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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 독서처방 - 매혹적인 독서가 마녀의 아주 특별한 冊 처방전
김이경 지음 / 서해문집 / 2010년 8월
평점 :
(읽은) 책 이야기를 하는 수많은 책들 중에서 『마녀의 독서처방』이 유독 돋보이는 것은 ‘마녀’와 ‘처방’ 때문이다. 어슷비슷한 책들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이 두 단어로 인해 『마녀의 독서처방』은 특별하게 다가온다.
먼저, 김이경은 왜 책 이야기를 하면서 ‘마녀’를 자처할까? 그녀는 “마녀로 살겠다는 것은 남의 눈이 아니라 내 눈으로 세상을 보고, 내 생각대로 판단하고, 내 마음이 끌리는 대로 살겠다는 다짐”이라고, 자신이 읽은 책들을 본격적으로 풀어놓기 전에 미리 말한다. 마녀의 기원은 원시 샤머니즘의 샤먼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겠지만, 그리 태곳적부터 더듬지 않아도 ‘마녀사냥’이라는 말은 요즘도 곧잘 들을 수 있다. 이 말은 중세 유럽의 마녀재판에서 기인한다.
사람들의 정신을 지배했던 기독교적 질서와 사회체제를 유지하는 데 방해되는 것들을 멸절시키거나, 교황을 위시한 귀족들의 기득권을 더욱 공고히 다지기 위해 수많은 ‘마녀’들을 처형했다. 기독교적 세계관에 순응하지 않고 남다른 생각(곧 사상)으로 새로운 세상을 꿈꿨던, 그리하여 하늘에서 내려와 땅과 인간의 새 시대를 열었던 사람들, 그들이 모두 ‘마녀’였다. 그러니 마녀이길 꿈꾸는 김이경은 얼마나 당차고 옹골지고 용감한가.
의사가 환자에게 아픈 곳을 낫게 하는 약을 처방하듯 김이경은 책도 약처럼 ‘처방’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오로지 그 책이었기 때문에 그때 위로받았다는 생각을, 사실 나는 별로 하지 않았다. 이런저런 일들로 성가셔진 현실에서 벗어나 책 속으로 도피하고 싶을 때는 아무 책이나 집어 들고 코를 박았다. 꼭 특정 책이 아니어도 잠깐 현실을 놓아버리는 마법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었다. 그런데 어쩌다 보면 우연히 골라 든 책이 유난히 가슴 뭉클하게, 눈물 나게 할 때가 있다. 그건 책과 마음의 주파수가 딱 들어맞아 증폭작용을 일으켰기 때문일 것이다.
가끔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데 그 말들이 서로에게 가닿지 못한 채 허공에 흩어질 때가 있다. 말과 말이 조응하지 못한 채 서걱이다가 낱낱이 흩어진 자리에 남는 것은 황망한 눈빛, 엇갈리는 마음, 갑자기 낯설어진 사람뿐일 때. 그때도 꼭 그랬다. 때마침 앤디 메리필드의 『당나귀의 지혜』를 읽었다. 웃으면서 울게 됐다. 그리고 앤디 메리필드에게 위안이 되어주었던 당나귀 그리부예의 침묵이 나에게도 평화롭게 내려앉아 내 마음을 어루만졌다. 자가 진단 후 ‘처방’을 의도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때 내 상처를 아물게 해줄 유일한 처방이었다고 생각한다.
『마녀의 독서처방』에서 마녀이길 꿈꾸는 김이경은 “이렇게 살 수도, 죽을 수도 없어서” 책이 필요할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책을 처방한다. 처음이라는 설렘과 두려움 사이를 종종거릴 때, 성공하고 싶어질 때, 은근히 잘난 척하고 싶을 때, 공짜 여행을 하고 싶을 때, 가슴 뛰는 인생을 살고 싶을 때, 온통 나쁜 뉴스에 울화가 치밀 때, 나만의 방을 갖고 싶을 때, 못생긴 내 얼굴을 탓하게 될 때, 바람을 피우고 싶을 때, 권태기와 찾아왔을 때, 마음이 지치고 숨이 막힐 만큼 인생이 흔들릴 때, 사랑을 잃었을 때, 세상의 모든 걱정을 혼자 떠안고 있는 것 같을 때, 되는 일이 하나도 없을 때, 이해가 오해를 부를 때, 세상에 딴지를 걸고 싶을 때, 회사에서 사표를 던지고 싶을 때, 뒷담화를 하고 싶을 때, 사람이 싫어질 때, 가출하고 싶을 때, 고배를 마셨을 때, 앞날이 캄캄할 때, 거울 속 내 얼굴 주름이 유난히 눈에 띌 때, 춘곤증에 몸을 가누기 힘들 때, 열대야에 잠을 설칠 때, 다이어트를 하고 싶을 때, 법을 확 뜯어고치고 싶을 때, 말싸움에서 이기고 싶을 때, 역사 교과서가 마음에 안 들 때, 책을 읽기 싫을 때, 거짓말이 듣고 싶을 때, 울음이 터질 때, 분노의 하이킥을 날리고 싶을 때, 슬픔이 목까지 차오를 때, 나를 알아주지 않는 남들이 원망스러울 때, 위로의 말이 오히려 상처가 될 때, 삶의 의미를 잃었을 때, 나이가 무서울 때, 마음에 빗장을 지르고 싶을 때…….
젊은 여성 독서가로 유명한 정혜윤과 비교하자면, 정혜윤은 모호한 어휘들을 감각적으로 엮어 알듯 말듯한 의미의 화려한 문장을 구사한다. 게다가 그녀 특유의 감성이 짙게 배어 있어 보편적인 공감을 이끌어내기에는 쉽지 않아 보인다. 반면 김이경은 정혜윤에 비해 쉽고 명확한 단어들로 소박한 문장을 구사하지만, 책을 읽어내는 깊이는 모자라지 않고 책의 행간에서 짚어내는 위로는 월등하다. 그녀는 마치 아픈 환자에게 병에 대해, 그리고 치료법에 대해 조근조근 설명하는 젊은 아가씨 의사 같다. 갓 의사가 되어 첫 환자를 만난, 그래서 사명감과 열정이 넘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