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굵직한 질병들은 각각의 표상을 가지고 있다. 결핵은 아름다운 슬픔의 병, 문둥병은 천형(天刑), 두창은 두신(痘神)의 왕림, 매독은 성도덕의 문란, 페스트는 돌연한 습격, 암은 통제할 수 없이 번져나가는 세포, 에이즈는 동성애의 질병.




2.

변강쇠가가 처음으로 겪는 일은 이 사회가 성담론을 금기시하는 사회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중략)…

두 번째로 겪은 일은 병을 이해하는 세계관이 완전히 거꾸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변강쇠가에서는 장승을 뽑은 강쇠의 행위는 오만 가지 악병의 보복으로 응징당했다. 아니, 이런! 20세기의 병리학은 도리어 강쇠의 행위를 칭송한다. “참 사람이 타 죽어도 아무 탈이 없었는데 나무 깎은 인형을 가졌은들 패어 때어 관계(關係)한가. 인불언귀부지(人不言鬼不知)니 요망한 말 다시 말라” 이 얼마나 당당한 태도인가. “병은 세균 때문에 생기는 것이지 귀신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라는 근대 병리학 정신과 일통하지 않는가.

…(중략)…

세 번째로 겪은 일은 시체의 취급과 시체에 대한 관념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점이다. 시체의 취급은 강력한 권력의 감시 아래 놓이게 되었다. 특히 역병사망자의 경우 시체를 함부로 처리하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었다.

…(중략)…

게다가 20세기의 과학은 송장을 돌같이 여긴다. 이 과학은, 이 세상은 물질과 진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곳에서는 물질의 기계적 운동만 있을 뿐이라고 설파한다. 생명체도 마찬가지여서 정신활동도 물질적 영역의 연장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생명이 끊기게 되면 영혼이라는 것은 없고 오직 시체만이 남아 해체의 길을 겪게 되는 것이 진리라고 한다. 이것은 종말론적 세계관이다. 죽어 시체가 된 후 그 이후가 없다. 진공처럼 공허하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이 넋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보던 중세사회의 믿음이 깨지고, 종말적인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훨씬 더 커진다. 이런 세계관 안에서 시체담론은 엄청난 금기가 되었다.




3.

변강쇠가는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고, 셋 모두 근대가 강하게 부정하는 것들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이렇듯 온몸으로 근대와 맞부딪친 작품은 단연코 없다. 성기와 성행위의 낄낄거림, 병들고 병 고치는 행위의 호들갑, 송장놀음의 우스꽝스러움, 이 셋 중 어느 하나도 근대의 검열을 통과해 살아남기 힘든 종자들이었다. 뒤바뀐 근대 세상에서 변강쇠가의 인기를 뒷받침하던 중세적 세계관에 대한 공감대 또한 크게 엷어졌다.

명창 박동진은 이 점을 분명하게 의식했다.

…(중략)…

결정적으로 박동진은 변강쇠가의 내용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사설을 슬그머니 집어넣었다. “이 모든 사설이 웃자고서 한 일이라. 더질더질 살아보자”는 내용이 그것이다. ‘웃자고서 한 일’이란 내용이 황당무계하니 신경 쓰지 말고 그냥 웃고 즐기라는 뜻이다. 이렇듯 그는 혐오스러운 송장놀음, 낯뜨거운 성애장면, 황당한 치병놀음 모두를 현실로부터 떼내려고 한다. 여기에는 근대의 자기검열적 시선이 묻어있다.

이러한 태도는 19세기 신재효본과 거리가 멀다. 신재효본은 비장하며 진지하다.

…(중략)…

그들은 공감했는데, 우리는 공감하지 못한다.




4.

<조선총독부월보> 1911년 4월호를 보면, 조선총독부 의원을 비롯하여 각 자혜의원에서 병을 치료한 한국인들이 ‘감격하여’ 적은 여러 편의 감상문이 실려 있다. 이 잡지에 실린 내용은 각 원장의 보고 중 몇 가지 예만 추린 것으로 한국인의 감상문은 훨씬 많았던 듯하며, 이 감상문은 일본의 시혜, 곧 식민정치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선전자료로 이용되었다.

…(중략)…

그런데 몇 해 전 초등학교 교사용 사회과목 지침서의 자혜의원 항목을 보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자혜의원이 세워져 한국의 의학발달이 이루어지게 되었다”는 말이 나와 있는 게 아닌가?




5.
아마 한국인 대다수의 의사윤리관을 지배하고 있는 두 어휘를 들라하면 인술과 히포크라테스 정신일 것이다. 언론도 마찬가지이다.


…(중략)…

이 윤리는 차별적이고 이윤을 추구하는 의사의 무한한 질주를 가로막는 안전판 구실을 해왔다. 하지만 현대사회의 의료문제를 푸는 데는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하는 개념들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인술과 히포크라테스 정신은 숭고한 의술을 가정하며, 그것의 봉건적․수혜적 특성은 의학의 탈권위를 요구하는 현대사회의 장애가 된다.




6.

현대 한국인에게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의미있게 다가온 것은 1955년 이후부터이다. 이 해에 연세대 의대에서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시행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그 선서는 원래 히포크라테스의 선서가 아니라 1948년 세계의사협회에서 제정한 제네바 선언을 번역한 것이다. 히포크라테스 선서 형식을 모방해서 만든 이 선서에 히포크라테스의 권위를 붙인 것이다.




7.

인술윤리, 의사윤리 또는 히포크라테스 의사윤리는 상한 가부장적 온정주의에 입각한 당위론적 윤리관이다. 환자는 불쌍한 존재이기 때문에 의사가 의술을 베풀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의술의 차등을 낳는 사회적 구조를 무시한 채 의사 개인의 도덕심에 의존하는 형식이었다. 역설적으로 이런 윤리는 의료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헛된 문장에 불과했다. 의학은 결코 숭고하지 않으며 현실의 의료문제는 이런 관념을 깨뜨리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8.

이익은 생리설을 칭찬했지만, 모든 것을 그대로 추종하지는 않았다. 그는 뇌가 감각의 중추임을 인정했지만, 사고의 중추라는 아담 tif의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중략)…

한의학에서는 심장을 마음과 정신활동이 머무는 기관으로 간주했고, 성리학에서는 이런 가정에 입각해서 인간의 본성을 논했다. 서양의 뇌주설(腦主設)은 이에 대한 도전을 의미한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한의학의 토대는 물론이거니와 성리학 전체의 전제가 흔들리게 된다.

조선후기의 여러 학자들이 서양의 새로운 설에 관심을 가지면서도 이 주장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한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사실 이러한 태도는 조선 실학 유학의 융통성과 경직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것이다.




9.

묻혀 있던 지석영을 갑자기 다시 불러낸 것은 “우두법 도입 50주년”이라는 행사였다. 1929년(1879년 지석영이 일본인에게서 종두법을 최초로 배운 것을 기점으로) 당시 매스컴에서는 그를 찾아내 그 업적을 기리는 대대적인 선전을 펼쳤다. 총독부 기관지였던 <매일신보>에서는 우두법을 최초로 개발한 영국인 젠너를 빗대러 “조선의 젠너-송촌 선생”에 대해 길게 연재했다.

…(중략)…

이보다 20년 전인 1908년 의학교 교장인 지석영을 학생감으로 끌어내리고, 결국에는 쫓아냈던 그들이 거꾸로 재야에서 ‘의생’으로 은둔해있던 지석영을 다시 불러낸 까닭은 그에게서 일본의 식민통치를 정당화해줄 어떤 요소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지석영이 우두법을 일본인에게 배웠다는 점이 그것이다. 또한 그의 행적을 통해 조선인의 무지와 조선정부의 무능함을 부각시킬 수 있었다.




10.

우두법에는 틀림없이 무속이, 한의학이, 인두법이 담지 못한 실험과 계량이라는 근대적 정신이 담겨 있다. 그 정신이 우두법에 저항하거나 경쟁하는 다른 것을 물리치는 원동력이 된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19세기 조선의 우두법 승리에 대한 전사를 집필하는 데는 그 이상의 것이 게재되어 있다. 감동과 흥분, 과장과 축소, 은폐와 왜곡이 그것이다. 모두 근대적 정신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들이다. 그러나 그 전사는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정설’이 만들어졌고, 그것이 교과서와 각종 매체를 통해 유포되었다. 비판적 이해보다 밑줄 긋기식 암기가 성행했고, 그 자체가 ‘진실’이 되었다. 근대적 정신을 통해 우리가 계몽되고 성숙한 것인가? 아니면 꾸며진 ‘진실’을 통해 우리가 ‘근대’를 학습한 것인가? 우두법의 승리를 극화하고, 더 나아가 그 사례를 과학 일반으로 확대하고, 궁극적으로는 그것의 원천인 그릇된 권력까지 미화하는 논리와 방식을 생각하면 ‘근대’란 정말로 끔찍한 괴물이다. 그 수선스러움과 반복이 얼마나 지겨운지!




11.

의학의 권위가 높지 않은 만큼 의학에 대한 기대감도 높지 않았다. 모든 병을 고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으며, 잘못된 의료에 대한 비난도 그다지 크지 않았다.




12.

의료이용의 확대가 가능하게 된 것은 의사의 자비 때문도, 국가의 선심 때문도 아니었다. 산업과 군사적 측면에서 인구의 건강가치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증가했기 때문이며, 국민 개개인의 권리의식이 향상되었기 때문이다.

…(중략)…

참으로 기나긴 어려운 역정이었다. 일찍이 지금만큼 의료를 누렸던 시절은 없었다. 병에 걸렸을 때 의약을 찾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되었다. 물론 돈이 없어서 병원과 약국을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이 없지는 않지만, 병에 걸려도 의(醫)와 약(藥)을 쓰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한국인은 몇 안 된다. 모든 사람이 병들면 의사와 약사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정말로 역사적인 사건이다.

…(중략)…

하지만 오늘날만큼 의료가 근본적인 회의에 직면한 적도 없었다. 인간이 그토록 갈망해왔던 끔찍한 역병을 몰아내자마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의학은 “그것이 발달할수록 더 나은 건강을 추구하고, 그것을 의학이 만족시키지 못하는” 역설적인 상황에 빠져버렸다.

…(중략)…

병을 잘 고치는 의학이 있고, 개인 차원에서 의료 장벽이 과거 어느 때보다 낮은 시대이다. 그렇지만 사회라는 집단의 차원에서 볼 때 의료에 투입되는 비용이 엄청날 정도이다.

…(중략)…

또 의학 자체가 권력이 되었다. 한 예로 의사집단의 막강한 힘은 지난 해 의약분업 파동 때 분명하게 확인되었다. 또 다른 차원에서 환자는 자기 병의 치유주체로 서지 못하고 의사에게 의존하는 존재로 왜소해졌다. 치료대상인 인간이 물질처럼 다루어진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의학의 발전이 모든 병을 고쳐줄 것이라’는 끔찍한 맹신이 자리 잡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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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호텔로 돌아가는 동안, 나는 묘한 거리감과 소외감을 느꼈다. 그는 보통 이상의 친밀함과 쾌활한 유머를 보여주었지만 따스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자주 몸이 차갑다고 불평했는데, 그 차가움이 그의 정신마저 싸늘하게 만들어놓은 것 같았다. 여전히 음악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지만, 방금까지 함께 했던 음악가들에 대해서는, 그들의 성품이나 연주와 관련하여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또한 나의 바이올린 연주에 대해서도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어떤 언급도 없었다. 갑자기 내 머릿속에서 우리가 함께 보낸 다섯시간 동안 글렌은 어떤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2.
열다섯 살에 쓴 <나의 학업 계획>이란 수필에서 글렌은 특유의 유머와 문학적 과장법을 동원하여 학문에 관한 자신의 관점을 서술하고 있다.

이런 주제로 글을 쓰기에 나는 좀 불리한 것 같다.......
그렇지만 내가 고등교육을 완전히 등한시하리라고 추측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나는 고등교육이 정신을 자극하며 일깨워주고 새롭게 해주어서, 이 고등교육을 받지 못했더라면 정체되었을 정신에 막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잘 정리된 문구는 1911년에 간행된 마니토바 학교 검인정 교과서 '추수와 귀뚜라미, 그리고 가격 규제'의 서문에 힘입은 바 크다.)
내가 공부하는 과목은 상급반 세 과목뿐이다. 프랑스어와 영어, 역사인데 더할 나위 없이 잘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프랑스어 수업에서는 루소를 읽으며 혁명가들을 지지하고 있으며, 영어 시간에는 <웰링턴>을 읽으며 반동주의자들을 편들고 있는 한편, 역사 수업에서는 밀라노 법령과 칙령에 관해 비판적인 분석을 글로 쓰면서 빈회의에 똑똑한 고등학생 몇 명만 참석했더라면 모든 것이 얼마나 나아졌을까를 확인하고 있다.
이번 연주 시즌의 내 계획은 독주회 몇 차례와, 해밀턴과 토론토의 교향악단과 함께 협연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 글의)제목과는 별 관계가 없지만, 내가 학교에서 왜 과외 활동을 할 시간이 조금도 없는지 충분한 설명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나의 학업 계획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 작문에 대한 교사의 코멘트는 '기발하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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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달력 이야기 속에는 몇 가지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전통력은 양력(그레고리력)에 쉽게 밀려났지만, 그레고리력은 세계력에 밀려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전통력보다 그레고리력이 과학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조금 더 생각해보면 ‘과학적’이라는 말은 간단한 게 아닙니다. 그 말은 오히려 정치적이고 경제적이며 문화적인 것 같습니다.




2.

그런데 그러한 실천이 자기 마음속에서 만족을 얻는 것 외에 달리 보상받을 길이 없다는 점이 공자 사상의 비극입니다. 공자 사상에는 내세가 없습니다. 따라서 왜 그렇게 해야만 하는가 하고 묻는다면, 그렇게 하는 것만이 인간다움을 실현하는 길이기 때문이라는 대답밖에 들을 수 없습니다.…(중략)…그러나 바로 여기에 공자 사상의 강점이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할 때 그 일이 결과적으로 내게 이로울 것인가 해로울 것인가를 따지지 말고, 오직 옳으냐그르냐를 따지라는 것이 공자의 생각입니다. 그리고 옳다면, 비록 그 일을 하다 해를 입을지라도 꼭 해야하는 것이 사람다움을 이루는 길입니다. 공자 사상에는 행위에 대한 인과응보가 없습니다. 다만, 스스로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는 당위가 있을 뿐입니다.




3.





큰 도가 사라지니 인의가 나오고 지혜가 생겨 큰 거짓말이 있게 되었다. 가까운 친척이 서로 화목하지 않자 효도니 사랑이니 하는 말이 생기고, 국가가 혼란하니 충신이 나오게 되었다. -<도덕경>, 18장


 

4.





최고 수준의 통치자는 백성들이 그가 있다는 것만 알게 할 뿐이다. 그 다음 수준의 통치자는 백성들에게 인기가 있고 칭송을 듣는다. 그 다음 수준은 백성들이 그를 두려워하고, 그 아래는 백성들이 그를 경멸한다. -<도덕경>, 17장


 

5.

노자는 “원수를 은혜로 갚으라”라고 하였는데, 공자는 “은혜는 은혜로 갚고, 원수는 정의로 갚으라”라고 하였습니다. 노자는 세상에서 말하는 악이란 ‘선이 결핍된 상태’를 말하는 것일 뿐이고, 도는 선과 악을 갈라서 악을 박멸하자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악을 박멸하겠다는 강직한 태도를 갖는 것은 죽음의 무리라고 하였습니다.

공자는 ‘사람의 삶은 본래 곧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노자는 사람의 삶이 본래 ‘부드럽고 약한 것’이라면서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부드럽고 약하며, 죽음에 가까울수록 단단하고 강해진다고 합니다.




6.




세상 사람들은 마치 진수성찬이라도 받아 놓은 듯 신바람이 났네.

화창한 봄날, 정자에 올라 꽃구경이라도 하듯이.

그러나 나만은 담담하고 조용하며 마음이 동하는 기미가 없네.

마치 아직 웃을 줄도 모르는 갓난아이처럼.

마치 아주 지쳐 돌아갈 집도 없는 강아지처럼.

사람들은 무엇이든 남아돌 만큼 가지고 있지만,

나만은 모든 걸 잃어버린 것 같네.

아, 나는 바보 같구나, 아무것도 모르고 멍하니.

세상 사람들은 똑똑한데, 나는 그저 멍청할 뿐.

남들은 딱 잘라 잘도 말하는데, 나만은 우유부단, 우물쭈물.

흔들흔들 흔들리는 큰 바다 같네.

쉴 줄 모르고 흘러가는 바람이네. -<도덕경>, 20장


 

less..


7.

장자는 통이 커서 별을 따다가 공기놀이를 하는 이야기나 기를 타고 우주 여행을 하는 이야기만 할 줄 알았는데, 이 이야기는 너무 자잘합니다. 겨우 몸 다치지 말고 오래 살자는 이야기 아닙니까? 젊은 남자들이 군대 갈 때, 어른들이 한결같이 충고하는 말과 다를 게 없습니다.

“건강이 제일이다. 몸조심하거라.”

“앞에 나서지도 말고 뒤에 처지지도 마라. 그저 중간만 가라.”

이런 이야기는 철학이라기보다는 비굴하고 교활한 처세술 정도로 보입니다. 그러나 무질서한 세상을 건지겠다는 공자의 도를 비웃은 장자의 ‘큰 도’는, 사실 개인의 생명과 그것의 온전한 발현을 이루어 가는 문제와 단짝입니다.




8.

공자의 제자 중 당대에 손꼽히는 부자였던 자공이 길을 가다가 한 농부를 만났습니다. 농부는 우물에서 물을 길어 가뭄으로 시들어 가는 곡식에 뿌려 주느라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습니다. 돈 버는 재주가 뛰어났던 자공은 새로운 발명품들에 대한 소식을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이 농부에게 새로 나온 물 긷는 기계를 권했습니다. 농부는 자기도 그런 기계가 있는 것을 잘 알지만 일부러 쓰지 않는다고 대답하여 새 소식을 전해 주려 한 자공을 무안하게 만듭니다. 기계를 사용해서 편해지면 인간의 본마음이 변질된다고 하면서, 자기는 땀 흘리는 것을 일부러 선택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합니다.

<장자>에 실려 있는 이 이야기는 기계나 노동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정치적인 이야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기계를 사용하여 더 많이 생산하는 사회적인 변화가 생산을 담당하는 농부들에게 돌려주는 이득이 별로 없다는 뜻입니다.




9.


논쟁자들은 왜 논쟁을 마무리할 수 없는 걸까요? 그것은 옳고 그름의 표준을 삼을 수 있는 기준이 없고, 언어 자체가 하나의 세계를 분열시키고 시비를 일으키는 단서이기 때문입니다.




10.

대인과 소인의 일이 다르며, 마음을 수고롭게 하는 사람은 남을 다스리고 몸을 수고롭게 하는 사람은 남에게 다스림을 받는다는 맹자의 역할 분담론이 그럴듯해 보이지만 마음을 수고롭게 하는 지배 계층의 삶이 몸을 수고롭게 하는 피지배 계층의 삶에 달려 있다는 생각으로 나아가지는 못했습니다. 이 점은 꾸준하게 먹고살 수 있는 경제적 토대, 즉 ‘항산’을 마련해 주어야만 꾸준히 변하지 않는 마음, 즉 ‘항심’을 갖게 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과도 모순이 됩니다. 결국 맹자는 백성들의 정신적 안정이 물질적 안정에 달려 있음을 알면서도, 그렇게 만들어진 꾸준히 변치 않는 마음을 지배 계층에게 복종하고 의리를 지키는 마음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11.

현대 과학이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수식과 기호와 과학 언어로 표현되어 극도로 추상화되었다면, <주역>은 모호한 상징과 한문이라는 비일상적 문자, <주역> 신봉자들의 특수한 해석으로 신비화되어 있습니다. 신비화된 <주역> 이론은 과학에도 낄 자리가 없고, 대중에게도 설명할 방도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주역>을 알면 우주를 안다느니 귀신을 부린다느니 하는 말이 나올 수 있는 것은, 인간이 전지전능한 신을 만들어 냈을 때 가졌던 나약함과 의존성을 아직 버리지 않고 있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12.

마침 <논어>의 ‘효’에 관한 구절을 강의하던 그 선생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즈음 아이들은 우유를 먹고 자라지. 우유는 소 젖 아닌가? 소젖 먹고 자란 아이와 사람 젖 먹고 자란 아이는 다르지 않겠는가?”

아마도 ‘충효 사상’을 내세우면서 불효자들이 가득 찬 세상 탓만 할 게 아니라, 먼저 아이들을 사랑으로 키웠는지 반성해야 한다는 뜻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우유를 먹는다고 사람이 달라질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도덕은 문화의 산물이며, 사회의 상부 구조인 문화나 도덕은 우유를 먹느냐 모유를 먹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생산 관계나 물질적 토대에 달려 있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우유를 먹이느냐 모유를 먹이느냐의 문제가 바로 사회적 토대와 관련 있는 것이며, 나아가 가치관이나 생활양식까지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몇 해 전, 신문에 영국의 한 의학팀이 돼지의 유전자를 조작해서 그 뱃속에 사람의 간이나 심장을 달고 살게 하는 데 성공하였다는 보도가 실렸습니다. 그 기사를 보면서 언제든 뱃속에 있는 인간의 장기를 다시 사람들에게 내주어야만 하는 그 돼지가 사람들의 식사를 위해 제 몸을 내주는 돼지보다 더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의 시간에 이런 문제를 가지고 토론을 했을 때, 학생들은 윤리라는 명목으로 과학 연구를 제한할 것이 아니라, 과학이 발견한 지식과 능력을 바르게 사용하도록 통제하면 될 뿐이라는 의견을 많이 냈습니다. 나는 학생들에게 묘한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너와 내가 논쟁을 하여 네가 이겼다면, 과연 너는 옳고 나는 틀린 것인가. 내가 너를 이겼다면, 과연 나는 옳고 너는 틀린 것인가. 우리가 결론을 내릴 수 없어 제삼자를 부른다면, 우리는 누구에게 바르게 판정해 달라고 할 수 있을까. 너와 의견이 같은 사람은 이미 너와 의견이 같으므로 바르게 판정할 수 없다. 나와 의견이 같은 사람은 이미 나와 의견이 같으므로 바르게 판정할 수 없다. 우리와 의견이 다른 사람이라면, 이미 우리와 다른데 어떻게 바르게 판정할 수 있겠는가. 우리와 의견이 같은 사람이라면 이미 우리와 같은데 어떻게 바르게 판정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너와 나와 제삼자가 모두 서로 알 수 없는데, 또 다른 사람을 부른다고 해결되겠는가. -<장자> ‘제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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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30세가 되면 연주회를 그만두겠다고 밝힌 바 있었다. 그리고 32세에 이 말을 실행에 옮겼다. 50세에는 녹음을 그만두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50세가 되던 1982년 9월 25일 토요일 CBS는 <골트베르크> 두 번째 녹음을 내놓았다. 그 다음 다음날, 굴드는 임종으로 들어갔다. 그의 음반을 열심히 기다렸던 사람들은 그의 연주를 듣게 됨과 동시에 연주자의 죽음의 소식을 함께 들어야 했다. 토론토 종합병원에서 8일간 그가 들어 있었던 혼수 상태(Coma)와 음들 사이의 작은 휴지(休止)를 의미하는 숨표(Comma)는 서로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 둘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운명의 짓궂은 아이러니와 일치하는 것이 될 테니까. 굴드가 50세하고도 이틀이 되었을 때 동시 녹음 스튜디오는 소생실로 대치되었다. 하나의 기술을 또 하나의 기술이 대치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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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열자, 조선을 습격하다 - 몸과 의학의 한국사
신동원 지음 / 역사비평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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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규항은 B급 좌파에서 이렇게 말했다.


돌팔이 이후 내가 만난 의사들이란 늘 불친절했다. 몸에 좋고 나쁜걸 잘 구별해 먹어선지(이른바 의사답게) 평균보다 뽀얀 외관을 한 그들은 늘 환자에게 불친절했다. 그들이 그 뽀얀 입을 여는 순간이란 자기들(이른바 의료진들)끼리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대화할 때뿐이다. 그런때 그들의 얼굴은 생선가게 앞에서 생선의 물을 의논하는 아주머니들의 나른한 얼굴과 같다. 답답하다 못한 환자나 보호자가 비굴함을 넘어서는 겸손으로 질문이라도 할라치면 그들은 그 질문의 비전문성을 사사오입한다. (중략) 오늘 우리가 의사들을 '선생님'이라 부르는 이유가 그들이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특별한 임무를 가진 사람들이라서라는 의견은 순진하다 못해 아둔하다.
이 '돌팔이'라는 글의 나머지 부분이 어떻게 기술되어 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 부분만 놓고 보면 김규항이 바라는 의사의 모습은 대략 두 가지다. 하나는 '친절한 의사', 다른 하나는 '탈권위적 의사' 이제 곧 레지던트 시험을 앞두고 있는 친구의 말을 들어보면 우리는 두 모습 모두 기대해서는 안 된다. 혹시 어쩌다가 원래 타고난 품성이 친절한 의사를 만날 수는 있다. 탈권위로 말할 것 같으면 의학지식이 너무나 전문화되어버리는 바람에 쓰이는 언어가 달라졌다. 권위를 따지기 전에 전문화로 쓰이는 말이 달라지고 거기다 의사와 환자라는 '강자와 약자'의 구도까지 더해지면 권위(권력일까?)는 절로 생겨난다. 우리가 이미 낮아진 의료서비스의 문턱이 높아지는 것을 싫어하는 것처럼 의사들도 얻은 권위를 내놓기 싫어한다.


2.
이 책은 미시사 책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미시사 책은 언제나 재미있으면서도 살짝 지루한 감이 있었던 것 같다. 책세상에서 나온 <문화로 보면 역사가 달라진다>, <감금의 정치>는 워낙 얇아서 재미있게 읽었고, 지호 출판사에서 나온 니겔 로스펠스의 <동물원의 탄생>은 약간 지루한 감이 있었다. '몸과 의학의 한국사'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내가 지금까지 읽어본 미시사 책 중에 밀도가 가장 높은 것 같다. 책의 밀도가 워낙 높아서 내용의 절반 정도밖에 이해하지 못했지만 상당히 인상적인 책이었다. 쉽게 볼 수 없는 이미지 등 사료를 상당수 싣고 있고 굉장히 세세하다. 이런 밀도 치고 편집도 훌륭하다. 문체나 주석 등도 신경쓴 흔적이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구조가 탄탄하다. 서문에서 책 전체를 훑어주며 어떤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지 짚어주고 각각의 글이 시작될 때에도 앞으로 어떤 이야기들을 할 것인지 미리 예고한다. 사소한 것 같지만 낯선 분야의 글을 읽을 때 이런 작은 배려는 엄청난 도움이 되며 나처럼 비논리적인 사람들은 감히 시도할 수 없는 기술이라 생각된다. 분명히 미시사 책이고 다 읽고 나면 시대순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걸 알지만 읽고 있을 때는 잘 인식하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부제인 '몸과 의학의 한국사'에 아주 충실한 책이다. 조선후기, 일제시대, 개항 이후 등 시대를 나누는 말이 책을 나누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한 장점이다.  


3.
의학과 관련한 광범위한 주제들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기 때문에 내가 어느 정도 소화했는지는 모르겠다.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변강쇠가와 심청전으로 읽는 그 시대의 사회상을 다룬 부분이었다. 특히 변강쇠가에서 각 담론을 뽑아내고 이를 19세기와 20세기의 세계관을 통과하면서 공감될 수 없는 작품이 되기까지를 다룬 글은 필자의 요리솜씨랄까, 아무튼 뭔가 감탄했던 장이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대한 글도 인상적이었다. 일반 시민이나 언론이나 전근대적 수준에서 의사윤리를 논하기는 마찬가지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받는 것이 시혜가 아니라 권리처럼 되어버린 현대에 의사의 가부장적 권위를 인정하고 그들의 자비심을 바라는 봉건적인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운운하는 것은 아이러니다. 일본을 통해 접하게 된 서양의술을 다루는 부분부터 필자의 무게중심은 '근대'에 쏠려 있는데 '근대'에 대한 필자의 입장은 우두법을 다루는 장의 한 꼭지글 제목이 그대로 드러낸다. '계몽된 근대인가 근대의 세뇌인가' 이 질문을 던질 수 있는게 어디 의학사뿐이랴.


4.
의료서비스의 문턱이 낮아지고 의학이 권력이 되어버린지는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놀랄 정도로 얼마되지 않은 일이다. 서양의학은 종교적 의술이 한의학에게 내어준 자리를 빼앗고 빠른 속도로 확실한 1위를 굳혔다. 제도적으로 양의는 양성했지만 한의는 방치했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 양의와 한의에 대한 뿌리깊은 선입견들이 존재하는 가운데 의료서비스의 문턱은 다시 높아지려고 한다. 식코가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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