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델라이언 데드맨 시리즈
가와이 간지 지음, 신유희 옮김 / 작가정신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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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델라이언 : 우리들은 내면에 사자의 송곳니를 품고 있다


인간의 본성은 선한가 악한가? : 추리 소설의 질문


p.28 어린아이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잔혹하다. 인간은 원래 타고나길 파괴 충동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더할 나위 없이 흉악하고 난폭한 생물이다. 남자아이들은 환성을 지르며 곤충과 작은 동물들을 밟아 죽인다. 여자아이들은 미소를 지으며 풀을 잡아 뽑고 꽃을 봉오리째 꺾어버린다.

어린아이는 이윽고 예의범절과 정서 교육에 의해 '가엾다'는 개념을 이식받고, 살아 있는 생물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우친다. 그리하여 금지된 행위에는 심리적인 제동이 걸리고, 함부로 산 생물을 죽이는 짓을 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죽여선 안 된다는 것은 가르쳐도, '왜 안 되는지'는 가르쳐주지 않는다.

단지 인간의 흉악하고 난폭한 본능이 드러나지 않게 막고 있을 뿐이다. 떨어지면 위험한 깊은 구멍 위에는 뚜껑을 덮어두는 것처럼.

그러나 아무리 감쪽같이 숨겨도 구멍은 늘 그자리에 존재하고, 누군가가 떨어지길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어떤 찰나에 뚜껑이 벗겨지면, 그 깊은 구멍은 곧바로 모습을 드러내어 입을 쩍 벌리고 사람을 집어삼킨다.


인간은 선한가 악한가? 개인적으론 악하다는 쪽을 지지한다. 인간에게 '교양'이라는 것이 생기기 이전, 혹은 교양 따위는 챙길 수 없는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 일어나는 잔혹한 일들을 보았을 때 애초에 인간이 선한 존재라는 말을 믿을 수 있을까?


추리·스릴러 소설들은 우리의 사악한 본성을 덮어두는 뚜껑이 벗겨졌을 때 일어나는 일들과 또다시 그 벌어진 일들을 덮어내기 위한 기만의 장막을 걷어낸다. 주로 기묘한 살인사건이 중심이 되는 이 장르의 소설들은, 단순히 잔인하게만 보였던 사건들 사이에 치밀하게 짜여진 내막을 목도했을 때 독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준다.


인간의 심리는 물론, 범죄에 대한 지식과 탄탄한 반전이 있어야 하기에 추리 소설은 쓰기 어렵다. 그럼에도 꾸준히 자신만의 소설 세계를 구축하는 작가가 있으니, 바로 가와이 신지다.


나약한 외모 속에 숨겨진 사자의 송곳니 : 단델라이언


p.387-388 단델라이언.
영어로 민들레를 가리키는 단어. 그 의미는 사자의 이빨 또는 사자의 송곳니. 그렇게 귀여운 꽃에 이토록 무시무시한, 사납기 그지 없는 이름이 붙어 있다니, 나는 그 사실을 알았을 때 민들레가 가엾게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이 단어의 의미를 모순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 제아무리 나약한 생물일지라도 무언가 한 가지가 어긋나버리면 마음속에 숨겨져 있던 흉포한 송곳니를 맹수처럼 드러낼 때까 오고야 마는 것이다.
그래, 지금의 나처럼…….


가와이 신지 최신 작인 「단델라이언」은 영리하게도 '기묘함'과 '사실성'을 잘 배합한 작품이다.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평범한 대학생 '히나타 에미', 그리고 어디에나 있는 환경주의 모임 '민들레 모임' 그러나 그 만남의 끝은 16년 만에 미라화된 시체로 발견된 히나타 에미였다. 그녀는 어느 방치된 목장의 사일로에서 공중에 떠있는 채로 복부가 쇠파이프로 관통되어 사망하였다는 것이다.


한편, 보수계 야당인 민생당의 국회의원 모토야마의 비서 가와호리가 고층 호텔의 옥상에서 불에 타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두 사건의 공통점은 범인이 도망칠 수 없는 밀실이었다는 것, 그리고 피해자 두 명이 '민들레 모임'의 멤버였다는 것. 형사들이 수사를 진행할 수록 '민들레'라는 순박한 이름에 감춰진, 추악한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과연 인간은 스스로의 욕심과 이상을 위해 어디까지 희생할 수 있을까?어떤 일까지 저지를 수 있을까?앞서 말했던 '폭력적 본능'을 지닌 인간들은 상식과 도덕으로 인해 그들 속의 깊은 심연을 덮어놓은 채 산다. 가와이 신지가 전작의 「데드맨」에서 컬트적이고 기묘한 이야기 구성을 만들어내는데 집중했다면, 이번 작품에선 자신의 목적을 위해 타인의 생명마저 수단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던 인물들의 심리와, 예정된 파멸의 운명으로 그들을 이끌어가는 여러 우연들에 더 집중한 것 같다. 그렇게 내면의 송곳니를 천진난만한 도덕의 외피로 숨긴 우리들은 모두 단델라이언(Dandelion)이라는 것을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뻔하지 않은 트릭, 흔하지 않은 이야기, 그리고 매력적인 캐릭터


p.414 "저, 이제 더 이상 누군가를 미워하는 건 싫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하게 됐죠. 죄를 저지른 사람이 나쁜 게 아니다. 인간 속에는, 살아남기 위해 기르고 있는 악마가 있는 거다, 때때로 인간은 그 악마에게 자기 자신이 먹혀버리기도 한다. 그러니까, 인간이 그 악마와 결별하는 날이 올 때까지 우리들은 형사로서 살아가는 거라고."


가와이 간지 소설의 매력은, 코난이나 김전일 같이 '트릭을 위한 트릭'이 아니라 인간이 '범죄'라는 진창에서 벗어나기 위해 쥐어짜낸 마지막 삶의 발악이 느껴져서다. 소설 속에 악인(惡人)은 존재하지만 오히려 이들은 지금도 뉴스에 틀면 만날 수 있기 때문에 별 감흥이 없다. 온전히 악하다고 할 수 없는, 오히려 피해자의 가까운 이들의 스토리를 들으며, 가슴 속에 연민을 자아내게 한다.


뻔하지 않은 트릭, 흔하지 않은 이야기, 그리고 매력적인 캐릭터의 삼박자를 고루 갖춘 가와이 신지, 단델라이언을 포함한 가부라기 형사 팀의 이야기인 <데드맨 시리즈> 외에도 다양한 그의 작품이 있다고 하니 이번 여름을 그의 작품으로 불태워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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