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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잔의 차
그레그 모텐슨.데이비드 올리비에 렐린 지음, 권영주 옮김 / 이레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나는 타인을 위한 ‘나눔’에 후하지 않다. 오히려 인색한 편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말일 것이다. 작은 콩알 하나라도 반쪽으로 나누어 함께 먹으면 그게 나눔의 시작이라고, 사실 나눔은 큰맘 다잡아 먹어야 하는 거창한 일이 아니라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아주 사소한 나눔부터 실천하는 일이라고, 그렇게 골백번 들어도 나와 내 가족 이외의 낯선 타인과 뭔가를 기꺼이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더구나 혹시나 나도 모르는 새 그게 동냥에 동전 몇 푼 던져주는 값싼 선심에 기인한 마음일까 봐 더더욱 움츠러들었다.
그 때문일까, 『세 잔의 차』처럼, 게다가 국경을 초월하여 생면부지 타인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나누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감동적이고 아름답지만 적이 불편했다. 책을 읽고 나서도 이런 양심 고백 비슷한 고해성사를 남기게 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세 잔의 차』를 선택하고 읽기 시작한 것은 “Three Cups of Tea”라는 다소 낭만적인 원제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중간쯤에 따뜻하고 포근한 제목의 연유가 나온다.
“입천장을 델 것처럼 뜨거운 버터차가 나오자 하지 알리는 차를 후후 불면서 말했다. ‘발티 사람과 처음에 함께 차를 마실 때, 자네는 이방인일세. 두 번째로 차를 마실 때는 영예로운 손님이고. 세 번째로 차를 마시면 가족이 되지. 가족을 위해서라면 우리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네. 죽음도 마다하지 않아.’그는 모텐슨의 손에 손을 얹고 말했다. ‘닥터 그레그, 세 잔의 차를 함께 마실 시간이 필요한 거야. 우리는 교육을 못 받았을지 몰라도 바보는 아니라네. 우리는 오랫동안 이곳에서 살아왔고 또 살아남은 사람들이야.’”
그레그 모텐슨은 산악 등반가로 세계 제2의 고봉, 카라코람산맥 K2 등정에 나섰다가 동료들과도 떨어진 채 조난당해 외따로 길을 헤메대가 발토로 빙하 아래 척박한 계곡의 작은 마을, 코르페로 우연히 흘러들게 된 낯선 미국인 이방인이었지만, 뜨거운 차 세 잔을 함께 마시고 코르페 마을 사람들과 가족이 되었다. 촌장 하지 알리의 말처럼, 미국인 루터교(기독교) 이방인이 국경도, 인종도, 종교도 초월하여 독실한 시아파 이슬람교도들과 “죽음도 마다하지 않게 되는” 가족이 된 것이다. ‘가족’이라면 함께 나누지 못할 것이 없다. 하지만 그 나눔의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미국인 기독교도 이방인이 파키스탄인 시아파 이슬람교도와 함께 나누는 과정에는 어쩔 수 없는 편견들이 개입했고 911 테러도 일어났다.
『세 잔의 차』에는 그럼에도 ‘가족’을 위해 선한 의지를 굽히지 않은 굳센 사람, 그레그 모텐슨의 삶이 올곧게 들어 있다. ‘가족’이라는 말에서 범속한 공감대를 이끌어내기는 했지만, ‘학교’라는 나눔을 통해 미래를 공유하는 그의 삶은 참으로 가치 있다. ‘어떤 삶이 가치 있는가?’, ‘어떻게 살아야 바른가?’에 대한 정답은 너무나 자명하다. 그러나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는 여전히 용기를 내기가 어렵다. 이렇게 양심을 두드려 이기적인 내 안에 안주하는 나를 뒤흔드는 이야기는, 그래서 불편하다. 하지만 언제까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대답을 미루고 있을 것인가? 반드시 ‘실천’까지 이어져야 하는, 내 인생의 대답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