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모는 어떻게 영어를 잘하게 되었나? - 3단계 문지아이들 7
다니엘 페나크 지음, 장 필립 샤보 그림, 조현실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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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다니엘 페낙의 『까모는 어떻게 영어를 잘하게 되었나?』는 영어 공부의 비결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다. 당연히 비효율적인 영어 교육제도와 대학입시제도에서 영어 점수를 올리는 데는 하등의 도움도 안 된다. 그러니 ‘영어 잘하는 비법을 전수합니다’라는 뉘앙스를 진하게 풍기는 제목에 혹하지도, 그처럼 재미없어 보이는 제목에 시큰둥해하지도 않길 바란다. 다른 누구도 아닌, 다니엘 페낙, 바로 그가 아닌가! 

『까모는 어떻게 영어를 잘하게 되었나?』는 영어를 못하는 초등학생 까모와 18세기 영국인 ‘캐시’의 편지로 맺은 우정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영어 점수가 엉망인 까모를 자발적으로 공부시키기 위한 지혜로운 엄마의 기발하고 영리한 묘책에 관한 이야기다. 

세 달 만에 영어를 완벽하게 공부하기로 한 엄마와의 약속으로 까모는 엄마가 권하는 대로 캐시가 영국인이라는 사실만 알고 영어 펜팔을 시작한다. 처음에는 까모의 친구로 까모의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나’에게 대필도 부탁하고 캐시를 ‘로스트비프’라는 무례한 별명으로 부르면서 개구진 편지를 보내지만, 캐시의 답장을 받고서도 그 같은 태도를 유지하기는 어렵다. 깃털 펜으로 쓴 글씨, 18세기의 전형적인 밀랍 봉인, 조지 3세의 스탬프(KING GEORGE Ⅲ), 그리고…… 

   
 

그날, 바로 그날이 공교롭게도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2년째 되는 날이었거든요. 그날도 똑같이 바람이 집 주위를 휘몰아치고 있었고 벽난로에서는 으르렁대는 소리가 요란했지요.  

H를 내 마음에서 몰아내라고요? 차라리 나 자신을 잊으라고 하는 게 낫지요! 

H는 폭풍우가 몰아치는 어느 날 밤에 도망가버렸다. 그의 반항과 텁수룩한 머리와 거친 기질에 캐시도 지치기 시작했을 때였다. 캐시는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었다. 에드거와 이사벨 린튼, 그들은 좋은 교육을 받았고, 옷도 잘 입었으며, 세련된 향기를 풍기는 이들었다. 캐시는 H가 제멋대로, 엉망진창으로 살도록 내버려두었다. 그러던 중 H가 한밤중에 사라져버렸고, 이후에는 아무도 H를 다시 보지 못한 것이었다. 1777년의 저주받은 겨울! 캐시의 편지들은 오로지 기나긴 한탄뿐이었다. 

 
   

까모는 점점 18세기라는 먼 과거의 ‘캐서린 언쇼’로부터 배달되는 편지에 열중하고 각종 영어사전에 코를 박는다. 이쯤 되면 독자가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을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리고 ‘워더링 하이츠(Wuthering Heights)’의 캐서린 언쇼라는 것도. 어쩌면 이렇게 낭만적이고 환상적일 수 있을까. 재미없고 따분한 영어 공부가 순식간에 매혹적인 드라마가 된다. 

까모와 워더링 하이츠의 캐서린 언쇼가 주고받는 편지들을 읽다 보면 에밀리 브론테의 문장들이 올올이 직조되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다니엘 페나크에 대한 애정이 마구 증폭된다. 당신, 이렇게 나를 감탄시켜도 되는 거야? 이렇게 짧은 이야기로 내 마음을 송두리째 가져가도 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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