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므 파탈 - 치명적 유혹, 매혹당한 영혼들
이명옥 지음 / 다빈치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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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아름다움마저도 독이 되는 여인들이 있었으니, 그녀들의 이름이 바로 팜므 파탈이었다.

 

이 책은 세례 요한의 목을 요구한 살로메부터 20세기 영화배우 마릴린 먼로까지, 성서와 그리스로마신화, 역사의 뒤안길, 문학을 넘나들며 화가들에게 팜므 파탈의 영감을 주었던 여인들을 흥미롭게 다루고 있다. 게다가 어느 부분을 펼쳐도 한눈에 반할 만큼 지독히 아름다운 여인들이 가득 들어앉아 있다. 보는 눈이 즐겁다(그림이 좀더 크고 그림의 질이 더 좋았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었을 텐데……). 또한 귀가 솔깃해지도록 이야기를 풀어가는 저자의 재주(?) 덕분에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러나 단숨에 읽어 내린 후에 미진하게 남아 있는 이 쓸쓸함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 책에서 팜므 파탈, 즉 아름다운 요부들은 하나같이 남성들을 파멸로 이끄는 주범들로 다루어진다. 그녀들의 아름다움이 아름다움 그 자체로 평가되지 않고, 남성들의 영혼까지 녹여 내릴 만큼 치명적인 독으로 작용해야만 ‘팜므 파탈’이라는 너울 아래 회자될 수 있는 기회를 얻으니, 그녀들도 피곤하다. 더군다나 그녀들의 매혹적인 이야기에 희생자인 양 끼어드는 남성이 꼭 하나씩은 있으니, 그녀들은 더욱 억울하다.

 

억울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사랑’이라는 전쟁에서 당당히 승리하고 얻은 전리품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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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우산 (양장)
류재수 지음, 신동일 작곡 / 재미마주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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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어른인 나는 아이나 어린 조카를 위해 동화책을 즐겨 사는 게 아니다. 동화책은 언제나 나에게 감탄을 연발하게 하고 경이롭게 느껴지기 때문에, 나는 동화책을 고르고, 사고, 보는 걸 도저히 멈출 수 없다.

 

오늘 나는 ≪노란 우산≫을 처음 만났다. 그리고 이제 내 생애 최고의 동화책이 되었다.

 

인간의 감정과 사상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수단에는 문자(언어), 그림, 음악이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음악이 본능적이고 원시적인 동시에 가장 고차원적인 표현수단이라고 생각하며, 그 다음이 그림, 그리고 문자가 인간이 생각해 낸 가장 조잡한 표현수단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대부분의 우리는 뭔가를 표현하는 데 말과 문자를 포함하는 언어를 맹신한다.

 

그러나 ≪노란 우산≫은 책장을 넘기면서 눈에 그 잔상을 남기는 것만으로도 문자 없이 모든 것을 고스란히 마음으로 전해 주었다. 책을 시각인 눈을 통해 읽으면서 받아들이고 뇌에서 해석하고 나서야 그 지령에 따라 뭔가를 느끼는 게 아니라, 그냥 책과 공명하고 있는 것 같은 이 설레는 떨림은 참으로 오랫만이다. 이 책 속에 포함된 음악CD의 선율은 이 책 속에서 떨어지고 있는 빗방울이 내 마른 가슴에도 떨어져 내려 촉촉이 스며드는 것 같은 근사한 기분에 빠져들게 했다.

 

빛깔 고운 우산들과 그 정겨운 풍경들을 생각하면, 왠지 이제 비 오는 날이 즐거워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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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을 나온 암탉 (반양장) - 아동용 사계절 아동문고 40
황선미 지음, 김환영 그림 / 사계절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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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하는 길, 어느 날 아침에 라디오에서 소개해 준 책이었다. 글쓴이가 황선미라는 말에 더욱 관심이 갔는데, 벌써 나는 <빈집에 온 손님>이라는 황선미의 그림책을 한 권 가지고 있던 터라 더욱 그 이름이 반갑게 들렸을 것이다.

 

이 창작동화의 제목인 마당을 나온 암탉은 ‘잎싹’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주인공 닭이다. 잎싹이라는 이름은 꽃을 풍성하게 피어내는 아카시아 나무의 ‘잎사귀’에서 따다가 자신에게 붙여 준 이름이다. 이 닭은 양계장 닭으로 결코 부화되지 않는, 즉 병아리가 될 수 없는 알만 평생 낳다가 폐계가 되어야 겨우 철망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난용종(卵用種) 암탉이다. 잎싹은 자신의 알이 무정란(無精卵)인 것도 모른 채 자신이 낳은 알을 품어 자신의 병아리를 보고 싶어하는, 결코 이룰 수 없는 꿈을 간직하고 있었다.

 

잎싹은 폐계로 판정을 받고 나서야 겨우 철망으로 만들어진 닭장에서 벗어나게 된다. 잎싹에게 닭장에서의 탈출은 곧 마당으로의 진입을 의미했지만, 잎싹은 폐계가 되어 죽은 암탉들만 던져 놓은 구덩이에 버려진다. 잎싹은 청둥오리인 나그네를 만나 마당으로의 진입을 시도하지만, 이미 마당에서 삶을 누리고 있었던 기존의 기득권 세력인 수탉 부부와 오리 떼, 늙은 개에 의해 거부당하고 만다. 이제 마당은 잎싹에게 새 삶의 터전이자 자신의 알을 품을 수 있는 희망의 공간이 아니라, 구덩이와 다를 바 없는 공간이 된다.

 

잎싹은 우연한 기회에 뽀얀 오리가 낳은 나그네 청둥오리의 알을 품게 된다. 그 알은 잎싹에게 병아리가 될 수 없는 알을 낳는 상처받고 좌절한 마음에 대한 보상이자 그대로 잎싹의 병아리, 어린 아기가 된다. 족제비는 잎싹과 청둥오리, 뽀얀 오리, 알(초록머리)의 적대자로 등장하는데, 뽀얀 오리는 족제비에게 희생되고 나그네 청둥오리는 잎싹과 자신의 알을 지키기 위해 알이 깨어날 때까지 족제비에게 대항하다가 스스로 족제비의 먹이가 된다. 왜냐하면 날개가 잘려서 동족의 무리에 낄 수 없었던 나그네 청둥오리는 자신의 알이 자라서 진정한 청둥오리로서의 정체성을 찾길 원했기 때문이었다. 잎싹은 알이 진정한 청둥오리 초록머리로 자랄 때까지 족제비에게 대항하다가 스스로 족제비의 먹이가 된다. 왜냐하면 잎싹은 족제비도 자신의 새끼를 키우는 어미임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마당을 나온 암탉>은 동화책이지만, 단순하지만은 않은 확고한 주제의식을 가지고 잎싹과 나그네 청둥오리, 초록머리의 심리를 섬세하게 다루고 있어 많은 것을 생각하도록 해준다. 어느 누구에게나 의미가 될 수 있는 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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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리타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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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도 역시 내가 읽어본 몇몇 안 되는 대부분의 다른 일본 작가가 쓴 소설들처럼 이상하고 비상식적인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나 <태엽 감는 새>, 무라카미 류의 제목만 투명한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처럼 공감하기 힘들고 이해하기 어려우며 읽는 내내 어떤 느낌도 가져보지 못했다.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기억을 상실해 버린 여자 주인공 사쿠미는 기억을 잃어버리기 전 자신과 기억을 잃어버린 후의 자신이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힘들어하기는 하지만, 오히려 그 상황을 즐기는 편이다.

 

연예계 생활을 그만두고 방황하다가 자살해버린 예뻐서 눈길을 뗄 수 없는 사쿠미의 여동생 마유는 눈과 미소가 예쁘다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자살한 여동생의 남자친구이자 독특한 작가인 류이치로는 그 언니인 사쿠미의 애인이 된다.

 

감수성이 극도로 예민한 배다른 사쿠미의 동생인 요시오는 초등학생. 앞일을 미리 예견하거나 먼 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감지하고 의식만으로 다른 장소로 이동할 수 있는 등 특수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또래의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다.

 

첫 남편과 사별하고 두 번째 남편과 이혼하고 세 번째 남자친구를 가지고 있는, 사쿠미와 마유와 요시오의 어머니 대신 어머니 노릇을 하고 있는 어머니 친구인 바람난 준코 아줌마.

 

이 소설 중에서 가장 바람직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유부남을 사랑한 사쿠미의 친구 에이코는 그의 부인의 칼에 찔린다.

 

혼과 통하는 ‘변소’를 의미하는 이름을 가진 사세코, 혼혈아이면서 요시오와 같이 범상치 않은 예지력을 가진 그의 남편 코즈미씨.

 

이상한 능력을 가진 요시오의 친구 밀국수와 고독한 메스머씨 등등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인물들 – 소설 속에서 그들 자신도 자신이 평범하지 않다고 인정하고 있다 – 의 이상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그 이야기들에서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가 말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일까.

 

그저 그런 이야기의 나열일 뿐이라 하더라도 어떤 소설이든 작가가 설정한 주제를 향해 일관성이 있다. 특별한 주제가 없다고 작가가 천명하더라도 그 작가가 글을 쓰면서 염두에 두고 있었던 그 무엇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암리타>에서는 무엇일까?

 

작가는 류이치로의 입을 빌려 암리타란 “신이 마시는 물, 감로수”라고 밝히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물을 꿀꺽꿀꺽 마시는 것 같은 것”이라고 부연한다.

 

이상한 사람들, 이상한 관계, 이상한 경험들도 모두 결국 평범하기 그지 없는 일들의 연속이라는 것일까?

읽어나가면 읽어나갈수록 도무지 그 무엇을 알 수가 없어진다.

 

나와 이 소설의 공감대는 전혀 형성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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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암성 까치글방 아르센 뤼팽 전집 3
모리스 르블랑 지음, 성귀수 옮김 / 까치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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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별 다섯 개를 모두 주지 못하고 별 하나를 채우지 않은 이유는 홈즈가 총을 쏘아 뤼팽의 아내를 죽였기 때문이다. 뤼팽이 결코 총을 쏘아 사람을 죽이지 않듯이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에서 홈즈도 결코 총을 쏘아 누군가를 죽이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리스 르블랑이 홈즈를 빌려온 것은 그다지 개의치 않으나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진 홈즈의 성격과 인물 됨됨이를 제멋대로 변형시켜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나 이 점을 제외하면 대체로 무척 만족한다. 우선 내가 좋아하는 신비로운 성이 나오고 난해하고 복잡한 암호문을 해독해야만 차지할 수 있는 보물 찾기가 마음껏 펼쳐지기 때문이다. 물론 그 모든 이야기들은 신빙성 있는 역사적 사건과 실제 장소들을 토대로 모리스 르블랑의 상상력의 힘을 빌어 현실보다 더 현실감 있고 긴장감 넘치게 펼쳐진다.

 

더구나 독립적이고 단편적인 각각의 이야기들로 묶여진 <셜록 홈즈> 시리즈에 비해서 <아르센 뤼팽> 시리즈는 연결고리를 통해 또 다른 이야기로 이어진다. <<아르센 뤼팽 전집>>(까치글방 발행) 제2권 <뤼팽 대 홈스의 대결>에 포함되어 있는 ‘금발의 귀부인’ 이야기에서 완전히 별개인 건물들이지만 비밀통로로 연결되어 결국 하나로 통하는 뤼팽의 은신처가 홈스에 의해 밝혀지자, 뤼팽은 자신이 미리 확보해둔 미지의 곳으로 은신처를 옮겼다고 나오는데, 난공불락인 기암성이 바로 그 은신처인 것이다.

 

모든 이야기들이 완벽하게 연결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 이야기의 조그마한 단서가 또 다른 이야기에서 비중 있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 무척 흥미로우며, 다음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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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ya1812 2005-07-27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걸 누가 썼는진 모르지만... 모리스 르블랑은 홈즈를 따낸숌즈를 만들어 이야기를꾸미고있습니다... 그런데... 글을자세히 읽어보시면뤼팽을 숌즈가 죽이려들자 뤼팽의 아내가 뛰어들었다는얘기가 있습니다.. 책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숌즈가 죽인것은 아니고 아내가 숌즈로부터 뤼팽을 보호하기 위하여 대신죽었다는내용만은같습니다...

zipge 2005-07-27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도 홈즈는 사람을 죽이려고 총을 쏘아대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뤼팽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소설인데 르블랑이 하필이면 홈즈와 비슷한 이름의 비슷한 약력의 인물을 등장시킨 것은 아무래도 마뜩하지 않습니다.ㅡㅡ; '숌즈'로 눈가림한다고 해도 누구나 '홈즈'라는 것은 아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