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메르켈런은 신경학과 언어학 박사였다. 하지만 정부의 방침에 따라 여자들만 직업을 잃었고, 손목에 단어 100개가 넘어가면 전류가 흐르는 카운터를 차게 되면서 불만을 가졌다. 대통령과 칼 코빈 목사는 성경을 자기들의 기호에 맞게 발췌해 국민들을 길들였다. 학교는 효과적인 교육장이었고 아이들은 정부의 방침에 적합한 사람으로 만들어나갔다.

집에서 네 아이의 엄마로 지낸지 1년이 지났는데 그녀에게 제안이 들어왔다. 대통령의 형이 베르니케영역어 손상이 생겼는데 실어증 치료제를 만들어달라고 했다. 하지만 정부에게는 다른 꿍꿍이가 있었다.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늦었지만 딸 소니아와 뱃속에 있는 내연남의 아기는 다른 삶을 살기를 바랬다.

차별에 저항하지 않고 침묵하면 우리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그려보라고 작가가 말하는 것 같았다. 여자들의 손목에 채워진 단어 카운터는 과거에도, 지금도 유효한 통제 수단이다. ‘여자가‘라는 수식어를 붙인 말들은 남자에게 잘 쓰지 않는다. 그리고 빈도나 강도도 다르다. 낯설지 않은 세상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다만 앤딩이 아쉬웠다. 주인공의 외도와 임신이 계속 마음에 걸렸고, 묵직하고 속시원한 한 방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좀 더 신경썼더라면 더 좋은 글이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우리가 침묵하는 것은 무엇인지, 어떤 변화를 원하는지 구체적으로 나눠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별을 주제로 한 비문학을 같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순종적인 여성과 여자아이들. 지금 나이 든 세대는 통제가 필요하지만, 결국 소니아 또래들이 그들의 아이를 가질 때쯤에는 칼목사의 바람대로 순수 여성과 순수 남성이 세상의 이치가 될 것이다. -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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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즘에 대해 흥미가 생겨서 찾아 읽게 되었다. 읽으면서 <위대한 개츠비>, <폭풍의 언덕>이 떠올랐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질주하는 주인공들의 모습과 피해자들의 모습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자기도취자는 자아를 연출하는데 탁월하다. 그런데 많은 부분을 왜곡하고 있고, 타인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폭력적이다. 안타깝지만 이런 류의 사람들은 빠르게 파악하고 피하는게 상책이다.

나르시스트에 대한 분석은 참 좋았다. 다만 뒤로 갈수록 흐지부지되는 듯한 느낌이 아쉬웠다. 심리학에서도 불교가 유행인건지 명상으로 도피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마다 의욕이 떨어진다. 하나의 방법이 될 수는 있어도 감정적으로 착취하는 가해자들을 극복하기에는 핵심적인 해결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좀 더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글이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피해자들이 가해자를 상대하기 위한 대응 전략이라던가, 감지할 수 있는 사인을 발견하는 데 페이지를 더 할애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자기도취자의 마법에 걸린 사람들은 그가 자신을 너무나 뻔한 일상으로부터 끌어올려줄 마법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누구나 한번쯤은 구조되기를 소망한다. 우리는 우리를 대신해주고, 우리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주고, 우리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해주는 다른 누군가를 원한다. 사랑받고 싶은 소망은 당연한 것이고, 뿌리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살아나기 위해 엄마의 사랑에 의존해야 하는, 가장 어린 시절까지 돌이키게 만든다. 시선을 사로잡는 매력을 지닌 전형적인 자기도취자는 다른 사람들을 착취하기 위해 그들의 깊은 소망을 활성화시키고, 그들의 바람직한 외면을 이용할 줄 안다. -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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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에 대한 호기심이 일어 집어든 책이다. 마르크스의 공산주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공산주의와는 조금 다른 견해로 봐야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영향을 받은 공산주의는 스탈린에 의해 왜곡된 공산주의, 김일성에 의해 왜곡된 공산주의의 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르크스가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한 결과였는데, 현대 사회에 복지 개념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들이 이 사상의 영향을 받았음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북한, 중국, 소련의 공산주의를 떠올리다 일본의 공산주의 얘기를 들어보니 소프트 코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일본의 침략전쟁과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라는 생각이 들어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 내에서도 역사를 바르게 보려고 인식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공산주의에 대해 깊이 있게 알기에는 적합하지 않지만 마르크스, 엥겔스, 스탈린, 레닌 등의 인물들의 캐릭터를 파악하기에는 괜찮았다.

그럼 21세기인 오늘, 굳이 19세기의 마르크스를 읽는 것의 의의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저는 그것이 노동자들이 고통받고 투쟁했던 당시의 사회에서 변혁을 꿈꾼 마르크스의 진지한 삶의 방식을 피부로 느끼고, 그가 절실한 마음으로 탐ㄱ두한 학문적 깊이를 제대로 배움으로써 21세기의 현실에서 변혁을 추구하는 기개를 이어받아, 그는 볼 수 없었던 오늘날의 세계를 우리 스스로 분석하기 위한 이론적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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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와 지오는 쌍둥이 자매다. 그런데 부모의 어떤 사정으로 지오는 부모와 함께 서울에서 살게 되고, 은오는 할머니와 부산에서 살게 되었다. 부부는 결국 이혼했고 엄마의 무리한 투자로 경제사정도 바닥을 쳤다. 남은 돈으로 지오의 학교 근처 오피스텔에 겨우 들어가게 되었고 선택지가 없던 은오는 지오의 학교로 전학을 갔다.

은오에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교우관계도, 다른 성장환경 속에서 살았던 지오와 함께 사는 것도 어렵기만 하다. 매번 양보만 해야 하는 입장이었는데 불만이 쌓이다 보니 반동이 커졌다. ‘나도 때로는 주목받고 싶다‘는게 모두의 진짜 욕구라는 점에 마음이 닿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웃자라버린 아이의 상태가 마음 쓰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유사한 경험이 있을 것 같아서 얼마나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지 궁금해진다.

이 작가님 책에 등장하는 청소년들은 응어리진 부정적인 에너지를 쏟고, 폭발시키는 것만 같다. 어린 마음에 시도하지 못했던 일들을 주인공을 통해 실현시켜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책들도 더 만나보고 싶다.

그리고 또 하나, 나를 키운 것은 미처 분노로 자라지 못한 슬픔 덩어리였다. 야무지지 못하고 미욱하기만 한 슬픔. 그것이 흥건히 가슴에 고여 어디로든 흐르지 못하고 나를 웃자라게 만들었다. -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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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더링 하이츠는 높은 언덕에 자리한 집이다. 폭풍이 불면 그대로 바람을 맞아야 하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여행자 록우드가 이 곳에 머물면서 수다쟁이 하녀 딘부인에게 내력을 듣게 된다.

워더링 하이츠는 언쇼가의 집이었다. 언쇼씨는 아들 힌들리와 딸 캐서린과 함께 살았다. 어느날 아버지가 여행을 떠나며 선물을 사오겠다고 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왔을 때 선물은 망가진 상태였고 왠 집시 남자아이 하나를 데리고 왔다. 그는 죽은 아들 이름을 그에게 주어 히스클리프라고 불렀다. 히스클리프는 언쇼의 마음에 들었다는 걸 알았고 그 힘을 적절하게 이용할 줄 알았다. 그래서 힌들리는 그를 더욱 미워했다.

힌들리는 대학에 가느라 집을 떠났다. 캐서린과 히스클리프는 둘 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언쇼씨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힌들리가 부인과 함께 집으로 돌아와 집주인이 되었고, 히스클리프는 하인으로 전락했다. 그리고 캐시와 친하게 지내는 것을 금지했다.

어느날 캐서린은 스러시크로스 그레인지에서 불독에게 물리는 사고를 당했다. 그녀는 집주인들에게 극진한 간호를 받고 그 집에 사는 남매와 교류했다. 캐서린은 에드가의 청혼을 받아들이는데 사실 히스클리프에게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사실상 노예로 전락한 그를 외면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히스클리프가 집을 나가고 몇년 뒤 재력과 교양을 겸비한 멋진 청년의 모습으로 돌아오면서 본격적인 갈등이 시작된다.

도서관에 있는 <폭풍의 언덕>은 너무 지저분해서 옆동네 <워더링 하이츠>를 데려왔다. 워더링 하이츠가 원제이고 언쇼가가 살던 집의 택호다. 깨끗한 책으로 기분좋게 읽을 수 있었다. 인물들 하나하나 생동감이 느껴졌던 점이 좋았다. 돌아온 히스클리프의 광기를 보면서 <위대한 개츠비>도 떠올랐는데 이 책이 훨씬 어둡고 음산한 분위기였다. 개츠비는 일찍 생을 마감했지만, 히스클리프는 훨씬 더 오래 살면서 분노를 쏟아내면서 아까운 인생을 살았다. 그래서 그의 마지막을 보게 되는 지점에서 오히려 안도했다.

디테일한 인물묘사가 좋았고, 이야기의 끝에서 작은 희망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영화에서는 생략이 많고 특정 인물의 감정에 포커스를 맞춰 광기만 부각된 것 같다. 그래서 책이 더 만족스러웠다. 진짜 주인공은 캐서린이 아닌 히스클리프라는 것을 책을 읽고 알게 됐다. 후반으로 갈수록 막장드라마같은 전개에 책장이 쭉쭉 넘어갔다. 이 시대의 소설들이 그러하듯 불합리한 재산 상속과 신분의 격차 때문에 발생한 비극이 보였다. 다만 <오만과 편견>이 시대상을 더 잘 드러낸 것 같다.

넌 변장한 왕자라고 해도 돼. 아버지가 중국의 황제이고 어머니는 인도의 여왕인데, 한 사람의 일주일 수입으로 워더링 하이츠와 스러시 크로스 그레인지를 한꺼번에 살 수 있을 만큼 부자인지 알 게 뭐야? 넌 고약한 뱃사람들에게 유괴되어 영국으로 오게 된 거야. 내가 너라면 나는 귀하신 몸이라고 생각하겠어. 그래야 하찮은 농부의 천대를 받더라도 내가 누군데 하는 생각만으로 용기를 얻고 자신감을 잃지 않을 수 있지! -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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