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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자 ㅣ 오리하라 이치의 ○○자 시리즈
오리하라 이치 지음, 김선영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엘러리 퀸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그의 작품들 말미에 항상 등장하는 ‘독자에게 보내는 도전장’을 기억할 것이다. 모든 정보는 숨기거나 가감 없이 탐정과 똑같이 독자에게 제공되었으니 추리를 통해 사건의 범인을 알 수 있겠느냐고 도전하는 것이다. 이런 추리소설에서 말하는 페어플레이를 통해 독자와 지적 게임을 즐기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다. 그렇다면 서술트릭이라 불리는 작품들은 어떠한가? 서술트릭으로 잘 알려진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살육에 이르는 병』과 같은 작품들을 보면 작가는 서술을 통해 의도적으로 독자에게 잘못된 방향을 제시한다. 이처럼 서술트릭의 경우 작가의 개입이 많은 이유는 독자에게 충격을 주기 위한 마지막의 반전 때문이며 그 반전의 핵심이 약간의 정보-특히 시각적인 정보-만으로도 쉽게 드러날 수 있는 전혀 의외의 사실이기 때문이다.
오리하라 이치의 경우는 조금 색다르다. ‘도착(倒錯)’ 시리즈의 경우 범인보다 트릭 자체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서술트릭의 가장 큰 맹점이라고 할 수 있는 독자를 속이고 기만했다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이런 이유 때문에 ‘독자에게 보내는 도전장’이 가능했을 것이다. 『실종자』는 ‘도착(倒錯)’ 시리즈에 이은 ‘OO者’ 시리즈로 자신의 특기인 서술트릭에 사회파 추리소설을 결합한 작품이다.
일본의 시골 마을인 구키의 작은 창고에서 시체가 발견된다. 얼마 전 행방불명 신고가 접수된 여자였고 시체의 옆에는 ‘유다의 아들’이라는 메모가 함께 발견되었다. 수사 과정에서 창고 뒤편에 검은 비닐에 쌓여 백골이 된 시체 한구가 또 발견되고 입에는 ‘유다’라고 쓰인 쪽지가 물려 있었다. 백골이 된 시체는 15년 전 행방불명된 소녀였고 이후 두 구의 시체가 더 발견된다. 15년 전 발생한 ‘유다’ 사건과 현재 진행 중인 ‘유다의 아들’ 사건에는 어떤 연관점이 있을까? 15년 전 사건의 범인인 소년A, 그리고 현재 사건의 용의자가 된 또 다른 소년A. 논픽션 작가 다카미네 류이치로는 과거의 사건과 현재의 사건이 관계가 있음을 직감하고 조수인 간자키 유미코와 함께 조사에 나선다.
『실종자』의 경우 특히 더 꼼꼼하게 읽어야 한다. 아버지의 편지, 과거와 현재의 소년A의 이야기가 교차적으로 등장하는 까닭에 흐름을 잡기가 쉽지 않다. 작가가 펼쳐 놓은 수많은 함정을 피해 트릭을 파헤칠 수 있을까? 오리하라 이치는 이런 트릭 속에 범죄자의 숨겨진 광기,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근본적인 인간성을 탐구하고 있다. 요즈음 발생하는 극악한 범죄를 보면 ‘소년A’로 대표되는 가해자의 인권보호가 과연 꼭 옳은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피해자 가족의 삶은 끝까지 나락으로 떨어졌어도 이에 우선하는 가해자의 인권보호에 관한 문제는 민감하긴 하지만 비상식적이라는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