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너는 인생을 이렇게 살아라 - 딸에게 들려주는 사랑과 인생의 지혜 딸아, 너는 인생을 이렇게 살아라 2
펄 벅 지음, 하지연 옮김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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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서점 한 부분을 가득 차지하고 있는 자기계발서들의 대상은 광범위하다. 10대, 20대에 반드시 해야 할 일부터 시작해 부유하게 노후를 보내는 방법까지 친절하게 알려주는 자기계발서들은 최후의 목적이 ‘자신의 성공과 안락’에 있다. 대부분의 자기계발서는 책을 읽는 독자-게다가 젊은 독자들이 대부분이다-를 대상으로 하고 있기에 그 내용은 직접적이며 현실적이고 유행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자기계발서의 작가들은 대담하게도 ‘성공하고 싶으면 나(혹은 유명인)처럼 살아라’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펄벅의 『딸아, 너는 인생을 이렇게 살아라』의 경우에는 자기계발서라는 이름으로 한정짓기에는 책이 주는 느낌이 각별하다. 그것이 1967년에 출간된 책이라는 고전적인 느낌일 수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작가 때문이다. 『대지』의 작가로 잘 알려진 펄벅이지만 작가 이전에 정신지체아인 큰 딸을 포함해 아홉 명의 아이를 입양해 키운 말 그대로의 어머니였다. 펄벅은 자신이 경험한 어머니와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삶,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에 대해 미래에 엄마가 될 딸들에게 그리고 현재 아이를 가진 어머니에게 여성과 어머니로서의 인생을 이야기한다. 결혼이 여자의 가능성을 막아버리는 무덤, 삶의 도피처라는 생각을 흔하게 볼 수 있고 새로울 것도 없는 요즈음이지만 과거나 현재나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변하지 않는 진리에 대해 자신의 딸에게 이야기하듯 자상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하지만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가정 안에서 조용하고 수동적인 여성의 삶을 산다는 것 자체가 현대의 여성들에게는 진부하고 고루한 옛날이야기처럼 들린다. 실제로도 여성에 대한 무의식적인 편견이나 차별은 여전하지만 펄벅은 여자 자신이 약자라는 사실을 쉽게 인정하고 받아들여 그것에 안주하려는 것이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그 부당함에 맞서거나 싸우지 않는 한 여성은 계속 약자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경고한다. 현재도 약자이며 앞으로도 약자로 살아야겠지만 여성들의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인식하고 그 권리를 지속적으로 주장할 때, 현재의 부당함에 대해 깊게 생각할 수 있을 때 발전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60년대의 여성들보다 현대 여성의 권리가 나아진 데는 그렇게 자신을 인식하고 발전하기 위한 노력들이 있었음을 알아야 한다.

가정은 사회의 축소판이다. 어머니가 딸에게 혹은 아들에게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은 무한하며 인생의 근본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근본은 변하지 않는다. 펄벅이 이처럼 어머니와 가정의 삶에 대해 강조하는 것은 가정에서의 어머니는 사랑하는 남자의 상대방이며 아이들의 생명의 근원이고 인생의 선배이며 미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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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 조용히! - 풋내기 사서의 좌충우돌 도서관 일기
스콧 더글러스 지음, 박수연 옮김 / 부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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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학생 신분을 벗어나 돈벌이를 하기 시작하면서는 책 사는 데 아낌없이 소비했으므로 내가 물리적으로 도서관과 가장 가깝게 지냈던 때는 까마득한 초등학교 시절과 대학교 시절이었을 것이다. 특히 초등학교 때 도서관은 풍성한 책의 세계를 열어주었다. 그저 초등학교 교실 하나에 책꽂이를 장만하여 책들을 꽂아두었는데, 정말 책과, 책을 가져가고 그 자리에 꽂아두는 도서 카드만 있었다. 담당 교사는 있었을지 몰라도 사서는 없었다. ‘사서’라는 직업의 사람을 언제 처음 인식하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불분명하다. 그러나 ‘사서’라는 존재가 절실하게 와 닿았던 때는 다른 것보다 조금 더 ‘책(특히 문학)’을 좋아하는 내 성향에 맞추어 대학을 가고 직업을 구했는데 내 직업에 환멸을 느끼면서부터다. ‘책’이라면 무조건 좋다고 생각했는데, 세상에는 내가 싫어할 만한 책들이 더 많다는 것도 그때 깨달았다. 그래도 사서라면 내가 좋아하는 책들을 골라 좀더 가까운 거리에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또한 더 긴 시간 동안 눈치 보지 않고.

‘사서’라는 직업이 매력적으로 다가온 것은 직업적인 사명감과 그 직업에 대한 뚜렷한 성찰이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 때문인 데다가 이 직업 역시 외부인의 시선으로 바라봤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 실상이 어떨지는 실제로 그 일로 돈벌이를 해봐야 알 것이다. 그저 ‘책’만 생각하고 있던 나에게 ‘사람’을 알려준 것은 진짜 도서관 사서, 스콧 더글러스다. 『쉿, 조용히!』는 ‘책’이 아니라 ‘사람’에 집중한다. 도서관을 이루는 것은 ‘책’만이 아닌 것이다. ‘사람’이 없으면 도서관은 그저 책 창고 내지는 책들의 무덤으로 전락한다.

스콧 더글러스가 도서관에서 부대낀 사람들은 물론 동료 사서들은 빼놓을 수 없고 그 외에 동화 구연을 들으러 오는 꼬마들과 십 대 아이들과 노인들과 부랑자들과 지적 장애인들도 있다. 그가 꽤 냉소적인 유머를 섞어 시니컬한 어투를 유지하면서도 제법 정다운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이야기해 주는 사서들은 토머스 핀천의 소설 『제49호 품목의 경매』도 모른다. ‘핑콩’, 심지어 ‘줄리아 로버츠의 애인’을 들먹이기도 한다. 문학을 사랑하고 늘 책을 가까이 하는 사서의 이미지는 산산이 부서진다. 하지만 그 자리에는 대신 아이들의 동화 낭독 스타이길 자처하기도 하고 불만 가득한 노인의 불평에 함께 동조해 주는 사서가 있다. 분명 과장되어 있겠지만, 사서도 사람이라 모난 구석을 드러내면서도 도서관에서 자신에게만 맞는 자리를 찾아간다. 외부인의 머릿속에 정형화되어 있는 이미지의 사서들이 아니라, 때로는 불협화음을 내어도 유쾌하기만 하다.

스콧 더글러스가 일하는 도서관이라고 평범한 사람들이 말쑥하게 다녀가지 않았으랴만,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들을 함께하기에 특별한 문제도 일으키지 않는 그들은 별 재미가 없었을 것이다. 작가의 기억이라는 필터를 거쳐 여과된, 어떤 이유로든 도서관을 드나드는 이상한 별별 사람들의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들은 웃음이, 그것도 사람이 사람을 바라보는 연민이 깃든 따뜻한 웃음이 킥킥, 터져 나오게 한다. 게다가 작가는 고맙게도 정말 웃기고 불량한 이야기를 하면서 건전한 생각도 살짝 불러일으키고 조금쯤은 감동을 주는 끝맺음을 하여 진지한 사색을 하게 한다. 그가 들려준 도서관 사람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팻’이었다. 그녀는 날마다 스콧 더글러스를 찾아와 귀여운 거짓말들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다음 날이면 그가 누구인지 잊어버리고 또 다른 귀여운 거짓말들을 이야기한다. 귀여운 거짓말을 진짜처럼 하는 정말 귀여운 사람 ‘팻’도 다른 지적 장애인들처럼 어느 날 발길을 뚝 끊어버렸다는 부분을 읽을 때는 정말이지 너무나 안타까웠다.

사실 『쉿, 조용히!』는 작가인 스콧 더글러스가 “책을 좋아하십니까?”라는 구직 광고를 보고 지원하여 처음 도서관에서 사무 보조로 일하게 된 것을 계기로 ‘사서’가 되어가는 자신의 성장 이야기다. 어쩌면 그는 지금도 진정한 사서의 정체성을 고민하면서 계속 성장해 나가고 있겠지. 그 성장은 잘난 척하려 했던 ‘책’이 아니라 ‘사람’을 통해 이루어진다. “책을 좋아하십니까?”라는 물음은 “사람을 좋아하십니까?”가 되어야 하고, 딱히 사람을 유별나게 좋아하지 않더라도 “사람이 좋아질 수는 있겠지요?”라고 물어줘야 하지 않을까. ‘책’은 언제든 읽으면 되니까.

마지막으로 크게 웃지 않을 수 없었던, 스콧 더글러스가 천생 책을 좋아하는 사서일 수밖에 없어 보이는, 이런 부분.

(도서관에 오는 별별 사람들 중에 사서인 작가를 죽이겠다고 협박하거나 위해를 가하려는 사람들 때문에 작가는 몸에 문신을 새기는 소박한 저항법을 고민한다.)

   
 

나는 어떤 문양을 몸의 어떤 부분에 새기면 좋을까 생각해 보았다. 팔꿈치 안쪽에 책을 새기면 팔을 들었다 올릴 때 책이 펼쳐졌다 닫히는 것처럼 보여서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우울해졌다. 터프해 보일 것 같은 문신은커녕 책이라니! 멍청하기 짝이 없는 아이디어였다. 게다가 더 약해 빠지게 책 제목으로 『작은 아씨들』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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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와 떠난 여행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선집 3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원유경 옮김 / 새움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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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은 진작에 사두었지만 다른 많은 책들처럼 읽지 않은 책 무더기 사이에 묻혀 있다가, 우연찮게 앤디 메리필드의 『당나귀의 지혜』에 급격히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 책이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당나귀와 떠난 세벤느 여행의 노정을 따랐음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R. L. 스티븐슨의 『당나귀와 떠난 여행』을 갑작스럽게 읽게 된 인연은 이러하다.

『당나귀와 떠난 여행』은 스티븐슨이 암탕나귀 ‘모데스틴’과 함께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종교 분쟁의 중심지였던 프랑스 남부 세벤느를 여행한 경험과 사색의 기록이다. 르 퓌에서 출발하여 생 장 뒤 갸르에 도착하기까지 열흘 동안 120마일의 험준한 산길을 오로지 두 발에 의지해 뚜벅뚜벅 걸었다. 길에서 길으로, 마을에서 마을으로, 숲에서 골짜기로, 계곡으로, 강가로, 그가 잠시 걷기를 멈출 때는 어둠이 내려와 몸을 누일 곳을 찾아들 때뿐이다.

르 퓌의 작은 마을, 르 모나스티에에서 처음 만나 생 장 뒤 갸르에서 헤어지기까지 스티븐슨의 여행을 함께한 암탕나귀 그녀, 모데스틴과의 실랑이도 웃음이 비어져 나오게 하고(그러나 몰이 막대를 휘두르는 광경은 잔인했다. 내 엉덩이가 다 따끔거렸다.), 종교와 관용, 삶과 인간에 대해 따뜻하고 너그러운 시선으로 사색하게 해주지만, 무엇보다 나를 사로잡은 것은 스티븐슨이 기꺼이 하룻밤의 평화를 의탁한 ‘자연의 밤’이다.

닫혀 있는 지붕 아래 인공적인 세계에서는 죽음처럼 단조로운 밤의 시간이, 별들의 가호를 받고 대지의 여신이 품어주는 자연에서는 “별과 이슬과 향기”로 채워진다. “침대가 있는 방은 적당했다. / 어김없이 밤이 드니 별들은 빛나고 / 공기는 달콤하고, 물이 흘렀다. / 하녀나 하인은 필요없었다. / 신의 푸른 숙소에서 / 나귀와 나, 우리가 묵을 때”라는 아름다운 인용 글귀 아래 「소나무 숲에서 보낸 하룻밤」에는 신의 푸른 숙소에서 잠드는 스티븐슨의 밤이 너무나 매혹적으로 그려진다. 어느 누가 이토록 고혹적인 서정성을 품을 수 있을까. 별들이 반짝이는 천상의 지붕 아래 지상의 초록 융단을 마련해 준 ‘신의 푸른 숙소’의 주인, 자연의 환대에 고마운 마음을 전하기 위해 스티븐슨은 장난스레 풀밭 위에 자기 숙박비를 남긴다.

이런 글을 읽었으니 내 머리 위를 압박하는 인공적인 지붕의 무게를 간절히 떨쳐버리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드는 것은 당연하다. 이것은 이 책을 읽은 부작용이다. 문득 집, 출퇴근 버스, 회사는 모두 나를 가두어 자연으로부터 차단시키는 사각형 관이라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하지만 그 관에서 도저히 벗어날 도리가 없다. 그때 이 책은 또한 깊은 위안이 되어준다. 스티븐슨의 서정적인 글만으로 상상해도 얼마나 고요하고, 평안하고, 안심이 되는지. 스티븐슨의 아름다운 묘사만으로도 내 머리 위는 절로 열린다. 이거야 원, 병 주고 약 주는 셈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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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 소울>을 리뷰해주세요.
라틴 소울 - 박창학의 지구 반대편 음악 이야기
박창학 지음 / 바다출판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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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의심할 바 없이 현대의 음악 시장은 대중적인 상업 구조에 기반하고 있다. 영미의 팝으로 대표되는 대중음악은 K-POP, J-POP과 같은 해당 나라에 맞게 이름만 바뀐 형태로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대중음악 속에서도 자신들의 전통을 대중음악에 접목시키려는 노력은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참 유행했던 레게나 쿠바음악 같은 제 3세계 음악들만 봐도 그 중심에는 [밥 말리]와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이 있지 않던가. 이른바 월드뮤직으로 불리는 각국의 음악에는 그들 나라의 역사와 전통이 스며들어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이해하고 노력하는 것이 이들 음악을 듣기 위한 최소한의 수고이기도 하다. 박창학의 『라틴 소울』은 특히 중남미 지역의 음악에 관심을 갖고 접근한다. 전통음악, 고전음악과 대중음악의 자연스럽고 가장 완성된 조화를 이루는 크로스오버의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이 라틴음악이기 때문이다. 박창학은 이것이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근본적인 성격으로 보고 있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쿠바의 음악, 악기, 뮤지션, 앨범들을 통해 보다 쉽게 그들의 음악을 접하고 현대에 이어진 전통과 조화를 소개하고 있다. 

브라질은 삼바와 카니발, 축구과 열정의 나라로 알려져 있지만 재즈와 보사노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조앙 질베르토,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을 먼저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브라질 음악은 다른 어떤 문화권에서도 찾아볼 수 없이 다원적이라는데 큰 특징이 있다. 삼바와 쇼로는 브라질의 전통음악이기도 하지만 현대에도 대중음악과 결합하여 꾸준히 재생산되고 있으며 보사노바와 같은 새로운 음악의 뼈대가 되고 있는 동시에 전통음악이라는 자체의 지위도 잃지 않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역시 축구의 나라인 동시에 탕고의 나라다. 독일의 교회에서 종교음악을 위해 태어난 악기인 반도네온이 아르헨티나의 사창가에 전해져 막 태어나던 탕고와 결합해 반도네온은 곧 탕고가 되었다. 탕고는 캬바레와 술집에서 연주된, 시작이 고결한 음악이 아니었지만 현재는 고결하게 되었다는 피아솔라의 말처럼 탕고는 아르헨티나 자체다. 반도네온을 위한 천재적인 작곡가이자 연주가인 피아솔라를 소개하고 있다. 

시가와 야구, 체 게바라의 나라인 사회주의 쿠바의 음악은 [아바네라]라는 무곡으로 알려져 30년대의 룸바, 50년대의 맘보와 차차차, 얼마 전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의 음악으로 유명해졌다. 이 작은 섬나라가 세계에 보여준 음악은 그들의 전통과 삶이 한데 녹아 있는 남다르고 특별한 것이다. 쿠바의 역사적 배경과 문화적 특수성으로 인해 그들의 음악은 가장 전통적인 것인 동시에 가장 대중적이기도 한 크로스오버된 형태이며 이는 라틴 음악의 큰 특징이기도 한 조화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의 상황을 보자. 전통음악 판소리나 창의 경우 낯설기도 하거니와 음악을 듣기 위해서는 얼마 없는 공연장을 찾거나 직접 CD를 구입하는 방법이 최선이다. 그만큼 우리의 전통음악은 대중음악과 철저하게 고립되어 있다. 오래 전 육각수의 [흥보가 기가 막혀]라는 실험적인 노래가 유행했을 때 잠시나마 전통음악은 지루하다는 굴레를 벗을 수 있었다. 전통음악을 알리기 위해 반드시 대중음악과 결합해 크로스오버를 지향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게 최선의 길이기도 하다. 전통음악의 정통성을 보존하는 동시에 언제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현재의 획일적인 우리 대중음악도 훨씬 더 풍성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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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 소울>을 리뷰해주세요.
라틴 소울 - 박창학의 지구 반대편 음악 이야기
박창학 지음 / 바다출판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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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할 바 없이 현대의 음악 시장은 대중적인 상업 구조에 기반하고 있다. 영.미의 팝으로 대표되는 대중음악은 K-POP, J-POP과 같은 해당 나라에 맞게 이름만 바뀐 형태로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대중음악 속에서도 자신들의 전통을 대중음악에 접목시키려는 노력은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참 유행했던 레게나 쿠바음악 같은 제 3세계 음악들만 봐도 그 중심에는 [밥 말리]와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이 있지 않던가. 이른바 월드뮤직으로 불리는 각국의 음악에는 그들 나라의 역사와 전통이 스며들어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이해하고 노력하는 것이 이들 음악을 듣기 위한 최소한의 수고이기도 하다. 박창학의 『라틴 소울』은 특히 중남미 지역의 음악에 관심을 갖고 접근한다. 전통음악, 고전음악과 대중음악의 자연스럽고 가장 완성된 조화를 이루는 크로스오버의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이 라틴음악이기 때문이다. 박창학은 이것이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근본적인 성격으로 보고 있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쿠바의 음악, 악기, 뮤지션, 앨범들을 통해 보다 쉽게 그들의 음악을 접하고 현대에 이어진 전통과 조화를 소개하고 있다. 

브라질은 삼바와 카니발, 축구과 열정의 나라로 알려져 있지만 재즈와 보사노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조앙 질베르토,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을 먼저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브라질 음악은 다른 어떤 문화권에서도 찾아볼 수 없이 다원적이라는데 큰 특징이 있다. 삼바와 쇼로는 브라질의 전통음악이기도 하지만 현대에도 대중음악과 결합하여 꾸준히 재생산되고 있으며 보사노바와 같은 새로운 음악의 뼈대가 되고 있는 동시에 전통음악이라는 자체의 지위도 잃지 않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역시 축구의 나라인 동시에 탕고의 나라다. 독일의 교회에서 종교음악을 위해 태어난 악기인 반도네온이 아르헨티나의 사창가에 전해져 막 태어나던 탕고와 결합해 반도네온은 곧 탕고가 되었다. 탕고는 캬바레와 술집에서 연주된, 시작이 고결한 음악이 아니었지만 현재는 고결하게 되었다는 피아솔라의 말처럼 탕고는 아르헨티나 자체다. 반도네온을 위한 천재적인 작곡가이자 연주가인 피아솔라를 소개하고 있다. 

시가와 야구, 체 게바라의 나라인 사회주의 쿠바의 음악은 [아바네라]라는 무곡으로 알려져 30년대의 룸바, 50년대의 맘보와 차차차, 얼마 전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의 음악으로 유명해졌다. 이 작은 섬나라가 세계에 보여준 음악은 그들의 전통과 삶이 한데 녹아 있는 남다르고 특별한 것이다. 쿠바의 역사적 배경과 문화적 특수성으로 인해 그들의 음악은 가장 전통적인 것인 동시에 가장 대중적이기도 한 크로스오버된 형태이며 이는 라틴 음악의 큰 특징이기도 한 조화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의 상황을 보자. 전통음악 판소리나 창의 경우 낯설기도 하거니와 음악을 듣기 위해서는 얼마 없는 공연장을 찾거나 직접 CD를 구입하는 방법이 최선이다. 그만큼 우리의 전통음악은 대중음악과 철저하게 고립되어 있다. 오래 전 육각수의 [흥보가 기가 막혀]라는 실험적인 노래가 유행했을 때 잠시나마 전통음악은 지루하다는 굴레를 벗을 수 있었다. 전통음악을 알리기 위해 반드시 대중음악과 결합해 크로스오버를 지향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게 최선의 길이기도 하다. 전통음악의 정통성을 보존하는 동시에 언제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현재의 획일적인 우리 대중음악도 훨씬 더 풍성해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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