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서울에는 73층을 넘어가는 고층빌딩이 있고, 뉴스에서 직경 십 킬로라고 했다는 몇 줄의 대화가 도심 상공에 아스피린이 떠 있다는 구구절절한 설명보다 거대 아스피린을 실제로 느끼게 한다.(『더블』-151p)

소설은 구체화된 만큼 실체성을 획득하게 되었다. 도심 한복판에 나타난 ‘아스피린’이 지하철에 등장한 ‘기린’보다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다.



2) 미국과 외계, 그리고 세계시민

21세기 들어서면서 큰 인기를 끈 것은 외계인에 대한 영화와 드라마였다.

외화시리즈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엑스파일.

생쥐를 잡아먹던 다이애나(V-1984년 작)가 아닌, 말끔하게 차려입고 언론을 쥐락펴락하는 외계인 애나(V-2009년 작)의 등장.

‘디스트릭트9’의 보호구역에 살며 지능은 높지만 인간의 감시를 받으며 시달리는 외계인과 ‘트랜스포머’의 외계 로봇 세계까지.

이러한 상상 속 외계 생물체는 화면 속에서 지구의 권력과 결탁해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들거나 그 권력에 이용당하기도 한다.

점점 노출 빈도수도 높아질 뿐더러 인간과 비슷한 습성을 발견한 사람들은 그들에게 동질감마저 느끼기에 이른다.

21세기 최대의 히트작 ‘아바타’가 대표적이다.

주인공 제이크는 결국 외계 생물체인 ‘나비족’의 일원이 된다.

이제 외계 생명체는 살면서 한 번 만나 볼 수도 있는 대상이지, 절대 먼 존재로 느껴지지 않는다.


예전의 상상력이 ‘쥐를 잡아먹는 것을 엿보는 데’(V-1984년 작) 그쳤다면, 이제 ‘언어학자들을 모아 외계 언어를 만들 정도’(아바타-2010년 작)로 상상이 적극적이며 구체적으로 변했다.

그만큼 우리 생활에 밀접하게 연관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 ‘외계’를 ‘세계’로 치환해 생각해보면 어떨까? 『80일간의 세계여행』이 등장했던 초기산업사회만 하더라도 여행이나 무역은 극소수의 사람에게만 한정된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세계는 가까워졌고 우리는 다른 나라에 좀 더 쉽게 갈 수 있게 되었으며, 그들에 대해 좀 더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박민규 소설에는 유독 미국, 외계 등의 우리가 잘 모르는 세계가 많이 등장한다.

아무리 여행이 일반화된 오늘날이라고 하더라도 편도로 백만 원을 넘기는 미국여행을 해본 사람이 많을 리 없으며 우주여행은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카스테라』나 『더블』 속에서 미국이나 외계는 생소한 존재가 아니다.

‘책을 읽다보면 이 사람은 언제 동물로 변하나, 미국 말고 다른 나라는 안 나오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세계는 이제 경제로 급속도로 단일화되고 있다.

우리는 우리나라에만 산다고 해도 싫든 좋든 세계시민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작가는 우리가 그렇게 살고 있다는 것을 미국과 외계를 통해 이야기 해준다.


등장인물들은 점심시간에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를 사오고 새로운 ‘호올스’의 맛에 집착한다.

맥주도 카스나 OB가 아닌, ‘코로나’가 그들의 메뉴다.

가끔 아무렇지도 않게 UFO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같은 것을 경험함으로써 우리는 세계를 더 가깝게 느끼게 된다.



3) 청년세계에서 어른세계로

『카스테라』에서 작가가 끊임없이 이야기 하는 것은 청년실업과 그들의 꿈, 암담한 현실 등의 청년 문제다.

그러나 『더블』의 이야기는 더 이상 ‘청년’에 국한되지 않는다.

카스테라의 주인공들은 취업을 하고 싶은 고등학생과 대학생, 졸업생 등 취업 언저리에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특이한 양력을 찾자면 ‘헤드락’의 유학생이나 ‘대왕오징어의 기습’에 나오는 소년들 정도일 것이다.

『더블』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있다. 주인공들은 이미 거의가 직장인이거나 사회를 경험한 사람들이다.

또 가난한 공장 노동자부터 외국의 미치광이, 그리고 마지막을 양로원에서 보내는 노년의 삶까지 작가는 인생의 폭넓은 분야를 다룬다.

이것은 등장인물 유형의 다양화로 설명할 수도 있다.

그리고 조금 비틀어 보면 다양화를 추구할 수 있을 만큼 작가가 보는 눈이 넓어졌다는 이야기도 된다.

세상에는 취업을 하지 못해서 속상한 사람만 있는 게 아니다.

『더블』에서는 이제 취업이라는 청년 문제에서 벗어나 ‘사람’이라는 존재의 문제를 고민하는 작가의 모습이 엿보인다.

자기만 생각하는 ‘우물 안 개구리’에서 ‘어른의 시각’으로 한층 성장한 것이다.


『카스테라』에서 인간적인 것은 달에서 소변을 본 최초의 인류쯤이다.

이때 작가는 소소한 것에 대한 반항, 즉 찌질함이 인간적인 것이라 생각했다.(『카스테라』-110p)

그러나 『더블』에서 말하는 인류는 이제 세상을 좀 아는 고층빌딩 회사원이다.

그는 답답한 현실에 짜증나고 답답하면서도 ‘아스피린’을 탓할 수 없다.

그것 때문에 답답하고 화가 나는 건 사실이지만, 그런 걸로 탓해 봤자 자신만 바보가 될 뿐이라는 것을 안다.

결국 그는 현실에 적응해버린다.(『더블』-167p)

이것이 현실을 보여주기만 하는 것일 뿐일지라도 의미는 있다.

현실을 제대로 알아야 미래의 대책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카스테라』가 박민규 작가의 ‘현실적응기’라고 한다면, 『더블』은 ‘현실관찰기’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제 현실을 접수한 작가가 말하는 미래를 기대할 차례다.

물론 나는 그것이 『핑퐁』에서처럼 세계를 떠나는 상상력으로 표현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그건 자조 섞인 울음에 불과할 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데스카 오사무의 『아톰』을 보고 일본의 어린아이들이 과학자를 꿈꾸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소망이 있다면 이런 것이겠다.

박민규의 소설을 읽고 한국의 청년들이 공평한 세상을 꿈꾸는 것.

이제 다시 근대문학을 꿈꾸어도 좋을 시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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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토의 시대 - 강준만이 전하는 대한민국 멘토들의 이야기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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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토, 멘토……, 멘토가 과연 뭘까?

지난해에는 삶의 지침을 전해주는 멘토들의 ‘말’이 주목을 받았다.

그래서 나는 이것도 비슷한 책인가? 했지만 이 책은 좀 다르다.

이 시대의 멘토가 어떻게 ‘멘토’로 인정받을 수 있었는지 이야기하는 책이다.


그러나 솔직히 처음엔 대선 이야기가 하도 많이 나와서 다시 표지로 가서 제목을 찾아 볼 정도였다.

책의 성격과 제목이 좀 동떨어진 것 같아 불만이었다.

모르던 그들에 대해 알게 되어 유권자로서 고민이 줄어들었으니 주고받은 셈이라 그냥 넘어가기로 한다.

그러나 저자가 책에서 밝혔던 ‘멘토의 제도화’ 시도에는 반대한다.

제도는 자의보다 타의가 많이 개입되게 마련이다.

대표적으로 봉사활동의 점수화가 많은 학생들에게 위법의 짜릿함을 맛보게 하는 제도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취지는 좋지만 의지가 없는 사람들까지 껴안기를 ‘멘토’는 싫어할 것 같다.

‘멘토와 멘티의 사회화’는 어떨까?

사회적으로 자신보다 미성숙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힘이 되어주는 것을 사회적 기본 도덕률 같이 만드는 것이다.

이는 자신이 예전에 받았던 도움을 아래로 흘리는 것이다.

도움을 주고받는 과정을 통해 멀어져 가는 세대 간의 간극을 좁히는 사회 통합의 의미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에 나오는 멘토는 총 12명이다.


1. 비전‧선망형 멘토 안철수


2. 인격‧품위형 멘토 문재인

3. 순교자형 멘토 박원순

4. 교주형 멘토 김어준

5. 선지자형 멘토 문성근

6. 멀티‧관리자형 멘토 박경철

7. 상향 위로형 멘토 김제동

8. 자유‧개척형 멘토 한비야

9. 경청‧실무형 멘토 김난도

10. 열정형 멘토 공지영

11. 자유‧도인형 멘토 이외수

12. 재미‧계몽형 멘토 김영희


이 책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멘토를 위한, 멘토에 의한, 멘토의 시대’쯤 되지 않을까?

책은 이 시대에 멘토가 어떻게 살아왔으며 그가 자신의 삶을 토대로 어떻게 멘토링 해왔는지 이야기 해준다.

그리고 이것이 시대의 어떤 흐름과 결부되어 나왔는지와 그래서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도 이야기해 준다.


그리고 정치와 생활이라는 1부와 2부로 나누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비야 씨와 김제동 씨는 묶일 수 있다.

김제동 씨와 박경철 씨도 묶일 수 있다.

그러나 김제동 씨와 안철수 씨는 묶을 수 없다.

아니, 묶으면 안 된다.

너무 강한 표현인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 책의 앞부분 반은 정치적 성향이 너무 강하다.

문재인, 박원순, 김어준, 문성근 씨를 나는 멘토로 생각하지 못하겠다.

그들에게 굳이 배울 점이 없다는 점이 아니다.

각광받는 다른 사람들도 많은데 왜 이 사람들을 멘토로 삼아야 하는가?

여러 멘토들을 이야기하는 책이라 함께 묶어 두었다고 생각하지만 내 속에 작은 거부감이 꿈틀거렸다.


그러나 이 책의 좋은 점은 그 한 명 한 명에 대한 작가의 통찰이 있다는 점이다.

평범한 시민에 불과한 나로서는 알기 힘든 그들의 과거부터 그들이 한 말, 그리고 결정적으로 멘토들의 행보를 통해 그 사람을 비판적으로 보게 해주었다.

아마 그들이 지금이 지나 인기 없고, 별 영향력 없는 사람들이었다면 나는 작가가 보여준 통찰에 지금의 3분의 1정도만 고마워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사람들이 사회를 선도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나는 작가에게 온전한 1만큼 고마웠다.

나도 너무 정치 얘기만 했나?

이 책의 8장부터 13장까지는 내가 생각하는 진짜 멘토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도 사람이기에 넘어지고, 고민하고, 잘못을 시인하고, 때로 불의한 세상에 답답해하기도 한다.

하루에 몇 천, 몇 만 명이 그들의 하루 일과를 궁금해 하는 유명인이다.

그만큼 자유롭지 못하고 하는 일이 만천하에 공개되어 정신적 압박도 심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생각을 관철해 나간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공익을 위한 것이라는 점이 감동적이었다.


사실 나도 제 밥벌이도 제대로 못하고 서른을 바라보는 이 나이에 새로운 일을 하겠다고 부모님께 붙어 사는 기생충 같은 존재다.

그러나 나도 세상에서 필요한 사람이 되어 살고 싶다.

그때 가장 중요한 것이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것과 공생을 위한 꿈을 꾸는 것 아닐까? 물론 아예 세상을 등지고 살라는 말이 아니다.

나도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연명하며 계속 꿈을 꾸고 있다.

다만 멘토들의 말대로 그들처럼 꿈을 꾸되 모두와 함께 잘 사는 꿈을 꾸자는 것이다.

세상에서 잘났다고 추앙받는 높은 곳에 사는 사람들은 자기만 가지려고 큰소리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들은 아래를 보고 우리가 내려가서 밧줄을 내려줄 테니, 잡고 위로 올라오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이들이 멘토가 될 수 있는 건 잘 살았다기보다, 함께 사는 법을 연구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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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절한 균형 아시아 문학선 3
로힌턴 미스트리 지음, 손석주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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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 인도의 현실은 옛날 우리의 이야기

인생 이야기를 하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게 도와주니까 매우 중요한 겁니다. 그래야 항상 변화하는 세상에서 자신을 잃지 않고 앞으로 나갈 수 있죠.(859p)

책 속의 삶들을 가만히 따라가다 보면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던 시절 우리나라가 떠오른다.

언론은 통제되었으며 정치권력에 대항하는 세력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어두운 곳으로 끌려가 고문을 당했다.

미디어가 국민의 귀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역할을 잘 할 수 없었기에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목소리는 책으로 많이 등장했다.

이는 당시 출판계인사들이 다수 감옥에 간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도 있다.

이때 여러 인문, 사상서들이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필두로 한 여러 근대소설들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근대소설이란 사회의 변화를 위해 잘못된 점을 고발하는 데 초점을 둔다’고 가라타니 고진은 말한다.

“문학의 지위가 높아지는 것과 문학이 도덕적 과제를 짊어지는 것은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라고 그는 이야기 한다.

그러나 지금 대개의 경우 우리에게 문학은 그저 문학일 뿐이다.

문학은 순수문학을 표방하며 이제 더 이상 사회 변혁을 조장하는 것을 거부한다.

그러나 그러한 책임회피 덕분에 독자들로부터 소설 자체의 효용성을 의심받게 된 것 또한 사실이다.

‘적절한 균형’은 근대소설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 책의 배경은 그야말로 ‘현대 인도의 축소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책에는 네 명의 주인공이 나온다. 결혼 3주년 기념일에 남편을 잃고 미망인이 된 디나.

불가촉천민인 차마르 카스트로 태어나 아버지의 이슬람 친구 밑에서 도제 생활을 하여 재봉사가 된 이시바.

이시바의 동생인 나라얀의 아들로 아버지가 직접투표하려 했다는 이유로 삼촌과 자신을 제외한 온 집안이 몰살당한 옴프라카시(이하 옴).

뛰어난 자연환경이 있는 휴양지에서 태어났지만 변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냉장고와 에어콘을 배우기 위해 도시로 온 마넥이다.

가끔 듣던 월드뉴스의 참혹한 일상이 지금 인도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작가는 이야기한다.

작가는 담담한 문체 속에 날카로운 비유를 집어넣어 인도의 아픈 현실 상황을 이야기해 나간다.

그들이 겪는 부당함은 위정자들의 횡포에서 칼날 위를 걷듯 살았던 우리 옛 조상들의 삶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나라의 백정이 차마르 카스트 정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노예제도는 영미권 나라라고 없었던 것이 아니며, 여성이 독립하여 살기 힘든 구조도 온 세계에 퍼져있는 좋지 못한 습관이다.

부당한 삶의 모습은 인도만의 것 같지만, 실은 온 세계의 공통된 사항이며 그중 인도의 특수성을 보여준 것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가 말하는 아픈 현실이 전 세계 독자들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켰으리라 생각한다.

2. ‘건강한’ 하층민의 삶

이 세상에는 많은 불행이 있지만 기쁨 또한 충만하다. 그것을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 알기만 하면 된다.(851p)

기쁨은 짧고, 고통은 길다고 했던가?

이들의 삶이 꼭 이 말과 닮아있다.

이들이 모여서 행복하게 살았던 기간은 기껏해야 채 일 년을 채우지 못한다.

이후에 마넥을 제외한 세 명은 거지와 더부살이로 살게 된다.

행복하게 사는 것이 꼭 소유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의식주와 일신의 자유가 억압받는 이들의 일상이 행복하거나 축복받은 삶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앞의 삶들과 연장선상에 있다고 평가받는 ‘건강한 삶’ 또한 그들의 것이 아님은 자명해 보인다.

그러나 작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로힌턴 미스트리는 암담한 상황 속에 있는 그들을 묘사하면서 종종 ‘건강한’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것은 주인공들의 처절한 삶을 즐겁게 읽을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

우리는 부조리한 현실에 처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술을 마시며 세상을 등지려 한다는 것을 안다.

무엇을 해도 더 이상 아무것도 안 될 것 같은 각박한 현실 속에서 사람들은 문제 자체를 없애려고 한다.

그렇게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본인도 주위사람들도 알고 있지만 뾰족한 해결책이 없기에 그저 문제 지우기에 골몰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방법은 다르다.

삶은 힘겹지만 이들은 남 탓만 하고 있지 않는다.

부조리한 현실을 몰라서가 아니다.

위선적인 타쿠르 다람시의 횡포에 뒤에서 침을 뱉고 욕을 할지언정, 울며 주저앉기보다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삶을 선택하는 것이다.

농담으로 일상을 채우고, 요리로 작은 기쁨을 만들어 낸다.

이들이 가꾸는 하루하루는 때때로 불행을 만나 일그러지기도 한다.

그러나 곧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휘어져 자라는 나무처럼 새 생활에 적응해 농담 섞인 일상이 시작된다.

이시바와 옴은 거지가 된 뒤에도 자신들의 상황을 비하하고 희망을 잃기보다 즐겁게 농담하며 웃으며 살아가는 쪽을 택한다.

보통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희망을 가지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때에도 그들은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이것이 ‘건강한 삶’이 아니면 무엇일까.

천대 받는 삶일지언정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건강한 삶이 작가가 가장 보여주고 싶었던 인도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3. 상상하는 고통이 더 아프다

하지만 마넥은 뛰기 전에 걷는 법을 먼저 배워야 돼. 때가 되기 전인 어린애가 모든 걸 다 안다고 생각하는 건 좋지 않다고.(311p)

두 사람이 옴의 신붓감을 보기 위해 시골로 가고, 말렉이 방학을 이용해 집으로 돌아갔을 때, 디나는 결국 집주인의 횡포 때문에 집을 빼앗기고 만다.

디나는 그 정도로 현실과 타협이 가능했지만 이시바와 옴에게는 비극이 줄을 잇는다.

옴은 자식을 생산할 수 없는 몸이 되었고, 이시바는 조카를 돌보며 몸의 변화를 소홀히 하다 결국 두 다리를 잘라내야 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 그들의 결말은 좋지 못했다.

셋이 당한 고통과 비교하면 말렉은 부모님과 사이가 멀어지긴 했으나 경제적으로 문제없는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다.

도심의 호텔에 숙소를 잡고 조석을 해결할 만큼 그는 자립했다.

그는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죄에 대한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부정한 정치권에 항거하다 죽임당한 학생회장 이바나시와 신부 지참금을 염려한 그의 여동생들의 죽음.

디나와 이시바 옴의 이야기까지.

혼자서 잘 살아왔던 것이 미안한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만 생을 포기하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 만다.

현실에서 생생하게 아픔을 겪은 사람은 다시 차파티를 가지고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지만, 고통을 겪지 않은 순수한 영혼은 죄책감과 생에 대한 환멸에 몸부림치며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한다.

어느 순간 현실은 말할 수 없이 참혹하다.

그러나 말렉이 거지가 된 두 친구와 차파티에 관한 농담만 나눌 수 있었더라도 결말은 분명 달라졌을 것이다.

‘상상만으로는 모두 알 수 없다, 직접 뛰어들어라!’ 책장을 덮으며 작가의 간절한 외침을 들은 듯한 착각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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