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하는 돌 아르망 가마슈 경감 시리즈
루이즈 페니 지음, 홍지로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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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출신의 베스트셀러 작가 "루이즈 페니(Louise Penny)"가 2008년에 발표한 "아르망 가마슈" 시리즈 네 번째 작품 "살인하는 돌(The Murder Stone/A Rule Against Murder)"입니다. 이 작품은 순서상으로 보자면 이전 시리즈들과 달리 처음으로 사건의 무대가 스리파인즈가 아닌 산 속의 별장이 됩니다.


결혼 35주년 기념으로 "아르망 가마슈" 부부는 매해 여름마다 방문하는 산장 마누아르 벨샤스를 다시 찾습니다. 편히 쉬기 위해 온 마누아르 벨샤스에는 "아르망 가마슈" 부부 이외에도 부유해보이지만 위화감을 풍기는 피니 일가(一家)도 함께 묵고 있습니다. 늦게 합류한 세 번째 아들 부부가 도착하고 나서 피니 일가는 산장에서 동상 제막식을 거행하고, 그날 밤 기묘한 죽음이 발생합니다.


살인은 몹시 인간적인 행위였다. 살해당한 사람과 살해한 사람. 최후의 일격을 나리도록 하는 힘은 변덕이나 서건 자체가 아니었다. 감정이었다. 한때 건강하고 인간적이었던 것이 끔찍해지고 부풀어 오르다 마침내 파묻힌다. 그러나 그것은 평안이 아니다. 그것은 종종 거기에 수십 년 동안 묻혀 자신을 갉아먹고 음울하고 불만 가득한 것으로 자라난다. 마침내 모든 인간적인 규범에서 자유롭게 될 때까지. 양심도, 두려움도, 사회 관습도 그것을 담아 둘 수 없었다. 그런 일이 일어나면 지옥이 펼쳐졌다. 그리고 한 인간이 살인자로 변했다.


신혼 때부터 매년 찾던 마누아르 벨샤스 산장에 결혼 35주년을 축하하러 온 "아르망 가마슈" 부부는 미묘한 기류가 흐르는 피니 일가와 함께 휴가를 보내게 됩니다. 피니 일가는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는 듯 보이며 말로서 서로의 상처를 후벼 파는 짓도 서슴치 않습니다. 그러던 중 고인이 된 피니 일가의 아버지 "찰스"의 동상의 제막식이 열리고, 그날 밤 피니 일가 중 한명이 동상에 깔려 죽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스스로 넘어질리 없고, 도저히 사람의 힘으로도 쓰러뜨릴 수 없는 동상을 이용한 살해 방법은 "가마슈" 경감을 혼란스럽게 합니다. 수사팀이 마누아르 벨샤스에 모여 산장의 직원들과 피니 일가를 용의선상에 올리고 사건 수사가 진행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수사가 진행되면서 여러 사람들의 숨겨진 이야기들이 밝혀지면서 흩어져 있던 조각들이 맞춰져 가기 시작합니다. 누가 죽였는지, 왜 죽였는지 그리고 어떻게 죽였는지.


경악 어린 침묵이 흘렀다. 경찰에 몸담은 이래 거의 매일 보아 왔던 전환의 순간이었다. 그는 종종 사람들을 한쪽 물가에서 반대편으로 실어 나르는 사공이 된 듯한 기분을 느꼈다. 익숙할지라도 험난했던 비탄과 충격의 영역에서 축복받은 소수만이 방문하는 저승으로.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서로를 죽인 물가로.


"아르망 가마슈" 시리즈 네 번째 작품인 "살인하는 돌"은 초창기 스리파인즈 삼부작이 끝나고 쉼표를 찍는 듯 한 느낌이 드는 시리즈의 전환점처럼 보이는 작품입니다. 이전에 출간된 세 작품의 무대인 스리파인즈라는 마을을 떠나서 이 작품에서는 조금 더 고립된 장소인 산장 마누아르 벨샤스로 무대를 옮겨놓습니다. 여전히 스리파인즈와의 연결성을 놓치지 않지만 기존의 무대보다 보다 더 고립되고 작은 공간과 더 한정된 수의 용의자들은 마치 고전 밀실 미스터리를 읽는 느낌을 줍니다. 이런 고전적인 장치들 속에서 범인의 정체가 중심인 후던잇 스타일의 미스터리 소설이지만 어떻게 죽였는지인 하우던잇도 아주 중요한 축을 이룹니다. 물론 기묘한 살해방식 때문에 신중한 수사관인 "아르망 가마슈"도 수사상에서 살짝 실수를 범하기도 합니다. 오래된 산장이라 컴퓨터 같은 첨단기계 대신 수첩과 펜을 들고 수사관들이 수사를 진행하기 때문에 기존 시리즈보다 고전적인 느낌이 드는 것은 수사방식의 변화에서도 느껴집니다.

하지만 여전히 "루이즈 페니" 여사님의 다른 작품들처럼 이 작품 "살인하는 돌"에서도 따뜻함과 기품이 느껴집니다. 비록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악의 행동인 살인을 다루지만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평온해집니다. 간간히 내가 추리소설을 읽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언제나 그렇듯 평범한 사람들이라도 품을 수 있는 욕심이나 이기심을 잘 잡아내는 작가의 섬세한 글쓰기와 차분한 심리묘사도 이런 분위기에 일조하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고, 항상 등장하는 먹음직스러운 요리들의 묘사도 이런 분위기에 한 몫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랜 수사 경험을 통해 가마슈는 증오에 관한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증오는 자신이 증오하는 사람과 자신을 하나로 묶는다. 살인은 증오에서 비롯하는 것이 아니라 끔찍한 자유의 행위였다. 마침내 짐을 벗어던지기 위한 행위였다.


고전적인 요소가 많다고 했지만 그런 요소에만 기댄 작품이 절대 아닙니다. 작가 "루이즈 페니"는 고전적인 요소들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창조해서 훌륭한 모던 미스터리 소설을 써냈습니다. 잔잔한 분위기를 느끼며 읽다 보면 어느새 책 속으로 완전히 빨려 들어가는 그런 작품입니다. 범인이 밝혀지고 살인방법의 트릭도 밝혀지고 난후, 책이 끝나갈 무렵 마치 연극이 끝난 것처럼 소설의 등장인물들이 무대에서 퇴장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 부분부터가 제가 이 작품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입니다. 서로가 오해하고 잘못한 것을 인정하며 쉽게 화해하는 대신에 관계가 변할 수 있는 여지만을 살짝 남기며 각자의 길로 가는 모습이 현실적인 동시에 작은 감동을 느끼게 해줬습니다.


"아버지가 절 좋아한 만큼 저도 아버지를 좋아했지요. 보통 그렇게들 하지 않나요? 주는 만큼 받는 식으로? 아버지가 항상 했던 말입니다. 그러곤 아무것도 주지 않았죠."


그 동안 국내에 출간됐었던 시리즈 가운데 중간 작품인 이 작품 "살인하는 돌"이 빠져서 조금 아쉬웠는데 드디어 출간되어서 상당히 기쁩니다. 사실 저도 책을 읽기 전까지는 지레짐작으로 시리즈의 외전격일 거라고 생각을 해서 순서대로 못 읽는다는 사실에 큰 불만이 없었는데 의외로 반가운 등장인물들이 대거 등장하며 어느 정도의 연속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순서대로 읽었으면 좋았을텐데라는 아쉬움이 책을 읽고 난 다음에 크게 다가왔습니다.

잔인한 묘사와 어두운 요즘 범죄소설들에 지치신 분들은 꼭 읽어보셨으면 하는 작품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시리즈를 순서대로 쭉 읽는 걸 추천합니다만 이 작품 하나만으로도 좋은 추리소설입니다. 부디 "아르망 가마슈" 시리즈가 계속 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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