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리 나라가 세계에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도 아니요, 경제력도 아니다. 자연 과학의 힘은 아무리 많아도 좋으나 인류 전체로 보면 현재의 자연 과학만 가지고도 편안히 살아가기에 넉넉하다. 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仁義 )가 부족하고 자비(慈悲)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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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둠 가운데 홀로 반짝이는 저 별 하나, 저것은 외딴 집이다.

별이 하나 꺼진다.

저것은 사랑을 간직하고 문이 닫히는 집이다.

또는 슬픔을 간직하고 문이 닫히는 것인지도 모른다.

 

2.

마치 사람이 어느날 정말로 시간을 가질 수 있기나 한 것처럼.

마치 인생의 종말이 되면 그가 상상하는 그 평화를 차지하게 되기나 하는 것처럼 말이다.

 

3.

자기의 보물들을 초라한 순서로 늘어놓음으로써,

그는 조종사 앞에 자기의 비참을 펼쳐 보이는 것이었다.

 

4.

고대 민중의 지도자는, 혹 인간의 고통을 애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인간이 죽어 없어짐을 애처롭게 생각했을 것이다.

개인의 죽음이 아니라 모래바닥에 파묻혀 버릴 인류의 죽음을 말이다.

그래서 그는 사막이 파묻어 버리지 못할 돌기둥이나마 세우라고 자기 백성을 이끌고 갔던 것이다.

 

5.

그러나 빛이 하도 목마르게 그리워서 그는 올라가고야 말았다.

 

6.

"이거 봐요, 로비노, 인생에는 해결책이 없는 겁니다.

움직이는 힘이 있을 뿐이오. 그것을 창조해야 됩니다.

그러면 해결책은 저절로 따라오는 거지요."

 

7.

사자는 때려잡은 후에도 역시 무서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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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근심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거나

아니면 권태로 무기력한 상태에서 살게끔 되어 있다고

마르탱은 특별히 결론지었다.

..(중략)..

"따지지 말고 일합시다. 삶을 견딜 만하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 그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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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원제 blindness에 비해 '눈먼 자들의 도시'는 약간 가볍지만 괜찮은 번역이라고 생각된다. 중후반까지는 무서울 정도의 흡인력으로 읽게 만들다가 그 이후에는 약간 지루하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파트리트 쥐스킨트의 '향수'를 읽었을 때처럼 영화로 안만드나하는 생각도 들고.

읽으면서 머리에서 떠나지 않은 생각은 '인간이란 무엇일까'였다. 공기가 없으면 죽듯, 삶의 불행이란 지금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나에게 없어서는 안될 것 같은 물질들의 결핍으로 오는 것이 아니다. 삶의 불행이 태어나기 위해서 반드시 복잡한 사건들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아주 단순한 하나의 사건만으로 인간은 인간이 아니게 될 수 있다.

윤리라는 것이 아직 의의를 갖고 있다면, 우리는 지금 거기서 아무 의미도 찾을 수 없는 상황에서 그것의 의미가 생겨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존 쿳시의 [야만인을 기다리며]가 심히 생각났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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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 - '수유+너머'에 대한 인류학적 보고서
고미숙 지음 / 휴머니스트 / 2004년 1월
평점 :
절판


나에게는 손톱을 물어뜯는 나쁜 습관이 있다.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도 모를만큼 오래된 습관이다. 주변에 사람들이 있을 때는 심하게 그러지는 않지만 감정의 동요가 심해지면 나도 모르게 손톱을 물어뜯고 있다. 예전에는 양손의 열 손가락 모두 '손톱 밑'이라는 신체의 구조상 생기는 특수한 공간이 없었다. 피가 날 정도로 물어뜯지는 않았지만. 모든 나쁜 버릇들과 마찬가지로 무의식적이고 의식한 순간에도 이런면 안되는데 하고 생각하지만 그만두지 못한다. 이것때문에 정신병원에 가볼까 생각도 했었다.

지금은 그렇게 심하지는 않다. 양손의 새끼 손가락과 약지 손가락은 남들이 보기에 손톱 기르냐고 할 정도로 깍기를 귀찮아하고 있을 정도고, 엄지손가락은 가끔 손톱 밑이라는 공간을 만들어내곤 한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않는다. 아무튼 새끼 손가락과 약지 손가락을 제외한 나머지 손가락들은 가려울 때는 물론이고 여러가지로 요긴하면서도 그곳에 낀 이물질 때문에 위험할 수도 있는 공간을 상실한 채 내 손 끝에 가지를 뻗고 매달려 있다.

아무튼 나는 흥분, 불안, 초조, 긴장, 설렘, 등의 감정의 요동이 느껴질 때나 깊은 생각에 골몰해 있을 때는 손톱을 물어뜯는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손톱을 물어뜯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나쁜 책이다. 하지만 얼마만에 느껴보는 설렘이던가.

 

 

이 책은 우연히 듣게 되었던 휴머니스트 출판사의 편집장 선완규씨의 특강 때 내게 찾아왔다. 그는 어떤 질문을 했고 나는 대답을 했을 뿐이다. 그랬더니 그는 아무 말 없이 이 책을 내게 주었다. 나는 이 책을 내게 주는 건지, 아니면 이 책을 돌려보라는 것인지(지금 생각해보니 돌려보라는 것이었으면 시작할 때 줬지 왜 그 타이밍에 줬을까하는 생각이 들며 어리버리한 내 생각에 웃음이 난다.)알 수가 없었고 혹시나 뒤에 사람들이 '돌려보라고 준건데 저사람 뭐하는거야 안돌리고'하고 생각하지나 않을지 걱정했지만 이후의 상황으로 미루어보아 이 책을 나에게 준 것 같았다. 자기 출판사의 책이니까 그렇게 쉽게 주었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이편이 사실에 더 가까울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받은 인상은 '책이란 원래 이렇게 그냥 주고 받고 하는 것이다'였다. 그런 생각이 들자 100권도 안되는 책에 대한 소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내가 너무나 작게 느껴졌다.

 

아무튼 이 책은 그렇게 내게 왔다. 지금까지 왔던 어떤 책들보다 뜻하지 않은 만남이었다. 사실 지금까지 내게 온 책들이 처음 나타난 순간에 나는 놀라는 척 하면서도 '이번엔 너냐? 올 줄 알았다'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언젠가부터 연구공간 '수유+너머'가 내 레이다에 포착되면서부터 같이 알게 된 이 책의 제목은 읽고 싶은 책 목록에 올라가게 되었다. 한동안 시간이 흐른 뒤에 그 목록에서 삭제되었다. 다분히 충동적이었다고 판단해서였다. 하지만 그로부터 얼마 뒤 이 책은 자신의 이름을 삭제한 나에게 적극적으로 찾아왔다.  

 

분과학문 체계의 답답함과 공부를 더 하려면 대학원에 가는 수 밖에 없을까하는 현실적 고민에 사로잡혀 있던 그 즈음 나는 스스로 작은 위안을 삼고자 내 블로그와 알라딘 나의 서재에서 '책이 책을 부른다'를 시작했다. 알라딘 나의 서재는 덧글이 하나도 달리지 않고 있지만 말이다. 경계를 넘나드는 공부를 하고 싶었다. 그저 넓고(얕게) 알아서 아는 척하고싶다가 아니라, '지식은 힘이 아니라 기쁨'이라는 것을 믿기에 그렇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경계를 '넘나드는' 또는 '횡단', '가로지르는'이라는 표현에서 느껴지는 뉘앙스는 뭔가 허전했다. 그것은 내게 '표면적인 겉핥기'라는 이미지를 떠오르게 했다. 이 책에서는 이런 크로스오버적인 공부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심해를 탐사하는 고래의 충혈된 눈과

단 몇걸음에 히말라야를 종단하는 거인의 다리'

 

 

이 책의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이 책에는 느낌표가 굉장히 많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만큼 이 책은 사람을 흔들리게 한다. 내가 관심이 있어서 그랬던 것인지 모르지만 저자의 문체는 내게 흡인력있게 다가왔다. 책을 읽으면서 엉뚱하게도 나는 스펜서 존슨씨가 생각났다. 세계적 베스트셀러 '누가 내 치즈..'의 저자이자, 내가 읽은 거의 유일한 자기계발 관련 책인 '선물'의 저자이기도 한 사람. 책을 읽으면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스펜서 존슨씨, 과거에서 배우고, 오늘을 살고, 미래를 계획하라굽쇼? 그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라굽쇼? 좋으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저에게는 와 닿지가 않는 걸까요? 제가 삐딱해서일까요? 이 책처럼 실제 일어나고 있는 구체적 현상에 대해 써주실 수는 없습니까? 그렇게 치즈를 말하고 선물을 말하고 행복을 말하시는데, 저는 그것이 적용되는 실제 삶의 모습(꾸며낸 삶이 아니라)을 보고싶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이 책은 나에게 일종의 선물로서 다가왔다. 게다가 이 책의 내용을 읽으면서 우리가 주고받는 선물의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는 부분도 있었고, 스펜서 존슨씨의 선물과 같이 삶에 대한 태도를 주고 받는 개념으로의 선물도 볼 수 있었다.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있다고 생각하거나(the web of life) 환경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새만금 사업과 관련해서 벌어졌던 삼보일배 이야기부분에서 나처럼 목이 메이거나 눈물을 흘리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다 읽고 누구에게나 권해주고 싶었다. 엄마에게도, 아빠에게도, 형에게도, 여자친구에게도, 어린 학생들에게도. 하지만 인문학 근처에서 얼씬거리지 않으면 들어보지도 못했을 학자들의 이름과 낯선 용어들을 본다면 이 책은 나와 상관없는 책이구나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럴 가능성은 충분히 높다. 이 책의 메시지가 거기에 있지 않다 하더라도, 그런 용어가 중요하지 않다하더라도 이런 요소는 널리 읽히는데 방해가 되는 요소임에 틀림없다.

 

읽다보면 누구나 궁금해 하는 그곳. 길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 길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나도 가끔 스스로에게나 힘들어하는 친구들에게 이야기하고, 이 책에서도 힘주어 이야기하고 있듯, '세상에 잘못 들어선 길이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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