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춘아, 춘아, 옥단 춘아, 네 아버지 어디갔니?-김화영 외 25인(민음사)

2.핑거포스트,1663-이언 피어스(서해문집)


<2월>

1.도덕의 계보-니체(청하)*

2.환상의 책-폴 오스터(열린책들)

3.전환시대의 논리-리영희(창비)*


*-완독하지 않은 책들


<3월>

1.코드 훔치기-고종석(마음산책)

2.원주통신-이기호


<4월>

1.아홉가지 이야기-J.D.샐린저(문학동네)


<5월>

1.월플라워-스티븐 크보스키(돋을새김)

2.대중문화의 겉과 속 2-강준만(인물과 사상)


<6월>

1.우주인-이향우(서울문화사)

2.문화의 수수께끼-마빈 해리스(한길사)

3.우리가 꼭 알아야 할 지식 속의 지식 80가지-미카엘 매크론(스테디북)


<7월>

1.자정의 픽션-박형서(문학과 지성사)

2.픽션들-보르헤스(민음사)


<8월>

1.최재천의 인간과 동물-최재천(궁리)

2.인간실격-다자이 오사무(웅진씽크빅)


<9월>

1.인간 불평등 기원론-장 자크 루소(책세상)

2.대중문화의 겉과 속3-강준만(인물과 사상)

3.새빨간 미술의 고백-반이정(월간미술)

4.철콘 근크리트-마츠모토 타이요(애니북스)

5.무진기행(외 3편)-김승옥(범우사)


<10월>

1.쾌도난마 한국경제-장하준,정승일,이종태(부키)

2.부디 성공합시다.-김종은

3.유리방패-김중혁

4.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김연수

5.그건 새였을까, 네즈미-김연수

6.거짓된 마음의 역사-김연수

7.달로 간 코미디언-김연수

8.뉴욕제과점-김연수


<11월>

1.숨겨친 차원-에드워드 홀(한길사)

2.웬즈데이-에단 호크(미디어2.0)

3.나쁜 취향-강정(랜덤하우스코리아)


<12월>

1.세상을 바꾼 법정-마이클 리프,미첼 콜드웰(궁리)

2.웅진 교육 이야기-강선보 교수 외(웅진)

3.로지컬 씽킹-테루야 하나코, 오카다 케이코(일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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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얼굴의 형상, 내 옛 얼굴들 중 한 형상이 가진 저주스러운 지속. 내 얼굴들 중의 하나가 가진 그 저주스러운 운명은 나 또한 저주스럽게 만드는 게 틀림없지만 나는 개의치 않는다.




-‘가려놓은 거울’ 중에서







2.

작별인사를 나누는 것은 이별을 부정하는 일이다. 말하자면 ‘오늘 우리는 작별의 놀이를 하지만 우리는 내일 다시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비록 자신들이 우연적이고 덧없는 존재이기는 하지만 어떤 방식이 됐든 불멸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작별인사라는 것을 고안해 냈던 것이다.

델리아, 언젠가 우리는 다시 서로 이어지게 되리라. 어느 강가에서? 이 불확정적인 말, 우리는 한때 우리가 평원 속에 묻혀 있는 한 도시 속에서 정말로 보르헤스와 델리아였는지 자문해 보게 되리라.




-‘델리아 엘레나 산 마르꼬’ 중에서







3.

“…(전략)…. 용기란 인내심의 문제지. 어떤 사람들은 더 인내심이 많고 다른 사람들은 더 인내심이 적은 거지. 하지만 종국에 가서는 누구든 느슨해지는 법 아니겠나.”




-‘죽은 자들의 대화’ 중에서







4.

이제 그러한 것들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던 것 같은 느낌을 준다.




5.

한 사람의 꿈은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기억의 한 부분이다.




-4, 5번 ‘마르띤 삐에로’ 중에서




6.

이 세상에 단 하나도 망각이 지워버리지 않거나, 또는 기억이 변형시켜 놓지 않는 게 없고, 아무도 그것이 미래에 어떤 영상으로 바꾸러질지 모르는데 왜 그것들이 나를 경이롭게 만드는지 나는 알 수가 없다.




-‘변천’ 중에서







7.

무엇인가가 내 기억 속에서 잠을 깼다.




-‘만남’ 중에서







8.

가장 일반적인 비유야말로 가장 최고의 비유이다. 왜냐하면 그것들만이 진실된 것이기 때문이다.




-‘노부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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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캐롤은 잘 모르는 말은 곧바로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달라고 강하게 요구했다. 이것은 캐롤이 아주 똑똑하고 같은 나이 때의 쿠슐라보다 훨씬 발달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두 아이는 본질적으로 성격이 다른 아이들인지도 모른다. 캐롤은 이야기를 계속해서 듣는 것보다 ‘안다’는 것이 더 중요했고, 쿠슐라는 때때로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더라도 끝까지 듣고 싶어 하는 아이가 아닐까?




2.

쿠슐라는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병과 장애에서 오는 고통과 불안을 뛰어넘어 이 세상이 친근한 곳이라는 걸 믿었다. 쿠슐라는 자신의 고통이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것’을 이해한 것처럼 보였다. 아이와 어른,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을 한결같이 친하게 대했고, 그 사람들을 믿었기 때문이다.




3.

신체장애가 있어서 잘할 수 없는데도 초조해하거나 화를 내지 않는 것이 쿠슐라의 가장 큰 장점이었다. 쿠슐라는 늘 진지하게 해 본 뒤에 즐겁게 그만두었다.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에 부딪칠 때 쿠슐라는 이렇게 했고, 지금도 이렇게 하고 있다.




4.

사람이 물건보다 더 중요하고, 돈은 모으기 위한 것이 아니라 관심 있는 일을 하는 데 써야 한다는 신념도 함께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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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는 눈을 뜨면 침대 위인데, 그게 바로 자네들 세상에서 말하는 탄생이라네! 그렇게 탄생을 해서 침대에서 일어나면 바로 글도 쓸 줄 알고, 미적분 계산도 할 줄 알고, 커뮤터 프로그램을 짤 줄도 안다네. 그뿐인 줄 아는가? 바로 출근을 해서 사업상 미팅을 하러 가고, 미팅 상대자와 비즈니스용 식사도 할 줄 안단 말일세. 거기서 뭔가 특별한 걸 배운 건 없지만, 우린 모든 일을 문제없이 해낼 줄 아는 걸세. 하지만 우리들도 완벽하진 않을지도 모르지. 왜냐하면 세월이 지나면 서서히 잊어가기 때문일세. 몸집이 작아지면 작아질수록 우리는 점점 더 세상일에 대해서 많이 잊어버린다네.
게다가 사업상의 업무와 식사를 정상적으로 하지 못할 정도로 작아지게 되면, 그때는 회사에 갈 필요도 없어지게 되는 거지. 가봤자 아무런 쓸모도 없으니까 말일세. 그러면 집에 주로 있게 되고 세상 일에 대해 더 많이 잊어버려도 상관이 없단 말일세. 머리는 점점 텅 비어가고, 그러다 보면 머릿속에 공간이 생겨나지.
그런 다음엔, 이제 슬슬 여유를 갖고 다른 사람들이 해준 음식을 먹거나 심심하면 친구들을 찾아가서 놀다오는 걸세. 아니면 정원의 그림자들을 보며 유령이라고 상상하는 놀이를 즐기던가, 아니면 저 푸른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에 이름짓기 놀이를 하던가, 그도 아니면 아기 곰인형에게 호통을 치든 말을 걸든 수작을 걸며 놀아도 좋고, 또 그것도 아니라면...

2.
-그러니까, 말하자면 임금님네 나라에서는 어린 시절이 삶의 마지막에 온다는 거죠?
-생각 좀 해봐! 기뻐할 수 있는 뭔가를 내내 갖고 있는 거라고!

3.
아, 아무려면 어떠나, 인생은 그런 거야. 인생은 사람들이 잠드는 저녁에 시작해서 아침에 사람들이 깨어나면 잠깐 쉬지. 잠드는 것을 깨어나는 것이라고 하고 깨어나는 것을 잠드는 것이라고 불러야 마땅해.

4.
-지금 여기선 이렇게 큰 몸집의 자네가 저 멀리 하늘 위에 있는 별들을 보면 자신이 그토록 작게 느껴진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말하자면 어두컴컴한 구석으로 튕기듯 굴러가도 아무도 아쉬워하지 않는 조그만 바퀴가 된 느낌이죠.
-그럼, 나는 어떤지 아나? 난 엄청난 거인처럼 커지는 느낌이 들어. 내 몸이 늘어나 저 우주까지 뻗는 거지. 하지만 한순간 부풀엇다 언젠가는 팡 터지고 마는 풍선과는 차원이 달라. 어떤 껍질이 팽창하거나 팽팽해지는 것처럼 겉만 늘어나는 게 아니라 그저 몸통 그대로 저절로 커지고 늘어나는 바로 그런 느낌이지. 마치 확 처져서 흩어지는 기체가 된 기분이라고 할까. 결국 나는 만물의 일부일 뿐 아니라 우주 자체이고, 별들은 내 안에 있어. 자네, 그게 어떤 느낌인지 상상할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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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상에는 문과형 인간과 이과형 인간이 있고 문과적 주제와 이과적 주제가 있으며 이과생들은 교양을 쌓기 위해 역사나 철학을 공부할 필요가 있지만 문과생들은 요약정리 이상으로 자세하게 과학이나 기술에 대해 공부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은 학생들만이 아니라 일반 사회에도 널리 퍼져 있는 것이 우리의 불행한 현실이다.


2.

유클리드 기하학에서는 직선 밖의 한 점을 지나 그 직선과 만나지 않는 직선은 하나밖에 없다는 것을 가정하고 있다. 즉, 평행선은 아무리 연장하여도 만나지 않는다고 가정하고 있는데, 19세기에 들어와서는 이 가정을 부정해도 유클리드 기하학의 다른 정리와 모순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다.


3.

자연을 수학적으로 분석한다는 것은, 단순히 경험 현상을 설명하고 예측한다는 도구적 유용성의 차원을 넘어서서 존재 그 자체를 그려낸다는 존재론적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 그 누구도 심지어 아인슈타인조차도 신의 완전함, 그 신이 창조한 우주의 결정론적 속성, 그리고 수학을 통해 이 우주를 완전하게 그려낼 수 있다는 뉴턴의 믿음을 의심하지 않았다.


4.

여기서도 알 수 있듯이, 튜링 검사에서 기계의 지능은 인간의 지능을 얼마나 잘 흉내 내는지에 따라 주어진다. 이는 튜링에게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실제로 기계에게 공평하지 않은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마치 외국인에게 한국의 전통문화에 대한 질문을 던진 후 잘 대답하지 못하면 지능이 떨어진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만약 외계인이 튜링 검사를 받는다면, 결코 지능을 가진다고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또 다른 특징은 주어진 질문에 대해 대답하는 대상이 지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답변이 하나 이상이기에 특정 기계가 튜링 검사를 통과했는지의 여부는 여러 번의 검사를 시행하여 ‘평균적으로’ 기계가 인간보다 성적이 좋을 때로 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특별히 ‘기계적인’ 답변을 하는 인간과 짝지어진 기계는 우연히 한 번에 튜링 검사를 통과할 수도 있다.


5.

게놈 계획 초기에는 유전자 결정론의 철학이 득세했다. 게놈 계획의 추진자들은 인간 게놈만 해독이 되면 유전, 진화, 발생에 대한 모든 신비가 풀릴 것처럼 생각했으며, 게놈 계획을 비판했던 사람들은 게놈 지도가 가져올 차별과 유전자 치료를 통한 사회 불평등의 확대를 걱정했다. 그렇지만 게놈 계획이 끝난 지금, 인간의 유전자는 원래 생각했던 10만~15만 개보다 훨씬 적은 3만개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이 밝혀졌고, 유전자의 기능은 원래 생각했던 것보다 무척 복잡하며, 유전자가 세포나 유기체에 일방적인 명령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세초나 유기체, 그리고 환경과 상호작용을 한다는 것이 드러났다. 유전자가 생명의 본질의 전부가 아니며 환경의 영향을 받는 생명체는 유전자로만은 환원되지 않는다는 것은 1990년대 이후에 생물학자들에게 아주 조금씩 서서히 받아들여졌다.



6.

한편 포퍼는 프로이트와 아들러의 심리학에 심취하여 한때는 아들러 밑에서 버림받은 아이들을 위한 사회사업에 종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무엇이든 설명할 수 있는’ 정신분석학 이론의 모호함에 실망하게 된다.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기 위해 물 속으로 뛰어드는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고 싶은 욕구로 설명하고, 같은 상황에서 물에 뛰어들기를 주저한 사람은 열등감의 결과로 설명하는 것이 아들러 이론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중략)…

결국 포퍼는 마르크스주의와 정신분석학 이론을 과학과 비슷해 보이지만 실은 과학이 아닌 유사 과학적 이론의 대표적인 보기로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각각의 경우 포퍼가 유사 과학의 판정에 이르게 된 이유는 달랐다. 포퍼는 마르크스주의가 보다 평등한 사회에 대한 숭고한 목표에서 출발했음을 인정했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는 명백한 경험적 반대 증거를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이론을 유지하려고 하였기에 ‘과학적’이라고 할 수 없었다.


7.

포퍼는 자만심이 무척 강했고 그를 알던 대부분의 사라에게 인간적으로 호감을 주지 못했던 것 같다. 여기에는 포퍼가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견해에 대해 매우 직설적으로 폭언을 퍼부었고, 그 반면 자신에 대한 비판은 차아내질 못했다는 사실도 한몫을 했다. 나이가 들면서 포퍼는 대중 강연에서 자신의 견해를 비판하는 질문이 나오면 귀가 먹어서 못들은 척하기도 했다. 자유로운 토론과 합리적 비판을 강조했던 철학자로서는 다소 역설적인 모습이다.



8.

일단 전문가들은 근본적인 주제나 그것의 응용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 자주 다른 결론에 도달한다. 한 의사는 특정 수술을 권고하는데 다른 의사는 그 수술에 반대하고 또 다른 의사는 아예 전혀 다른 치료를 제안하는 상황을 가족의 건강과 관련해서 적어도 한번쯤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핵발전소의 안정성이나 경제 상황, 살충제나 헤어스프레이의 영향, 현재 교육 방식의 효율성, 지능에 인종적 요인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 벌어지고 있는 논쟁에 대해 접해 보지 못한 사람이 있는가? 둘, 셋, 다섯 혹은 그보다 더 많은 의견들이 그러한 논쟁 과정에서 제시되며, 그들 각각의 의견에 대해 과학적인 근거에 입각하여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다. 가끔씩은 과학자 수만큼 많은 다른 의견들이 존재한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이다. 물론 과학자들의 의견이 일치하는 영역도 있다. 하지만 그 점이 과학자에 대한 우리의 신뢰를 높여주진 못한다. 과학자들 사이의 의견 일치는 종종 정치적 결단의 결과이다.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억압받거나 그렇지 않으면, 믿을 만하고 거의 오류 불가능한 지식이라는 과학의 명성을 보존하기 위해 스스로 입을 다문다. 다른 경우에 의견 일치는 과학자들이 함께 가지고 있는 편견의 소산이다. 특정 입장이 관련된 사항에 대한 자세한 검증도 없이 수용되고는, 자세한 검증을 거쳤을 때만 얻어질 수 있는 지적 권위를 누리기도 한다.

-파울 파이어아벤트, <자유사회에서의 과학>중에서 재인용



9.

포퍼와 쿤을 조화시키는 이 과정에서 라카토슈는 포퍼를 따라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는 한편, 쿤보다 더 급진적인 상대주의 과학관을 제창한 파이어아벤트와 죽을 때까지 좋은 맞수이자 친구로 지냈다. 라카토슈는 파이어아벤트가 자신이 교수로 있던 런던 정경 대학에 잠시 머물며 강의할 때 강의실 바로 앞에 위치한 자신의 연구실에서 나와 파아어아벤트에게 난처한 질문을 던져대곤 했다. 맨 뒷줄에서 수업을 방해하는 라카토슈의 도전을 파이어아벤트는 성가셔 하기는커녕 무척 즐거워했고, 두 숙적의 눈부신 토론을 지켜보는 것으로 수업을 대신할 수 있었던 당시 학생들도 역시 행복해 했다고 한다.

파이어아벤트에 따르면 어느 날 라카토슈가 자신은 과학적 방법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 쓰고 파이어아벤트는 왜 쓸모없는지에 대해 써서 함께 묶어 책을 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고 한다. 재미있는 기획이라 생각한 파이어아벤트는 적극적으로 호응했고 결국 두 사람은 <과학 방법론을 위하여 그리고 반대하며(for and against scientific method)>라는 책을 함께 내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라카토슈가 1974년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사망하는 바람에 파이어아벤트는 결국 자신의 맡은 부분만 따로 책으로 출판하게 되었고 이 책이 파이어아벤트를 일약 유명하게 만든 <방법에 반대하며>이다. 결국 두 사람이 모두 살아있을 때는 결실을 보지 못한 원래의 책은 1999년 라카토슈의 과학 방법론에 대한 강의 노트와 라카토슈와 파이어아벤트의 논쟁을 담은 형태로 출간되었다.



10.

인간은 목구멍을 통해 음식물도 넘기고 공기도 흡입한다. 그래서 종종 음식물을 먹다가 숨이 막혀 죽을 위험이 있다. 이는 생명체 진화의 어느 단계에선가 두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는 기관이 출현했고 이러한 우연적 사건에 기초하여 이후의 자연선택 과정이 진행되었기에 생겨난 현상이다. 르원틴과 굴드는 이처럼 분명하게 비적응적인 속성도 진화의 역사에서 자주 생겨날 수 있음을 강조한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진화는 텅 빈 도면을 앞에 두고 주어진 환경에 최적의 설계를 찾는 방식이 아니라 미래에 벌어질 상황에 대한 대비 없이 그때그때 임시방편적인 방식으로 기존의 구조에 덧붙이는 방식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도킨스도 진화 과정이 이러한 특징을 갖는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기적 유전자의 무한한 잠재력에 신뢰를 갖고 있는 도킨스는 르원틴과 굴드와는 달리 우연적 요인이나 구조적 제한에서 비롯된 불완전한 적응은 시간이 흐르면 유전자에 의해 극복되리라고 주장한다.



11.

이 저작들에 등장하는 핵심 용어인 후성규칙은 인지 발달의 편향된 신경 회로를 뜻한다. 다시 말해 후성규칙은 유전자에서 개별 마음 그리고 사회, 문화로 이르는 길에 있는 규칙인 셈이다. 유전자는 이 후성 규칙을 만들어 내고 개별 마음은 그 규칙을 통해 자기 자신을 조직한다. 뱀에 대한 공포와 범문화적인 뱀의 상징들, 그리고 색 지각과 범문화적인 색 어휘의 상호작용은 후성규칙에 의해 문화가 창조되는 사례들이다.



12.

그의 반골 기질은 1970년대를 풍미하던 윌슨류의 적응주의를 강하게 비판하는 모습 속에서도 잘 드러난다. 79년에 그는 ‘성 마르코 성당의 스팬드럴과 빵글로스적 패러다임’이라는 기이한 제목의 논문을 발표하여 적응을 손쉽게 양산하는 당시 진화 생물학의 풍조를 호되게 비판했다. 고전의 반열에 오른 이 논문에서 그는 ‘적응주의’를 ‘스팬드럴(spandrel)’이라는 건축 양식에 빗댄다. 스팬드럴은 대체로 역삼각형 모양인데 돔을 지탱하는 둥근 아치들 사이에 형성된 구부러진 표면이다. 베네치아의 성 마르코 성당의 돔 밑에 있는 스팬드럴은 기독교 신학의 네 명의 사도를 그린 타일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다. 굴드는 적응주의자들이 그런 스팬드럴을 보고 그것이 마치 기독교 상징을 표현하기 위해 일부러 설계된 부분인 양 오인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스팬드럴은 아치 위에 있는 돔을 설치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생긴 부산물일 뿐인데 말이다. 이런 비판은 ‘코가 안경을 받치기 위해 진화했다.’는 식의 생뚱맞은 주장을 더는 하지 말라는 경고이며 ‘단지 그럴듯한 얘기’는 집어치우고 시험 가능한 가설들을 제시하라는 주문이었다.



13.

쿤에 의하면 패러다임 전환은 점진적이고 논리적인 선택이 아니며 오히려 종교적 ‘개종’과 유사하다. 따라서 과학 혁명 시기에는 철학적, 제도적, 사상적 요소들이 이론의 선택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14.

해킹이 쿤과 푸코를 만나게 한 방식은 다음과 같다. 쿤이 과학 혁명의 구조에서 다룬 예는 대부분 물리학, 천문학, 화학과 같은 과학들이다. 즉 패러다임이 분명하게 확립되고 이 패러다임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혁명적인 변화를 하는 ‘성숙한’ 과학 분야다. 이 분야에 종사하는 과학자들은 주어진 패러다임 아래서 자연 현상을 가장 정확하게 묘사하려고 노력하며, 이 과정에서 과학 이론은 달라질 수 있지만 과학의 대상인 자연은 계속 같은 방식으로 실재한다. 곧 성숙한 과학은 자연이 작동하는 방식 그 자체를 바꾸지는 못한다. 그런데 푸코가 관심을 둔 의학이나 심리학과 같은 ‘인간과학’ 분야는 ‘덜 성숙한’ 분야들이다. 덜 성숙한 인간과학 분야에서는 과학 이론의 변화가 이에 해당되는 대상을 만들어 낸다. 해킹의 관점으로, 바로 이 점이 푸코의 저술에서 과학철학이 배울 수 있는 가장 심원한 교훈이었다.

해킹은 두 가지 역사적 사례의 연구를 통해서 인간과학이 어떻게 대상을 만들어 내는가를 보였다. 그가 연구한 사례는 모두 논쟁적이었는데, 첫 번째 예는 ‘아동 학대’였고 두 번째 예는 ‘다중인격’이었다. 해킹은 해당 과학의 발전이 ‘아동 학대자’와 ‘학대받은 아이들’을 만들어냈고, ‘다중인격자’를 만들어 냈다고 주장했다.



15.

지금의 과학과는 다른 새로운 과학의 가능성을 얘기하기 위해서는 과학이 사회적, 역사적 요인에 의해서 우연히 결정된다는 사회구성주의를 받아들여야하며, 왜곡된 남성적 과학이 아닌 진정한 과학이 존재한다고 얘기하기 위해서는 사회구성주의와는 정반대인 경험적 실재론을 믿어야 하기 때문이다. 해러웨이는 사회구성주의와 경험주의를 모두 극복하는 방안으로 ‘상황적 지식'(situated knowledge)이라는 개념을 제안하는데, 간단히 말해서 이 개념은 모든 사람(그룹)의 비전이 그 사람(그룹)의 시시각각 변하는 아이덴티티에 의해서 구성되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부분적일 수밖에 없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모든 지식은 부분적이며 상황적이기 때문에, 여성의 눈으로 과학을 한다고 페미니스트 과학이 만들어지는 것도, 현대 과학에서 남성성을 걷어 냄으로써 진정한 페미니스트 과학이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인식의 객관성이라는 것은 자신의 지식의 부분성과 상황성을 성찰적으로 비판하는 데서 연원한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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