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니시에인션 러브>를 리뷰해주세요.
-
-
이니시에이션 러브
이누이 구루미 지음, 서수지 옮김 / 북스피어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추리소설의 저변이 넓은 일본에서는 작품을 생산하는 작가와 또 그것을 소비하는 독자층의 폭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소수를 위한 작품이나 새로운 것에 대한 요구도 큰 편이다. 이에 따라 전통적인 기법을 따른 미스터리는 물론 일본과는 그다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하드보일드까지 수많은 작품들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 작품 이누이 구루미의 『이니시에이션 러브』도 독자들의 새로운 요구에 부응하는 작가의 결과물이다. 최근 우리나라에 소개되고 있는 작품들을 본다면 미스터리의 한 분류로 봐도 되지 않을까 할 정도로 서술형 트릭을 가진 작품들이 많다. 서술형 트릭이라는 것은 영상으로는 만들어질 수 없는 말 그대로 텍스트로만 가능한 트릭이다. 우타노 쇼고의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와 같은 경우 서술형 트릭이 어떤 것인지를 제대로 보여준 작품이었고 얼마 전 소개된 오리하라 이치의 『도착의 론도』는 이야기의 내용은 다르지만 그 분위기는 이 작품과 굉장히 비슷하다.
굳이 ‘마지막 세 줄로 모든 것이 뒤바뀐다’는 광고가 아니어도 마지막 세 줄을 읽게 되면 ‘어!’ 하면서 책의 앞부분을 뒤적이게 될 것이다. 마지막 감탄사는 작가에게 완전히 속았다는 기분일 수도 있고 자신이 추리했던 트릭을 확인하는 과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마지막에 작가가 준비한 해설과 함께 다시 읽게 된다면 짐작했던 트릭만이 전부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작가가 부지런히 준비하고 작품 곳곳에 배치한 트릭은 과거 일본에서 유행했던 것들-작품의 소제목을 장식하고 있는 80년대 일본의 가요나 주인공들의 이야기에도 큰 역할을 하는 <일곱 남녀의 사랑 이야기>같은 히트 드라마를 우리나라 독자가 알아채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이 대부분이어서 공감하기 쉽진 않지만 정성은 가득하다. 일본인이라면 작가가 준비해 둔 트릭을 조금 더 쉽게 알아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장르의 구분이 무의미해진 요즘 『이니시에이션 러브』를 미스터리 장르로 한정 지을 필요는 없다. 본질적으로 이 작품은 연애소설이다. 마지막 반전에 조급해서 급히 책장을 넘기지 않아도 작가의 통과의례 사랑이라는 말처럼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이야기에 미스터리라는 양념이 들어간 것이다. 책 표면의 LP는 80년대의 문화 코드인 동시에 A면을 다 듣게 되면 뒤집어서 B면을 듣는다. LP는 A면과 B면이 나뉘어 있고 각각 새로운 기분이 들긴 하지만 과연 그럴까? 모든 것은 하나의 이야기일 뿐이다.
이런 류-특히 반전이 숨겨져 있는 미스터리-의 책들의 리뷰를 쓰는 것은 굉장히 조심스럽다. 혹시나 읽지 않은 분들이 리뷰를 보고 트릭이나 반전을 눈치채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인데, 트릭이나 반전이 전부가 될 수는 없지만 내용을 알고 읽는 미스터리는 김빠진 콜라 만큼이나 심심하기 때문이다. 무차별적으로 내용을 폭로하는 리뷰들은 최소한 리뷰 첫머리에 경고라도 해두는 것이 아직 책을 읽지 않은 독자들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