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인데, 1도 모릅니다만
스티븐 더수자.다이애나 레너 지음, 김상겸 옮김 / 21세기북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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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인데 1도 모릅니다만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이 ‘아는 것이 힘이다’는 선언을 한 이후로, 우리는 ‘힘’으로써의 지식에 탐닉해왔다. 하지만 자신의 성장보다 더 높고 강한 지위의 성취를 위한 수단으로서의 공부는 원래 목적마저 상실한 채로 그야말로 ‘입시 지옥’이 되었다.

현재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엘리트들이 이런 ‘채우는 지식’, ‘경쟁하는 공부’에 익숙한 이들이라는 것은 좋은 일이기만 할까? 대개 ‘전문가’라는 작자들이 자신들이 기존에 알던 것에만 집착하고 새롭게 닥친 위기에 대한 반응이 굼뜨다는 것은 너나할 것 없이 모두가 알고 있다.


‘팀장인데 1도 모릅니다만’은 이런 ‘지식중심주의’에 빠져 있는 한국사회에 대해 처방전이 되어줄 수 있는 책이다. 개인적으론 왜 굳이 ‘팀장인데 1도 모릅니다만’이라는 겸손한 제목을 붙였는지 의문이다. 이 책의 타이틀은 ‘대통령인데 1도 모릅니다만’이 되었어야 한다고 본다.

책은 ‘모르는 것(Not Knowing)'에 대해 두려워하고 배제하기 보단, 받아들이고 성장의 기회로 삼는 법에 대해서 알려준다. ’모르는 것‘은 수학 문제처럼 답이 정해져 있지만 그 자체의 질서가 있기 때문에 전문가들이 대답해줄 수 있는 그런 ’난해한 문제‘와는 다르다. 애초에 유동적이고 예측 불가능하며 많은 아이디어가 충돌하기 때문에, 전문가들이 맥을 못 추는 그런 ’복잡한 문제‘의 영역이다. 청년 실업, 저출산 고령화, 북핵 위협 등 최근 몇 년 간 국가적 문제들은 대개 이런 ’모르는 것‘들이라, 정부의 그 많은 전문가들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하지만 이 ‘모르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 이유로는 일단 기존의 쌓아뒀던 지식에 의존하려는 마음,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기대를 배신하고 싶지 않아서 등이 있다. 하지만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고자 버틸 경우 더 큰 재앙을 불러올 수도 있다고 책은 지적한다.


그래서 나는 책 제목이 ‘대통령인데 1도 모릅니다만’이 어울린다고 본다. 왜냐하면 대통령이 대표적인 ‘모르는 것’을 관리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것들에만 매몰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수 백 명이 탄 배가 가라앉은 전대미문의 어떤 사고 현장에서, 해수부와 해군・해경은 기존에 ‘하던 대로’ 늦장 대처와 부서 이기주의를 보여줬다. 이런 상황에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 자가 바로 대통령이다. 테러, 사고, 경제 위기 등에 맞서서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고 새로운 해법을 찾기 위해 골머리를 썩어야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하지만 ‘모르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모든 것을 통제에 두려는 지도자를 뽑은 결과는 어떠했는가? 시스템의 구멍을 인정하고 보강을 해도 모자란 해경을 ‘해체’시켰다. 희생자들에 대해 애도와 위로는커녕 그들을 ‘시체팔이’로 몰아갔다. 사회적 비극에 대해서 추모와 애도하는 자들을 ‘블랙리스트’로 엮어 밥줄을 움켜쥐고 침묵하게 했다. 그들의 대처는 전형적으로 ‘아는 것’에 집착하는 썩은 전문가 집단들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여겼지만 하나 ‘모르는 것’이 있었다. 바로, 그들의 시간도 언젠가 끝난다는 것을 말이다.


거대한 국가적 비극이 아니더라도, 이 시각에도 ‘사소한 비극’들이 독선적이고도 오만한 이들에 의해 자행되고 있다. 심지어 ‘전문가’라는 명찰을 단 채 이루어지는 ‘선의’로 말이다. 지금이라도 각자의 빈 공간을 직시해야 한다. 모른다는 것을 모른다고 인정하는 순간, 그 무지의 공간은 실패가 아닌 가능성의 공간이 된다. 지식이라는 콘크리트로 굳어진 허례허식을 깨부순 순간, ‘모르는 것’ 속의 유동성과 혁신이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 나라에 필요한 건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이 아니다.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대응할 줄 아는’ 그런 리더가 필요하다.

p.398 ‘모르는 것‘은 참기 힘든 것처럼 보이고,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으며, 우리에게 불안감과 불확실성을 안겨준다. 하지만 이것은 또한 전지한 신들이 부러워하는 선물일 수도 있다.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는 미스터리한 것들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것들과 함께 살아간다. 우리는 호기심과 궁금증, 흥분감, 가능성이라는 선물의 축복을 받았다. 마침내 우리는 이 모든 것이 ‘모르는 것‘의 진정한 선물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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