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슬립 1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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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이야기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작가 "스티븐 킹"의 2013년도 작품 "닥터 슬립(Doctor Sleep)"입니다. 이 작품은 REDRUM이라는 단어를 독자들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각인시킨 1977년에 발표한 걸작 "샤이닝"의 후속작 입니다. 오버룩 호텔의 비극에서 살아남은 꼬마 "대니얼 토런스"가 오랜 시간이 지나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한 이 작품은 "스티븐 킹"에게 다시 한번 '브람 스토커' 상을 안겨줬습니다.

어린시절 오버룩 호텔의 비극에서 엄마와 함께 살아남은 "대니얼(대니 또는 댄)"은 이곳 저곳을 떠돌아 다니는 알콜 중독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머물게 된 작은 마을에 정착하면서 술을 멀리하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의 호스피스에서 일을 하게 된 "대니"를 사람들은 "닥터 슬립"이라고 부릅니다. 임종을 앞둔 사람들의 마지막을 자신의 샤이닝으로 평온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래전부터 "대니"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려오던 소녀 "아브라"에게 도움을 요청받습니다. "대니""아브라"를 도와주기로 합니다. 남들과 다른 소녀 "아브라"에게 힘이 될 수 있는 건 "대니" 자신이 유일하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땅거미가 질 무렵 눈다운 눈이 처음으로 내리기 시작했지. 우리는 아무도 없는 그 낡은 호텔 현관에 서 있었어. 아버지를 가운데에 두고 어머니가 저쪽, 내가 이쪽, 이렇게. 아버지가 우리를 어깨동무하고 있었지. 그때만 해도 괜찮았어. 그때만 해도 아버지가 술을 안 마셨거든. 처음에는 눈이 완벽하게 일직선으로 내렸는데, 바람이 점점 세게 부니까 옆으로 날려서 현관 양쪽 옆면을 때리고 어디에 쌓였는가 하면......

끔찍한 악몽을 겪은 기억과 유령들은 그날 전소되었던 오버룩 호텔과 함께 모두 사라진 듯 보였고 살아남은 어머니와 "대니"는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대니"의 인생은 '그 후로 오랫동안 행복하게 지냈습니다.'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바로 샤이닝이라는 빌어먹을 이상한 능력 때문입니다. 자꾸만 찾아오는 오버룩의 유령들, 멋대로 들리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들, 곧 죽을 사람들 얼굴 위에 보이는 파리떼들... 어린 "대니"가 혼자서 감당하기엔 너무 큰 능력이었습니다. 오버룩 호텔에서 자신과 어머니를 도와준 "딕" 아저씨에게 샤이닝을 조절하는 방법을 배우며 나름 노력을 하지만 결국 아버지와 같은 알콜 중독자가 되어 버리고, 어머니가 죽은 뒤로는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곳 저곳을 떠돌아 다닙니다. 하지만 프레이저의 티니타운에 정착을 하면서 알콜 중독자 모임에 정기적으로 나가며 술도 끊고, 호스피스에서 일을 하며 "닥터 슬립"이라는 별명까지 얻게 됩니다. 자신의 능력 샤이닝을 통해서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마지막을 편안하게 보내주기에 생긴 별명입니다. 그리고 "대니"가 티니타운에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샤이닝 능력으로 접촉을 해오던 소녀가 있었습니다. 소녀의 이름은 "아브라". 태어서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부터 심상치 않은 능력으로 부모를 놀래킨 "아브라"의 샤이닝은 "대니"의 샤이닝보다 훨씬 강력합니다. 아직 샤이닝을 스스로 조절을 못하는 "아브라"는 원치 않는 장면도 보게 되고 원치 않은 것도 알게 됩니다. 거기에는 샤이닝 능력을 가진 또 다른 소년이 이상한 집단에게 납치되어 고문당하며 죽는 모습도 포합됩니다. "아브라"는 곧 그 집단들이 스스로를 "트루 낫(True Knot)"이라고 부르며 자신과 죽은 소년같이 샤이닝 능력을 지닌 어린 아이들을 죽여 정기를 흡수해서 살아간다는 사실과 다음 타겟이 엄청난 샤이닝을 지닌 "아브라" 자신이라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이제 "아브라"는 자신을 도와줄 사람은 "대니"가 유일하다고 생각하며 "대니"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리고 "대니""아브라"는 힘을 합쳐 "트루 낫"에 대항하기로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게 돌고 돌기 때문이지. 그걸 운명이라고 해야 할지, 숙명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돌아오거든. 나한테 자물쇠 상자를 주면서 딕이 그랬잖아. 학생이 준비되어 있으면 선생님이 등장하는 법이라고. 내가 아무한테라도 뭘 가르칠 깜냥이 되는 건 아니야. 술을 안 마시면 취할 일도 없다는, 그런 거라면 모를까.

소설로도 영화로도, 물론 "스티븐 킹" 형님은 아직까지 영화에 불만이 많아 보입니다만_걸작으로 추앙받는 "샤이닝"의 후속작이 36년만에 나왔습니다. 샤이닝을 지닌 사람들과 그들의 정기를 먹고 사는 "트루 낫"의 대결이 중심인 "닥터 슬립"은 전작 "샤이닝"과는 다르게 스릴러 형식을 취한 작품입니다. 호러보다는 서스펜스에 더욱 중점을 두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스티븐 킹"이 단순히 초능력자와 그들을 노리는 집단의 쫓고 쫓기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면 굳이 "샤이닝" 후속작으로 내지는 않았을 겁니다. 오래전 오버룩 호텔에서 광기에 사로잡혀 자신을 죽일뻔 했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마흔이 넘도록 "대니"를 지배하고 절대로 닮지 않고 싶었지만 결국 아버지 처럼 알콜 중독자가 된 "대니"는 저주처럼 느껴지는 자신의 능력을 남들을 위해서만 씁니다.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고 느끼던 "대니"는 자신과 비슷한 한 소녀를 도우면서 오랫동안 그저 외면만 했던 과거의 상처들과 다시 대면하고 그것을 극복해나아 가면서 "아브라" 뿐만 아니라 "대니" 자신 스스로를 과거의 망령들에게서 구하게 됩니다. 남들과 다른 능력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통제되지 못하는 힘 때문에 고통스러워 하는 "대니""아브라"의 모습들은 언뜻 영화 "엑스맨:데오퓨"가 떠오르게 하기도 합니다만, 상처와 고통을 치유해 가는 과정들에서 나타나는 "스티븐 킹" 특유의 따뜻한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샤이닝이라는 초능력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 대한 인간들의 가장 선한 감정인 '공감'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나란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더 자세히 이야기 하면 스포가 될지 모르지만 결국 "스티븐 킹" 스스로 이 작품이 왜 "샤이닝" 후속작품이어야만 하는지에 대한 당위성(?)을 훌륭하고 완벽한 방식으로 입증합니다. 책을 읽어가다 문득 궁금해지는 부분들 전부를 완벽하게 채워가는 솜씨 역시 더욱 능숙해 졌음은 물론입니다.

그로서는 이게 최선이었고 효과가 있을지 알 수 없었지만 천천히 그녀가 눈을 떴다. 처음에는 멍했지만 차츰 의식을 회복했다. 댄은 이런 과정을 예전에도 본 적이 있었다. 의식 회복의 기적. 의식이 어디 있다가 돌아오고 떠나면 어디로 가는지 다시금 궁금해졌다. 죽음도 탄생 못지않은 기적이었다.

오버룩 호텔에서 "대니"와 어머니를 구해준 "딕" 아저씨의 할머니가 밝게 반짝 빛난다고 해서 붙여준 샤이닝이란 이름의 능력은 역설적이게도 소설 속에서는 너무나 불행하고 슬픈 능력입니다.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대니"는 호스피스에서 일을 하면서 말할 기력조차 없이 죽음에 다가가는 사람들의 마지막을 편안하게 밝혀주는 수단으로 샤이닝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대니"는 그들의 죽음을 바라보면서 너무 슬퍼하지 않습니다. 신은 믿지 않지만 분명 샤이닝으로 영혼을 보았고 저 멀리 어딘가에 다른 세상이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대니"는 자신에게 내린 저주의 능력이 죽어가는 사람들이 편안하게 마지막 잠을 잘 수 있게하는 수단으로 쓰여질 때 만큼은 샤이닝이라는 이름처럼 한없이 찬란하게 반짝인다는걸 알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잠만 자면 돼."
(가지 마.)
"안 가." 댄이 말했다. "여기 있어. 당신이 잠들 때까지 여기 있을 거야."
이제 그는 두 손으로 칼링의 손을 맞잡았다. 그러고는 미소를 지었다.
"당신이 잠들 때까지."

언제 부터인지, 아니 정확히 말하면 "11/22/63"부터 "조이랜드" 그리고 이번 "닥터 슬립"까지의 "스티븐 킹"은 예전보다 더욱 따뜻해졌습니다. 후반부엔 몇 번이나 울컥 하게하는 장면들 때문에 혼났습니다. 억지스럽지 않은 짧지만 여운을 남기는 감동은 사실 "닥터 슬립"을 읽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었는데... 어쨌든 시간이 지날 수 록 "스티븐 킹"에게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떻게 된 게 점점 글을 더 잘 쓰시는 것 같습니다. 제가 볼 땐 이런 능력이 샤이닝 같은 능력보다 훨씬 축복 받은 능력 같습니다.
소설만 읽으셨던, 영화만 보셨던 오버룩 호텔 사건 이후의 진정한 "토런스" 가족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꼭 읽기를 권합니다. "스티븐 킹"이 왜 세계 최고의 이야기 꾼인지 다시 한번 확인하시게 되실테니 말입니다. 사실 새작품을 읽을 때마다 매번 확인하게 되니깐 이런 말도 쓸모가 없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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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7-24 0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킹 할아버지가 11.22 이후 확실히 스타일이 달라지셨습니다. 다른 사람은 낯설다고 하는데 전 이 말랑말랑한 게 꽤 좋군요... 잘 읽었습니다. 이왕 읽은 김에 엇그제 샤이닝을 다시 읽었더니 이야. 이거 진짜 좋더군요.....

다크차일드 2015-02-26 04:37   좋아요 0 | URL
우왓! 댓글 달린적이 없어서 댓글이 달린 줄 이제 알았네요. 죄송합니다.
킹 형님 변하셨어요... 근데 더 좋은 쪽으로 변하셔서...^^;
그래서 올해 국네에 나올 킹 형님 최초의 하드보일드 ˝미스터 메르세데스˝도 엄청 기대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