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브 디거 밀리언셀러 클럽 66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전새롬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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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를 향해 뛰어본 적이 있는가

  험악한 인상 때문에 평생 범죄의 그늘에서 살아온 야가미. 새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해 골수 이식이라는 선행을 결심한다. 그러나 이식 수술 하루 전날 터진 의문의 연쇄 살인 사건이 그의 발목을 붙잡는다. 중요 참고인이자 용의자로 수색 명령이 떨어진 야가미. 경찰에 붙잡히면 이식 수술을 받을 수 없게 되고, 이식을 받을 아이의 목숨이 위태로워진다. 진범인 연쇄 살인마와 정체불명의 사교 집단까지 합세하여 야가미를 추적해 오는 상황에서, 백혈병 환자를 구하기 위한 야기미의 목숨을 건 도주가 시작된다. 힘내라 야가미. 


  니시카와가 말하는 이야기는 결코 허황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징후는 이미 지금의 사회에서 간파할 수 있다. 국정원이 극우나 극좌 등의 사상단체뿐 아니라 시민 옴부즈맨이나 언론 관련 단체, 나아가 교원 조합에까지 감시의 눈을 번득이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사형 제도 폐지, 일장기 반대, 원자력 반대, 무엇이든 간에 현실을 바꾸려는 자들은 모두 적으로 간주된다. 민주주의국가의 그늘에서 꾸물대는 마녀재판의 논리. 현대사회의 이단 심문제도 였다. _ <그레이브 디거> 303쪽.


  다카노 가즈아키라는 작가를 처음 접한 건 <제노사이드>에서 였다. <13계단>이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지만, <제노사이드>의 주제가 '인간의 본성'과 관련된 것이어서 <제노사이드>를 먼저 읽게 되었다. 그 결과 다카노 가즈아키라는 작가를 신뢰할 수 있게 되어버렸다. 철저한 자료조사와 그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스릴있게 풀어쓰는 재주. 그것이 이 작가에게 충분했다. 

  다카노 가즈아키는 영화 감독을 지망하여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독립영화를 제작하고는 했다. 영화감독 오카모토 가하치의 문하에서 공부하기도 했다. 1984년부터 영화와 텔레비전 촬영 현장에서 경험을 쌓았고, 1989년 LA에서 영화에 대한 공부를 했다. 그의 작품 <6시간 후 너는 죽는다>가 일본에서 드라마로 촬영될때 각본과 연출을 담당하기도 했다. 영화에 대한 조예가 깊어서인지, 그의 작품들의 특징은 충분히 시나리오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장면의 이동과 이야기의 서사가 영화로 구성하기 딱 좋은 상태인 것이 특징이다. 몰입하기 더 없이 좋은 구조다.

  <그레이브 디거>는 SBS에서 방영중인 예능프로그램 <런닝맨>의 추격전을 생각해보면 이야기의 구조가 쉽게 상상이 될 것이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 추격과 도주를 테마로 삼았던 탓에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가 완성되었다. 쫓는 자의 집념과 쫓기는 자의 공포, 초조함을 부각시키면서 공감대도 형성한다. 

  "이 추측이 옳다면… 어느 쪽이 정의일까요?" 겐자키가 험상궂은 표정으로 말했다. 후루데라는 당황하며 되물었다. "정의라니?" "그레이브 디거의 범행을 막는게 정의일까요? 아니면 법의 심판을 받지 않는 살인 집단을 없애는 게 정의일까요?"

_ <그레이브 디거> 322쪽.

  책의 주인공은 야가미 도시히코. 험악한 인상 때문에 어둠의 길에 발을 들여놓은 것도 10년이 넘었다. 악당 얼굴이 판에 박혀있고, 애늙은이 외모를 소유한 악당이었던 주인공. 유명 정치인의 목소리가 자신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사무실에 전화해 감쪽같이 50만 엔을 가로채거나 조직 폭력배의 보험증을 위조해 사채를 끌어쓰던 악당. 그게 야가미 도시히코다. 하지만 연예인을 지망하던 여고생들에게 사기친 뒤 꽤 양심의 가책을 느꼈는지 남을 돕는 일을 하기로 결심한다. 바로 골수 이식이다. 그의 골수를 통해 백혈병 환자의 목숨을 살리는 일을 하나의 책임감으로 생각한다. 

  이식을 받을 환자가 결정되고, 이식을 위해 입원을 하기로 결정하는 야가미. 입원을 앞둔 야가미는 허전한 주머니 사정을 해소하기 위해 돈을 빌리러 친구 시마나카의 집으로 찾아간다. 그런데 시마나카는 손과 발의 엄지가 엇갈린 모습으로 묶여서 벌거벗은 채로 뜨거운 물이 펄펄 끓고 있는 욕조에서 삶아지고(?) 있는 모습을 목격한다. 하지만 놀랄 틈도 없이 방에 세 남자가 들이닥친다. 야가미는 시마나카의 노트북과 휴대폰이 든 가방을 집어 들고 베란다에서 상가의 아케이드 지붕으로 뛰어내려 도망가면서 추적자들과의 1차 추격전을 무사히 승리한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시마나카가 살고 있는 집의 명의는, 사실 야가미와 시마나카 서로의 안전을 위해서 집을 바꾼 상태였던 것이다. 자신의 명의로 된 집에서 사마나키가 죽는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에, 전과가 있는 야가미는 순식간에 경찰의 중요 참고인과 용의자로 수배당하는 처지에 이르게 된 것이다. 

  한편 야가미가 말려든 사건과 동일한 수법의 살인 사건이 또 발견된다. 그리고 길거리에서 퇴근하던 여사원이 화살에 맞아 보이지 않는 불에 타 죽는 사건도 발생한다. 경시청은 연쇄 살인사건의 공통점을 찾아가면서 범인을 찾는데 주력한다. 물론 첫 번째 목표는 야가미라는 것은 변함이 없다. 

  결국 야가미는 범행 장소에서 목격한 수상한 남자들에게, 경찰에게, 또한 진범에게 쫓기는 추격전이 이어지게 된다. 도쿄의 북단에서 병원이 있는 남단까지. 그것도 다음 날 아침까지 병원에 도착해서 이식 수술 준비를 하지 않으면 타임오버로 인한 미션실패. 

  무기도 없는 맨주먹, 심지어 싸움도 잘하는 편이 아니다. 돈도 1만 엔 정도. 여러 악조건이 겹친 상황에서 야가미는 오로지 골수 이식을 통해 선행을 베풀고자 하는 목표를 이루려고 최선을 다한 도주를 시작한다. 그의 골수를 학수고대하는 환자의 목숨을 구하고 '자신의 구질구질한 인생에 쫑을 내기 위해'.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교통수단에 서커스 묘기에 가까운 필사적인 보행까지. 선행을 전제로 한 탓인지, 야가미의 도주를 마음속으로 응원하게 된다.

  작품에 또 하나의 특징이라면, 흥미로운 전설을 배경에 삽입했다는 점이다. 중세의 종교재판에서 잔학한 짓을 한 이단 심문관을 죽인다는 무덤에서 되살아난 사자, '그레이브 디거'를 삽입한 것이 그것이다. 전설을 설정함으로서 작품에 스릴러의 색채를 곁들인 점도 놓칠 수 없는 작품의 매력 중 하나이다. 그런데 이 '그레이브 디거'라는 전설은 중세에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인 사실이 아니라 작가의 창작 전설이라는 점이 놀라웠다.


  "게다가 이건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거나 마찬가지야. 나는 국민들이 국회의원으로 뽑아 준 사람이야. 거리의 이름도 없는 서민보다는 내 생명을 구하는 게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당신이 반대 입장이었으면 정반대의 논리를 늘어놨겠지. 국회의원이라면 이름 없는 시민을 위해서 죽으라고 말이야."

_ <그레이브 디거> 424쪽.


  무엇이 야가미를 병원으로 이끄는가

  책의 마지막 장까지 즐겁게 넘겼다. 그리고 하나의 물음표가 떠올랐다. 과연 무엇이 야가미를 그렇게 병원으로 이끈 것일까? 청소년기를 지저분하게 살았던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기 위해,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그러한 목적만으로 야가미는 도주에 열을 올리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러한 목적이 무슨 이유로 야가미에게 이렇게 강한 동기부여를 제공한 것일까. 의문이 의문을 낳는 지경에 이르렀다.

  야가미의 이러한 동기부여는 아마도 '자기 만족'이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사실상 골수 이식을 통해 백혈병 환자를 한 명 살린다 하더라도, 누구에게 이식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더구나 금전적인 보상도 없고, 포상도 없다. 남는 것은 한 사람의 생명을 스스로 구했다는 '자기 만족'이 남는다. 인간의 성악설을 주장한 순자의 말처럼, 야가미는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성악설을 실천하며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합법이 아닌, 불법적인 방법으로 금전을 취득하며 남에게 고통을 주는 삶을 살아왔다. 그런 그에게 맹자가 주장한 성선설처럼, 착한 마음씨를 지니고 있어서 골수 이식을 목숨걸고 했다는 이유는 납득하기 힘들다. 

  야가미의 행위를 인간 본성으로 논하는 것보다는, 골수 이식을 통한 자기 희생의 행위가 야가미를 새로운 사람으로 만든다는 것에 조금 더 납득이 간다. 물론 악마가 한 가지의 착한 일을 통해 천사가 되진 않는다. 또한 그렇게 인식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악마가 천사로 바뀌는 가능성은 열린 것이다. 그 가능성에 야가미는 자신의 인생을 걸었던 것이 아닐까. 지금의 기회마저 놓친다면 영영 악당으로 살아가야 할지 모른다는 자기 불안감 또한 그에게 동기부여 되었을 것이다. 

  과거를 지워버릴 순 없다. 하지만 인간은 과거가 아닌 현재를 살아가는 동물이다. 과거의 모습이 조금 지저분 할지라도, 현재의 모습이 깨끗하다면 그 사람은 어떻게 평가받아야 할 것인가. 고위급 인사의 청문회를 보면 이런 생각이 자주 떠오른다. 장관 후보에 오른 사람의 현재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과거를 문제삼아, 과거가 지저분하니, 현재 그리고 미래가 지저분 할 것이라는 일반화의 오류를 서슴없이 범하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무엇이 옳은지는 짧은 식견으로 섣부른 판단은 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옳은가? 라는 질문이 떠오르는 것을 막을 순 없다. 

  어쩌면 야가미의 인생 모든 것을 담보로 한 도주극은 이러한 현실에 경종을 울리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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