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븐? Heaven 6 - 완결
사사키 노리코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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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븐》은 이가 칸이 여사장 쿠로스 카나코가 경영하는 로윈 디시의 개업과 폐업을 회상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쿠로스의 도발적인 콧김과 이가 칸의 달관 혹은 체념 섞인 미소가 특히 더 인상적인 만화이다.

 

로윈 디시(Loin d’lci)는 ‘이 세상의 끝’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공동묘지 저편에 있는 레스토랑이다. 목단꽃이 아름다워서, 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자신의 집과 가까운 곳에 들러서 언제든지 맛있는 요리를 먹기 위해서 공동묘지 한쪽에 프랑스 요리점 로윈 디시를 개업하기로 한 쿠로스. 추리소설 작가이지만, 작가로서의 면모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로윈 디시의 실질적인 축은 쿠로스와 또 한 사람, 바로 이가 칸이다. 이가 칸은 대학 입학 시험을 봐야 했지만, 못말리는 엄마와의 해프닝을 시작으로 우연에 우연이 겹쳐서 엉겁결에 프랑스 요리점의 웨이터가 된다. 그리고 또 우연히 로윈 디시의 개점을 준비하던 쿠로스의 눈에 띄었다. 자신이 주방장으로 일하던 음식점마다 망한 징크스를 가지고 있는 수석요리사 오자와, 자격증 취득에서 삶의 희열을 찾는 전직 은행원 소멀리에 야마가타 시게오미, 어떤 실수를 해도 주눅 들지 않고 희희낙락하는 천둥벌거숭이 카와이 타이치, 중화요리점과 돈가스점의 점장으로 일한 경력밖에 없는 지배인 츠즈미 케이타로. 이들도 모두 우연히 쿠로스에게 발탁되었다.

 

그냥 발탁되었다. 쿠로스에게는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는 치명적인 약점인 이가 칸의 무표정도 일명 레스토랑에서 가장 중요한 ‘거리감’이자 ‘손님과 종업원 사이의 적당한 긴장감과 친근감’이자 ‘개성’이 된다. 그러나 쿠로스는 오자와, 야마가타 시게오미, 카와이 타이치, 츠즈미 케이타로 모두에게 즉흥적으로 레스토랑에 가장 중요한 것을 각각 다르게 말했다. 레스토랑에 가장 중요한 그 무엇은 상황에 따라 쿠로스의 마음대로 늘 달라지지만, 술을 많이 마실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로윈 디시의 절대 조건이다. 이러한 로윈 디시에서 너무나 제멋대로인 쿠로스와 지극히 상식적인 이가 칸이라는 극단적인 두 인물이 교묘하게 균형을 이루어간다.

로윈 디시는 철저히 우연의 산물이다. 로윈 디시가 문을 닫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도 우연히 내리친 벼락이다. 로윈 디시는 완전히 불타버렸다. 그러나 플롯상으로는 치명적인 ‘우연’도 ‘이 세상의 끝’이라는 로윈 디시에 어울리는 설정이다. 로윈 디시는 환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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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얘기해주고 싶은 것들
윤대녕 지음 / 문학동네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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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소설가 윤대녕을 좋아하는 것은 그 동안 다른 소설가들을 좋아하는 것보다 훨씬 변화가 심하다. <상춘곡, 1996>에서 윤대녕에 깊숙이 빠졌고 <사슴벌레여자>를 읽고 좀처럼 씻어내기 힘든 배신감 비슷한 실망감을 느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는 다시 그가 좋아졌다고 감히 말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아주 사사로운 한 개인의 편지를 몰래 엿보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느낌은 남의 편지를 몰래 엿본 죄의식이나 죄책감이 아니라, 편지 곳곳에 묻어나는 곱고 예쁘고도 슬픈 이야기를 나도 함께 할 수 있다는 두근거림이었다.

 

이 책은 한 사내가 여인에게 보내는 편지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 책의 표지에는 “윤대녕 여행산문”이라고 쓰여 있지만, 여행산문이라기보다는 단지 여인에게 보여주고 싶은 사내의 깊은 마음이 담긴 편지 묶음이라야 어울릴 것 같다.

 

차라리 소설이었으면 좋겠다.

여인도, 편지를 쓰는 사내도 모두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 는 기분이다.

아주 기분 좋은 사색을 10일 동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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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정호승 지음 / 열림원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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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달다

운주사 와불님을 뵙고
돌아오는 길에
그대 가슴의 처마끝에
풍경을 달고 돌아왔다
먼데서 바람 불어와
풍경소리 들리면
보고 싶은 내 마음이
찾아간 줄 알아라
-6쪽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낙엽이 떨어질 때를 아는 사람을 사랑하라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낙엽이 왜 낮은 데로 떨어지는지 아는 사람을 사랑하라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한 잎 낙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라
시월의 붉은 달이 지고
창밖에 따스한 불빛이 그리운 날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한 잎 낙엽으로 떨어져 썩을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라
한 잎 낙엽으로 썩어
다시 봄을 기다리는 사람을 사랑하라
-65-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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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정호승 지음 / 열림원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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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박항률의 <소녀>라는 그림을 알게 되었고, 그림 속의 소녀 머리 위에 있는 물고기에 매료되어 홈페이지에 올린 것이 계기가 되었다. 홈페이지의 방문자 중 한 사람이 그 그림 속의 물고기에 관한 이야기가 바로 이 책에 들어 있다고 알려준 것이다.

푸른툭눈과 검은툭눈은 풍경에 매달려 있는 물고기이다. ‘비어’가 되길 간절히 바라는 푸른툭눈… 이 책은 푸른툭눈의 물고기로서의 자아 찾기와 검은툭눈의 진지하고 소중한 존재감에 관한 이야기이다. 아마도 그 방문자는 이 책 안의 삽화 중 민들레 꽃향기를 맡고 있는 소녀(다솜이)의 머리 위에 앉은 비어의 그림 때문에 내게 알려준 것이 아닐까…

푸른툭눈은 백석의 <집게네 네형제>의 시 속에 나오는 막내집게와 같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막내집게는 푸른툭눈처럼 시행착오를 겪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가 선명하게 담아낼 수 있는 부분과 소설이 선명하게 담아낼 수 있는 부분이 극명히 다른 듯싶다. 그 한계 또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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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이야기
줄리아 알바레스 지음, 송은경 옮김 / 나무심는사람(이레)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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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 기계화에 따른 현대식 커피 농법 대신 전통 커피 농법인 옛날식 그늘커피 재배법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전통식으로 커피의 진한 향과 맛을 지키려고 애쓰는 사람들의 노력을 알 수 있다.

 

먼저 키가 큰 나무를 심어 우거지게 한 다음, 그 나무들 아래에 커피 나무를 심는다. 따가운 햇살을 알맞게 가려주고, 세찬 빗줄기를 막아주고, 강한 바람으로부터 보호해 주고, 낙엽으로 떨어져 거름이 되어 땅을 비옥하게 하고, 인간에게는 과일과 땔감을 주고……, 그 나무들을 찾아온 새들의 노랫소리는 커피 나무를 더욱 잘 자라게 하고……. 진정으로 자연이 주는 풍성한 혜택을 누리면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보여주는 것 같다.

 

커피 한 잔을 마셔도 가장 질 좋은 커피를 마시며, 커피잔에 남은 커피가 흘러내리는 자국으로 점을 치는 도미니크 공화국 사람들. 그들의 맛있는 커피 한 잔에는 그윽한 향기뿐만 아니라 새소리도 넘쳐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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