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벌레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2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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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슈퍼스타 작가 "요 네스뵈(Jo Nesbø)"가 1998년에 발표한 작품 "바퀴벌레(Kakerlakkene /Cockroaches)"입니다. 이 작품 "바퀴벌레"는 북유럽 최고 권위의 범죄문학상인 '글라스키' 상을 수상한 "박쥐"에 이은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두 번째 작품입니다.

 

태국, 방콕에서 노르웨이 대사가 죽은 채로 모텔에서 발견됩니다. 노르웨이 정부는 죽은 대사와 현 총리와의 관계 때문에 이 사건을 극비에 붙이고, 조용히 사건을 처리할 수사관으로 타국에서 연쇄살인범을 잡은 경험이 있는 "해리 홀레"를 선발합니다. 개인적인 문제로 엉망인 상태의 "해리 홀레"는 방콕으로 가는 대신 조건을 내걸고 또 다시 타국의 도시로 향합니다.

 

"당연히 우리도 살인범이 한 명이든 여럿이든 잡아들이고 싶지만 살인을 둘러싼 정황은 추후 통보가 있을 때까지 비밀에 부쳐야 해요. 국가의 안녕을 위해서. 아시겠소?"

묄레르는 고개를 숙이고 자기 손을 보았다. 국가의 안녕을 위해. 빌어먹을. 국가는 정작 집안의 안녕을 위해 별로 해준 것이 없는데.

 

방콕의 모텔에서 노르웨이 대사가 매춘부에 의해서 죽은 상태로 발견됩니다. 노르웨이인 소아성애자 문제가 일어난지 얼마 지나지 않았고, 현재 총리와 대학시절부터 친구였던 대사와의 관계로 노르웨이 정부는 비상사태에 돌입합니다. 최대한 조용하게 극비로 대사의 죽음을 처리하기로 한 노르웨이 정부는 1년 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연쇄살인범을 잡은 경험이 있는 주정뱅이 형사 "해리 홀레"를 방콕으로 보냅니다. 도착하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방콕 현지 수사팀과 함께 살인사건 현장으로 간 "해리 홀레"는 대사의 차에서 아동 포르노 사진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점점 밝혀지는 대사의 도박 빚, 가정불화 그리고 성적취향은 사건을 복잡한 상황으로 몰아갑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매매춘이 가능한 방콕에서 "해리 홀레"는 모두가 조용히 덥기를 원하는 이 살인사건을 집요하게 추적하기 시작합니다.

 

어디선가 읽었는데 바퀴벌레는 종류가 3천 가지라고 했다. 그리고 바퀴벌레는 누가 다가오는 진동을 듣고 숨어버려서 바퀴벌레 한 마리가 눈에 띄면 적어도 열 마리가 숨어 있다고 했다. 말하자면 어디에나 있다는 뜻이었다. 바퀴벌레는 무게가 얼마나 될까? 10그램? 금 간 곳이나 테이블 뒤에 백 마리 넘게 숨어 있다면 방 안에 있는 바퀴벌레가 적어도 1킬로그램은 된다는 뜻이다.

 

영미권에서 늦게 나온 관계로 국내에도 이제야 소개되는 "바퀴벌레"는 전작 "박쥐"와 같이 "해리 홀레"가 타국의 도시에서 사건을 수사합니다. 이번에는 동양의 방콕입니다. 베트남 전 당시 미군에 의해 성매매의 천국이 된 도시. 태국인들은 서양인들을 '파랑'이라고 부르고 그들은 이 도시의 매매춘의 중요고객입니다. 기독정당 출신의 현 총리와 대사와의 관계 때문에 노르웨이 정부는 이 사건과 관련된 사실들 하나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음주 문제만 없으면 더 없이 유능한 형사 "해리 홀레"는 그런 것에 아랑곳 하지 않고 이방인의 입장에서 무더운 방콕 날씨와 싸우며 돈과 섹스가 얽힌 이 사건을 파헤칩니다. 노르웨이 정부가 사람을 제대로 잘 못 고른 겁니다. 단서와 사실들이 새롭게 밝혀질 때 마다 수사 방향은 계속 바뀌고 수사는 처음 보이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수치심은 영리하게도 위장술의 대가를 만들거든. 소아성애자들은 대부분 일생동안 성적 취향을 남에게 숨기는 데 도통한 사람들이라,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경찰이 잡아들이는 성폭행범보다 훨씬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뿐이야."

 

첫 작품 "박쥐"에서는 나름 풋풋한 모습을 보였던 주인공 "해리 홀레"는 이번에는 시작부터 망가진 상태로 등장합니다. 물론 오스트레일리아의 사건 후유증이 쉽게 사라질 종류는 않겠지만, 거기다 지체장애의 여동생 "쇠스"가 당한 성폭행 사건으로 더욱 망가진 상태로 나타납니다. 방콕으로 가는 조건으로 무혐의가 된 여동생 성폭행 사건을 한 달 간 다시 조사할 수 있는 제량을 허가 받은 "해리 홀레"는 의욕없이 간 처음과는 다르게 점점 집요하게 사건을 파헤칩니다. 또 다시 인간의 역겨움과 의도치 않은 죽음들로 인해 멘탈이 부서지게 되지만... 소설 속의 불쌍한 캐릭터야 흔치 않지만 매번 이렇게 고통 받는 주인공은 "해리 홀레"가 유일할 것 같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시리즈가 갈 수 록 더욱 큰 고통을 받는데 실제 인물이라면 견뎌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작가 "요 네스뵈"는 마치 소설 속 인물 주제에 행복 따위는 사치다!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해리 홀레"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아서 이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에서는 "해리 홀레"가 입에 총을 물고 자살할 것만 같습니다.

 

책임감. 작년에 해리가 묻어두려던 것이 있다면 바로 책임감이었다. 산 사람을 위해서든 죽은 사람을 위해서든, 자신을 위해서든 남을 위해서든. 하지만 죄책감에 시달릴 뿐 어떤 식으로든 돌아오는 것이 없었다. 아니, 책임감이 어떻게 그를 이끌어주는지 깨닫지 못했다. 어쩌면 이번 일에 대해서 토르후스가 옳았는지도, 어쩌면 정의가 실현되는 것을 보고 싶은 해리의 동기가 그리 고상하지만은 않았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저 어리석은 야망에 사로잡혀 사건을 미제로 남기지 않고 결정적 증거를 찾으려 혈안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사건 파일에 해결 도장을 찍는 일이, 상대가 누구든 잡아넣는 것이 더 중요했는지도 모른다.

 

미국과 태국의 혼혈 레즈비언 형사 "리즈"와 퇴역군인 "뢰켄" 등 매력적인 등장인물도 한 재미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제목 "바퀴벌레"처럼 보이지 않지만 온 사방에 존재하는 바퀴벌레같은 악을 자연스럽게 녹여낸 것에 큰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읽은 "요 네스뵈"의 작품 중에는 별로인 작품이 하나도 없습니다. 정말 타고난 작가인 것 같습니다. 물론 "해리 홀레"가 불쌍해 미치겠지만... 그것만 뺀다면 정말 훌륭하고 흥미진진한 작품입니다.

이미 "스노우맨""마이클 패스벤더" 주연으로 촬영 중에 있고 "아들""드니 빌뇌브" 감독이 "제이크 질렌할"과 함께 촬영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개인적 바램이라면 "스노우맨"이 잘 돼서 시리즈로 영화화 되었으면 합니다. 요즘 히어로 물이 대세인데 오래전 자주 접했던 형사가 등장하는 범죄영화들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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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빨 자국 버티고 시리즈
이언 랜킨 지음, 최필원 옮김 / 오픈하우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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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탄 느와르의 대명사인 스코틀랜드 출신의 베스트셀러 작가 "이언 랜킨(Ian Rankin)"이 1992년에 발표한 "존 리버스" 시리즈 세 번째 작품 "이빨 자국(Tooth and Nail/Wolfman)"입니다. 이 작품 "이빨 자국"으로 탄력을 받기 시작한 "존 리버스" 시리즈는 이 이후로 서서히 명성을 쌓아올리게 되고 작가 "이언 랜킨"은 영국을 대표하는 범죄소설 작가된 현재에 이르게 됩니다.


영국 런던에서 울프맨이라는 연쇄살인범이 등장합니다. 범행수법의 잔인함 그리고 별다른 단서조차 없는 상황에서 런던 경찰청은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경찰청에 도움을 요청해 "존 리버스" 경위를 런던으로 불러옵니다. 얼떨결에 런던으로 가게 된 "리버스" 경위는 런던 경찰들의 무시 속에 울프맨을 쫓는 수사에 합류하게 됩니다.


울프 가 E1.

경찰이 킬러를 울프맨이라고 부르는 이유였다. 그의 흉포한 범행 수법이나 현장에 남겨진 이빨 자국 때문이 아니라 이 골목이 바로 그가 탄생한 곳, 그가 처음으로 범행을 벌인 곳이기 때문에. 울프맨의 행방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했다. 그보다는 이 도시의 천만 개 얼굴 중 누구라도 그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훨씬 더 중요했다.

"이제 어디로 갈까요?" 리버스가 조수석 문을 열며 말했다.

"킬모어 가." 플라이트가 대답했다. 아이러니한 거리 명에 두 남자의 시선이 마주쳤다.


런던의 울프가에서 시작된 연쇄살인은 점차 런던을 경악하게 만듭니다. 희생자들의 복부에 이빨 자국을 남기는 이 범인을 런던 경찰들은 울프맨으로 부르고, 스코틀랜드에서 연쇄살인사건을 해결한 경험이 있는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경찰청의 "존 리버스"경위를 런던으로 협조차 불러옵니다. 자신이 무슨 도움이 될지 회의적이던 "리버스"는 런던 경찰들이 자신에게 실망하고 다시 돌려보낼 때까지 어떻게든 견뎌보기로 결심하고 런던으로 향합니다. 도착하자마자 런던 경찰들의 무시를 받기 시작하는 "리버스"경위는 런던 경찰청의 "조지 플라이트" 경위와 함께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되짚어 수사합니다. 그러는 사이에 울프맨의 살인은 계속되고, 갑자기 나타난 미모의 심리학자 "리사"가 건네준 프로파일링을 읽은 "리버스"는 언론을 통해서 울프맨을 도발하기에 이릅니다. 그러나 울프맨은 항상 경찰보다 한발 앞서 갑니다.


"그런다고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명심해요. 여기는 런던입니다. 스코틀랜드가 아니라. 여기선 한낮에 버스를 타는 것도 위험합니다. 한밤중의 예선로는 말할 것도 없고요. 하지만 런던 사람들은 너무나 둔감합니다. 눈에 뭐가 씌었는지. 당신과 난 절대 그러면 안됩니다. 하지만 가끔 한잔하는 건 괜찮죠. 자, 갈까요."


희생자의 복부를 물어서 이빨의 흔적을 남기는 연쇄살인범 울프맨을 쫓는 "리버스" 경위의 이야기를 그린 "이빨 자국"은 초창기 "리버스" 시리즈에서 꽤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리즈로 만들 생각 없이 써낸 첫 번째 작품 "이와 손톱"과 그나마 낸 책 중에 평이 좋던 첫 번째 작품 덕에 써낸 두 번째 작품 "숨바꼭질" 이후 출간한 이 작품 "이빨 자국"에서 작가 "이언 랜킨"은 현대 범죄소설, 경찰소설의 기본기를 확실하게 터득했습니다. 덕분에 시리즈는 이 작품을 기점으로 슬슬 명성을 쌓아가기 시작합니다. 물론 이후 시리즈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이 울프맨 사건이 간간히 언급되며 중요한 사건으로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번 작품에서 "리버스"는 얼떨결에 연쇄살인 사건 전문가가 되어버린 형사이면서 전 남편, 아버지 그리고 이방인의 위치에 서 있습니다. 런던 경찰들에게는 스코틀랜드 촌놈 취급을 받으며 수사를 진행하랴 프로파일링보다는 심리학자와의 데이트에 더 관심을 쏟고 딸의 양아치 남자친구를 보고 욱하는 감정을 느끼는 여러 서브 플롯들은 나중에 유기적으로 엮이면서 울프맨과의 마지막 대결까지 안내하는 탄탄한 길이 됩니다. 거기다 작가 "이언 랜킨"은 여러 떡밥들을 뿌리면서 마지막 대결 전까지 울프맨의 정체에 대해 독자들을 헷갈리게 만듭니다.


침착해, 존. 급할수록 돌아가야 해. 그의 아버지는 늘 그렇게 말했었다. 그게 무슨 개소리야? 급한데 왜 돌아가라고 해?


그동안 국내에 출간된 시리즈 두 권에 비해 이 작품 "이빨 자국"은 월등한 재미를 담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까지 현재 "이언 랜킨"이 누리고 있는 명성에 못 미치는 미완의 모습이 곳곳에서 느껴지기도 합니다만 이전까지 여러 장르를 오가며 중심을 못 잡던 작가의 범죄소설가로서의 정체성을 확립시키는 계기가 된 작품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티격태격하다 우정을 쌓게 되는 타 지역 형사들 이야기나 연쇄살인범의 과거 이야기 등 이런 장르에 자주 등장하는 클리셰들을 어느 정도 감안하신다면 꽤 흥미로운 독서를 즐기실 수 있으실 겁니다.


리버스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조차도 자신이 왜 그랬는지 알지 못했다. 그놈의 자존심 때문인가? 그깟 빌어먹을 자존심 때문에? 축구 경기장에서 국가로 <스코틀랜드의 꽃>이 흘러나올 때 성인 남자들이 눈물짓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에게는 할 일이 있었고, 어떻게든 그걸 해결해야만 했다. 실력보다 야망을 우선시하는 스코틀랜드 축구팀처럼. 그래, 이게 바로 나야. 실력보다 야망이 앞서는. 나중에 내 묘비에 그렇게 새겨달라고 해야겠어.


이 작품 "이빨 자국"에는 작가 "이언 랜킨"의 런던에 대한 애증이 상당히 많이 담겨있습니다. 이 작품을 출간하기 전까지 4년간 지내다가 정리한 런던 생활에서의 느낀 여러 감정이 고스란히 담겼다고 작가가 몇 번 언급한 적이 있기도 합니다. 다음 작품 "Strip Jack"에서는 "존 리버스"가 다시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로 돌아가 자신의 나와바리에서 활약을 한다고 합니다.

"존 리버스" 시리즈가 국내에서 첫 권부터 출간되는데 순서대로 읽어가시면 현대 범죄소설의 거장이 성장하는 과정을 고스란히 느끼실 수 있으실 겁니다. 상당히 재미있는 소설이기도 하니 하루 날 잡아서 에어컨 밑에 편하게 앉아 읽으보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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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하는 돌 아르망 가마슈 경감 시리즈
루이즈 페니 지음, 홍지로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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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출신의 베스트셀러 작가 "루이즈 페니(Louise Penny)"가 2008년에 발표한 "아르망 가마슈" 시리즈 네 번째 작품 "살인하는 돌(The Murder Stone/A Rule Against Murder)"입니다. 이 작품은 순서상으로 보자면 이전 시리즈들과 달리 처음으로 사건의 무대가 스리파인즈가 아닌 산 속의 별장이 됩니다.


결혼 35주년 기념으로 "아르망 가마슈" 부부는 매해 여름마다 방문하는 산장 마누아르 벨샤스를 다시 찾습니다. 편히 쉬기 위해 온 마누아르 벨샤스에는 "아르망 가마슈" 부부 이외에도 부유해보이지만 위화감을 풍기는 피니 일가(一家)도 함께 묵고 있습니다. 늦게 합류한 세 번째 아들 부부가 도착하고 나서 피니 일가는 산장에서 동상 제막식을 거행하고, 그날 밤 기묘한 죽음이 발생합니다.


살인은 몹시 인간적인 행위였다. 살해당한 사람과 살해한 사람. 최후의 일격을 나리도록 하는 힘은 변덕이나 서건 자체가 아니었다. 감정이었다. 한때 건강하고 인간적이었던 것이 끔찍해지고 부풀어 오르다 마침내 파묻힌다. 그러나 그것은 평안이 아니다. 그것은 종종 거기에 수십 년 동안 묻혀 자신을 갉아먹고 음울하고 불만 가득한 것으로 자라난다. 마침내 모든 인간적인 규범에서 자유롭게 될 때까지. 양심도, 두려움도, 사회 관습도 그것을 담아 둘 수 없었다. 그런 일이 일어나면 지옥이 펼쳐졌다. 그리고 한 인간이 살인자로 변했다.


신혼 때부터 매년 찾던 마누아르 벨샤스 산장에 결혼 35주년을 축하하러 온 "아르망 가마슈" 부부는 미묘한 기류가 흐르는 피니 일가와 함께 휴가를 보내게 됩니다. 피니 일가는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는 듯 보이며 말로서 서로의 상처를 후벼 파는 짓도 서슴치 않습니다. 그러던 중 고인이 된 피니 일가의 아버지 "찰스"의 동상의 제막식이 열리고, 그날 밤 피니 일가 중 한명이 동상에 깔려 죽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스스로 넘어질리 없고, 도저히 사람의 힘으로도 쓰러뜨릴 수 없는 동상을 이용한 살해 방법은 "가마슈" 경감을 혼란스럽게 합니다. 수사팀이 마누아르 벨샤스에 모여 산장의 직원들과 피니 일가를 용의선상에 올리고 사건 수사가 진행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수사가 진행되면서 여러 사람들의 숨겨진 이야기들이 밝혀지면서 흩어져 있던 조각들이 맞춰져 가기 시작합니다. 누가 죽였는지, 왜 죽였는지 그리고 어떻게 죽였는지.


경악 어린 침묵이 흘렀다. 경찰에 몸담은 이래 거의 매일 보아 왔던 전환의 순간이었다. 그는 종종 사람들을 한쪽 물가에서 반대편으로 실어 나르는 사공이 된 듯한 기분을 느꼈다. 익숙할지라도 험난했던 비탄과 충격의 영역에서 축복받은 소수만이 방문하는 저승으로.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서로를 죽인 물가로.


"아르망 가마슈" 시리즈 네 번째 작품인 "살인하는 돌"은 초창기 스리파인즈 삼부작이 끝나고 쉼표를 찍는 듯 한 느낌이 드는 시리즈의 전환점처럼 보이는 작품입니다. 이전에 출간된 세 작품의 무대인 스리파인즈라는 마을을 떠나서 이 작품에서는 조금 더 고립된 장소인 산장 마누아르 벨샤스로 무대를 옮겨놓습니다. 여전히 스리파인즈와의 연결성을 놓치지 않지만 기존의 무대보다 보다 더 고립되고 작은 공간과 더 한정된 수의 용의자들은 마치 고전 밀실 미스터리를 읽는 느낌을 줍니다. 이런 고전적인 장치들 속에서 범인의 정체가 중심인 후던잇 스타일의 미스터리 소설이지만 어떻게 죽였는지인 하우던잇도 아주 중요한 축을 이룹니다. 물론 기묘한 살해방식 때문에 신중한 수사관인 "아르망 가마슈"도 수사상에서 살짝 실수를 범하기도 합니다. 오래된 산장이라 컴퓨터 같은 첨단기계 대신 수첩과 펜을 들고 수사관들이 수사를 진행하기 때문에 기존 시리즈보다 고전적인 느낌이 드는 것은 수사방식의 변화에서도 느껴집니다.

하지만 여전히 "루이즈 페니" 여사님의 다른 작품들처럼 이 작품 "살인하는 돌"에서도 따뜻함과 기품이 느껴집니다. 비록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악의 행동인 살인을 다루지만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평온해집니다. 간간히 내가 추리소설을 읽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언제나 그렇듯 평범한 사람들이라도 품을 수 있는 욕심이나 이기심을 잘 잡아내는 작가의 섬세한 글쓰기와 차분한 심리묘사도 이런 분위기에 일조하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고, 항상 등장하는 먹음직스러운 요리들의 묘사도 이런 분위기에 한 몫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랜 수사 경험을 통해 가마슈는 증오에 관한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증오는 자신이 증오하는 사람과 자신을 하나로 묶는다. 살인은 증오에서 비롯하는 것이 아니라 끔찍한 자유의 행위였다. 마침내 짐을 벗어던지기 위한 행위였다.


고전적인 요소가 많다고 했지만 그런 요소에만 기댄 작품이 절대 아닙니다. 작가 "루이즈 페니"는 고전적인 요소들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창조해서 훌륭한 모던 미스터리 소설을 써냈습니다. 잔잔한 분위기를 느끼며 읽다 보면 어느새 책 속으로 완전히 빨려 들어가는 그런 작품입니다. 범인이 밝혀지고 살인방법의 트릭도 밝혀지고 난후, 책이 끝나갈 무렵 마치 연극이 끝난 것처럼 소설의 등장인물들이 무대에서 퇴장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 부분부터가 제가 이 작품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입니다. 서로가 오해하고 잘못한 것을 인정하며 쉽게 화해하는 대신에 관계가 변할 수 있는 여지만을 살짝 남기며 각자의 길로 가는 모습이 현실적인 동시에 작은 감동을 느끼게 해줬습니다.


"아버지가 절 좋아한 만큼 저도 아버지를 좋아했지요. 보통 그렇게들 하지 않나요? 주는 만큼 받는 식으로? 아버지가 항상 했던 말입니다. 그러곤 아무것도 주지 않았죠."


그 동안 국내에 출간됐었던 시리즈 가운데 중간 작품인 이 작품 "살인하는 돌"이 빠져서 조금 아쉬웠는데 드디어 출간되어서 상당히 기쁩니다. 사실 저도 책을 읽기 전까지는 지레짐작으로 시리즈의 외전격일 거라고 생각을 해서 순서대로 못 읽는다는 사실에 큰 불만이 없었는데 의외로 반가운 등장인물들이 대거 등장하며 어느 정도의 연속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순서대로 읽었으면 좋았을텐데라는 아쉬움이 책을 읽고 난 다음에 크게 다가왔습니다.

잔인한 묘사와 어두운 요즘 범죄소설들에 지치신 분들은 꼭 읽어보셨으면 하는 작품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시리즈를 순서대로 쭉 읽는 걸 추천합니다만 이 작품 하나만으로도 좋은 추리소설입니다. 부디 "아르망 가마슈" 시리즈가 계속 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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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외피 미스티 아일랜드 Misty Island
앨런 에스킨스 지음, 강동혁 옮김 / 들녘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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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출신의 작가 "앨런 에스킨스(Allan Eskens)"가 2015년에 발표한 작품 "타인의 외피(The Guise of Another)"입니다. 이 작품 "타인의 외피"는 훌륭한 데뷔작이라고 평가 받으며 에드거 상을 포함한 여러 상의 후보에 올랐던 "우리가 묻어버린 것들"과 세계관을 공유하는 작가의 두 번째 작품입니다.

 

불륜커플이 운전 중에 음란행위를 하다가 사고를 냅니다. 그 사고로 인해 불륜커플은 불구가 되고 반대편 차선에서 달려오던 포르쉐의 운전자는 사망합니다. 이런 사고에 항상 코를 들이미는 하이에나 같은 신체상해 전문 변호사는 죽은 포르쉐 운전자의 신상을 조사하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고는 미니애폴리스 경찰서 사기전담반에 제보를 합니다. "제임스 퍼트넘"으로 알려진 죽은 남자가 실제로 "제임스 퍼트넘"이 아니며 오랫동안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살아온 것 같다는 제보를 받은 사기전담반의 "알렉산더 루퍼트" 형사는 이 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합니다.

 

세간에 제임스 에르켈 퍼트넘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던 포르쉐의 운전자는 브레이크를 밟으려 했지만, 페달에 발이 닿기도 전에 자동차 그릴이 렉서스의 강철 프레임과 입을 맞췄다. 렉서스가 주도하는 소름 끼치는 파드되에 휘말린 두 자동차가 반시계 방향으로 돌자 비명 소리와도 같은 금속의 불협화음이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까지도 들릴 듯했다.

그날 밤, 대낮의 햇빛을 받으면서도 그림자 속에서 살아온 남자, 자신의 수많은 죄악에 대해 용서를 구할 날이 충분히 남아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제임스 에르켈 퍼트넘은 그럴 가망성을 완전히 잃었다.

 

한밤중에 한적한 도로를 달리던 렉서스가 중앙분리대를 넘어 맞은 편 도로의 포르쉐를 들이 받는 교통사고가 발생합니다. 그 자리에서 즉사한 포르쉐 운전자 "제임스 퍼트넘"의 부고를 들은 고인의 형은 죽은 남자가 자신의 동생이 아니라고 말하고, 이 소식을 제보 받은 미니애폴리스 형사 "알렉산더 루퍼트"는 이 사건을 신원도용 사건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합니다. 마약전담반의 영웅에서 사기전담반으로 추락한 "알렉산더" 형사는 사건의 배경을 조사해갈 수록 이 사건에 추락해 가는 자신의 명성을 다시 끌어올릴 엄청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의 신원으로 살아갔던 포르쉐 운전자의 자취를 쫓아가던 "알렉산더" 형사는 마침내 15년 전 뉴욕에서의 어떤 사건과 마주하게 되고, 그 사건에 숨겨진 거대한 비밀이 다시 들춰지는 걸 두려워하는 위험한 인물들이 오래전 끝내지 못한 자신들의 일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이 구렁텅이를 벗어날 방법을 찾으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었지만, 어떤 생각을 떠올리든 비극적인 결말로 이어졌다. 설령 어찌어찌 해서 혐의를 벗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경찰로서의 경력은 수치와 치욕 속에서 끝나고 말 터였다. 알렉산더의 경우는 다른 경찰들보다도 더욱 나쁜 최후를 맞게 될 것이다. 그는 영웅이었고, 근정훈장까지 받은 사람이었으니까. 언론이란 위선자로 보이는 인물들을 쓰러뜨릴 때 더 큰 도끼를 쓰는 법이었다.

 

"타인의 외피"라는 소설의 제목처럼 이 작품은 타인의 이름으로 살아가다 죽은 남자의 발자취를 쫓아가는 형사 "알렉산더 루퍼트"의 이야기를 그린 범죄소설입니다. 죽은 남자는 왜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살아갔는지? 죽은 남자는 누구인지?에 대한 의문은 죽은 남자의 통장으로 매년 같은 시기에 입금되는 큰 돈의 실체를 거처 15년 전의 한 사건으로 주인공 "알렉산더"를 이끌고 갑니다. 수사가 진행될 수 록 단순한 교통사고가 신원도용 사건으로 이어지고 그 원인이 과거의 엄청난 음모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알렉산더" 형사는 벼랑 끝까지 몰린 자신을 구해줄 사건이라고 생각하며 이 사건에 집착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의 수사로 인해 위험한 인물들이 이 사건에 끼어들고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이 하나 둘 살해당하기 시작합니다. 클라이막스로 갈수록 점점 위기에 몰리는 "알렉산더" 형사는 결국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비밀은 뿌리를 내리더니, 이제는 햇빛을 찾아 땅을 비집고 싹을 틔우려는 참이었다.

빠르게 움직여야 하리라.

 

주인공 "알렉산더 루퍼트"는 전작 "우리가 묻어버린 것들"에 등장했던 형사 "맥스 루퍼트"의 동생입니다. 마약전담반으로 활동하며 잠입수사로 경찰청의 영웅이 되었다가 같은 마약전담반의 동료들이 연루된 비리사건에 엮여 사기전담반에 강제 이직을 당해 추락직전에 놓은 "알렉산더"는 원래의 자기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이 사건에 사활을 겁니다. 자신의 추락과 아내의 외도 등 무너지기 일보직전의 "알렉산더"는 자신의 형 "맥스"의 도움으로 사건의 실체에 다가가게 되지만 그에게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작가 "앨런 에스킨스"는 상당히 건조한 문체로 빈틈없는 플롯 위에 이야기를 펼쳐놓습니다. 스웨터가 올이 풀려서 삐져나온 실을 뽑았더니 점점 더 감당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 같은 이야기의 전개는 전작인 "우리가 묻어버린 것들"보다 더욱 스릴 넘치게 진행 됩니다.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이나 생생한 대화도 물론 칭찬해줄만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를 닫으면 "타인의 외피"라는 제목이 사건의 발단이 되는 상황뿐 아니라 마지막 "알렉산더"의 선택과도 상당한 연관이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떠나서 다른 사람으로 살 것이냐 남아서 모든 것을 감당할 것이냐...

 

알렉산더는 아침이 되면 자신을 집어 삼킬 지옥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추락은 무자비하고도 압도적일 것이었다. 한 남자로 하여금 서드애비뉴 대교 난간을 넘어 마구 휘도는 미시시피 강물에 뛰어들까 하는 생각을 진지하게 해보게 만들, 그런 종유의 파괴.


이렇게 미스터리/스릴러 소설들이 쏟아진 적이 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많큼 올 여름에 범죄소설들이 엄청나게 출간되었습니다. 특히나 "나를 찾아줘""걸 온 더 트레인"의 성공에 편승하려는 도메스틱 스릴러(Domestic Thriller)들이 상당히 많이 출간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들 대부분은 작품 선정 타율이 좋았던 저에게 크고 작은 실망들을 남겼습니다. 그러다 이 작품 "타인의 외피"를 읽으면서 그동안의 실망을 어느 정도 보상받은 기분을 느꼈습니다. 그만큼 훌륭한 범죄소설입니다. 의외의 결말에 살짝 놀랐지만 상당히 괜찮은 작품이니 전작 "우리가 묻어버린 것들"을 재미있게 읽으신 분들은 이 작품 "타인의 외피"도 상당히 마음에 드실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작가의 세 번째 작품 "The Heavens May Fall"도 출간되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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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리피헤드
마크 빌링엄 지음, 박산호 옮김 / 오퍼스프레스 / 2016년 6월
평점 :
품절



영국 출신의 베스트셀러 작가 "마크 빌링엄(Mark Billingham)"이 2001년에 발표한 데뷔작 "슬리피헤드(Sleepyhead)"입니다. 이 작품 "슬리피헤드"는 이제 발표만 하면 영국 선데이 타임즈 베스트셀러 차트에 오르는 성공한 시리즈인 "톰 쏜(Tom Thorne)"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으로, 이 작품과 후속작인 "Scaredy Cat"은 Sky 1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지며 더욱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영국 런던에서 뇌졸중 증세로 여성들이 사망합니다. 모두 각자 다른 장소에서 사망한 여자들의 죽음을 경찰들은 당연하게도 자연사로 처리합니다. 하지만 그녀들의 몸에서 신경안정제의 한 종류인 벤조디아제핀이 검출되고, 목 뒤에 인대열상이 있다는 걸 발견한 한 예리한 검시관에 의해 살인임이 밝혀집니다. 그제야 부랴부랴 작전 팀을 구성한 경찰들은 수사에 열을 올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얼마 후, 병원 앞에서 또 다른 희생자처럼 보이는 20대 여성이 발견됩니다. 그녀는 다행히 목숨을 잃지 않았지만 '락트인 증후군(Locked-In Syndrome)'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무슨 말로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군.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면 완벽해진다는 정도. 그녀의 그런 완벽한 상태... 그 거리감이 부럽지 않아? 경위가 자유의 개념에 대해 생각할 만한 기회를 주지. 진정한 자유말이야. 자유에 대해 정말 진지하게 생각해 보신 적이 있나? 다른 사람들은 미안하게 됐어. 정말이야. 내 목적과 수단에 대해 지루하게 설명을 늘어놔서 당신의 뛰어난 지능을 모욕하진 않겠어. 대신 이처럼 어마어마한 일을 하다 보면 종종 어느 정도 오차범위는 허용해줘야 한다는 정도만 말해 주지. 이 일의 관건은 압력이야. 하지만 당신은 이미 다 알고 있겠지. 톰, 다시 연락할게.

 

신경안정제의 일종 때문에 움직일 수 없게 된 여자들의 목 뒤의 동맥을 비틀어 뇌졸중으로 사망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연쇄살인이 런던에서 일어납니다. 연쇄살인이라는 게 뒤늦게 밝혀지자 경찰은 백핸드 작전이라는 작전명의 수사팀을 꾸립니다. 그리고 로열런던 병원 앞에서 20대 여성 "앨리슨"이 발견됩니다. 죽은 다른 여성들과 같은 인대열상 상처가 있지만 목숨을 건진 "앨리슨". 하지만 그녀는 목 아래로 전시마비가 되었지만 의식과 정신활동은 정상인 락트인 증후군 상태가 되어버립니다. 백핸드 작전에 투입된 "톰 쏜" 경위는 "앨리슨"을 담당하는 의사 "앤 코번" 박사를 만나고 돌아가는 길에 자신의 차 앞 유리에 범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남긴 쪽지가 발견됩니다. 그 쪽지로 인해 "톰 쏜"은 범인의 의도가 살인이 아닌 락트인 증후군에 빠지게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러니까 범인은 네 차례의 실패로 여자들을 죽이고, 첫 성공작으로 "앨리슨"을 살려놓은 것입니다. 거기다 범인은 앞으로 성공률을 더 놓이겠다고 선언하는 듯 한 뉘앙스를 풍겨서 백핸드 작전 수사팀을 더욱 긴장하게 만듭니다. 그간 밝혀진 작은 사실들로 "톰 쏜"은 이 범인이 의사임을 확신하게 되고, 또 다른 여성의 시체가 발견됩니다.

 

그는 그저... 묵묵히 받아들일 뿐이다. 두개골이 부서지고 가슴에 인간쓰레기라는 문구가 새겨진 노숙자의 시체를. 진탕 퍼마시고 핸들을 잡은 버스 기사와 낮은 다리 때문에 목이 잘린 대여섯 명의 걸 가이드 단원들. 그리고 그보다 더 힘든 것들도. 아들을 잃고 아랫입술을 깨물면서 무심코 차를 끓일 주전자로 손을 뻗는 여자의 멍한 눈을. 쏜은 이 모든 것을 묵묵히 받아들였다.

 

2001년부터 현재까지 총 열 다섯 권의 시리즈가 출간되어 영국은 물론 미국과 유럽에서 인기 범죄소설 시리즈가 된 "톰 쏜" 시리즈의 첫 작품 "슬리피헤드"는 일반적인 틀의 연쇄살인을 교묘하게 비틀어 영리하게 재창조한 범죄소설입니다. 이 작품 속 범인은 성적인 동기 등과 같은 삐뚤어진 욕망을 위해 살인을 하는 것이 아니고 쓸모없는 육체의 고통을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준다는 명목으로 정신만이 살아있는 것과 같은 락트인 증후군에 피해자들이 빠지게 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성공률이 낮기에 시체들은 늘어만 갑니다.

너무 많은 죽음을 봐왔지만 여전히 피해자들에게 동정심을 강하게 느끼는 "톰 쏜" 경위는 주위를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저돌적으로 수사하는 방식 때문에 백핸드 작전팀원들과 삐꺽거리며 자신만의 용의자를 집요하게 추적합니다. 하지만 범인은 "톰 쏜"에게 집착하며 교묘한 방법으로 그를 가지고 놀고, 범인의 손바닥에서 놀아나는 꼴이 된 "톰 쏜"은 수사팀에서 더욱 고립되어 갑니다.

 

경찰들... 훌륭한 경찰들은 그런 본능을 타고 나는 게 아니라 그걸 개발한다. 어쨌든 회계사들이 숫자에 능숙한 이유는 매일 숫자를 다루는 게 일이기 때문이다. 아주 평범한 경찰이라도 누가 거짓말을 하면 감이 딱 온다. 그리고 그중 몇 명은 거기서 더 발전해서 사람 보는 눈이 생긴다.

그들이야말로 불운한 이들이다.

 

주인공 "톰 쏜"은 형사 초창기의 한 사건의 상처 때문에 아직도 고통을 겪는 실력 있는 경찰이지만, 실패한 결혼 생활과 조직 내에서 겉도는 아웃사이더로도 간단히 설명할 수 있는 캐릭터입니다. 사실 흔히 볼 수 있는 형사 캐릭터입니다. 특히나 영국 쪽 형사 캐릭터에서 자주 보이는, 자신만의 음악스타일이 확고하고, 축구를 좋아하며(토트넘 팬), 가끔 심통도 부리고, 성급한 판단으로 실수를 저지르고, 가끔 자신의 성공을 너무 확신을 하고, 술을 좋아하고, 삐뚤어진 유머감각을 지니고 인간관계에 서투른 어쩌면 평범함에서 조금 더 부족한 사람. 그러니까 책을 읽으면서 이 인간은 경찰이 안됐으면 뭘 해먹고 살았을까? 진심으로 걱정하게 되는 캐릭터입니다. 좋게 말하면 상당히 인간적으로 느껴지는 캐릭터입니다.

 

아스널이 한 골을 넣었다. 3점이 사라지면서 이번 시즌의 관에 또 다른 못이 박혔다.

톰 쏜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게 하나 더 늘어났다.

 

작가 "마크 빌링엄"은 스탠딩 코미디언을 비롯해서 많은 직업을 전전하다가 이 작품 "슬리피헤드"로 스타 작가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리 차일드"는 예전에 영국 형사 캐릭터의 계보를 "모스"경감 - "존 리버스" "톰 쏜"으로 정의한 적이 있습니다. 그만큼 영국에서는 상당히 인기 있는 시리즈를 쓰는 작가입니다. 탄탄한 플롯이나 적절하게 흩어놓은 단서들, 영국 특유의 블랙유머, 현실적인 캐릭터들 그리고 이야기의 강약 조절 모두 훌륭한 "슬리피헤드"를 읽고, 과연 이 작품이 진정 첫 작품인지 의심할 정도로 상당한 실력의 작가입니다. (이 작품 전에 다른 작가와 공동으로 쓴 98년도 작품이 있긴 합니다만 단독 작품으로는 이 작품이 데뷔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범죄소설을 읽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서스펜스나 스릴, 추리적 요소 그리고 마지막 반전 등 모두가 만족스러웠지만 이 작품에서 가장 마음에 깊이 남아있는 것은 "앨리슨"이 범인에게 저항하기 위해 자기 나름대로의 복수를 하는 장면입니다. 마지막 페이지의 이 장면이 묘한 여운을 주어 이 책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이건 완벽을 지향하는 것과 비슷한 거야. 이건 결함이 있고 약하고 부패한 걸 가져와서 그런 요소들을 제거하는 거라고. 그런 요소들에 대한 의존성

을 제거하는 거지. 육체에서 유일하게 가치 있는 부분인 뇌가 육체라는 결점 없이 피어날 수 있게 해주는 거야. 이것은 무엇보다 자유를 위한 거야."

 

이 작품 "슬리피헤드"에는_책 속의 한 구절처럼_영웅은 없습니다. 그저 죽은 사람과 살아있는 사람 그리고 그 사이에 갇혀있는 사람뿐입니다. 어쩌면 요즘 현대 영국 범죄소설을 대표할 수 있는 가장 스탠다드한 작품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형사가 주인공인 범죄소설, 특히나 영국 쪽 스타일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절대 읽고 후회하지 않으실 작품입니다. 출판사가 후속작인"Scaredy Cat"도 계약했다는 소문도 있으니 다음에 만날 "톰 쏜"은 어떤 모습일지 상당히 기대가 됩니다.


<드라마 Thorne : Sleepyhead 트레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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