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기환송 변호사 미키 할러 시리즈 Mickey Haller series
마이클 코넬리 지음, 전행선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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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전화번호부를 써서 출간한다고 해도 사서 읽고 싶은 작가 "마이클 코넬리(Michael Connelly)"가 2010년에 발표한 "파기환송(The Reversal)"입니다. 이 작품은 링컨차를 사무실로 쓰는 변호사 "미키 할러"의 세 번째 이야기이지만, LAPD "해리 보슈" 시리즈의 열다섯 번째 작품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해리 보슈"의 분량이 많습니다. 드디어 제대로 뭉친 형제들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집니다.


카운티 지방검사장의 식사초대에 응한 변호사 "미키 할러"는 그 자리에서 특별검사직을 제의받습니다. 24년 전 유죄 판결을 받아 무기징역형이 선고된 사건이 새로운 DNA 증거의 출현으로 파기환송되어, 검찰은 재기소를 위해 특별검사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뜻밖의 제안에 당황한 "미키 할러"는 한 가지 조건을 내걸고 그것이 수용될시 특별검사직을 맡기로 합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세상 그 누구보다도 사형제도에 반대하는 사람이다. 내 의뢰인 중에 사형을 선고받은 자가 있다거나 그런 사건을 변호했던 경험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단지 소위 문명사회라는 곳에서는 사회 그 자체가 살인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는 쪽에 믿음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이번에는 그러한 믿음도 내가 사형이라는 위협을 일종의 칼날처럼 사용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24년 전 아동 유괴 및 살인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제이슨 제섭"은 끈질기게 사법투쟁을 벌인 결과 자신의 무죄를 입증할 만한 DNA 증거를 찾아냅니다. 주 연방 대법원은 새로운 DNA 분석결과와 그 외의 다른 증거들의 불일치를 이유로 원심을 파기하고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법원으로 돌려보냅니다. 이제 카운티 검찰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동살해범인 무기수를 다시 기소하거나, 그에게 자유를 주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카운티 지검장은 검찰과 철저히 독립된 특별검사 역할을 악명 높은 변호사"미키 할러"에게 제의합니다. 자초지종을 듣고 고민한 "미키 할러"는 자신의 전처이자 카운티 검사인 "매기 맥퍼슨"을 차석검사로, 그리고 자신의 이복형이자 LAPD "해리 보슈"를 담당 수사관으로 쓴다는 조건으로 특별검사직을 수락합니다. 그러나 24년 전 사건 관계자 중 다수가 이미 사망한 상태인데다 언론은 벌써부터 검찰과 경찰의 허술한 수사로 엉뚱한 사람을 무기수로 만들었다며 "제섭"을 영웅으로 만들기 시작합니다. 승소할 확률이 현저히 낮은 이 사건을 다시 재판하기 위해 얼마 남지 않은 시간동안 "미키 할러"는 예전 사건자료와 재판기록 등으로 만반의 준비를 하고, 베테랑 형사 "해리 보슈"가 사건현장과 주변인, 증인 탐문 등 외부에서 일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재심까지의 시간동안 밖에서 지내게 된 "제섭"에게 감시팀을 붙여놓은 "해리 보슈"는 "제섭"의 행적에 대해 보고를 받으면서 불안감을 느낍니다. 최악의 상황으로 "제섭"이 재판기간 중에 다시 살인을 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느낌이.


어린아이의 시체 사진을 들여다보는 일은 늘 보슈가 감당하기에 힘든 일이었다. 그런데 이 사진들은 심적으로 그를 더 힘들게 했다. 보슈는 한참 동안 사진을 빤히 바라보다가 가슴속에서 커다란 덩어리 하나가 역류해 올라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것이 다름 아니라 시체가 버려진 방식, 즉 다른 곳이 아닌 쓰레기 수거함에 아이의 시신을 던져놓았다는 사실 때문임을 깨달았다. 어린 소녀의 시신을 그런 식으로 버린다는 것은, 희생자에 대한 어떤 선언이자 그 아이를 사랑했던 사람들에 대한 모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검사가 되어 파기환송된 오래전 사건을 맡은 변호사 "미키 할러"와 그를 도와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 "해리 보슈"의 이야기를 다룬 "파기환송"은 법정소설과 형사소설을 어떻게 조합해야 새로운 스타일의 끝내주는 작품이 탄생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표본과 같은 작품입니다.

DNA가 증거물로 사용되지 못하던 시절에 진행된 재판의 결과는 용의자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고, 시간이 흘러 DNA가 일치하는 사람이 용의자와는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로 인해 원심이 파기됩니다.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검찰은 돈 문제나 정치적인 문제도 있지만, 그 용의자가 진범임을 너무나 확신하기에 재기소를 결정하고 범죄자 변호에 특출난 재능이 있는 변호사 "미키 할러"에게 특별검사직을 제안합니다. 검사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미키 할러"는 언론의 설레발과 과도한 관심 속에서 아동살인범을 다시 교도소 안으로 보내기 위해 고군분투 합니다. 그러는 와중에 변호사와는 다른 경직된 분위기 속에 가해지는 중압감과 책임감을 느끼며 자신이 믿을 수 있는 유일한 검사인 전처 "매기"와 베테랑 형사이자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이복형 "보슈"에게 의지를 합니다. 한편, 홍콩에서의 일로 동생에게 진 빚을 갚는 의미와 아동살인범은 어떻게든 잡아야한다는 의지로 이 사건에 투입된"해리 보슈"는 이 아동살인범이 한 소녀만 죽인 게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다시 사건을 조사하면서 망가진 한 가족의 비밀과 아동살인범 "제섭"의 위태로운 행동들이 엮이면서 이야기는 예상치 못한 결말로 향해갑니다.


그녀는 비밀을 알고 있었다. 이번 재판이 관례나 절차에 관한 것이 아니라는 비밀. 법학이나 전략에 관한 것도 아니라는 비밀. 그녀는 세상 저편에 어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번 재판은 바로 그 어둠을 잡아채서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에 관한 일이었다. 끌어들여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야 했다. 내면의 불길로 벼리어 양손에 들고 맞서 싸울 수 있는 무언가 날카롭고 강한 무기로 바꾸어야 했다.


이 작품 "파기환송"은 "미키 할러" 시리즈 세 번째 작품이지만 "해리 보슈"의 분량이 동등합니다. 챕터마다 "미키 할러"의 일인칭시점과 "해리 보슈"의 삼인칭시점으로 바뀌어 진행되기도 하지만 서로 각각 법정과 현장이라는 상반된 장소에서 활약하고, 이 둘의 이야기가 유기적으로 맞물리면서 모든 것이 완성되어 가기 때문입니다. 변호사와 형사. 이 두 사람은 형제임에도 서로를 모른채 너무나 다른 길을 걸어가는 도중에 만난 사이입니다. 범죄자의 변호도 마다하지 않는 속물 변호사와 범죄자를 잡는데 반평생을 바쳐온 형사. 갑부 거물 변호사의 사생아로 태어나 부족함 없이 자란 동생과 거리의 여자였던 어머니가 죽은 후 고아원을 전전하며 거칠게 살아온 형. 이 둘은 어느 정도는 서로를 믿고 의지하지만 완벽하게 신뢰하며 마음을 터놓는 형제사이는 아닙니다. 동생 "할러"가 서로의 딸들도 만나게 해주자며 사적인 교류를 계속 제안하지만 "보슈"는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거부합니다. 그런 두 형제가 이번 사건으로 서로를 조금 더 알게 됩니다. 물론 서로 일하는 스타일이 달라 삐꺽대는 상황도 많지만 서로의 좋은 면을 더 보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여전히 서로가 '같은 산의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산등성이'처럼 본질 자체가 다르다는 사실도 다시 깨닫고 인정하게 됩니다.


매기는 언제나 그것을 '입증 책임'이라고 불렀다. 사법적인 책임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국민을 대변하는 검찰 측의 대표로 서있다는 사실을 아는 데서 오는 심리적인 책임감이었다. 나는 그녀가 설명하려 하던 그 부담감을 이기적인 것으로 치부해버리곤 했다. 검사는 늘 승리를 예측하는 쪽이다. 국민의 대리인이다. 그런 위치에 무슨 부담감이 있단 말인가. 설혹 있다 해도 누군가의 자유를 손에 쥐고 홀로 싸워야 하는 피고 측 변호사의 부담감에는 댈 것도 아니다. 이렇게 반박하며 나는 매기가 내게 어떤 말을 하려 하는지 전혀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을 맞기 전까지.


24년 전 사건이 파기환송되어 다시 재판이 열린다는 독특한 소재의 "파기환송"을 읽고 나니 작가 "마이클 코넬리"가 형사재판에 관한 법정을 다루는 데에도 특출난 재능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재가 독특하다는 이유뿐 아니라, 자신의 특기인 형사사건과 범죄수사의 현실감을 제대로 섞어 보기드문 새로운 스타일의 작품을 써냈기 때문입니다. 책 시작부터 빨려 들어가서 쉬지도 않고 미친듯이 읽어버렸습니다. "마이클 코넬리"는 형사사건 기자 출신답게 캐릭터들의 대사들 이외엔 감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 건조하고 딱딱한 문체를 씁니다. 그래서 때로는 신문기사나 범죄수사 일지를 읽는 듯 한 느낌도 드는데, 이번 작품 "파기환송"에서는 예외적으로 캐릭터들의 입을 빌어서뿐만 아니라, 문장 곳곳에 작가가 얼마나 아동 살해를 혐오하는지가 묻어나옵니다.


나는 피고 측 변호사이지 검사가 아니었다. 검찰이 아니라, 약자 편에 서 있던 사람이었다. 어쩌면 나는 이 사건에 평결이 내려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리하여 내 기록과 양심에 평생 그것을 얹혀놓고 살아가지 않아도 되기 위해 한 발 한 발 의식적인 과정을 밟아오며 재판을 조정해왔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것이 죄책감에 사달리는 한 남자의 명상이었다.


두 번 말해 뭐하겠습니까? 정말 끝내주게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마이클 코넬리"는 '크라임 노블의 마스터'라는 자신의 별명이 헛것이 아님을 이 작품 "파기환송"으로 또 한 번 증명했습니다. 이 작품은 정말로 법정소설과 형사소설의 완벽한 조합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동안 출간된 "미키 할러"와 "해리 보슈"가 같이 등장한 작품들과 달리 둘이 제대로 호흡을 맞추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재미도 있습니다. 현지 신간 "The Crossing"에서는 결국 "해리 보슈"가 LAPD에서 완전히 은퇴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동생 "미키 할러"의 수사관으로써 활약한다고 하니, 어쩌면 이 작품에서 보다 더 매끄럽고 완숙된 호흡을 볼 수 있을것 같습니다.


<드라마 "BOSCH" 시즌 2 트레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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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6-02-24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전화번호부를 써서 출간한다고 해도 사서 읽고 싶은 작가` 라는 표현이 굉장히 인상적이네요. 마이클 코넬리의 책을 몇 권 재미있게 읽긴 했지만, 전화번호부를 써서 출간한다해도 읽고 싶으시다 하시니, 마이클 코넬리를 더 읽어야겠다고 생각해요. 잘 읽었습니다, 다크차일드님.

다크차일드 2016-02-25 04:17   좋아요 1 | URL
가장 사랑하는 작가 중 한명이긴 한데 솔직히 전화번호부를 출간한다면 좀 고민이 될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