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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상처를 말하다 -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예술가의 뒷모습
심상용 지음 / 시공아트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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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뎅의 그림자에 가려진 카미유 클로델. 그 시대에는 여자는 사람도 아니였다. 그 당시에 뛰어난 작가나 화가중에 여인은 찾아보기 어렵다. 로뎅은 그녀의 뛰어난 재능도 원치 않았다고 한다. 가족들마저 그녀를 외면했다. 나는 로뎅을 욕하고 외면하겠다. 카미유 클로델이 외면당할 수 밖에 없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정치를 잘하지 못해서 일것이다. 방패막이가 되어 줄 만한 그 무엇도 없었기에 혼자서 그 모든것을 감당해야 했던 카미유 클로델. 어쩌면 그녀는 나약하지 않았는지 모른다. 나약하다면 감당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시대가, 가족이 그녀를 무너지게 내버려 둔것이다. 모두가 내게 돌을 던진다면 나역시 참아내지 못할 것이다.

 

반고흐의 이야기는 익숙하다. 대표적인 이야기는 광기에 못이겨 자신의 귀를 잘라 버린일. 반고흐의 작품이 어마어마한 가격에 거래된다. 반고흐는 살아서 빛을 보지 못했다. 지금은 없어서 못 판다. 그건 누구에게 좋은 일일까? 그림을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 솔직히 반고흐의 그림이 대단하다고 감탄하지만 그림을 실제로 본 사람은 몇이나 될까. 반고흐의 그림을 정말 이해한 것일까. 완전한 이해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반고흐는 이세상에 없으니까. 사람마다의 해석은 다를 것이다. 전문적인 절대적인 지식에 의해서 평가되고 있다는 것도 왠지 씁쓸하다. 타인과 자신의 욕망의 덫에 걸리지 않으면서 그리고 허무의 함정에 빠지지도 않으면서 삶의 중요한 실체인 고통과 슬픔을 깊이 안을 수 있는 가능성, 그럼으로써 실존의 깊은 뿌리에 다가설 수 있는 여지, (171쪽)

 

화가들의 고통을 읽으면서 예술가의 길은 길고도 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길이든지 순탄한 길은 없을 것이다. 어린 장금이의 말이 생각난다. 마마님은 그것이 마음대로 되냐며, 편하게 살고 싶은데 그것이 제 맘대로 되지 않는다고 말이다. 고통을 딛고 일어서는 힘, 어쩌면 그것을 아픔이나 고통이나 고생으로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보기에 힘들게 살았다 할지라도 그나 그녀가 그 삶을 기꺼이 받아들였다면, 세상은 내 눈에 보이는 것만큼만 되는 것은 아닌듯하다.

 

어쩌면 예술은 고통과 함께 수반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아픔을 갖고 있다. 그 아픔의 정도를 무게로 잴 수는 없다. 몸무게처럼 확실하다면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 그당시의 그 사람이 되어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다. "나도 이해해" 라는 말은 참으로 가증스러운 말이될 수도 있다. 당연히 상대방을 이해하기란 어렵다. 이책을 통해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부딪쳐야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길에 있어서 망설임이 있어서는 안된다. (이것은 사극 버전이다) 칼에 살짝 스친 상처도 아파서 호들갑을 떠는데 예술가들의 고통을 들여보고 있으니 그런가보다 싶었다. 사람마다 자기가 감당해야 할 그릇이 있는 것 같다. 그만큼의 고통을 감당할 수 있기에 찾아오는지도 모른다. 나에게 있어서는 크지는 않고 작고 미미하다. 그렇게 쭈욱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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