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1 | 12 | 13 | 14 | 1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곽재구의 포구기행 - MBC 느낌표 선정도서, 해뜨는 마을 해지는 마을의 여행자
곽재구 글.사진 / 열림원 / 200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포구가, 바다가, 노을이, 아침 햇살이, 어선이, 집어등이,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팥죽이 내 오감을 자극한다. 당장 나를 얽고 있는 일상을 훌훌 털어버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 한 권과 음반 하나를 골라 배낭에 짊어지고 남루한 여행자의 행색으로 길을 떠나고 싶다. 한 걸음, 한 걸음, 그렇게 일상에서 멀어지고 바다와 육지를 이어주는 포구에 가까워질수록 짭조름한 갯내 어린 바닷바람과 눈 시리도록 푸르게 펼쳐진 풍광에 뒤에 두고 온 일일랑 까맣게 잊고, 곽재구 시인처럼 맑은 시정에만 취할 수 있을까.

곽재구는 발길 닿는 대로 우리나라의 포구들을 터벅터벅 돌아다니며 광대한 자연과 인간의 어울림을 시인 특유의 감성으로 풀어놓았다. 그의 유려한 시적 언어는 그의 눈에 비치는 모든 것을 너무나 아름답게 포장한다. 시인의 눈에 비치는 세상은 외로움과 고단한 삶까지도 고즈넉해지는가. 그가 내 눈앞에 생생하게 보여주는 해 뜨고 해 지는 바다 풍경은 내가 그와 함께 바다를 마주하고 있을 때 내게 위로와 감동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가 사라지고 나 홀로 바다를 등지고 뒤돌아보았을 때는 암담한 마음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는 내가 결코 외면하지 못하는 현실 건너편에 있었던 것이다. 그는 현실 너머에 있는 바다를 등질 때도 가슴에 그 바다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렇다고 아름답고 선하기만 한 그에게 선경 뒤에 현실을 힘겹게 견디고 있는 사람의 고단함이 보이지 않냐고 비난의 화살을 던질 수는 없다. 그는 외부인이자 여행자로서, 그리고 시인으로서 충실히 포구들을 감상했고, 그 감상으로 잠시나마 내게 충분한 위안이 되어주었다.

사람 한 명 지나가기조차 버거운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한 뼘 마당조차 없는 집들이 다닥다닥 엎디어 있는 달동네가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는 어느 외국인 건축가의 말에 정말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어도, 맛조개나 캐면서 시를 쓰고 싶다는 그가 현실에서 한 발짝 비껴나 시종일관 방관자의 시선을 보여주었다고 해도, 《곽재구의 포구 기행》에서만큼은 그의 아름다운 시정으로 현실의 고단함과 너무나 쿨하지 못한 인생이 달콤한 위안을 받는다. 어차피 그도 나도 모든 현실에 발 디딜 의무는 없으니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드무비 2005-10-31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평역에서'라는 그의 데뷔 시가 그렇게도 좋더니
기행문도 참 서정적으로 쓰는 것 같아요.^^

zipge 2005-10-31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정말 시인이 쓴 글 같았습니다. 이 책을 읽을 때,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은 기분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많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현실을 어쩌지 못하는 나는 현실에서 홀가분한 듯한 그가 그렇게 질투날 수 없었지요. 그래서 마구 시기했습니다.^^;
 
그때 그 도마뱀은 무슨 표정을 지었을까
도종환 지음 / 사계절 / 199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도덕 교과서처럼 올바른 수필 모음집이다.

일탈에 대한 시도가 일색인 수많은 글들 가운데 도종환의 수필은 일침을 가한다.

가지런하기만 한 일상과 사람은 지루하게 느껴지지만, 그 가운데도 꼭 바르게 지켜야 할 것들이 있노라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녀에게 얘기해주고 싶은 것들
윤대녕 지음 / 문학동네 / 2000년 12월
평점 :
품절


내가 소설가 윤대녕을 좋아하는 것은 그 동안 다른 소설가들을 좋아하는 것보다 훨씬 변화가 심하다. <상춘곡, 1996>에서 윤대녕에 깊숙이 빠졌고 <사슴벌레여자>를 읽고 좀처럼 씻어내기 힘든 배신감 비슷한 실망감을 느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는 다시 그가 좋아졌다고 감히 말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아주 사사로운 한 개인의 편지를 몰래 엿보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느낌은 남의 편지를 몰래 엿본 죄의식이나 죄책감이 아니라, 편지 곳곳에 묻어나는 곱고 예쁘고도 슬픈 이야기를 나도 함께 할 수 있다는 두근거림이었다.

 

이 책은 한 사내가 여인에게 보내는 편지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 책의 표지에는 “윤대녕 여행산문”이라고 쓰여 있지만, 여행산문이라기보다는 단지 여인에게 보여주고 싶은 사내의 깊은 마음이 담긴 편지 묶음이라야 어울릴 것 같다.

 

차라리 소설이었으면 좋겠다.

여인도, 편지를 쓰는 사내도 모두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 는 기분이다.

아주 기분 좋은 사색을 10일 동안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커피 이야기
줄리아 알바레스 지음, 송은경 옮김 / 나무심는사람(이레) / 2003년 1월
평점 :
절판


산업화, 기계화에 따른 현대식 커피 농법 대신 전통 커피 농법인 옛날식 그늘커피 재배법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전통식으로 커피의 진한 향과 맛을 지키려고 애쓰는 사람들의 노력을 알 수 있다.

 

먼저 키가 큰 나무를 심어 우거지게 한 다음, 그 나무들 아래에 커피 나무를 심는다. 따가운 햇살을 알맞게 가려주고, 세찬 빗줄기를 막아주고, 강한 바람으로부터 보호해 주고, 낙엽으로 떨어져 거름이 되어 땅을 비옥하게 하고, 인간에게는 과일과 땔감을 주고……, 그 나무들을 찾아온 새들의 노랫소리는 커피 나무를 더욱 잘 자라게 하고……. 진정으로 자연이 주는 풍성한 혜택을 누리면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보여주는 것 같다.

 

커피 한 잔을 마셔도 가장 질 좋은 커피를 마시며, 커피잔에 남은 커피가 흘러내리는 자국으로 점을 치는 도미니크 공화국 사람들. 그들의 맛있는 커피 한 잔에는 그윽한 향기뿐만 아니라 새소리도 넘쳐흐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재 결혼 시키기
앤 패디먼 지음, 정영목 옮김 / 지호 / 200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앤 패디언의 유쾌한 책사랑 이야기를 모은 수필집이다.

 

그녀는 그녀가 책을 사랑하는 법이 가장 옳다는 확신으로, 그녀의 책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간다. 그녀의 말을 빌리자면, 그녀는 육체적으로 책을 사랑하는 부류이다. 책에 메모를 하고 줄을 긋는 것은 필수이고, 읽은 부분을 표시해 놓기 위해 책의 귀퉁이를 접거나 침을 묻혀가면서 책을 읽는 것은 선택이며, 조금 비약하면 씹고 있던 껌을 뱉어서 싸 버리기 위해 글이 없는 여백 한쪽을 찢어도 개의치 않는다. 그런 흔적도 그 책을 읽던 동안 껌을 씹었다는 추억의 흔적이며 기념이 될 만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부분들을 읽으면서, 나는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런 식으로 책을 사랑하는 방법도 있었구나 싶어서 놀라웠으며, 나는 그녀를 통해 내가 궁정식 연인으로 책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가급적 책에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책갈피가 없어도 책의 귀퉁이를 절대로 접지 않는다. 또한 내용이 없는 면지마저도 완벽히 갖추어져 있어야 개운하다. 혹시 그런 면지 한 장이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정확하게 네 귀를 맞춰 감쪽같이 붙여놓는다. 물론 침을 묻혀가며 책장을 넘기지도 않는다.

 

책을 두 권씩 사서 하나는 소장본으로, 또 하나는 독서용으로 삼을 정도까지 책에 대해서 결벽적이지는 않지만 나는 내 궁정식 책 사랑법을 옹호한다. 나는 깨끗한 책이 좋다. 새 책이 아니라 오래되어 종이가 바랜 책이라도 깨끗한 책이 좋다. 새 책이 아니라도 깨끗하게 본 헌책이 좋다. 조금만 부지런하면, 책을 궁정식으로 사랑하고도 육체적으로 사랑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믿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1 | 12 | 13 | 14 | 1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