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 - 박상 본격 뮤직 에쎄-이 슬로북 Slow Book 2
박상 지음 / 작가정신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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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란 누구나 쓸 수 있는 것이지만, 아무나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당신이 무라카미 하루키나 알랭 드 보통 같이 사유의 깊이와 취미의 너비가 넉넉하여 평소에 생각해오던 걸 길어 올리기만 해도 한 편의 글이 된다면 에세이 몇 편 쯤 쓰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대다수의 평범한 이들이 쓴) 에세이는 대개 긴 시간 동안 써온 여러 글의 묶음이거나 삶을 관통하는 투쟁의 결과물들이 담긴다. 이 과정에 비추어 볼 때, 소설은 작가의 삶이 묻어나는 정도에 그친다면, 에세이는 작가의 삶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박상 작가의 ‘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은 박상 작가의 삶의 향취가 듬뿍 묻어나 있는 ‘본격 뮤직 에세이’다. 이 책은 박상 작가가 겪었던 구질구질한 일상과 여행 속의 일탈을 바탕으로 노래를 추천해주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이런 에세이들은 대개 70-80년대 팝을 추천해줄 것 같다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클래식부터 미국, 유럽, 중국, 한국 등 전 세계의 가요를 소개해주는 것을 보고 내 좁은 식견이 넓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역마살이 있는지, 스페인, 베트남, 독일, 일본 등 세계의 방방곡곡을 유랑하는 작가라서 이리 다양한 취향을 자랑하는 걸까?


‘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이라는 제목만 보고 사랑에 관한 에세이라고 지레짐작한 이들에게는 조금은 불만족스러울 수도 있는 책이다. 역으로 말하자면, 수백만 솔로부대가 거리낌 없이 읽을 수 있고, 오히려 힐링이 될 것 같다. 여행을 하고 글을 쓰는 동안 내내 솔로였음을 자백하는 박상 작가는 여행지에서 새로운 만남이 있기를 바래보지만 결국 허탕만 치고 돌아오는 이 세상의 수십만 로맨티스트들의 비애를 묘사하는 데 특출한 재능이 있는 것 같다. 사랑의 달달함보다는 혼자의 외로움, 일상의 노곤함이 더욱 깊게 배어 있다.


p.72 음악이야말로 삭막함의 반대말이다. 경제고 사회고 정치고, 삭막하게 정체된 우리의 지금 여행이 음악의 ‘뽀샵빨’로라도 좀 아름다울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 책을 읽다보면 작가의 삶을 구성했던, 그리고 현재 구성하고 있는 음악들에 대해서 알게 된다. 신해철과 산울림에 대한 그의 사랑은, 서른과 마흔 사이 언저리에 있는 청년들이라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것일 터다. 나도 그들을 좋아하지만 나이가 나이인지라 ‘인생곡’의 시대가 좀 다르다. 넬, 에픽하이, 엠씨더맥스 등 2000년대 후반에 찬란하게도 빛을 내던 그들의 노래에 힘을 얻어 학창시절을 보냈더랬다. 누군가에겐 김동률·윤종신 같은 발라드의 전설들이, 누군가에겐 마릴린 맨슨의 사탄스러운 노래가 힘이 되었을 것이다. 아마도…


p.89 모든 음악은 시대를 초월하는 아름다운 의미가 있음을 깨달았다. 음악은 마음을 열고 들을 때 비로소 빛나는 보석인 것이다. 음악이 비즈니스가 되는 게 세상에서 가장 촌스러운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을 반추해보면서 드는 염려는, 언젠가 ‘뽕짝’이라고 불리는 트로트 외엔 새로운 노래에 대한 관심도 없고 수용하지도 못하는 칠십 넘은 노인처럼 되어버리진 않을까하는 점이다. 지금도 요새 신곡들 중에 도대체 이게 노래인가 싶은 것들이 많은데, 앞으로는 얼마나 더 편협해질 것인가 말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다프트 펑크의 ‘Get Lucky’나 버스커버스커의 ‘봄바람’, 빅뱅의 ‘Loser’ 등을 추천하는 박상 작가는 상당히 감각이 젊고 유연한 편인 것 같다. 글에서 느껴지는 세련된 감각도 이러한 다양성의 추구에 있지 않을까 싶다.


‘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을 읽고 나니, 우리 삶에서 음악이란 것이 이토록 힘이 되는 것이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반복되는 일상에 흥겨운 리듬을 주고, 급작스러운 일탈에도 흥미로운 이야기를 부여해주는 음악의 힘을 이 에세이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어느새 가을 한복판이다. 얼마 남지 않은 한 해를 부여잡고 우울한 마음이 든다면, 이 에세이에 소개된 음악들을 들어보면서 새로운 삶의 활력소를 찾아보아도 좋을 것 같다. 혹시 아는가? 지금까지 미처 만나지 못했던 자신의 ‘인생 곡’을 이 책에서 찾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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