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리릿 2003-08-21  

[한겨레21- 冊 에세이] 웬수덩이
웬수덩이!

권지예 | 소설가

스물둘에 만난 남자는 책을 무척 사랑하는 남자였다. 그는 무척 가난했지만 자취방의 사방 벽면을 채운 책들을 바라보며 흡족해했다. 단골 헌책방에는 하루에 한번, 용변 보듯이 들렀고, 원하는 책들은 굶어도 사야 했다. 그의 눈에는 책이 라면봉지로 보이는 것 같았다.

그 남자와 데이트를 하기 시작하면서 책방에도 자주 들르고, 그야말로 헌책방 같은 그의 자취방에도 가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그의 집에서 책을 한두권씩 빌렸다가 떼먹거나 아예 ‘슬쩍’ 책도둑질을 일삼기도 했다.

어느 날 가난한 그 남자가 지겨워, 대판 싸우고 번잡한 대로에서 그에게 절교를 선언했다. 그 남자가 젖은 눈시울에 그늘을 지우며 쓸쓸히 돌아서는 모습이 가슴 아팠지만 나는 매몰차게 뒤돌아서서 하염없이 걸었다. 그런데 요상한 게 사람의 마음인지 30분도 채 되지 않아 그를 보내는 것이 내 인생 최대의 실수인 것 같은 뜬금없는 확신이 갑자기 몰아쳤다. 후회하는 마음과 자존심이 마음속에서 서로 싸웠다. 나는 그와 헤어졌던 길을 되짚어 걸으며 스스로에게 ‘내기’를 걸었다. 만약 이 길에서 30분 안에 그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좋다!’ 그에게 내 인생을 걸리라. 그러나 만나지 못하면 그걸로 이 남자는 내 인생에서 끝이다.

그러나 번잡한 세모의 거리에서 30분이나 흐른 마당에, 그를 어디에서 찾는단 말인가.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치며 눈길을 바쁘게 돌려보았지만 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런데 혼란스런 시야로 펼쳐진 어룽어룽한 풍경 속에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그곳은 평상시에는 눈에 띄지도 않았을, 길 건너편의 아주 작고 초라한 서점이었다. 순간, 혹시나 하고 살펴보다, 나는 호흡을 멈추었다. 수많은 행인들 너머로 서점 유리창에 그의 옆모습이 언뜻 비쳤기 때문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곳으로 갔다. 그는 눈과 코끝이 발개진 채로 시집을 읽고 있었다.

몇년 뒤, 책을 좋아하는 그 남자와 결혼을 하려니 돈이 많이 들었다. 대학원을 갓 졸업해 방 한칸 얻을 돈도 없는 주제에 책 때문에 장롱을 놓을 수가 없어 방이 두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를 갈며 내 돈을 보태 방을 얻고 살림을 합치자 그동안 책도둑질로 쏠쏠하게 모았던 책들이 모두 들통이 났다.

뒤늦게 남자가 공부를 하고 싶다고 해서 따라간 유학생활에서도 그는 예의 그 버릇을 버리지 못했다. 좁은 집에 책들이 쌓여갔다. 그곳 책들은 한국책과 달리 왜 그렇게 비싼지. 책값 때문에 가끔 다투었다. 함께 공부하던 나는 책을 사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도서관에 가서 늘 복사만 했다. 귀국할 때 사람을 불러 이삿짐을 싸려는데, 그가 어딜 갔다가 헐레벌떡 왔다. 그가 자동차에 미어터져라 싣고 온 것은, 나 몰래 사서 그동안 친구집에 ‘짱박아놓았던’ 책들이었다.

그런데 책을 사는 버릇보다 더 나쁜 것은 절대 책을 버리지 않는다는 거였다. 그러니 넓지 않은 집에 ‘웬수덩이’ 같은 책이 쌓여만 간다. 쾌적하고 정돈된 분위기는 기대할 수 없다. 그 남자와 살면 평생 헌책방 여주인처럼 살 수밖에. 나는 가끔 그에게 푸념하곤 한다. 아아 제발 책 없는 세상에 살고 싶어. 지금 우리집 ‘웬수덩이들’은 다섯 군데에 격리 수용되고 있다. 그와 내가 함께 사는 집, 그의 작업실, 내 작업실, 그의 시골 본가, 나의 친정집.

그러다보니 그 남자를 만난 이후로는 나는 악착같이(?) 책을 사지 않는 버릇이 붙었다. 가끔 내가 “나, 작가 맞아?” 하고 물으면 그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책이 뭔 필요가 있냐? 머릿속에 거짓말이 드글드글한데!”

책을 사랑하는 남자에게 인생을 건 죄로, 나는 책을 질투하고 ‘웬수덩이’로 보는 이상한 소설가로 살아가고 있다.
 
 
卓秀珍 탁수진 2003-08-24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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