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절한 균형 아시아 문학선 3
로힌턴 미스트리 지음, 손석주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1. 인도의 현실은 옛날 우리의 이야기

인생 이야기를 하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게 도와주니까 매우 중요한 겁니다. 그래야 항상 변화하는 세상에서 자신을 잃지 않고 앞으로 나갈 수 있죠.(859p)

책 속의 삶들을 가만히 따라가다 보면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던 시절 우리나라가 떠오른다.

언론은 통제되었으며 정치권력에 대항하는 세력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어두운 곳으로 끌려가 고문을 당했다.

미디어가 국민의 귀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역할을 잘 할 수 없었기에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목소리는 책으로 많이 등장했다.

이는 당시 출판계인사들이 다수 감옥에 간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도 있다.

이때 여러 인문, 사상서들이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필두로 한 여러 근대소설들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근대소설이란 사회의 변화를 위해 잘못된 점을 고발하는 데 초점을 둔다’고 가라타니 고진은 말한다.

“문학의 지위가 높아지는 것과 문학이 도덕적 과제를 짊어지는 것은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라고 그는 이야기 한다.

그러나 지금 대개의 경우 우리에게 문학은 그저 문학일 뿐이다.

문학은 순수문학을 표방하며 이제 더 이상 사회 변혁을 조장하는 것을 거부한다.

그러나 그러한 책임회피 덕분에 독자들로부터 소설 자체의 효용성을 의심받게 된 것 또한 사실이다.

‘적절한 균형’은 근대소설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 책의 배경은 그야말로 ‘현대 인도의 축소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책에는 네 명의 주인공이 나온다. 결혼 3주년 기념일에 남편을 잃고 미망인이 된 디나.

불가촉천민인 차마르 카스트로 태어나 아버지의 이슬람 친구 밑에서 도제 생활을 하여 재봉사가 된 이시바.

이시바의 동생인 나라얀의 아들로 아버지가 직접투표하려 했다는 이유로 삼촌과 자신을 제외한 온 집안이 몰살당한 옴프라카시(이하 옴).

뛰어난 자연환경이 있는 휴양지에서 태어났지만 변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냉장고와 에어콘을 배우기 위해 도시로 온 마넥이다.

가끔 듣던 월드뉴스의 참혹한 일상이 지금 인도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작가는 이야기한다.

작가는 담담한 문체 속에 날카로운 비유를 집어넣어 인도의 아픈 현실 상황을 이야기해 나간다.

그들이 겪는 부당함은 위정자들의 횡포에서 칼날 위를 걷듯 살았던 우리 옛 조상들의 삶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나라의 백정이 차마르 카스트 정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노예제도는 영미권 나라라고 없었던 것이 아니며, 여성이 독립하여 살기 힘든 구조도 온 세계에 퍼져있는 좋지 못한 습관이다.

부당한 삶의 모습은 인도만의 것 같지만, 실은 온 세계의 공통된 사항이며 그중 인도의 특수성을 보여준 것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가 말하는 아픈 현실이 전 세계 독자들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켰으리라 생각한다.

2. ‘건강한’ 하층민의 삶

이 세상에는 많은 불행이 있지만 기쁨 또한 충만하다. 그것을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 알기만 하면 된다.(851p)

기쁨은 짧고, 고통은 길다고 했던가?

이들의 삶이 꼭 이 말과 닮아있다.

이들이 모여서 행복하게 살았던 기간은 기껏해야 채 일 년을 채우지 못한다.

이후에 마넥을 제외한 세 명은 거지와 더부살이로 살게 된다.

행복하게 사는 것이 꼭 소유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의식주와 일신의 자유가 억압받는 이들의 일상이 행복하거나 축복받은 삶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앞의 삶들과 연장선상에 있다고 평가받는 ‘건강한 삶’ 또한 그들의 것이 아님은 자명해 보인다.

그러나 작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로힌턴 미스트리는 암담한 상황 속에 있는 그들을 묘사하면서 종종 ‘건강한’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것은 주인공들의 처절한 삶을 즐겁게 읽을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

우리는 부조리한 현실에 처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술을 마시며 세상을 등지려 한다는 것을 안다.

무엇을 해도 더 이상 아무것도 안 될 것 같은 각박한 현실 속에서 사람들은 문제 자체를 없애려고 한다.

그렇게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본인도 주위사람들도 알고 있지만 뾰족한 해결책이 없기에 그저 문제 지우기에 골몰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방법은 다르다.

삶은 힘겹지만 이들은 남 탓만 하고 있지 않는다.

부조리한 현실을 몰라서가 아니다.

위선적인 타쿠르 다람시의 횡포에 뒤에서 침을 뱉고 욕을 할지언정, 울며 주저앉기보다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삶을 선택하는 것이다.

농담으로 일상을 채우고, 요리로 작은 기쁨을 만들어 낸다.

이들이 가꾸는 하루하루는 때때로 불행을 만나 일그러지기도 한다.

그러나 곧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휘어져 자라는 나무처럼 새 생활에 적응해 농담 섞인 일상이 시작된다.

이시바와 옴은 거지가 된 뒤에도 자신들의 상황을 비하하고 희망을 잃기보다 즐겁게 농담하며 웃으며 살아가는 쪽을 택한다.

보통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희망을 가지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때에도 그들은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이것이 ‘건강한 삶’이 아니면 무엇일까.

천대 받는 삶일지언정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건강한 삶이 작가가 가장 보여주고 싶었던 인도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3. 상상하는 고통이 더 아프다

하지만 마넥은 뛰기 전에 걷는 법을 먼저 배워야 돼. 때가 되기 전인 어린애가 모든 걸 다 안다고 생각하는 건 좋지 않다고.(311p)

두 사람이 옴의 신붓감을 보기 위해 시골로 가고, 말렉이 방학을 이용해 집으로 돌아갔을 때, 디나는 결국 집주인의 횡포 때문에 집을 빼앗기고 만다.

디나는 그 정도로 현실과 타협이 가능했지만 이시바와 옴에게는 비극이 줄을 잇는다.

옴은 자식을 생산할 수 없는 몸이 되었고, 이시바는 조카를 돌보며 몸의 변화를 소홀히 하다 결국 두 다리를 잘라내야 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 그들의 결말은 좋지 못했다.

셋이 당한 고통과 비교하면 말렉은 부모님과 사이가 멀어지긴 했으나 경제적으로 문제없는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다.

도심의 호텔에 숙소를 잡고 조석을 해결할 만큼 그는 자립했다.

그는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죄에 대한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부정한 정치권에 항거하다 죽임당한 학생회장 이바나시와 신부 지참금을 염려한 그의 여동생들의 죽음.

디나와 이시바 옴의 이야기까지.

혼자서 잘 살아왔던 것이 미안한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만 생을 포기하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 만다.

현실에서 생생하게 아픔을 겪은 사람은 다시 차파티를 가지고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지만, 고통을 겪지 않은 순수한 영혼은 죄책감과 생에 대한 환멸에 몸부림치며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한다.

어느 순간 현실은 말할 수 없이 참혹하다.

그러나 말렉이 거지가 된 두 친구와 차파티에 관한 농담만 나눌 수 있었더라도 결말은 분명 달라졌을 것이다.

‘상상만으로는 모두 알 수 없다, 직접 뛰어들어라!’ 책장을 덮으며 작가의 간절한 외침을 들은 듯한 착각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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