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나이프 밀리언셀러 클럽 98
야쿠마루 가쿠 지음, 김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개인적으로 사회파 추리소설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미스터리는 미스터리다워야 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 때문인데, 이 책 야쿠마루 가쿠의 『천사의 나이프』를 읽으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범죄자의 얼굴 공개 때문에 벌어진 일 때문이다. 그 뿐 아니라 소년소녀들이 벌인 잔혹한 범죄-집단 폭행, 강간-에 대한 처벌이 미약한 것은 비단 우리나라뿐만은 아닌 것 같다. 

히야마 다카시는 4년 전 소년 범죄자들에게 아내를 잃고 다섯 살 딸과 단 둘이 살고 있다. 살해 현장에 함께 있던 딸이 받았을 충격과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절망감에 분노하지만 정작 자신은 소년범들의 이름조차 알지 못한다. 소년 A, 소년 B, 소년 C라 불리는 살인마들은 중학생으로 갱생이라는 미명 하에 큰 처벌도 받지 않는다. 그 당시를 잊기 위해 하루하루 사는 히야마 다카시에게 당시 담당 경찰이 찾아와 소년B가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전한다. 히야마 다카시는 남은 소년범들이 정말로 갱생했는지를 알기 위해 찾아나서고 나머지 소년범들도 살해위협을 받는다. 경찰은 알리바이를 증명하지 못하는 히야마 다카시를 의심하지만 소년범들을 추적하며 그들에게 엄청난 과거가 얽혀있음을 알게 된다. 

야쿠마루 가쿠의 『천사의 나이프』는 현행 소년범들의 처벌이나 인권에 대한 민감한 문제를 건드린다. 우리나라 역시도 범죄의 연령은 점점 낮아지고 있으며 그 잔혹함은 성인들 못지 않다. 하지만 그에 대한 처벌은 극히 미미한 것이어서 많은 논란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피해자보다 범죄자의 인권이 우선시되는 상황에 피해자의 가족들은 법의 부당함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 과연 소년범들은 갱생했을까? 그러면 왜 피해자에게 사죄하러 오지 않는 것일까? 이처럼 히야마 다카시가 가진 의문은 당연한 것이었다. 소년소녀범들의 갱생 과정을 알기 위해 찾아간 곳에서 그들이 즐겁게 생활하는 것을 본 히야마 다카시는 또 다시 분노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를 잊어가는 것은 아닐까? 어린 범죄자들이라 할지라도 무조건적인 교화나 갱생보다는 자신이 저지를 범죄를 정면에서 바라보고 가슴에 새겨야 한다. 야쿠마루 가쿠는 피해자와 그의 가족들에게 진심 어린 참회를 먼저 하는 것이 진정 갱생하는 것임을 말하고 있다. 

근래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몇몇 어린 범죄자들에게 갱생이나 교화 따위가 필요한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재미로 집단 폭행과 강간을 한 범죄자들을 어리다는 이유로 훈방조치하고 범죄자들은 ‘나는 어리니까 처벌받지 않아’라며 자랑한다. 솔직히 말해 보자. 이런 악질 범죄자들에게 인권이 필요한가? 이미 인간이기를 포기했는데 인권을 보호할 필요가 있을까? 이들이 갱생과 교화라는 미명 하에 보호받고 있는 시간에도 피해자의 가정은 무너져 내리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 잔의 차
그레그 모텐슨.데이비드 올리비에 렐린 지음, 권영주 옮김 / 이레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나는 타인을 위한 ‘나눔’에 후하지 않다. 오히려 인색한 편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말일 것이다. 작은 콩알 하나라도 반쪽으로 나누어 함께 먹으면 그게 나눔의 시작이라고, 사실 나눔은 큰맘 다잡아 먹어야 하는 거창한 일이 아니라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아주 사소한 나눔부터 실천하는 일이라고, 그렇게 골백번 들어도 나와 내 가족 이외의 낯선 타인과 뭔가를 기꺼이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더구나 혹시나 나도 모르는 새 그게 동냥에 동전 몇 푼 던져주는 값싼 선심에 기인한 마음일까 봐 더더욱 움츠러들었다. 

그 때문일까, 『세 잔의 차』처럼, 게다가 국경을 초월하여 생면부지 타인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나누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감동적이고 아름답지만 적이 불편했다. 책을 읽고 나서도 이런 양심 고백 비슷한 고해성사를 남기게 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세 잔의 차』를 선택하고 읽기 시작한 것은 “Three Cups of Tea”라는 다소 낭만적인 원제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중간쯤에 따뜻하고 포근한 제목의 연유가 나온다. 

“입천장을 델 것처럼 뜨거운 버터차가 나오자 하지 알리는 차를 후후 불면서 말했다. ‘발티 사람과 처음에 함께 차를 마실 때, 자네는 이방인일세. 두 번째로 차를 마실 때는 영예로운 손님이고. 세 번째로 차를 마시면 가족이 되지. 가족을 위해서라면 우리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네. 죽음도 마다하지 않아.’그는 모텐슨의 손에 손을 얹고 말했다. ‘닥터 그레그, 세 잔의 차를 함께 마실 시간이 필요한 거야. 우리는 교육을 못 받았을지 몰라도 바보는 아니라네. 우리는 오랫동안 이곳에서 살아왔고 또 살아남은 사람들이야.’” 

그레그 모텐슨은 산악 등반가로 세계 제2의 고봉, 카라코람산맥 K2 등정에 나섰다가 동료들과도 떨어진 채 조난당해 외따로 길을 헤메대가 발토로 빙하 아래 척박한 계곡의 작은 마을, 코르페로 우연히 흘러들게 된 낯선 미국인 이방인이었지만, 뜨거운 차 세 잔을 함께 마시고 코르페 마을 사람들과 가족이 되었다. 촌장 하지 알리의 말처럼, 미국인 루터교(기독교) 이방인이 국경도, 인종도, 종교도 초월하여 독실한 시아파 이슬람교도들과 “죽음도 마다하지 않게 되는” 가족이 된 것이다. ‘가족’이라면 함께 나누지 못할 것이 없다. 하지만 그 나눔의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미국인 기독교도 이방인이 파키스탄인 시아파 이슬람교도와 함께 나누는 과정에는 어쩔 수 없는 편견들이 개입했고 911 테러도 일어났다. 

『세 잔의 차』에는 그럼에도 ‘가족’을 위해 선한 의지를 굽히지 않은 굳센 사람, 그레그 모텐슨의 삶이 올곧게 들어 있다. ‘가족’이라는 말에서 범속한 공감대를 이끌어내기는 했지만, ‘학교’라는 나눔을 통해 미래를 공유하는 그의 삶은 참으로 가치 있다. ‘어떤 삶이 가치 있는가?’, ‘어떻게 살아야 바른가?’에 대한 정답은 너무나 자명하다. 그러나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는 여전히 용기를 내기가 어렵다. 이렇게 양심을 두드려 이기적인 내 안에 안주하는 나를 뒤흔드는 이야기는, 그래서 불편하다. 하지만 언제까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대답을 미루고 있을 것인가? 반드시 ‘실천’까지 이어져야 하는, 내 인생의 대답을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죽음의 중지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음 날, 아무도 죽지 않았다’로 시작하는 주제 사라마구의 『죽음의 중지』는 비현실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오히려 그것이 현실적으로 보인다. 어린 시절, 혹은 어른이 되어서라도 상상해 보았을 법한 생각들을 통해 인간과 사회에 대한 보편적인 성찰을 하고 있다. 현실은 냉혹하고 실제적이다. 나와 똑같은 사람이 생긴다면(『도플갱어』) 신기하거나 편리한 상상 대신 그를 죽이거나 내가 죽어 그 자리를 대신해야 할 수도 있고, 자신을 제외하고 모두 눈이 멀어 버린다면 살아남기 위해 눈이 먼 척까지 해야 한다(『눈먼 자들의 도시』). 그리고 『죽음의 중지』에서는 죽음이 사라져 즐겁고 행복한 사람들의 모습이 아닌 지극히 현실적이고 냉혹한 이야기가 펼쳐 진다. 주제 사라마구의 『죽음의 중지』는 이렇게 비현실적이지만 현실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느 날 죽음이 사라진다. 사람들은 국기를 게양하며 죽음의 종말을 반겨하지만 잠시 뿐이었다. 사람들의 삶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시간은 어김없이 흐르고 있어서 현실적인 문제가 나타난다. 사람들이 죽지 못해 요양원, 병원에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장례업체와 보험회사는 회사 문을 닫아야 할 지경에 이른다. 특히 종교계는 죽음의 종말에 대해 종교의 존재 가치에 대해 회의를 느끼게 된다. 이후 죽음이 존재하는 국경 너머로 사람을 데려다 주는 죽음의 상인(마피아)의 등장하고 국가는 이를 묵인한다. 국가는 물론 죽음의 종말에 환호했던 사람들까지 죽음을 원했던 것이다. 

그런데 죽음이 다시 돌아왔다. 죽음의 종말이 아니라 죽음의 일시 중지였던 것이다. 죽음의 여신은 죽음을 알리는 보라색 편지로 죽기 일주일 전에 알려주겠다고 통보한다. 다시 찾아온 죽음이지만 사람들은 죽음이 중지되었을 때 못지 않게 혼란에 빠진다. 죽음의 여신은 일주일 동안의 유예기간을 통해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고 자신의 삶을 정리하기를 원했지만 막상 죽음이 닥친 인간들에게는 예전처럼 죽음을 거부하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자신의 편지에도 불구하고 죽지 않는 남자. 매번 되돌아오는 편지에 그에게 직접 죽음을 선사해 주려고 찾아간 죽음의 여신은 편지는 전하지 못하고 그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다음 날, 아무도 죽지 않았다’ 

죽음은 늘 우리의 삶과 함께 하지만 사람은 본능적으로 죽음을 두려워하고 거부한다. 그래서 인간은 과거부터 조금이라도 삶을 연장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혹여 미래에라도 인위적인 힘으로 삶이 무한정 늘어났을 경우 우리에겐 어떤 상황이 펼쳐질 수 있는지를 주제 사라마구는 『죽음의 중지』를 통해 극적으로 보여준다. 삶과 죽음은 대척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마주 보고 한 걸음씩 가까워지는 것이다. 이 둘은 서로가 있어 완전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니시에인션 러브>를 리뷰해주세요.
이니시에이션 러브
이누이 구루미 지음, 서수지 옮김 / 북스피어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추리소설의 저변이 넓은 일본에서는 작품을 생산하는 작가와 또 그것을 소비하는 독자층의 폭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소수를 위한 작품이나 새로운 것에 대한 요구도 큰 편이다. 이에 따라 전통적인 기법을 따른 미스터리는 물론 일본과는 그다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하드보일드까지 수많은 작품들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 작품 이누이 구루미의 『이니시에이션 러브』도 독자들의 새로운 요구에 부응하는 작가의 결과물이다. 최근 우리나라에 소개되고 있는 작품들을 본다면 미스터리의 한 분류로 봐도 되지 않을까 할 정도로 서술형 트릭을 가진 작품들이 많다. 서술형 트릭이라는 것은 영상으로는 만들어질 수 없는 말 그대로 텍스트로만 가능한 트릭이다. 우타노 쇼고의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와 같은 경우 서술형 트릭이 어떤 것인지를 제대로 보여준 작품이었고 얼마 전 소개된 오리하라 이치의 『도착의 론도』는 이야기의 내용은 다르지만 그 분위기는 이 작품과 굉장히 비슷하다. 

굳이 ‘마지막 세 줄로 모든 것이 뒤바뀐다’는 광고가 아니어도 마지막 세 줄을 읽게 되면 ‘어!’ 하면서 책의 앞부분을 뒤적이게 될 것이다. 마지막 감탄사는 작가에게 완전히 속았다는 기분일 수도 있고 자신이 추리했던 트릭을 확인하는 과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마지막에 작가가 준비한 해설과 함께 다시 읽게 된다면 짐작했던 트릭만이 전부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작가가 부지런히 준비하고 작품 곳곳에 배치한 트릭은 과거 일본에서 유행했던 것들-작품의 소제목을 장식하고 있는 80년대 일본의 가요나 주인공들의 이야기에도 큰 역할을 하는 <일곱 남녀의 사랑 이야기>같은 히트 드라마를 우리나라 독자가 알아채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이 대부분이어서 공감하기 쉽진 않지만 정성은 가득하다. 일본인이라면 작가가 준비해 둔 트릭을 조금 더 쉽게 알아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장르의 구분이 무의미해진 요즘 『이니시에이션 러브』를 미스터리 장르로 한정 지을 필요는 없다. 본질적으로 이 작품은 연애소설이다. 마지막 반전에 조급해서 급히 책장을 넘기지 않아도 작가의 통과의례 사랑이라는 말처럼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이야기에 미스터리라는 양념이 들어간 것이다. 책 표면의 LP는 80년대의 문화 코드인 동시에 A면을 다 듣게 되면 뒤집어서 B면을 듣는다. LP는 A면과 B면이 나뉘어 있고 각각 새로운 기분이 들긴 하지만 과연 그럴까? 모든 것은 하나의 이야기일 뿐이다. 

이런 류-특히 반전이 숨겨져 있는 미스터리-의 책들의 리뷰를 쓰는 것은 굉장히 조심스럽다. 혹시나 읽지 않은 분들이 리뷰를 보고 트릭이나 반전을 눈치채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인데, 트릭이나 반전이 전부가 될 수는 없지만 내용을 알고 읽는 미스터리는 김빠진 콜라 만큼이나 심심하기 때문이다. 무차별적으로 내용을 폭로하는 리뷰들은 최소한 리뷰 첫머리에 경고라도 해두는 것이 아직 책을 읽지 않은 독자들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라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까모는 어떻게 영어를 잘하게 되었나? - 3단계 문지아이들 7
다니엘 페나크 지음, 장 필립 샤보 그림, 조현실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7월
평점 :
절판


다니엘 페낙의 『까모는 어떻게 영어를 잘하게 되었나?』는 영어 공부의 비결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다. 당연히 비효율적인 영어 교육제도와 대학입시제도에서 영어 점수를 올리는 데는 하등의 도움도 안 된다. 그러니 ‘영어 잘하는 비법을 전수합니다’라는 뉘앙스를 진하게 풍기는 제목에 혹하지도, 그처럼 재미없어 보이는 제목에 시큰둥해하지도 않길 바란다. 다른 누구도 아닌, 다니엘 페낙, 바로 그가 아닌가! 

『까모는 어떻게 영어를 잘하게 되었나?』는 영어를 못하는 초등학생 까모와 18세기 영국인 ‘캐시’의 편지로 맺은 우정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영어 점수가 엉망인 까모를 자발적으로 공부시키기 위한 지혜로운 엄마의 기발하고 영리한 묘책에 관한 이야기다. 

세 달 만에 영어를 완벽하게 공부하기로 한 엄마와의 약속으로 까모는 엄마가 권하는 대로 캐시가 영국인이라는 사실만 알고 영어 펜팔을 시작한다. 처음에는 까모의 친구로 까모의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나’에게 대필도 부탁하고 캐시를 ‘로스트비프’라는 무례한 별명으로 부르면서 개구진 편지를 보내지만, 캐시의 답장을 받고서도 그 같은 태도를 유지하기는 어렵다. 깃털 펜으로 쓴 글씨, 18세기의 전형적인 밀랍 봉인, 조지 3세의 스탬프(KING GEORGE Ⅲ), 그리고…… 

   
 

그날, 바로 그날이 공교롭게도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2년째 되는 날이었거든요. 그날도 똑같이 바람이 집 주위를 휘몰아치고 있었고 벽난로에서는 으르렁대는 소리가 요란했지요.  

H를 내 마음에서 몰아내라고요? 차라리 나 자신을 잊으라고 하는 게 낫지요! 

H는 폭풍우가 몰아치는 어느 날 밤에 도망가버렸다. 그의 반항과 텁수룩한 머리와 거친 기질에 캐시도 지치기 시작했을 때였다. 캐시는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었다. 에드거와 이사벨 린튼, 그들은 좋은 교육을 받았고, 옷도 잘 입었으며, 세련된 향기를 풍기는 이들었다. 캐시는 H가 제멋대로, 엉망진창으로 살도록 내버려두었다. 그러던 중 H가 한밤중에 사라져버렸고, 이후에는 아무도 H를 다시 보지 못한 것이었다. 1777년의 저주받은 겨울! 캐시의 편지들은 오로지 기나긴 한탄뿐이었다. 

 
   

까모는 점점 18세기라는 먼 과거의 ‘캐서린 언쇼’로부터 배달되는 편지에 열중하고 각종 영어사전에 코를 박는다. 이쯤 되면 독자가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을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리고 ‘워더링 하이츠(Wuthering Heights)’의 캐서린 언쇼라는 것도. 어쩌면 이렇게 낭만적이고 환상적일 수 있을까. 재미없고 따분한 영어 공부가 순식간에 매혹적인 드라마가 된다. 

까모와 워더링 하이츠의 캐서린 언쇼가 주고받는 편지들을 읽다 보면 에밀리 브론테의 문장들이 올올이 직조되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다니엘 페나크에 대한 애정이 마구 증폭된다. 당신, 이렇게 나를 감탄시켜도 되는 거야? 이렇게 짧은 이야기로 내 마음을 송두리째 가져가도 되냐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